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무림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무렵에는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무(武)를 연마하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다 같은 무인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오직 경지에 따라서 강자와 약자로만 구분이 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사람이 세 명만 모이더라도 편이 나뉜다는 말이 있듯.
대단하다는 무인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무림의 몸집이 기하급수적으로 거대해지며 정반합(正反合) 속에서 분열을 끝없이 반복하였다.
지금에 와서는 정파, 사파, 마교, 흑도, 새외 따위로 분류되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속에서도 여러 문파와 가문 따위로 각자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아갔다.
이러한 과도기에서 한때나마 무림이 일통(一統)에 가까웠던 시기가 있었다.
각기 남천(南天)과 북천(北天)의 주인이라고 불렀던 두 명의 절대자들이 본인을 천하제일이라 주장한 게 그 시작.
그들은 무림을 남과 북으로 나눠 가지고서 서로를 먹어 치우려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북천의 주인은 깨달음과 함께 우화등선했다.
주인을 잃은 북천은 살아남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세상에는 남천만이 남게 된 상황.
사람들은 당연히 남천이 유일한 하늘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끝내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노쇠해 버린 남천의 주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적수가 있기에 버텨 오다가 적수를 잃었기에 허망하게 죽음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잠시나마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무림은 그렇게 다시 분열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격언과 함께 무림에 내려오는 우화(寓話)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나이를 한참 먹은 노인들이나 알 법한 이야기였다.
예를 들자면 남들보다 곱절이 넘게 살아온 마석동이나 풍전과 같은 노인들만이 가물가물하게 떠올리는 그런 과거 말이다.
* * *
최근, 알게 모르게 무림맹의 경계 태세가 바짝 곤두섰다.
예를 들자면 무림맹을 비롯한 인근에 대한 순찰을 강화한다든지.
무림맹 정문을 지키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수준이 올라갔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이보게, 요즘 세상에 무슨 일이라도 있다든가? 저 잔악한 마교 놈들이 중원에 기어들어 온 게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러나?”
날이 밝자마자 임무 교대를 위해 짝을 지어 정문으로 이동하던 중.
무림맹에서 막 일을 시작한 무인 한 명이 슬쩍 입을 열었다.
“이 사람아, 난들 알겠나? 위에서 하달된 명령이니 맹주님께서 허가하신 게 아니겠나?”
“하기야…….”
“우리야 그냥 까라면 까고 기라면 기는 게 아니겠어?”
“일도 고된데 끝나고 국밥에 탁주나 한 사발 합세.”
“좋지, 좋아.”
누군가는 무림맹에서 무사로 살아간다고 하면 대단하다 여기겠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대단한 건 무림맹에 소속된 소수의 고수나 높은 분들이지, 대부분은 그저 무림에 자신의 이름이나 별호조차도 남기지 못하는 운명.
그저 무림맹에 충성을 바치며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무림맹을 드나드는 이들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기에 정문 앞으로 늘어진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무림맹에 필요한 이.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이.
무림맹에 빌붙어 먹으려 드는 이.
온갖 군상이 자신의 용건을 밝히며 정문을 통과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듣기에도 지쳤을 무렵.
비단결 같은 윤기를 자랑하는 흑발에 귀밑머리만이 희끗희끗한 사내가 뒤로 수하들을 거느리며 등장했다.
자주 드나드는 이나 중요한 인물 같은 경우에는 용모파기를 외우고 있지만, 쓱 훑어봐도 초면.
다만 허리춤에 착용한 검집에 눈이 갔다.
‘저건 또 뭐라고 적어둔…….’
무어라고 작게 두 글자가 각인되어 있지만, 그쪽으로 눈이 가기 전, 사내의 목소리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라고 하셨소?”
“마석동에게 가서 남천의 주인이 보고자 한다고 전하게나.”
“……알겠소.”
남천의 주인이니 뭐니 몰라도 새파랗게 어린 작자가 주제도 모르고 무림맹주의 존함을 함부로 지껄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혼쭐을 내고 싶었지만, 위엄이 서린 눈빛이 경고했다.
‘이 작자, 위험하다.’
감히 자신이 나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마 착각은 아닐 테다.
