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송윤천과 월은 암림에서 벌어진 일단의 사건을 해결한 뒤 곧장 남만을 가로질러 중원에 도달했다.
“여기는 뭐 그대로네요. 떠난 지 얼마 되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 무언가 낌새가 있었다면 우리가 남만으로 향하기 전에 뭐라도 하나 알아챘겠지.”
운남성은 그들이 남만으로 향하기 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혼란스러웠고, 서로 죽이고 뺏는 게 일상인 그런 모습.
“그래도 계속 쫓기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원 내부에서 수작질을 부리는 세력이야 심심치 않게 등장했지만, 이번과 같이 새외를 중원으로 끌어들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처음에야 힘이 부족하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일 테지만, 실상은 그게 아닐 테니까.”
중원도 새외도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
당장은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서 손을 잡겠지만, 세가 기울어진 다음에는 어떨까?
중원은 쓸모가 다한 새외를 다시 중원 바깥으로 내쫓을 것이다.
반대로 새외는 잡았던 손을 뿌리치고 중원에 자리를 잡으려 할 테고.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믿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고민은 상대의 정체였다.
굳이 가면 뒤에 숨어 기회를 엿보는 상대는 과연 누구일까.
“어차피 셋 중 하나지 않겠습니까. 황궁이거나 무림이거나 상인이거나…….”
월은 지극히 당연한 추론을 들고 나섰다.
“그렇겠지.”
송윤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중에서도 황궁은 별개로 두는 게 맞을 테고.”
하늘의 자손이자 만백성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바로 황제다.
그리고 지금 그 황제는 중원이 혼란한 와중에도 황궁에 처박혀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상인은 제쳐두고 무림도 뭐……, 떠오르는 게 없네요.”
월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허구한 날 장원에만 처박혀서 뒹굴뒹굴하는 게 일상이고 딱히 주변에 관심을 가지는 성격도 아니었기 때문.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풍전 녀석이랑 맹주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사파 쪽에 움직임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파가 움직여?”
“예, 그 뭐랬더라. 무슨 성이었습니다.”
“철혈성 말인가?”
“예, 맞아요. 거깁니다. 무림맹하고 성격이 비스름하다고 하던데요.”
무언가 아는 듯 말은 꺼냈지만 대충 흘려듣고 말았기에 그게 전부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사파와 상계인데…….”
자세한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선은 무한에 도착하면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가능하다면 직접 개입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송윤천이 직접 나선다는 건 그만큼 평범하지 않으며 세상에 위해를 가져온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렇게 둘이 무한을 향해 나아갈 무렵.
이들의 입에서 나온 철혈성에서 전에 없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조금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그 변화는 가면을 쓴 불청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 *
철혈성(鐵血城)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파 최대, 최강의 세력이었기에 언제나 정파를 대표하는 무림맹과 대립하는 구도를 형성했다.
하지만 명백히 따지건대 철혈성은 무림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무림맹이 모임을 상징하는 맹(盟)인 것과 다르게 철혈성은 단지 우뚝 선 하나의 성(城)에 머물 뿐.
서로 믿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려 들지 않는 사파 고유의 특성이 문제였다.
결국, 지금까지의 철혈성을 평가하자면 끝내 맹으로는 발전하지 못하며 사파의 일축으로 머무는 게 전부였다.
단신으로 무림에 뛰어들어 철혈성주로 등극한 패왕(霸王) 항적의 다음 목표는 철혈성을 철혈맹으로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드디어 마땅한 기회가 찾아왔다.
굳건하던 정파와 마교의 거성(巨星)이 하나둘 저물어간 게 그 증거.
심지어 그 악명 높다던 육마의 염마 역시 얼마 전 철혈성으로 투신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한 시대가 저물어가나.”
하지만 아직 다음 시대가 열리기에는 섣불렀다.
이쪽에는 자신과 염마가 건재했으며 뿔뿔이 흩어진 마교의 권마와 혈마가 있었다.
또한, 정파에도 아직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별이 적지 않았다.
‘조금만 더.’
그는 패왕이었지만, 과신(過信)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쌓아둔 힘을 여기서 분출한다면 그건 한 차례의 반항과 치기에 불과할 뿐.
상대적으로 부족한 힘만으로는 끝내 성공적인 혁명은 될 수 없다는 게 그를 비롯한 철혈성 핵심의 냉철한 판단.
