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여기는 딱히 변한 게 없군요.”
“그러게 말이다.”
송윤천도 월도 한때는 운남성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었다.
월은 수백 년 전에.
송윤천은 그보다는 한참 더 먼 옛날에.
“마지막으로 왔을 때가 떠오르기도 하고.”
“……저는 굳이 떠올리기 싫은데요.”
“그러게, 성질 좀 죽이고서 착하게 좀 살지.”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을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것도 같은 하늘임에도 까마득하게 멀어서 닿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송윤천과 월의 첫 만남은 악연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잘만 흘러가고 있었다.
송윤천이 운남성의 괴물로 악명이 자자했던 월을 일깨워서 데려간 이후 수백 년 만에 첫 방문.
그때나 지금이나 운남성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운남성의 특성 탓이기도 했다.
운남성은 중원의 서남단이다.
분명히 중원의 영토였지만, 황실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또한, 위로는 사천성을, 옆으로는 광서성을, 아래로는 남만(南蠻)을 두고 있어서 언제나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정파가 득세하는 사천성에서 떠밀려 난 자들.
야심 차게 광서성을 털어먹으려 했으나 패퇴하고 내륙으로 도주한 왜구.
혹은 왜구에게 달라붙어 이웃을 뜯어먹던 중원인.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중원에서 밀려나고 남만에서 밀려난 자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운남성으로 숨어들어와서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운남성은 특히 이런 자들에게 무릉도원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형의 구 할 이상이 고원이나 구릉, 산지 등이었기 때문.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으나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피해서 숨어 살기에는 너무나도 안성맞춤이었지.”
인적 없는 산길을 지나치던 송윤천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앞에는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는 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지만, 송윤천은 놓치지 않았다.
“어디 보자…….”
그가 장난처럼 던진 돌이 우거진 나무 위로 쑥 하고 사라졌다.
퍼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흉측한 도끼를 든 산적 몇몇이 가을날 잘 익은 열매처럼 추락했다.
“이런 놈들도 여전하고.”
그나마 근성 있어 보이는 한 녀석이 철철 흐르는 피를 무시하고 달려들었지만, 가볍게 처리하고 지나쳤다.
그 뒤로도 간간이 좋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앞을 막아서는 무리가 등장하곤 했다.
수십 앞에서 옷 태가 괜찮아 보이는 소수는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으니까.
송윤천과 월은 굳이 앞길을 막아선다면 손을 쓰기를 망설이지는 않았으나, 먼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는 않았다.
지금은 이런 것들보다는 암림이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
그렇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던 운남성을 지나 마침내 남만이라 불리는 지역에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마치 운남성과 남만 사이를 선을 그어 나누듯.
주변을 타고 감도는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운남성과는 다른 의미로 고요하군요.”
이들이 지나온 운남성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하기 위하여 이곳저곳에 몸을 숨기고 먹잇감을 노리는 듯했다.
그에 반해 남만은 피식자가 포식자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잔뜩 몸을 움츠린 듯했다.
암림에 가까워지자 그 이유가 확연히 드러났다.
“이미 시작된 모양이다.”
당연히 남만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 문파가 있으며 가문도 존재했다.
송윤천 일행은 그중에서도 암림에 근접했으면서도 가장 세가 큰 문파를 확인했다.
이들은 과거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에 중원 침략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던 세력 중 하나.
끼이이익-
하지만 문틈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그게 현재가 아님을 뚜렷하게 증명했다.
박살 난 대문이 열리자 드러나는 처참한 살육(殺戮)의 현장.
한때는 생기가 넘쳤을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생존자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방에 널린 모든 시신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피가 빨린 듯, 메말라 있으며 단전이 있을 하복부가 관통된 흔적.
단순히 죽이는 데서 그치지 않은 것이다.
“이 모두가 천일(天日) 부족의 짓입니다.”
월을 찾아왔던 암림의 고양이 요괴 하현(下弦)이 앞서 흔적을 살피고 확언했다.
식육(食肉).
