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눈을 감아도 사방이 보인다.
감각이 넓어진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악신 흉이 떨어져 나가며 괴력난신으로서의 힘을 대부분 잃어버리고 약간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송윤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장원을 찾는 손님이 누구인지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송윤천은 아주 오랜만에 직접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했다.
정확히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이렇게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구나.”
마지막으로 봤을 무렵보다 훨씬 젊어졌으며 전체적인 분위기 역시 그때와는 조금 달랐다.
아니면 지나간 세월 속에서 조금씩 흐려진 기억에서 그렇게 기억해내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렇게 느끼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송윤천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여전하십니다.”
“들어오지.”
짧은 인사를 마치고 송윤천은 손님을 안쪽으로 들였다.
사실 상대가 어떤 용건으로 자신을 찾아왔는지는 대충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쫓아낼 필요는 없으니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어떻게 찾아왔든지 오랜만에 만나니 조금은 기쁘기도 했고.
“좋군요…….”
손님은 송윤천을 따라 걸으며 주변 풍경을 만끽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시끌벅적한 시내와는 다른 한적한 분위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치 자신이 머물던 곳과 같았기 때문에.
“차?”
“좋죠.”
“기다려라.”
송윤천은 손님을 혼자 두고서 차를 내왔다.
뜨거운 물과 만나 찻잎에서 우러나오는 향이 가득 풍겨왔다.
손님은 찻잔을 들어 눈을 감고 향을 즐겼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리움 혹은 추억이 담겨 있다고나 할까.
송윤천과 자신이 과거에 마지막으로 함께 즐겼던 차였다.
“……오래전 일인데 기억하고 계셨군요.”
맞은 편의 송윤천은 아무 말 없이 차를 음미했다.
그리고 찻잔의 바닥이 보일 즈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 먼 곳까지는 무슨 일인가. 순양자(純陽子).”
손님은 가지런히 기른 검은 수염에 전형적인 도사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 복장이란 것이 요즘과는 많이 다른 모양새였다.
도사라고 하면 다 똑같다고 여기겠지만 그건 아니다.
세상만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니까.
도사의 복장 역시 마찬가지였고, 굳이 따지자면 수백 년 전에 유행했던 모양새였다.
“지레 겁을 먹고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걱정이라……. 신선이나 되는 이들이 그리 겁이 많아서야 쓰겠나.”
“이해하십시오. 그들 역시 본질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모든 게 부족하며 오욕칠정에 흔들리는 사람 말입니다.”
“그리하여 부족한 제가 사조님을 뵈러 왔습니다.”
송윤천을 사조라고 칭한 손님이 송윤천 앞에 정중히 고개를 숙여왔다.
“괜찮다. 여(呂) 가야.”
송윤천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손님의 검집으로 향했다.
선명하게 각인된 천둔(天遁)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천둔검법(天遁劍法).
이제는 오직 한 명에게만 허락되어 전설로만 남은 위대한 검법.
한때는 사악한 용과 세상에 해로운 괴력난신을 벌했던 검선(劍仙) 여동빈의 진산절기였다.
* * *
사람의 끝이 죽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공부를 통하여 깨달음의 끝자락에 닿을 수만 있다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 누구라도 능히 우화등선(羽化登仙)할 수 있었으니까.
하늘길이 열리며 신선이 되는 것이다.
천하(天下)를 떠나 천상(天上)의 일부가 되는 일.
사람들은 신선이 있는 세계를 선계, 이상향, 도원경, 별천지 혹은 무릉도원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깨달음과 함께 정해진 수명에서 벗어난 신선 역시 그 본질은 사람이다.
송윤천 역시 악신 흉의 개입으로 인하여 의도치 않게 괴력난신으로 거듭나기 이전에는 삼류 도사였다.
그 역시 당연히 깨달음과 함께 우화등선하여 신선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하지만 승천해버린 신과 다르게 천하에 남기를 선택한 악신 흉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괴력난신으로 각성하며 시작된 길었던 방황을 끝내고 깨달음의 끝에 도달하였음에도 송윤천은 승천하지 못했다.
그로 인한 절망 역시 깊었지만, 끝이 있었다.
그즈음, 꽃에는 벌이 꼬이듯이 하나둘씩 송윤천을 따르는 이들이 생겼다.
송윤천은 비록 자신은 이 영원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하여 자신이 고행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주변과 나누었다.
그중 한 명이 신물 파초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팔선의 종리권.
그리고 그 종리권의 제자가 바로 눈앞에 등장한 검선 여동빈이었다.
대단한 도사라고 하여 무력마저 대단한 것은 아니기에.
도사 여동빈은 송윤천에게 가르침을 받아 검선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송윤천의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던 천둔검법으로 송윤천을 감시하기 위하여 하늘 아래로 내려왔다.
“선계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부는 혹시 모를 마선(魔仙)의 탄생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찻잔을 내려놓은 검선 여동빈이 조심스럽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송윤천은 도사들의 걱정이 헛수고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마선이라.”
“괜한 걱정을 끼쳐서 송구합니다.”
검선 여동빈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는 듯 쉽게 송윤천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자신의 오해가 아니었고 자신이 지은 죄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아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나쁘지 않다.”
송윤천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여동빈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걱정이 이해되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마선(魔仙).
