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무림에 이런 말이 있다.
시작은 선택이며 끝은 운명이다.
흔히, 아니 무인 대부분에게 들어맞는 명언이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의지로 무인의 길에 들어설 수는 있다.
재능이 부족하면 평생 삼류로 남고, 재능에 노력과 천운이 더해지면 나아간다.
그렇게 누구는 제자리에, 누구는 천천히, 누구는 빠르게 걷게 되는데 여기에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무인은 어디에서 멈출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
죽고 죽이는 게 당연시되는 무림이라는 세계의 일원이 된 이상,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은 극소수는 온전한 자신의 의지로 걸음을 멈추어 설 수 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렇다 할 배경도 없이 정점에 오른 무림맹주, 참월 마석동이 그런 운 좋은 인간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반기지 않고, 되려 결사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쁜 쪽보다는 좋은 쪽으로.
“맹주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갑자기 금분세수를 하시겠다니요.”
정사대전에 이어 벌어진 황제의 무림 개입이 흐지부지 끝난 이후에도 무림은 여전히 어지러웠다.
하지만 욕심을 벗어던지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무림맹만큼은 조용히 그리고 평화롭게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무림맹에 별다른 일이 없으니 마찬가지로 무림맹주 역시 자연스레 예전과 같은 명예직처럼 되어버린 상황.
무인으로서 전면에 나설 일이 없어진 마석동은 한가한 일상을 마음껏 즐겼다.
가끔은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혼자 처박혀서 수련하기도, 장원을 찾아가서 짧은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어느 날.
마석동은 와룡당주인 제갈과를 자주 들리는 한성객잔으로 불러내, 펄펄 끓는 돼지국밥을 앞에 두고서 자신의 은퇴를 선언했다.
금분세수(金盆洗手).
말 그대로 해석하면 금으로 만들어진 대야에 손을 씻는다는 뜻으로 무인으로서의 은퇴식을 의미했다.
무인으로 살아오며 쌓아온 모든 은원(恩怨)에 종지부를 찍으며 이를 계기로 무림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
“늙은이가 힘이 없어서 이제는 좀 편하게 쉬고 싶다는데, 젊은 놈이 그게 할 말이냐?”
“젊다뇨. 맹주님. 저도 조만간 증손주까지 보게 생겼습니다.”
“뭐? 자네 손주가 태어났다고 그리 좋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분명히 당사자에게는 축복받을 일이었지만, 곁에서 맹주를 보필하는 와룡당주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던 모양이었다.
“결정을 물릴 생각은 정말 없으십니까?”
“아, 없다니까.”
사적으로 본다면 제갈과 역시 마석동의 결심을 응원했다.
하지만 공적으로 본다면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참월 마석동이 가진 상징성은 단순히 무림맹주라는 자리가 가진 권위를 한참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참 어린 제가 말하기는 뭣하다만……, 맹주님은 아직 한창이시지 않습니까?”
“크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어른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탁주 한 병을 한입에 털어 넣은 마석동이 제갈과의 말을 듣고 한참을 웃어댔다.
사실 무인이 은퇴를 선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다.
너무 늙어 버려, 대단한 무공을 지녔음에도 막대한 내공과 극한으로 단련된 육체가 사람으로서 정해진 수명을 감당하지 못하기 시작할 무렵.
대단한 재능, 대단한 노력, 대단한 천운으로 평생 강해지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무력함.
그 앞에서는 굳건한 마음과 의지조차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남들에게 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심정 역시 컸을 테고.
그래서 마석동 역시 일련의 과정을 겪었기에 은퇴를 결심했을까?
그건 전혀 아니었다.
‘물론,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만…….’
표현은 조금 뭣하지만, 송윤천에게 얻어먹은 깨달음으로 여전히 무인으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 역시 사람인 이상 언젠가는 비슷한 일을 다시금 겪게 될 터이나 아직은 조금 멀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
“……결심이 굳으셨군요.”
마석동의 진심을 확인한 제갈과는 더는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렇게 털어놓기 전까지 홀로 수없이 고민한 결과일 테니까.
“아, 그리고 다음 맹주는 너다.”
“예?”
“못 들었어? 네가 차기 맹주라고.”
제갈과는 어안이 벙벙한지 입을 크게 벌린 상태였다.
“찾아본다면야 힘 좀 쓰는 녀석들이 있겠지만, 그놈들은 파도에 휩쓸릴 게 뻔하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무림맹은 중심을 꽉 잡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네 녀석이다.”