중원에서는 사술이라고 부르며, 남만에서는 주술로 통하는 행위.
이들은 그 행위를 주술에 그치지 않고 식육으로서 실현해냈다.
“내버려 둔다면 가장 먼저 암림이 사라질 테지.”
식육은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
식육을 멈추는 순간 약해지기 때문에 식육에는 끝이 없다.
“벌써 일부가 바깥에서 나타날 정도라면…….”
설명을 요구하는 월의 눈빛에 하현이 입을 열었다.
“제가 떠나올 적에도 이미 많은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암림은 끝을 모르는 미지의 영역.
암림에서 나고 자라왔던 월조차도 그곳에 누가 얼마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또한, 암림에서 죽고 죽이는 건 일상이었으니 희생자가 많다는 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만, 적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니 지금쯤이라면 피해가 더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터.
“어서 들어가지.”
셋이 암림에 돌입하는 순간.
완연한 한낮임에도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월에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다.
단 한 걸음.
암림에 발을 내딛는 순간.
사르르륵-
목덜미를 타고서 등과 팔뚝을 지나쳐서 손가락 끝마디까지.
그리고 허벅지를 타고 종아리를 지나 발끝까지.
월은 잔털이 바짝 올라섰음을 느꼈다.
“아…….”
작게 벌려진 입가를 타고 흘러나오는 깨달음.
잊고 있던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거기선 무뎌지고 무료 하고자 했던 바깥세상에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은 이곳에서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하고자 했는가.
오로지 살고자 하는 본성만이 월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
월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이 물결치듯 반응해왔다.
그건 누군가를 죽이려는 목적의 살기(殺氣)가 아니라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 대한 경계심.
보일 듯 말 듯 작게 떠진 실눈이 정면을 향했다.
“이쪽입니다.”
거기에는 자신을 찾아온 하현의 등판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뒤따라오는 송윤천이 있었다.
사방이 완연한 어둠으로 잠식되었지만, 송윤천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고작 몇 장에 지나지 않는 거리임에도 서로의 눈빛이 확인되지 않는 와중.
“…….”
월은 송윤천과 시선이 마주쳤음을 느꼈다.
자신은 뒤늦게 알아챘다.
그렇다면 송윤천은?
‘장주님이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아마도 후자일 것만 같았다.
그래도 송윤천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래, 여기까지 온 마당에…….’
월은 송윤천의 결정을 지지했다.
그리고 다시 어둠을 헤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하나둘.
자신에게 몰려드는 적대심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직인가?”
“예? 아, 그렇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월의 뜬금없는 질문에 이들을 안내하던 하현이 걸음을 멈칫하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후각.
시체가 썩어들어가는 특유의 악취가 사방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암림 출신으로서 오감이 발달한 월에게 있어서는 참기 힘들 정도.
“도착했습니다.”
하현이 멈춰선 건 딱 그쯤에서였다.
어둠만이 가득한 시각.
수풀이 부딪치는 소음으로 가득한 청각.
악취만이 전부인 후각.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가지런하게 정돈된 살기가 월을 향해 집중되었으니까.
멈춰선 하현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언제부터 눈치챘습니까?”
“암림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런……, 제가 안일했군요. 혹시 제 행동이 수상했습니까?”
“나를 찾아왔을 때 하복부에 크게 상처를 입지 않았나.”
하복부에는 무인이 형성하는 하단전이 자리했다.
하지만 월도 그렇고 하현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아닌 괴력난신.
소수의 괴력난신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중단전에 해당하는 심장이 하단전을 대신한다.
“만약 네가 당했던 부상이 진짜였다면 심장 어귀였어야겠지.”
그리고 아마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암림 최강이라는 천일 부족을 상대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으니까.
만약 암림에 머물던 시절이었다면 단박에 알아챘을 터.
그러나 한동안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며 살짝 닿기만 해도 살점이 떨어져 나올듯한 날카로운 날은 한없이 무뎌지고 말았다.
월은 자신이 암림에서 멀어졌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화가 났다.
