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과거 한때, 무당파가 천하에서 가장 밝게 빛났을 무렵.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을 꼽으면 무당파에서 여덟, 아홉이 거론되었다.
또한 일종의 광기처럼 무당파의 모든 게 유행했다.
그 영향으로 무림에는 선제공격보다는 후발제인(後發制人)의 묘리가 정답인 것처럼 여겨지곤 했었다.
무당파가 유(流)를 바탕으로 해서 기본으로 내세운 결과가 천하제일이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당시에는 비무나 생사투나, 무인들은 상대가 선공에 나서기만을 주구장창 기다렸고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눈치만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간과한 사실이 있으니 무당파 역시 최선을 선공으로 삼으며 차선을 후발제인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라는 말처럼.
선공은 하수에게나 고수에게나 유리한 거점이었다.
털썩-
쿠궁-
풍전 앞에서 기세를 바짝 올리고 있었던 포위망이 물결처럼 쓰러져 나갔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뇌기의 파동 앞에서 멀쩡히 버티는 건 쉽지 않았고, 빈틈이 없었던 포위망은 풍전이 내지른 일격에 해체되고 말았다.
‘죽이지만 말라고 했으니까.’
누구는 눈이 뒤집혔고, 누구는 게거품을 물고 있다.
누구는 아직 다 해소되지 않은 뇌기와 맞물려 경련과 함께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기도 했다.
심한 녀석은 단전에 전신 혈도까지 진탕이 난 터라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족히 몇 달은 걸릴 테지만, 풍전은 덤덤했다.
‘목숨줄만 붙어 있으면 그만이지.’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곱게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풍전 본인이나 송윤천이나 죽지는 않을 테지만, 저들은 분명히 자신들을 철저하게 제거할 생각으로 움직였을 테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죽지 않을 정도로 조절한 탓인지 광범위한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은 녀석들이 있었다.
비틀거리면서도 이를 악물고서 어떻게든 두 발로 버티는 놈들.
하지만 동공에 힘이 풀린 모습을 보니 가만히 두어도 알아서 쓰러질 테니 이쪽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남은 건 설운도와 설전을 벌였던 북리평이라는 자를 비롯한 소수의 실력자.
‘사형제인가?’
검법이라고 해서 다 같은 모양을 한 게 아니듯이.
빙공이라고 해도 다 같은 빙공이 아니었다.
그리고 살기를 피워대는 몇몇 상대에게서는 설운도와 똑같은 기운이 전해졌다.
같은 빙공 혹은 흡사한 계열이었기에 그렇겠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원수만도 못한 사이가 분명했다.
전면에 섰던 풍전이 뒤로 물러났다.
이미 한 번 크게 뇌기를 선보인 만큼, 상대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터.
게다가 실력으로 비춰봐도 자신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설운도 못지않은 빙백신공의 계승자들이 몇 섞여 있었으니까.
수적 우위에 서서 사방에서 살기를 잔뜩 피워대니 가뜩이나 한산한 분위기가 더욱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두렵거나 하는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풍전에게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뒷배가 떡하니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장주, 보고만 있지 말고 같이 합시다.”
풍전이 적들을 바로 앞에 두고도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뒤로 돌렸다.
저놈들은 우물 안 개구리.
아니, 북해 안 개구리였다.
처음부터 자신이 아니라 송윤천이 나섰다면 저렇게 두 눈 부릅뜨고 째려보지도 못할 놈들이 다 끝났다는 태도를 보이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지.”
풍전이 전력으로 나선다면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최소 중상이었다.
환자를 질질 끌고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중원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으니 직접 나설 수밖에.
송윤천과 풍전이 중원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게 자신들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여겼는지.
“감히 누구 앞이라고.”
다혈질이 분명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가 성을 냈다.
“설운도는 살려만 두고 외지인 둘은 여기서 죽이면 되겠어.”
그러자 북리평이 위엄이 잔뜩 서린 목소리로 명령했고.
사방에서 한기가 서린 권, 장, 지, 각이 풍전에게 집중되었다.
풍전이 항룡십팔장에 뇌기를 더하여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드드드득-
터억-
쿠웅!
