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마석동 역시 새파랗게 어렸을 적에는 윗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들은 왜 그렇게 이미 한참 전에 끝난 일에 집착하는지.
꺼내는 말마다 왜 과거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말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그 이유를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그들은 더는 미래를 그릴 수 없으므로 더더욱 과거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남천의 주인 역시 고강한 무공과 악신 흉의 권능 덕분에 겉모습만 젊어 보일 뿐.
드러나지 않은 속내는 이미 지나간 과거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노인에 불과했다.
“네 선조가 그러했듯 남천의 그늘에 들어오지 않겠나? 이왕이면 무림맹을 포함한 모두가 말일세.”
“하…….”
마석동은 그 말을 듣고서는 기가 막혀서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도 몰랐다.
상대는 정말 자신의 논리가 옳다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옛 인연이 있으니 마지막으로 건네는 제안일세.”
다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듯 단호한 태도.
남천의 주인이 입을 다물자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먼저 깨고 나선 건 마석동이었다.
“닭의 머리 대신에 용의 꼬리를 선택하라면 응당 그러하겠으나 어찌 못난 주인을 섬기는 개새끼의 꼬리가 되겠소?”
못난 주인은 악신 흉이며 개새끼는 바로 남천의 주인.
마석동이 내뱉은 말은 상대를 도발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끝없는 심신의 수련을 통하여 지고지순한 경지에 오른 이의 얼굴마저도 붉게 물들일 정도.
뒤에 나열하여 있던 남천의 수하들 역시 반응이 주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마석동을 찢어 죽이고 싶다는 듯.
근질거리는 손을 참아내지 못하고 각자의 무기에 손을 가져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맹주의 뜻이 곧 무림맹을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남천의 주인은 대화가 끝났음을 알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이어 품속에서 꺼내든 건 십이지를 상징하는 호랑이 가면.
그를 필두로 뒤를 지키던 이들 역시 가면을 착용했다.
‘호랑이가 다섯이라.’
마석동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긴장했다.
풍전에게 듣기로 호랑이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도 버겁다고 했었다.
물론, 모든 호랑이가 같은 무위를 자랑하지는 않겠지만 그건 붙어봐야만 아는 일.
‘아니, 저놈들이 애초에 수하가 맞기는 한 건가?’
수하라고 하여 꼭 주인보다 더 약하거나 강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이들이 굳이 주인을 섬길 이유가 있겠는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그 십이지라는 녀석들의 지원이 아닌가 싶었다.
자고로 맛이 간 녀석들은 원하는 바가 같기만 한다면 쉽게 흩어지기도, 쉽게 뭉치기도 수시로 반복하곤 했으니까.
‘저놈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허튼짓하지 못하게 가둬두는 게 최우선.’
마석동이 전음으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자리를 지키는 수하에게 진법을 가동하도록 명했다.
드드드드드득-
진법의 이름은 일무문(一無門).
설명하자면 주변 공간을 외부와 단절시키며 외부에서 내부로 입장은 가능하지만, 내부에서 외부로 탈출은 불가하다.
미로 아닌 미로.
원래는 도둑질을 방지하려는 용도로 만들어진 평범한 진법이었다.
천하에 이름난 여러 진법과 비교하면 그 성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진법 자체는 여느 상황에서도 쉽게 파훼 되지 않았다.
실제로 마석동이나 풍전 역시 전력을 다했으나 나가는 문을 찾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듣고 호기심과 함께 나섰던 월 역시 제법 고전했을 수준.
‘당연히 송윤천 장주는 진법의 대가인 동시에 진법을 아득히 뛰어넘는 힘을 가졌기에 가뿐히 넘겨버렸지만. 그럴 이가 몇이나 더 있겠는가.’
남천의 주인이 송윤천보다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는 천마신교의 교주 놈을 상대하기 위해 마련해 두었다만.’
다행히도 교주가 풍전의 손에 제거되면서 마석동이 상정해두었던 만약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이런 식으로 써먹게 될 줄이야.’
까가가가강-
진법의 발동과 동시에 남천의 수하들이 사방으로 공격을 퍼부어댔다.
하지만 두꺼운 강철로 만들어진 벽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느낌 정도가 전부.
그러자 남천의 주인을 비롯한 수하들이 뿜어대는 살기가 오로지 마석동에게 집중되었다.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단박에 심장이 멎어버릴 정도의 살기.
하지만 이 또한 마석동에게는 어림없는 일.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이미 수많은 전장의 최전선에서 맹활약을 펼친 영웅이 이따위 살기 앞에서 움츠러들 리가 없었다.
“정말 누구라도 손만 내밀면 네놈들을 따를 거로 생각했었나? 아니면 무림맹 정도는 언제든지 따먹을 수 있는 열매 정도로 여겼나?”
남천의 주인은 마석동의 말을 들으면서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단지 이를 악물고서 오른손에 쥔 검을 조금 더 강하게 잡아챌 뿐.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지만,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해당한다는 사실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의 반응.
“남천이 왜 망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바로 그 오만과 착각 때문일 것이다.”
마석동은 끝까지 상대를 앞에 두고서 빈정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원래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한 사람은 할 말이 없어지면 자연스레 주먹이 나가기 마련.
남천의 주인 역시 다를 바는 없었다.
“네놈을 고통스럽게 죽여 무림맹 정문에 걸어주마. 모두가 비참한 최후를 자세히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다.”
주인이 나서자 수하들도 합심하여 포위망을 형성했다.
‘지금쯤이면 이미 도달했을 터인데.’
마석동은 자신이 날려 보낸 전서응이 데려올 지원군이 도달할 때까지 홀로 버텨보기로 작정했다.
