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한참 전에 정파에 구성(九星)이라는 아홉 명의 영웅이 있었듯.
사파에도 그보다는 조금 늦은 시점에 대단한 이들이 무림에 출두했다.
단, 그들은 하나로 뭉쳐 불렸던 구성과는 달랐다.
명색이 사파답게 그들은 서로를 끔찍하게 생각하며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아 했고, 별호조차도 함께 불리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생긴 말이 일곱의 일(一).
일패(一霸), 일혈(一血), 일노(一老), 일흑(一黑), 일광(一狂), 일폭(一爆), 일외(一外)가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 등장한 화양연화라는 거대한 그늘에 가려져 잠시 그 존재감이 흐려진 상태.
이런 상황에서 철혈성주.
한참 젊은 시절에는 일패(一霸)라는 별호로도 불렸던 사내가 한때나마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전이라면 그 누구도 이 제안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만 해도 고작 일곱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철혈성주는 명실상부한 사파제일로 거듭났다.
그 결과, 사파의 거물들이 하나둘씩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인 게 총 여섯.
미리 마련한 일곱 자리에서 하나만이 비어 있었다.
“일노(一老)는 오지 않았나?”
“그 늙은이는 우리가 검은 머리일 적에도 백발이 무성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모르나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 있더라면 진작에 더 높은 경지에 닿아서 천하제일이라 불렸을 테니.
“그랬군.”
남은 여섯 역시 한때는 사파를 주름 잡았던 청춘이었으나 그 또한 다 지나간 옛날얘기.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황궁, 정파, 마교…….
그들에게 둘러싸여 사파의 일개 고수로서 무언가 대단한 일을 벌이기에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완전히 짓눌려서 살아온 세월은 그들을 무력한 노인으로 바꿔 놓았다.
이 중에서 눈동자에 생기가 담겨 있는 건 철혈성주가 유일했다.
“한심하군. 참으로 한심해. 보고만 있어도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야.”
철혈성주가 주변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
“그렇게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다 갈 텐가?”
“그러는 네놈은 무엇을 이뤘지?”
정파와 척을 지고 천라지망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이름도 없는 산천초목에서 폐인처럼 은둔 중이던 일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를 따르는 세력을 키우고 이제는 감히 사파제일이라 불려도 무방할 수준이 되었지.”
“그래봤자…….”
“나아가서 사파천하를 이륙할 셈이다. 그 또한 얼마 남지 않았지.”
철혈성주가 이들을 굳이 한자리로 불러모은 까닭은 시답지 않은 추억이나 회상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이번 정사대전에 사활이 걸린 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서로 알 거 다 아는 마당에 되지도 않는 충성을 바치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겠다.”
오히려 저들이 손쉽게 자신의 수하가 된다면 그 또한 신뢰하지 못할 일이다.
자신을 포함하여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렇게 여기까지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와 손을 잡는다면, 비루한 과거와 끝을 볼 수도 있을 테지.”
철혈성주는 더 긴 말은 필요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어차피 여기서 설득이 더 길어진다고 해도 돌릴 수 없는 마음을 돌려놓기는 힘들 테니까.
그리고 얼마 후.
과거의 잔재로만 남아있던 다섯 명의 고수들은 철혈성주와 함께 무림맹 앞에 섰다.
십이지의 잔재에 이어 사파 최고의 무인들을 영입한 마당.
끝이 보이지 않는 사파의 대열 선두에 당당히 자리한 철혈성주는 이제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며 자신을 타일렀다.
* * *
평화에 젖은 세월은 무림맹을 움직이지 않는 녹슨 검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건 무림맹주인 마석동 역시 인정하는 바였다.
자신부터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히 누구도 무림맹에 위해를 가하지는 못하리라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고리타분한 관념 역시 이제는 옛일이 되어 버렸다.
화양연화에 천마신교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일어난 암중 세력, 십이지까지.