다양한 사람을 접하는 문지기로 일하며 딱히 무공이 늘었다든가 하는 건 없지만, 눈치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늘어났으니 말이다.
문지기는 긴장을 속내에 감춘 채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즉시 마석동을 찾아 나섰다.
“맹주님을 뵈러 왔소.”
평범한 문지기가 맹주를 접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문지기의 눈치로 발각된 수상한 작자들이 부지기수라면 더는 평범하지 않았다.
물론, 문지기의 직감이 항상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십중팔구는 적중해왔다.
그게 사소한 일이든, 중대한 일이든 간에 말이다.
“웬일이냐?”
하여 맹주 직속 호위대 역시 문지기의 얼굴을 알아보고 즉시 마석동에게 안내해주었다.
문지기는 이른 새벽부터 줄곧 피땀 흘려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마석동에게 즉시 보고했다.
“남천의 주인이라는 작자가 수하들을 이끌고 나타나 맹주님을 만나 뵙고자 합니다. 흑발에 귀밑머리가 하얗게 물들었으며 검을 착용하였는데…….”
“되었다. 천천히 돌아가서 맞이해라.”
문지기를 돌려보낸 마석동은 수하를 시켜 전서응 한 마리를 날려 보내는 한편 손님을 맞이할 준비에 나섰다.
“진법을 언제든 펼칠 수 있게 준비하고 각자 자리를 지키거라. ……그리고 당주들에게도 갑급 사태라 일러라.”
예기치 못한 위험을 맞이할 때.
맹주는 직권으로서 각기 갑(甲), 을(乙), 병(丙), 정(丁)에 이르는 사태를 무림맹과 산하 세력에 선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수준이 바로 갑(甲).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일어난 갑급 사태는 마교의 중원 침공이었다.
* * *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틀어 기록된 암중 세력은 모두 점조직이었다.
점조직의 특성상 누가 머리고 몸통이고 꼬리인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오직 머리뿐.
때로는 몸통이 자신을 머리라 착각하기도, 꼬리가 몸통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이는 세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다른 장점은 몸통과 꼬리는 점조직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에는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
악신 흉(凶) 역시 이러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십이지(十二支)를 거느렸다.
육신을 잃고서 보잘것없는 신이 되었지만, 사람의 눈높이에서 바라본다면 한없이 높았기에.
그는 한참 초라해진 권능의 극히 일부만을 베풀고도 십이지라는 암중 세력을 확장 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악신 흉을 따른다면 자신이야말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
하물며 자신의 위에 선 존재는 사람이 아닌 신.
즉, 신을 등에 업고 모든 인간 위에 설 수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이 가장 뛰어난 수하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던 남천의 주인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이 또한 모두 옛일이 되고 말았다.
악신 흉이 자신이 가진 권능을 소모하면서까지 십이지를 키워나간 목적은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남은 흉을 찾아 나서기 위함일 뿐.
굳이 아래로 수하를 거느려 세상을 먹어 치운다고 하는 단편적인 목적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하찮고 짧은 수명을 가진 인간의 시선에서나 매력적으로 보일 뿐.
천하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신에게는 하등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십이지의 규모가 거대해져도 해내지 못한 일이 손오공의 분신이 나서자 해결되었다.
이제 악신 흉에게 있어서 십이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 시작이 바로 무림맹이었고, 무림맹의 목덜미를 노리는 날카로운 비수가 남천의 주인이었다.
* * *
‘남천이란 말이지…….’
처음 그 말을 들을 때는 마석동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송윤천을 알기 전이라면 정말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를 것이다.
이제 구닥다리 옛날 우화에 불과한 남천을 기억하는 사람은 세상에 몇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번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의 선을 아득히 넘어서니 오히려 침착한 태도와 함께 수긍할 수 있었다.
이것도 있는데 저건 없을 게 뭐가 있나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어릴 적에 스승님께 한 번 스치듯 듣고 지나간 게 전부였거늘.’
한때나마 무림이 남천과 북천으로만 나누어졌던 시기.
일인전승으로 이어져 온 마석동의 먼 선조들 역시 그중 하나라 하였다.
‘오른팔이었는지 왼팔이었는지는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는다만.’