잠시나마 이따위 속임수에 속아 넘어간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늦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알아챘구나.”
“장주님은 언제부터 눈치를 챈 겁니까?”
“당연히 처음 봤을 때부터다. 도주하는 부상자가 떡하니 있는데 추격자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
송윤천의 추론은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수준.
“제가 졌군요.”
일상 속에서 무뎌진 건 송윤천이나 월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판단은 달랐던 모양이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만, 두 분 모두 여유가 넘쳐 보이십니다.”
“왜? 그러면 안 되나?”
하현은 자신을 앞두고, 사방이 포위된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이들을 보고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댔다.
“아, 그전에 하나만 더 물어보자.”
“……뭡니까.”
“넌 왜 그랬냐?”
아무리 암림에서 딱히 종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엄연히 괴력난신에 해당하는 하현이 인간 부족에게 달라붙다니.
처음부터 끝까지 유아독존 하면서 살아남았던 월로서는 좀처럼 그의 방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요? 암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뭘 못하겠소.”
경멸이 뒤섞인, 정말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
거기서 예전에 암림을 떠난 월과 현재를 살아가는 하현 사이에서 좁혀질 수 없는 커다란 간격이 드러났다.
“하……, 그래. 살아남아야지. 어떻게든지.”
하현 본인은 현명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월이 보기에는 멍청한 판단이었다.
끝까지 이용만 당하다가 죽을 거라는 건 생각도 하지 못한 게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도 저건 저놈의 처지고.’
안타깝지만, 그건 본인의 판단이었으니 월이 신경 쓸 게 아니었다.
저놈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으로 자신을 바쳤을 뿐이니까.
월이 의지를 불태우는 순간.
송윤천 역시 넓게 펼쳐진 감각에 무언가 익숙한 게 걸려들었음을 인지했다.
“네가 왜 여기 있지?”
송윤천이 빼곡한 포위망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옆으로 걸어 나갔다.
“설마.”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혈교의 잔재가 여기에 놓여 있음을.
그리고 그 주변에는 사술 혹은 주술의 흔적이 가득하기도 했다.
‘이렇게 된 건가.’
송윤천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과(因果).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었다.
천일 부족은 홀로 움직인 게 아니었다.
분명히 외부의 자극에 반응했으리라.
“나를 아나? 그러는 네 녀석은 누구지?”
혈마는 자신을 알아보는 미지의 적을 향해서 살기를 일으켰다.
“너……, 아니지. 너희의 마지막을 장식할 자.”
혈마를 위시하여 사방에 그와 같은 기운을 한 무리가 가득했다.
생존을 위하여 천마신교에 흡수되었다가 다시 분리된 혈교가 바로 그들.
‘괴력난신을 숭배하며 그 힘을 계승한 사람이라…….’
그 연결고리가 상당히 느슨해져서 이제는 끊어지기 직전이기는 했지만, 어찌 됐든 간에 혈마는 혈교의 잔재였다.
그리고 혈교는 괴력난신인 흡혈괴마와 혈교의 교주로 환생한 바 있었던 천살성을 계승했으니.
“의도치 않은 만남이지만, 여기서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싶다.”
송윤천으로서는 얻어걸린 격이었고, 혈마로서는 얻어맞은 격이었다.
물론, 천마신교가 몰락하며 중원이 혼란에 빠진 지금.
다시 한번 혈교의 이름 아래 천하제일로 우뚝 서고자 하는 혈마에게는 먹히지 않을 발언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나 자신들을 막으려 드는 놈이 있다?
그것도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이 암림의 중심에서?
놈이 강자이든 약자이든 그 힘을 떠나서 처리하기에 여기보다 더 적당한 환경을 없을 터였다.
그리고 강자라면 당연히 지금 처리하는 게 맞았다.
위대한 혈교의 재림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저 자식부터 죽인다.”
암림의 끝없는 어둠 속에서 사특함이 가득 차 있는 핏빛이 일어나 송윤천에게 향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