근래에 일어난 사건은 하나하나가 재앙에 버금갔으니 말이다.
한 번도 아니고 비슷한 시기에 연이어서 세 번이나 겪은 마당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만 있다면 무림맹은 대체 무엇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철혈성에서 수상한 기척이 감지되었을 무렵.
무림맹 역시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마석동은 무림맹주로서 소집령을 내렸고, 소집에 응한 무리가 무림맹으로 모여들었다.
남궁세가의 창천, 화산파의 매화, 소림사의 금강이 각 가문과 문파의 정예 세력을 이끌고 무림맹에 합류했다.
그리고 원래 무한에 거주하는 무림맹주 참월 마석동과 풍전까지.
참전의 뜻을 적극적으로 밝힌 정파의 영웅들이 자리를 빛냈다.
“위치로 보나 철혈성주의 음험한 성격으로 보나 머리부터 치고 들어올 녀석이야.”
“자네는 그자와 인연이 있나?”
“악연이지. 안휘성에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간신히 살아 도망쳤거든.”
매화의 물음에 창천이 답했다.
매화와 금강은 과거 정마대전 이후 각기 다른 사정을 가지고서 화산파와 소림사에 칩거하여 철혈성주와의 접점이 없었다.
하지만 창천 같은 경우에는 돌아온 이후에도 제법 활동이 왕성한 편이었고, 당시 남궁세가는 근방의 사파와 대척점에 서 있던지라 철혈성주와도 접점이 존재했다.
“그 겁 많은 녀석이 기지개를 켰다는 건 뒤로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말과 같다.”
창천은 철혈성주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믿는 구석이 있으니 용기를 냈다는 거로군. 쉽지 않을지도.”
“계획은?”
거대한 집단과 집단 간의 대결은 단순히 힘과 힘의 대결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포위망을 역으로 포위하고 유리한 지형지물을 제대로 이용해야겠지.”
그리고 예상대로 철혈성주가 무림맹을 포위하며 등장했을 무렵.
만반의 준비를 마친 무림맹을 필두로 언제나 바쁘게 돌아가던 무한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시작해라.”
“예.”
무림맹주 마석동의 말은 곧 거대한 폭죽이 되어 무림맹에서 하늘 높이 날아가 붉고 노란 불꽃으로 승화되었다.
이 불꽃의 정체는 무한 전체에 시가전(市街戰)을 알리는 신호탄.
준비된 대로 무한에서 외부로 향하는 대로가 각종 장애물로 막히고 수로 역시 마찬가지로 작은 배 한 척 보이지 않았다.
무림맹을 포위한 불청객으로서는 도망칠 길이 없어진 상황.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테다.”
쿠궁-
전신이 철색으로 물든 마석동이 수십 장 높이에서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려 사파의 물결 중심에 섰다.
설마 무림맹주나 되는 인물이 이런 식으로 나올까 싶어서 찰나 당황했지만,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사방에서 비수가 쏟아졌다.
“철혈성주-!”
철인(鐵人)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사자후로 물리며 철혈성주를 향해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다.
중원 무림, 정확히는 정파에 위해를 가하는 세력이 줄어든 현시점.
먼저 머리를 들이민 사파의 세력을 줄이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드물었다.
무림맹은 먼저 뻗어온 주먹을 부서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무한이 어찌 되었든 간에 송윤천은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같은 무한이라고 해도 사파가 포위한 건 무한 한복판에 있는 무림맹을 포함한 시내 정도.
장원은 시내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기에, 장원을 포함한 주변은 평소와 같았다.
그러던 참에 마침 연초가 다 떨어졌고, 금단 현상으로 수전증이 심해질 즈음.
“다녀오마.”
안절부절못하면서 참다못한 송윤천은 장원을 나설 채비를 마쳤다.
어쩌면 이 또한, 불로불사의 저주에서 벗어나며 조금은 인간적인 면모에 더 가까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주변이 시끄러운데요. 조금 참으시죠?”