‘기다리겠다.’
패왕은 세상에 남은 마귀와 별을 감당하기 위해 수련에 집중했다.
결국, 무림에서 거대한 세력을 넘어서는 건 특출난 개인의 무력이었기 때문.
재능에 노력을 합치며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던 도중.
누군가 홀로 삼엄한 경계를 넘어서서 패왕 앞에 당도했다.
“네가 철혈성의 주인인가?”
“그러는 네놈은?”
분명히 수하들에게는 당분간 수련에 들 터이니 직접 나설 때까지는 찾지 말라고 일러둔 상황.
하물며 손님이 방문한다는 소식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이자는 누구지.’
조금 전까지 수련에 열중했기에 전신은 땀으로 뒤덮여있었고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난데없이 그를 찾아온 불청객은 청룡(靑龍) 가면을 착용하여 정체를 가늠할 수 없었고.
“주인을 찾아온 손님이 정체를 숨긴다면 무어라 짐작해야 할까. 도둑놈? 아니면 살수?”
말을 그렇게 했지만, 둘 다 아닌 듯싶었다.
도둑이라면 멀쩡한 창고를 내버려 두고서 폐관수련실로 향할 리가 없었고 살수라면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이놈…….’
조금 전부터 패왕은 대놓고 살기를 피워대고 있었다.
아마 어지간한 무인은 감당하지 못하고 심장이 멎어버릴 정도.
하지만 상대는 등장한 이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긴장하여 굳은 기색이 아니라 정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
그렇다면 쉽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하여 직접 찾아왔다.”
가면 뒤에서 스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안이라……, 들어보마.”
아무래도 상대는 적당히 미친 건 아닌듯했고, 그런 작자의 입에서 무슨 제안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십이지(十二支)의 일원이 될 기회를 주마.”
“십이지? 금시초문인데 그런 놈들도 있었나?”
“앞으로 천하를 뒤덮을 이름이다.”
타악-
상대는 그 말과 함께 품에서 꺼낸 무언가를 휙 하고 던졌다.
받아보니 물건의 정체는 호랑이 가면.
패왕은 자신이 받은 가면과 정체불명의 상대가 착용한 가면을 번갈아 보다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상대는 용이며 자신은 호랑이.
말 그대로 십이지를 상징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차이가 있다면 용은 십이지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신수였으며 자신은 단지 포악한 맹수에 불과하다는 것.
“허허, 이게 애들 장난도 아니고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구나.”
패왕은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마치 자신이 평생 패왕으로서, 철혈성의 주인으로서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것만 같은 지독한 굴욕과 모멸이 앞섰다.
“그래서 거절하겠다는 뜻인가?”
용은 패왕의 굳은 표정을 보고도 이전과 같이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던져왔다.
“그렇다면?”
“십이지의 존재를 거절한다면 이는 곧 죽음뿐이다.”
순간, 앞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용 가면의 기세가 거칠게 변하기 시작했다.
패왕 역시 시건방진 제안을 들은 마당에 물러설 생각은 없었기에 기세를 한껏 높였다.
츠츠츠츠-
드드득-
사방이 진동하며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평행을 유지하는 가운데, 용이 입을 열었다.
“무림은 하나같이 고집불통이로다.”
그는 무림인들이 보이는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마치 자신은 무림에 속해있지 않는다는 것처럼.
“네놈, 어디에서 온 녀석이지?”
“말하지 않았나, 십이지라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군.”
서로 간에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니 이제 남은 건 행동이었다.
스르르릉-
항적이 패왕의 칭호를 이어받게 해준 명검 태아(泰阿)가 스산한 소음과 함께 용 가면의 가슴을 향해서 벼락처럼 쏟아졌다.
콰드득-
하나 용 가면은 자신이 괜히 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용조수로 검날을 잡아냈다.
“굳이 악수를 두겠다면야.”
가면 아래로 흉포한 시선이 드러났다.
한 손으로 검날을 잡은 채 남은 한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쐐애-
구부러진 손가락은 정말 용의 발톱처럼 날카로웠다.
닿기만 한다면 그 무엇이라도 잡아 뜯을 기세로 패왕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오자.
차앙-
“하아-!”