아무튼, 마석동이 계승한 이 무공의 선조 되는 분께서 그 대단하다는 남천의 주인이 되는 작자의 충성스러운 수하였다지 뭔가.
지금이야 워낙 오래된 일이라 별 상관이 없다만 한편으로는 수상하기도 했다.
갑자기 나타난 놈들이 하필이면 꼭 집어서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뭐란 말인가?
‘혹시 그놈들은 아닐까.’
가장 먼저 의심이 드는 건 풍전이 겪었다는 암중 세력이었다.
십이지와 연관된 가면을 뒤집어쓰고 다닌다는 음흉한 녀석들.
그리고 만약 그 작자들이라면 자신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을 터.
그래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미리 도움을 요청했다.
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상대가 무려 두 명이나 있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
‘슬슬 가볼까.’
너무 시간을 끌게 된다면 상대 역시 의심하고 들 터이니 늦지 않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함께 온 수하들은 어찌할까요?”
언제나 마석동의 곁을 지키는 호위대장이 물었다.
무림맹주 정도 되는 위치라면 상대 역시 수하를 대동하지 않는 게 기본적인 예의.
심지어 상대가 확실한 아군도 아니고 정체조차 판별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당연히 수하를 대동하지 않는 게 맞지, 싶었으나.
“모두 데려오도록 하게.”
마석동이 고개를 저었다.
괜히 떨어뜨려 둔다면 더 큰 일이 날 수도 있다 생각해 내린 결정.
이윽고 남천의 주인이 수하들을 거느리며 마석동 앞에 섰다.
수하들은 몇 장 뒤에 가지런히 자세를 가다듬고서 기다리고 있지만, 언제라도 나설 수 있는 위치.
“남천의 주인이라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서 반갑소.”
하지만 마석동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남천의 주인과 시선을 마주하며 인사를 건네어 손님을 맞이했다.
‘역시.’
아무래도 문지기의 직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은 듯했다.
마석동은 문지기보다 곱절은 더 많은 시간을 살아왔고, 그보다 몇 곱절은 더 많은 일을 겪어왔다.
눈치가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는 지경.
‘좋은 일로 머리를 들이민 게 아닌 건 확실한데.’
눈만 마주쳐도 상대가 수상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남천의 주인이라며 등장한 작자가 강하다는 것.
정말 극소수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강자는 기감으로 약자를 살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마석동은 상대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이놈이 그 세상에 몇 없다는 특수한 경우이거나 아니면 빌어먹게 강한 놈이거나.’
어느 쪽이든지 달갑지는 않은 상황.
심지어 저 뒤에 주인을 따르는 수하 중 몇몇은 그 수준이 월등히 뛰어났다.
저들이 작정하고서 합공을 펼치고 든다면 자신조차도 크게 애를 먹을 정도로.
마석동과 마찬가지로 말없이 눈빛만을 교환하던 남천의 주인이 입을 열었다.
“준비를 많이 해뒀군그래.”
그의 시선이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정확하게는 호위들이 모습을 감추고 있는 위치와 언제라도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진법의 힘이 집중된 위치.
이 사실을 알아챘음에도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다시 마석동에게 시선이 고정되고, 입이 열렸다.
“무림맹에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하는데.”
굳이 돌아가고 싶지 않은 듯.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나?”
남천의 주인이 처음부터 본론을 꺼내 들었다.
“우리라면 누구를 말하는 건가? 남천?”
“악신 흉(凶)이 우리와 함께한다. 무림맹도 그분과 함께한다면 천하를 아우를 수 있을 터.”
“혹시 그 신이 가면도 주던가?”
마석동은 넌지시 미끼를 던져 봤다.
물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허어……. 그건 또 어찌 알았나?”
그런데 상대가 그 미끼를 물었다.
“정보가 어디서 새어나갔지? 무림맹의 정보력이 이 정도였나? 아무튼, 대단하군. 역시 무림맹일세. 내심 무시했음을 사과하지.”
남천의 주인은 여유로운 태도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부정하지 않고서 품에 간직하고 있던 가면을 꺼내 들었다.
아마도 풍전이 복건성에서 마주했던 것과 같을 호랑이 가면.
‘나쁜 예감은 어찌 틀린 적이 없더라니.’
마석동의 의심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듯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