“제가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 않겠다, 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제갈과 역시 젊은 날에 제갈세가를 뛰쳐나와 무림맹에 투신하여 청춘을 바치고 명실상부한 무림맹의 이인자까지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
이제는 이름만 물려준 제갈세가보다 자신의 일상 그 자체가 되어버린 무림맹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문제는 전임 맹주인 마석동의 그림자.
무림맹을 지탱하는 거목(巨木)의 빈자리를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해 강한 의문이 들었다.
“쌈박질 말고는 뭣도 모르는 무식한 나도 여기까지 그럭저럭 잘 해냈다. 그러니 나보다 훨씬 지혜로운 너 역시 훌륭히 해낼 거다.”
마석동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먼저 들어가라. 네가 똑똑하다고 해도 맹주 노릇 하려면 지금부터 하나씩 준비해야 할 테니까.”
제갈과가 긴장과 부담으로 국밥을 먹는 시늉만 할 때, 홀로 수육 다섯 접시에 돼지국밥 열일곱 그릇을 거뜬히 해치운 마석동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맹주님은 안 들어가십니까?”
“배도 부르고 하니 산책이나 한 바퀴 돌고 들어가련다.”
제갈과와 헤어진 마석동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맹주님, 안녕하십니까.”
“이것 좀 드실래요? 오늘 서역 상인을 통해서 들여온 과일인데. 껍질은 노란 것이 과육은 하얗고 부드럽습니다. 이름이 바……, 어쩌고저쩌고였는데요.”
“마음만 받겠소. 마음만.”
사람들은 마석동을 무서워하지 않고 반겼다.
권위 넘치는 맹주의 모습은 전장에서나 보여주지, 평소에는 성격 좋고 덩치가 조금 많이 거대한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무한 시내를 벗어난 뒤, 마석동은 곧장 한적한 분위기가 어울리는 장원에 도달했다.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며 평화가 찾아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석동이 왔냐?”
식사를 마치고 식후에 연초를 음미하던 풍전이 그를 맞이해 주었다.
말에는 귀찮음이 담겨 있지만, 표정에는 정겨움이 가득했다.
풍전이나 마석동 정도 나이가 되면 친우라고는 죄다 먼저 세상을 등졌으니 만날 때마다 반가운 게 당연했다.
“너는 무슨 무림맹 대장이라는 녀석이 이리 한가해?”
“그러지 않아도 오늘부로 그만두기로 했다.”
“뭐? 무림맹주를 그만둬?”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접한 풍전의 눈이 빠질 듯 커졌다.
언젠가는 자신도 마석동도 물러날 때가 오겠다 싶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은 몰랐던 모양.
“너 어디 아프냐? 아니면 뭐를 잘못 먹었다든가.”
“그럴 리가 있나. 멀쩡하지.”
“그런데 멀쩡한 녀석이 왜 은퇴하겠다는 거야?”
“이제 내 역할은 어느 정도 끝난 것 같아서.”
“…….”
풍전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말을 아꼈다.
젊은 날의 정마대전.
다 늙어서는 화양연화, 또 한 번의 정마대전, 암중 세력 십이지에 정사대전까지.
평범한 무인이었다면 무인으로 살면서 한 번만 겪어도 족한 일은 몇 번이나 이겨냈다.
물론 자신들의 무력이 쇠할 때까지 자리를 지킬 수도 있겠으나 그건 현재를 위해 미래를 버리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세대가 물러나야 새로운 세대가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발전할 테니까.
그래서 풍전은 처음에는 마석동이 은퇴한다는 사실을 듣고 놀랐지만, 그 심정을 백번 이해할 수 있기에 차마 만류하지 못했다.
“거지 너는 어떤데?”
“나야 뭐…….”
마석동이야 정사대전 이후로도 무림맹주로서 전면에서 활동했지만.
풍전은 마치 무림에서 작정하고 모습을 감춘 것처럼 지냈다.
누가 보면 개방의 태상방주가 아니라 심산유곡에 처박혀 지내는 은둔 고수나 기인이사라고 착각할 정도.
풍전은 가끔 무림맹을 찾아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장원에 머물며 거둬들인 아이들을 보살폈다.