태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탄생하지 않은 미지의 존재였다.
마(魔)를 공부한다는 건 즉 무림에서 이르는 마공을 의미했다.
세상에는 자신을 마인으로 칭하거나 타인에 의해 마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넘쳐났다.
그런데도 마공의 끝에 도달하여 우화등선한 존재는 없었다.
송윤천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마공으로 대성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악신 흉을 벗어던진 이후부터 송윤천은 우화등선의 기미를 느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만 다진다면 언제라도 우화등선하여 신선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언제라도 자신의 앞에 하늘길이 펼쳐질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애써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이제야 어렵게 불로불사와 함께 괴력난신의 저주에서 벗어났는데 어찌 또 신선이 되어 영원불멸을 꿈꿀 수 있겠나.
만인이 그러고자 하는 일이라 하여도 적어도 송윤천에게는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걱정거리가 하나 더 있었으니…….
‘무엇이 되려 함인가.’
모든 공부를 통하여 신선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 분야에서 궁극에 도달한 송윤천은 무엇으로 어떻게 거듭날 운명이란 말인가?
마공으로 국한된다면 마선(魔仙).
더 나아가면 무(武)로 보아 무선(武仙).
사람으로 살아온 날은 찰나였으며 대부분을 괴력난신으로 보냈으니 괴선(怪仙).
혹은 다른 무언가도 가능했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송윤천은 달라질 자신의 모습을 감히 가늠할 수 없음에 더더욱 우화등선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은 문제는 조만간 다가올 개기일식.
음양의 균형을 이루는 세상에서 양기가 가장 약해지며 음기가 가장 강해지는 순간.
사람이며 괴력난신인 남궁연과 남궁헌을 비롯하여 송윤천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어쩌면 네가 검을 들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검선 여동빈의 역할은 관찰자이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징벌자이기도 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선 신선이었기에 기도라는 행위가 부질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검선 여동빈은 진심을 담아서 선계를 넘어서 천계의 위대한 존재들에게 닿지 않을 기도를 올렸다.
반대로 송윤천은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닥쳐올지 모르는 재앙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직시했다.
“나 역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만, 혹시라도 발생한다면 네게 일말의 망설임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홀로 남은 검선 여동빈은 검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제멋대로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송윤천은 그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섰다.
“이런 하필이면 지금…….”
습관처럼 품속을 뒤졌지만, 연초가 다 떨어졌다.
다가올 운명은 운명이고, 송윤천에게는 당장 피워야 하는 연초가 중요했기에 곧장 흑점으로 향했다.
“대인, 어서 오십시오.”
늙은 점주가 그를 미소로 맞이했다.
신경을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몇 년 사이에 주름이 조금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했다.
“연초 좀 내주게.”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송윤천에게도, 점주에게도 익숙한 대화였다.
송윤천은 언제나 연초를 찾았고 점주는 그가 원하는 대로 언제나 준비해 둔 연초를 한가득 내왔으니까.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만큼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이것만 가져가지.”
송윤천은 점주가 한가득 내온 연초에서 당장 필요한 만큼만 집어 들었다.
물론 그것도 몇 갑은 되었지만, 점주를 놀라게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금연하십니까?”
살면서 이보다 더 놀란 적이 없었다는 듯 점주의 눈이 커졌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허허, 제가 상인으로서 권유할 일은 아니지만, 금연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동안 고마웠네.”
“아무렴요. 대인, 조심히 가십시오.”
송윤천은 또 오겠다는 말 대신 그동안 자신을 친절하게 대우해준 점주에게 감사의 표현을 건네며 흑점을 나섰다.
‘가만……, 어르신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건가?’
점주 역시 뒤늦게 어딘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나 이미 송윤천은 보이지 않을 무렵이었다.
송윤천은 아주 천천히 자신이 수십 년 동안 머물던 무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장원으로 돌아왔다.
익숙하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서인지 마냥 익숙하게 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장원으로 돌아오자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송윤천을 맞이했다.
“장주님, 어서 오세요.”
“오셨습니까?”
“준비한답시고 오랜만에 개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지 뭔가. 식기 전에 어서 앉으시게나.”
뒤로는 으리으리하게 차려진 밥상이 보였다.
마치 오늘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마시겠다는 분위기.
“일단 한잔하시죠.”
송윤천의 옆에 붙은 월이 술잔부터 건넸다.
“이것도 나쁘지 않군.”
송윤천은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렇게 다 같은 자리에 모이는 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만, 굳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슬퍼할 필요는 없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현재를 살아가라.
송윤천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늘 던지는 말이었으니까.
식사는 시끌벅적하게 그리고 오래 이어졌다.
그리고 식사를 마칠 즈음.
피처럼 붉게 물든 달이 그림자에 가려지면서 양기가 사라지고 세상에 음기가 들끓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러자 음기를 가장 강하게 품은 송윤천을 시작으로 남궁연과 남궁헌이 차례로 여기에 반응했다.
크게 뜨여진 그들의 눈에는 오직 붉은 달을 닮은 홍채(紅彩)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눈에서 시작된 붉은 빛은 곧 전신으로 퍼져 그들을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모든 빛이 사라진 하늘 아래.
오직 이들을 뒤덮은 붉은빛만이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