살기와 함께 접근하던 이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어서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 누구보다 빙공에 자신이 있었던 빙공의 고수들은 얼음에 갇힌 채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깨어있는 모두의 시선이 힘의 근원으로 향했고.
“네 말대로 죽이지는 않았다.”
송윤천은 손을 저으며 자신의 손목까지 뒤덮인 살얼음을 가볍게 털어냈다.
남은 건 뒤에 서서 고고하게 명령을 내리던 북리평 뿐.
“고맙소.”
설운도가 감사 인사와 함께 북리평에게 접근했다.
북해빙궁의 장로답게 북리평이 펼치는 빙공도 보통은 아니었지만, 상대는 빙공의 정점.
빙백신공의 계승자인 설운도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콰드드드득-
짧은 접전 끝에 마주한 손바닥에서 상대를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가 마구 뿜어져 나오고.
설운도는 북리평이 어깨까지 얼어들어갔을 즈음이 되어서야 상대와 마주한 손바닥을 떼어냈다.
“이대로 떠날 텐가?”
송윤천이나 풍전이야 이대로 북해빙궁을 나서서 다시 중원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지만, 설운도는 그렇지 않기에 물었다.
“차기 궁주직을 노리는 건 다른 파벌도 마찬가지요. 그리고 이들은 앞에 서기 위해서 많은 수작질을 부려왔고.”
굳이 설운도가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다는 뜻.
“우리는 갑시다. 한시라도 서둘러야 하니.”
결심을 내린 설운도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송윤천과 풍전이 뒤를 잇고 잠시.
주변에서 멀리 떨어진 채로 상황을 눈여겨보던 다른 파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리평 장로. 이 늙은이와도 나눌 얘기가 많지?”
욕심 그득한 장로가 수하들을 이끌고 등장해서 맥을 못 차리고 있는 몇몇을 전쟁포로처럼 이끌고 빙궁을 벗어났다.
북해의 장점이자 단점은 땅은 넓은데 사람은 적어 무엇이든 한적한 곳에 파묻으면 금방 찾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었다.
“으아아아악-!”
북리평은 위엄을 벗어던지고 어떻게든 달아나 보려고 했지만, 두 팔이 꽁꽁 얼어버린 데다가 내상을 입은 터라 금방 잡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지난날 처리했던 수많은 적대 세력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말았다.
* * *
북해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이 없었다.
빙궁을 벗어나자 또다시 온통 눈 그리고 얼음이 전부.
새하얗게 물든 세상 속에서 설운도는 북해의 북쪽 끝을 향해 전진했다.
조금만 더 지나자 간혹 보이던 민가조차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신 여기저기에 선 채로 얼어붙은 시체가 보이곤 했다.
“북해에는 따로 감옥이 존재하지 않소. 중죄를 저지른 죄인들은 단전을 폐하고 북쪽으로 내모는 게 최고의 형벌이오.”
설운도는 질문이 나오기 전에 먼저 사실을 밝혔다.
“효과적이구먼.”
송윤천에게 내용을 전달받은 풍전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걸어가도 보이는 건 눈밭과 얼어 죽어 나간 시체가 전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체도 보이지 않으며 기존과는 궤를 달리하는 한기가 닥쳐왔다.
“이제 빙정에 거의 다 온 것 같소.”
빙백신공을 수련한 설운도나 완벽하게 한서불침(寒暑不侵)을 이룬 송윤천은 빙정이 발산하는 한기 앞에서도 별문제가 없었다.
“이러다가 나도 얼어 죽는 건 아닌지 몰라.”
그나마 한기에 취약한 풍전이 몸을 슬슬 떨어댔다.
물론, 이것 또한 엄살이 다분했다.
풍전이 가진 건 강력한 뇌기.
즉, 극한의 열기를 자랑했으니 이 정도의 한기 앞에서 얼어 죽을 일은 없었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거친 눈보라를 뚫고 걸어 나가자 북해빙궁보다도 훨씬 드높은 무언가가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설산(大雪山)이라고 하오. 북해에 몇 없는 산이며 정상에는 만년설 위에 우뚝 선 빙정이 존재하오.”
정상까지 올라가야만 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나 앞으로 남은 길이나 험난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게 말없이 대설산을 오르던 도중.