처음에는 저들 중에도 남궁연이나 남궁헌처럼 대단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재능이 흔하게 땅에 굴러다니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풍전이 평범한 아이들을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저 거지 할아버지 정도로 불리면서 정말 평범하게 그리고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송윤천에게 잡혀 와서 장원의 일원이 되기 전까지 평생 최전방에서 전신에 바짝 눌어붙은 역겨운 피비린내를 풍기고 다녔던 세월이 완전히 희석될 만큼.
그래서 어느 쪽이 더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지금이 백배 천배 더 행복하다고.
예전처럼 영웅 대접을 받지 못해도, 잡일에 애들을 돌보느라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지금이 좋다. 마음도 편하고.”
“좋다니 다행이네.”
마석동은 풍전이 보여주는 진심 어린 미소에 함께 웃어주었다.
“그래서 석동아. 은퇴하면 뭐 할래? 너도 네 사부님 따라서 어디 심산유곡에 처박혀서 살다가 갈 거냐?”
“아직은 생각해 본 적 없다.”
“거기 혼자 처박혀서 뭐하겠냐. 너도 여기서 애들이나 보고 그래.”
“그럴까? 괜찮을 것 같기도 하네. 그런데 애들 본다는 녀석이 연초는 안 끊어?”
“안 그래도 연초 냄새 싫다고 해서 하도 눈치가 보이는 통에 이렇게 야밤에나 몰래 피고 그런다.”
싫으면서도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귀찮은 척, 싫은 척할 뿐,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석동은 그런 풍전의 표정을 보며 결심했다.
얼마 없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면서 어울려 살기로.
다음 날, 무림맹주이자 정파의 영웅 참월 마석동의 금분세수가 선언되었다.
동시에 차기 맹주가 누구인지도 함께 알려졌다.
반론?
역대 최고, 최강이라는 전임 맹주가 직접 추천했는데 감히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마석동의 적극적인 추천과 함께 자연스럽게 차기 맹주직은 제갈과에게 돌아갔다.
마석동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때려치우고서 맹주직을 제갈과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절차상으로 불가능했다.
금분세수에 참석하기 위해 천하 각지에서 몰려드는 반가운 손님과 불청객을 맞이해야 하므로.
그리고 대략 석 달이 흐르고, 무림맹이 활짝 열렸다.
참월 마석동으로서의 금분세수.
무림맹주로서의 퇴임.
신임 무림맹주의 취임이 동시에 진행되는 날.
가장 중요한 건 금분세수였기에 앞서 빠르게 퇴임식과 취임식이 진행된 이후 마석동과 은원(恩怨)으로 엮인 이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물론 그곳에 모인 대부분은 은혜였다.
백 년에 걸친 지난 세월 동안 마석동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그에게 맞아 죽었거나, 늙어서 죽었으니까.
혹여 원한을 가진 이의 제자나 자식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라고 감히 마석동에게 도전할 수 있을까?
뭐, 도전이야 할 수 있겠지만 스승이나 부모를 따라 죽을 게 뻔했으니 원한을 가진 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발길을 하지 않았다.
“금분세수를 축하드립니다.”
“이제는 전임 맹주님이라 불러드려야겠군요.”
“다들 별 것 아닌 일을 이리 챙겨주니 고맙소.”
좋은 날이니만큼 좋은 말이 오고 갔다.
혹여 마석동에게 원한을 가지고 찾아올 정신 나간 작자가 있을까 싶어 정중앙에 마련된 비무대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인사와 함께 선물을 가지고 찾아온 손님들이 제자리로 돌아간 후.
마지막 차례.
그런데 그는 비무대 위로 올라서서 마석동과 마주 보고 섰다.
보통은 마석동에게 전달할 선물을 가득 들고 나타나지만, 사내는 빈손으로 올라왔다.
사내가 소지한 건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 한 자루가 전부.
“설마……?”
새파랗게 젊은 사내의 등장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원한을 가진 누군가의 제자 혹은 핏줄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
마석동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사내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들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사내가 어떤 마음으로 군중 앞에 등장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분세수를 한다길래 찾아왔다.”
“빈손으로 온 거요?”
하지만 긴장된 분위기와 다르게 마석동과 젊은 사내는 나름대로 친분이 있는 듯 농담도 섞어가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선물 대신에 화려하게 마지막을 장식해주려 찾아왔지.”
“그렇다면 고맙게 받겠소.”
“선공은?”
“당연히 내가 양보해야지.”
“선물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구려.”
“와라.”
스르릉-
마석동의 앞에 선 송윤천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만의 축하 방식이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