월은 장원을 나서려는 송윤천을 만류했다.
바로 어젯밤에 풍전과 남궁연, 남궁헌에게 슬쩍 들은 바로는 철혈성인지 뭔지 하는 모자란 녀석들이 무한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했었으니까.
당연히 송윤천이 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게 아니라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쯤이야 눈에 띄지 않게 다녀오면 그만이지.”
“예, 그러시죠. 본인이 연초가 급하다는데 제가 뭐라 하겠습니까.”
월은 더는 만류하지 못했다.
송윤천 역시 괜히 자신과 일체 연관도 없는 귀찮은 일에 얽히고 싶지는 않았기에 비행에 나섰다.
아래에서 보이면 새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이 날아오르니 무한 시내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덫에 사로잡힌 쥐새끼와 같은 꼴이구나.”
아마도 저들은 자신들이 무림맹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신속하고 완벽하게 포위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장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미 무한 시내에서 유리한 지형지물을 점거한 무림맹이 역으로 저들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
물론 상대 역시 격하게 대응했으나 적재적소에 투입한 고수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어제 장원을 나섰던 풍전도 있었고 남궁연도 있었다.
‘굳이 나서서 돕지 않아도 되겠어.’
위험하다면 살짝 거들어줄까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송윤천은 비명이 난무하는 무한 시내를 높이 비행하여 가로질러 흑점의 지붕 위에 내려섰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흑점 내부가 유난히 고요했다.
‘지하로 대피했나?’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흑점은 무림맹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흑도였으니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각자도생하지 않았을까.
‘무림맹으로서도 흑점을 도울 명분이 없기도 하고.’
내려와서 보니 문과 창문을 두꺼운 철판을 여러 겹으로 쌓아 막아둔 상태.
송윤천은 뒷문을 통해 들어가서 얌전히 연초만 챙겨 나오려 했다.
그런데 뒷문을 열자마자.
쐐애애액-
송윤천을 반긴 건 흑점의 점주나 점원이 아니라 날카로운 도.
그것도 단순한 도가 아니라 날에 강기가 서린 고수의 일격이었다.
휙-
송윤천은 머리를 옆으로 슬쩍 꺾는 동작만으로 쇄도하는 도를 피해버렸다.
만약 송윤천이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면 그길로 머리가 관통당해 즉사하거나 죽음에 가까운 중상을 입을 정도의 매서운 공격.
그러자 상대의 손목이 옆으로 꺾이며 송윤천의 목을 옆에서 노리고 들어왔다.
‘쯧, 귀찮게.’
송윤천이 피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피하면 그대로 흑점이 일격에 반파될 정도의 위력인지라,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다.
흑점이 무너지면 당장 입맛에 맞는 연초를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송윤천이 손을 앞으로 내밀어 강기로 뒤덮인 도날을 잡아내어 단번에 부러뜨렸다.
피풍의 아래에 얼굴을 가린 상대가 당황하여 잠시 멈칫거리는 순간.
부러진 도를 잡아당긴 송윤천이 그대로 왼발을 들어 상대의 단전이 자리한 하복부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컥-.”
상대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그대로 기절했다.
무너진 상대의 뒤를 바라보니 점혈 수법에 당해 구석에서 사지가 마비당한 채 눈만 껌벅거리는 상태의 늙은 점주와 점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괜히 죽였다가 피 냄새가 풍기기라도 하면 안 되니 제압해둔 모양.
그래도 나름대로 절정 수준의 고수인 점주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당한 걸 보아하니 상대의 정체가 상당한 고수인 듯했다.
송윤천이 하나씩 점혈을 풀어주며 물었다.
“저놈은 또 누구지?”
“제 부족한 식견으로 보아 철혈성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피풍의를 재치고 얼굴을 확인한 점주가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거물.
그런 자가 도대체 왜 여기 있는지.
그 이유는 오직 철혈성주, 본인만이 알 뿐이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