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모든 집단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점조직에서 구심점의 역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점조직은 조직의 구성원이 오직 자신에게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히 하는 구조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의 임무를 조율하는 게 바로 구심점의 역할.
악신 흉이 자신의 수족으로 부리고자 만들어낸 십이지 역시 대단한 권력, 금력, 무력을 가졌다지만. 막상 대단한 구심점을 빼고서 나머지를 따지고 보면 흔하디흔한 점조직 중 하나에 불과했다.
악신 흉과 그의 대리자를 자청하는 뱀이 송윤천을 적대하다가 천벌을 받고 사라져버린 지금.
십이지라는 거대한 조직은 갈 길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무력을 대표하는 용은 물론이며 호랑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림맹을 습격하다가 실패하고, 화과산에서 뱀과 합공하여 송윤천을 공격하고자 했으나 역으로 당해버린 탓에 그 수가 상당히 줄어든 상황.
물론 무력이 세상 전부는 아니라지만, 무력만큼 확실하고 직관적인 힘은 없었다.
금력이니 권력이니 하는 힘들은 뒷배로 삼기에나 좋은 종류의 것들이지, 직접 무언가를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금력과 권력으로 정점에 오른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눈치가 빠르다는 사실이었다.
“뱀과 용이 호랑이와 원숭이를 데리고 화과산으로 향한 이후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했소만.”
금와장과 같이 상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돼지가 먼저 입을 열자.
“주먹이나 쥘 줄 아는 천박한 놈들이 입을 닫을 이유가 대체 무엇이겠소?”
지금은 대명의 황제에게 머리를 바짝 조아리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권좌에 오를 거라 믿는 양이 말을 받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꺼낼 말은 아닌 듯한데……. 동의하시오?”
토끼 가면은 물론이며 목소리를 변조하고 피풍의로 몸을 바짝 가린 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애초에 무식한 놈들이 제힘만 믿고 우쭐거리는 꼴이 영 보기 좋지 않았소.”
그들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십이지라는 거대한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인지했다.
“크흠, 먼저 일어나도록 하지.”
유난히 고압적인 말투를 자랑하던 자가 먼저 자리를 뜨는 것을 시작으로 양과 돼지, 토끼가 하나둘 자리를 피했다.
악신 흉 아래로 모인 십이지는 겉으로나마 평등을 앞세웠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알게 모르게 어울리는 자들이 나누어진 상태.
소식이 끊겨버린 뱀과 용, 호랑이, 원숭이가 그러했으며 가진 게 많은 양과 돼지, 토끼가 그러했다.
남은 건 하찮은 일을 도맡아 하는 소와 말, 밤낮으로 정보를 물어오고 전달하는 쥐와 닭 정도.
그중에 일방적이면서도 광신도적인 믿음을 가지고 십이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게 십이지는 실시간으로 팔다리가 잘려 나갔고, 그 와중에도 다른 생각을 품는 자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중원 무림의 사파를 대표하는 세력인 철혈성의 성주.
이제는 십이지에 얼마 남지 않은 호랑이였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림을 넘어서서 천하의 판도를 뒤바꿔놓을 혁명이 될지.
아니면 혼자만의 망상이자 헛된 꿈이 될지.
아직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 * *
십이지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십이지 자체가 가진 힘에 매료되어 합류했다.
그게 아니라면 누가 멀쩡한 기존의 삶을 포기하고 동물 가면을 뒤집어쓴 채 정체를 숨기고 목숨을 걸까.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가진 욕심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했고, 십이지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대주었다.
무력이면 무력, 금력이면 금력, 권력이면 권력. 혹은 그 모두를.
우두머리 격인 뱀이나 용부터 가장 아래에 있는 소, 말, 쥐, 닭까지.
처음에는 다들 만족했으나 그 만족의 순간 역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찰나에 불과했다.
욕심이란 대게 만족을 모르고 계속해서 커져 나갈 뿐 끝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철혈성의 성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가 단순히 욕심을 충족시키겠다는 생각으로 무모한 일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강소성 화과산으로 신이라는 작자와 뱀, 용, 호랑이, 원숭이가 떼로 몰려갔으나 이후로 소식이 끊긴 상황.
가만히 있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 게 이 바닥이었으니, 철혈성주 역시 신속하게 다음 단계에 나선 것이다.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 오직 자신에게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수하 몇몇을 은밀하게 화과산으로 보냈다.
십이지에 충성을 바친 대가로 받아온 온갖 신묘한 영약과 대단한 무공은 성주는 물론 수하들의 발전을 이뤄냈다.
그로 인하여 이번에 하달된 임무 역시 성공적으로 완수하였고.
“여기 있습니다.”
철혈성주 앞으로 돌아온 수하들은 혀를 길게 놀리는 대신에 자신들이 가져온 증거물을 제출했다.
“허…….”
검게 타버리거나 큰 충격을 받아서 파괴된 뱀과 호랑이 가면들이었다.
성주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물건들을 보고 기가 막혀 혀를 차고 말았다.
“시신 수십 구가 화과산 앞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시신과 그 주변에 남은 흔적으로 보아 상대는 뇌공의 고수로 보였습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들은 송윤천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은?”
“흔적도 없이 깨끗이 수습했습니다. 다만, 뇌공의 흔적이 워낙 광범위하고 선명하게 남아 거기까지는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되었다.”
당연히 망자에 대한 예우 따위가 아닌, 이 정보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들어갈까 봐서 하는 걱정이 앞섰던 까닭에 그만하면 만족스러웠다.
“이외에 다른 흔적은 없었고?”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이기에 성주가 수하들을 재촉했다.
여기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그들과 함께 모습을 감춘 것으로 보이는 용 가면.