“명줄은 붙여 두어라.”
남천의 수십 자루의 날카로운 검 앞에 무너지지 않는 철인(鐵人)이 홀로 우뚝 섰다.
* * *
“사부, 당장 무림맹으로 가봐야 할 것 같소.”
전서응은 전서구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움직여 풍전에게 무사히 도달했다.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야.”
그리고 월과 풍전은 그런 전서응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무림맹에서 마석동이 날려 보낸 전서응이 장원에 도달하는 시간보다도 그들이 무림맹에 도달하는 시간이 훨씬 빠른 건 당연한 일.
난잡해진 분위기 속에서 정문을 여닫을 시간도 없기에 저 앞에 무림맹이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높은 벽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무림맹은 한참 넓었지만, 목적지는 짐작이 갔기에 헤매는 일 없이 도달했다.
“상황은 어찌 되었나?”
풍전은 주변을 지키는 마석동의 호위 한 명을 불러 물었다.
“맹주님이 홀로 상대하고 계십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호위는 자신의 나약함에 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호위라지만, 정작 이런 상황에서는 나서지도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마석동은 호위를 전부 진법 바깥으로 밀어냈다.
괜히 표적이 늘어나면 피해만 급증하기 때문.
월과 풍전이 등장하기 전에 표적은 자신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거동이 쉬우려면 그게 맞았다.
그 사이 월이 한발 먼저 진법 내부로 진입했다.
굳이 마석동을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포위된 채로 버티고 있는 거인이 떡하니 눈에 들어왔으니까.
뒤이어 풍전이 진법 내부로 진입했다.
남천의 주인은 먼저 등장한 월에게는 딱히 시선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풍전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천하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널리 알려진 거지일 테니까.
“말만 늘어놓고 당하기만 하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군.”
남천의 주인은 자신의 오만과 착각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무림맹주인 마석동을 사살한 뒤에 빈집인 무림맹을 단번에 접수하고자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방해꾼들이…….’
그때까지는 꿈에도 몰랐다.
남천의 최후가 바로 오늘이라는 사실을.
* * *
월은 남들과 쉽게 친분을 맺지 않았다.
처음부터 모르는 사이라면 모를까.
친분을 맺는 순간,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그런 월에게 있어서 송윤천은 또 어떠하겠는가.
둘은 분명히 악연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수백 년을 함께 지내 온 가족이었으며 형제와 같은 사이였다.
월은 막상 송윤천이 위기에 빠지자 자신이 도울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찾아보면 분명 어딘가에는 자신이 도움이 되는 일이 종종 있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저 호랑이 가면이 네가 말한 그놈들이냐? 나이를 똥으로 처먹었는지 어울리지 않게 동물 가면을 쓰고 다니는 녀석들?”
“조심해야 하오. 장주가 돕지 않았다면 나도 자칫 위험할 수 있었으니까.”
풍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차 경고에 나섰다.
실제로 저 호랑이 가면 뒤에 숨어있는 자들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래, 뭐……, 됐다.”
월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갔다.
마석동의 신체는 여전히 철인답게 멀쩡해 보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견에 불과할 뿐.
내상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상태.
위험 요소부터 처리하는 게 맞았다.
“일일지구(一日之狗) 부지외호(不知畏虎).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다. 들어 봤겠지?”
스그극-
다가서는 월이 신력을 끌어올리자 손톱이 훌쩍 길어졌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너희가 그 하룻강아지라는 뜻이다.”
“한 놈은 나를 보고 개새끼라 부르며 다른 한 놈은 하룻강아지라고 지껄이고 있구나.”
이에 남천의 주인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너희 모두 정문에 시체를 나란히 걸어주마.”
그가 신호도 보내기 전에 먼저 다른 호랑이가 나섰다.
금강불괴와 같은 마석동의 신체는 아무리 두드려 보아도 열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예상하며 나선 공격.
쐐액-
그러나 달빛을 가득 머금은 월의 손톱이 상대의 검을 대각선으로 긋고 지나가 버렸다.
조각나버린 검을 뒤로 한 채.
월의 손톱이 인접한 상대의 목덜미를 베어냈다.
“……!”
악신 흉에게 선택받은 호랑이의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
이 죽음은 주변을 일깨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껏 당당한 태도로 고개를 치켜세우고 있었던 남천의 주인마저도 당황하여 눈을 크게 뜰 정도.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지체할 시간도 아까우니 서둘러 끝내도록 하지.”
월은 진심으로 이들에게 쏟아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운 듯.
그 자리에서 휙 하니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착각한 거였다.
푸욱- 푹- 푹- 푹-
월은 상대편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호랑이 한 명이 당한 이후로 나름 다른 호랑이들은 경계에 나섰지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지금 이 제한된 공간 속에서 월과 함께 하는 둘은 풍전과 마석동.
무림의 정점에 올라선 괴물들이었다.
심지어 그 괴물들보다 더한 괴물이 중심을 꽉 붙잡고 있으니 상황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엇다.
같은 시각.
외부에서는 내부에서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걱정 속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진법이 사라지고 단절되어 있었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발로 서있는 건 오직 셋.
월, 풍전, 마석동이 전부였다.
무림맹을 굴복시키고자 찾아온 불청객들은 하나같이 숨이 끊겨버린 터다.
그리고 이렇게 그려진 한 폭의 비극 속에는 오만과 착각 속에서 유명을 달리 한 남천의 주인이 있었다.
그가 무림맹주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는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이는 곧 천하가 더욱 뜨겁게 들끓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송윤천이 있는 화과산이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