후미에서 뒤따라 오르던 송윤천이 멈춰서 둘을 불렀다.
“둘이 먼저 올라가라.”
“무슨 일이라도 있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일을 마치고 따라가지.”
“알겠소.”
어차피 빙정을 노리는 건 소수마녀 한 명뿐.
혼자라면 몰라도 설운도와 풍전이 함께 있으니 문제는 없으리라 판단했다.
결국, 둘은 다시 정상을 향해 가고 중턱에 홀로 남겨진 송윤천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서성이다가 길을 찾았다는 듯 외진 곳을 향해 눈보라를 헤치며 한참을 나아갔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자그마한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송윤천이 다가서려는 찰나, 집 안에서 여인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신가?”
송윤천은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반갑다는 듯, 대답했다.
“누님. 접니다. 송가.”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머리가 눈처럼 새하얗게 물든 여인이 작은 미소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네, 동생. 여전하고.”
“누님도 여전하십니다.”
그녀의 정체는 설녀(雪女).
북해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살아있는 전설이자 대설산의 주인.
그리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빙정의 수호자.
“아니지, 자세히 보니 조금 강해졌네.”
“그래도 누님만 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송윤천을 상대로 전승을 거둔 강자였다.
* * *
송윤천은 괴력난신으로 거듭나며 약자에서 강자가 되었다.
그 상태로 갖은 공부를 이어가니 더욱 성장했고, 감히 천하제일이라 부를 만큼 강해졌다.
중원을 통틀어봐도 사람이든 괴력난신이든 송윤천을 따를 자가 없다시피 했다.
목표로 삼았던 모든 것을 성취하면서 중원을 떠도는 일상에 지쳐버린 송윤천은 무작정 중원을 벗어났다.
서쪽과 남쪽에는 아쉽게도 그의 흥미를 끌 만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동쪽 바다 건너 왜국은 분명히 강자가 존재했지만, 송윤천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왜국 전역에 얽힌 사기(邪氣)가 이지를 흩트려놓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송윤천은 자신조차 미쳐버리기 전에 왜국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북해.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알려진 건 중원처럼 춘하추동이 고르지 않고 항상 겨울인 탓에 날이 좋지 않았다는 것.
그럼에도 북해가 지금처럼 혹독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송윤천은 북해의 끝에 도달하여 대설산에 올랐고 한 존재를 마주했다.
바로 설녀였는데 송윤천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며 그가 상대도 되지 않는 강자였다.
패배를 인정한 송윤천은 잠시 대설산과 그 주변에 머물며 설녀에게 여러 가르침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그녀처럼 강해질 수 있는지.
세상의 이치가 어떠한지.
온전한 정신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
인과율(因果律)에 따라 생사를 자신의 의지로써 결정할 수는 없는지…….
설녀는 흔쾌히 송윤천의 스승이자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즈음, 며칠 만에 다시 설녀를 마주한 송윤천은 그녀의 곁에 두 갓난아이가 있음을 보고 놀라 물었다.
“자식입니까?”
그러자 고개를 저은 그녀가 잠든 아이들을 두고 나와 답했다.
“자식처럼 생각하려고 한다.”
생애 처음으로 마주하는 나약한 생명 앞에 밝게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과 다르게 빙정의 기운이 약했던 탓에 평범한 사람들도 대설산에 접근할 수 있었다.
부모가 누군지는 몰라도 버려진 아이를 설녀가 울음소리를 듣고 발견했다고 한다.
괴력난신임에도 차마 죽어가는 아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고.
“부족하지만 잠시나마 곁에서 돕겠소.”
“고맙다.”
시간이 멈춰버린 송윤천이나 설녀와 다르게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거기서 송윤천은 언젠가 대설산을 떠나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설녀와 함께 무공을 만들었다.
“그때 누님이 직접 작명하신 무공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고말고. 하나는 소수공(素手功)이었으며 하나는 빙백공(氷白功)이었지.”
설녀가 그리운 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랬지요. 지금도 존재합니다. 다만 하나는 마공이 되었고, 하나는 신공이 되었지요.”
송윤천이 밝힌 진실 앞에 설녀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마치 차가운 얼음처럼.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