졸지에 검의 움직임을 제한당한 패왕은 당황하지 않고 검집을 잡아 휘둘렀다.
단신으로 무림의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사파의 정점에 오른 만큼, 목숨을 건 싸움에는 자신이 있는바.
금나수를 이 정도로 강하게 구사하는 상대는 처음이었지만, 크게 당황할 것도 없었다.
비록 경지는 형편없더라도 그가 겪어온 무림은 기상천외했으니까.
“어리석도다.”
하지만 상대 역시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구부렸던 손을 돌리며 손등으로 강하게 휘둘러지는 검집을 뿌리쳤다.
빠악-
명검의 검집이었지만, 명검만큼의 강도는 아니었는지.
고작 한 번의 공격에 금이 가버렸다.
패왕은 검집을 활용하기를 포기하고 검에 집중했다.
명검 태아.
과거 그의 주인을 전장의 지배자로 만들어준 만큼, 가지고 있는 예기(銳氣)는 어디에도 지지 않았다.
으득-
검을 잡은 팔뚝에 막대한 내공이 집중되며 빛이 샘솟았다.
그 목적지는 태아의 검날.
촤아악-
잡혀있던 검이 손바닥을 길게 긋고 빠져나왔다.
어지간한 상대라면 손이 잘리고도 남을 정도.
하지만 상대에게 남은 건 피부에 남은 얇은 상처와 흐르다 만 약간의 핏줄기가 전부였다.
“과연 명검이다.”
상대는 당황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검보다 자유로운 각도와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연속되는 양손 공격 속에 방어가 계속되었다.
용 가면의 신체는 명검에도 밀리지 않았다.
촤아아악-
패왕의 검이 상대의 팔꿈치를 긋고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옷깃이 찢겨나갈 뿐.
피부조차 뚫지 못했다.
당연히 한쪽은 무기가 없고 한쪽은 검을 들었으니 거리상의 이점이 있지만, 그조차도 큰 소용은 없다는 듯.
용은 양손을 번갈아 가면서 공격과 방어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나갔다.
수련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사투에서만 가능한 극한의 집중력.
패왕은 무아지경에 빠져 제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검을 움직였다.
그는 자신이 패왕이라는 별호에 더없이 어울리는 인물임을 무력으로서 증명하고자 했으나.
우드득-
한순간의 방심에 무너지고 말았다.
용 가면은 좌에서 우로 반원을 그리는 검 앞에서 상체를 아래로 굽히며 정면으로 쇄도했다.
거리는 세 걸음이었지만, 한 걸음 만에 좁혀졌고.
‘이런.’
패왕이 검을 회수하기 전에 상대의 손에 붙잡힐 것이라 예상하여 뒷걸음질 쳐봤지만, 완벽하게 회피하지는 못했는지.
구부러진 손끝이 스치고 지나가 버린 갈비뼈 여러 대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것도 안쪽으로 부러진 까닭에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행동이 제한되었다.
‘점혈로는…….’
상대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국에 벌어진 부상.
이제 남은 건 목숨을 걸고서라도 끝까지 반항하다가 죽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뒤늦게 무릎을 꿇는 거였다.
패왕은 패배를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여기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만 더 물어보마. 이게 전력인가?”
“그럴 리가.”
상대는 패왕의 질문에 전력이 아님을 증명하듯 거리를 벌리고 선 채로 의지를 세웠다.
우웅-
그러자 의지에 반응하여 기운이 일어났고, 허공에 거대한 한 마리의 용을 만들어냈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기운을 풍기는 용의 발톱은 언제라도 패왕을 가뿐히 찢어놓고도 남을 수준.
패왕 역시 상대의 경지를 뒤늦게 인지하게 되었다.
자신이 넘으려고 안달이 나 있는 높고 두꺼운 벽을 이미 상대가 넘어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날카로운 기세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마지막 제안이다. 받아들이겠나?”
용은 패왕이 아무렇게 내팽개친 호랑이 가면을 다시 건네며 물었다.
그는 여전히 의지로 만들어낸 용을 거두지 않은 상태.
만약 이번에도 패왕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당장에라도 죽여버릴 준비를 마쳤다.
차악-
그 사실을 깨달은 패왕은 말없이 상대가 내민 가면을 착용했다.
“현명한 판단이다.”
그날, 철혈성의 성주는 십이지의 호랑이가 되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