그리고 십이지가 모신다는 신의 행방이었다.
악신 흉의 제물로 희생되어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되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이는 송윤천이 유일했으니 남은 건 의심과 추측이 전부였다.
“송구합니다. 그들의 행로를 역추적하였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수하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큰 성과이니 정비에 들어가도록.”
성주는 수하들을 내보낸 뒤 홀로 집무실에 남아 뱀 가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심에 잠겼다.
“섣불렀던 모양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던가…….”
멀리서 비밀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자신은 십이지의 일원으로 거듭난 게 오랜 일도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십이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
호랑이 여럿이서 무림맹을, 정확히는 무림맹주를 노리다가 실패했다는 소문은 그도 전해 들은 바가 있었다.
‘이를 어찌한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십이지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날아갔으니 그 빈 자리를 대신한다.
혹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십이지라는 배에서 더 늦기 전에 탈출한다.
그는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지만, 잘못 선택했다가는 큰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 손해는 철혈성 그리고 내 목숨…….’
쉽게 말하자면 목숨을 건 도박이 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내심 깨닫고 말았다.
하등 별 볼 일 없던 신세의 자신이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목숨을 걸고 도전했고 그 도전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래부터 서서히 먹어 치워 버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신이니 용이니 뱀이니 하는 놈들이 지금 당장 주머니에 뭘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래에 널린 소, 말, 닭, 쥐는 그 용도가 확실한 인적 자원.
‘십이지라는 선박은 내다 버리고 쓸모 있는 선원만을 빼내면 될 터.’
그리고 십이지에서 빼먹을 대로 빼먹고 나면 철혈성이라는 새로운 선박이 그 빈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며 홀로 결정을 내린 철혈성주는 곧장 행동에 들어섰다.
사실 말은 거창했지만, 설득에 대단한 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배신? 그렇다면 구멍 난 선박에서 끝까지 버티는 게 옳다는 건가? 그건 그저 멍청한 작자의 자살에 불과하다.”
“그 말인즉슨 지금 감히 십이지를 배신하겠다는……?”
“보아라. 이 타버리고 부서진 가면이 뱀과 호랑이들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다.”
그러자 철혈성주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증거를 눈앞에 내밀어 보였다.
“……!”
물론 가면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그렇게 당장은 속여도 금방 탄로 날 것이니 그런 의심은 금방 잠잠해졌다.
철혈성주는 흔들리는 이들에게 쐐기를 박았다.
“내 말이 잘못되었다면 진작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용이 나타나 나를 죽이려 들었을 테지.”
비록 십이지에서는 밑바닥이라지만 소, 말, 닭, 쥐도 뒤늦게나마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으니 말이다.
“……좋소. 지금부터는 그대가 우리의 주인이요.”
단지 그들은 적당한 보상을 내어줄 수 있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섰을 뿐이다.
‘됐다.’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철혈성주는 이 순간 속으로 웃으며 기쁨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한 사람의 과감한 결정으로 열리게 되었다.
앞서서는 화양연화가 쇠락하고 마교가 기울었으며 십이지가 잠적을 감추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흥망성쇄(興亡盛衰)가 함께 하니.
망하는 이들이 있으면 성하는 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단기간에 큰 변화가 일어난 적이 없던 무림에 철혈성이라는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게 됐다.
천하 각지에 철혈성의 대두(擡頭)에 대한 소식이 일파만파 퍼져나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을 즈음.
화과산에서 출발한 송윤천이 무한으로 돌아왔다.
* * *
무한은 무림맹의 앞마당이나 다름이 없었다.
황궁이 자리 잡은 북경을 제외한다면 아마 중원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힐 정도.
다만, 최근 무한의 분위기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대낮에 이루어진 무림맹 습격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철혈성의 대두가 바로 그 원인이다.
하지만 잠시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던 송윤천이 이러한 소식을 알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대로를 걷다 보면 정체를 숨긴 무인들이 눈에 띄곤 했는데 아마도 수상한 기색이 보이면 포착하려는 무림맹원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월 녀석이 같이 있었을 테니 다른 녀석들은 별일 없이 잘 지냈겠지.’
가장 큰 일을 치르고 온 건 송윤천 본인이었지만, 되려 장원 식구들이 걱정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장원으로 향하던 도중.
“저놈이다. 쫓아라-!”
어딘가 많이 익숙한 목소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번잡했던 대로가 익숙하게 좌우로 쫙 갈라지더니.
쫓기는 사내가 유일하게 길에서 비키지 않은 송윤천을 향해 품에 가지고 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날을 아래로 한 모양새를 살펴보니 죽일 작정보다는 대충 휘두르는 척만 하면 지레 겁을 먹고 비키겠거니 하는 마음 같았다.
‘배려 아닌 배려인가.’
굳이 비켜줄 생각이 없었던 송윤천은 그대로 자신에게 향하는 단검을 잡았다.
“윽-.”
상대가 가볍게 쥔 단검이 움직이지 않자 힘을 주던 사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그러다가 별수 없다는 듯 단검을 놓고서는 발을 박차고 수 장을 뛰어올랐다.
그 사이 뒤에서 추격자들이 접근했고.
송윤천에게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장주님-!”
높아진 목소리에 놀란 얼굴을 한 남궁연의 등장.
“자, 잠시만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은 듯, 바로 시선을 돌려서 앞으로 튀어 나간 사내를 쫓았다.
그리고 수십 장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서 자연스럽게 도망치던 사내를 제압해버렸다.
‘도와줄 필요도 없이 잘 자라주었구나.’
남궁연의 뒷모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어느덧 송윤천의 일상이 돌아왔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