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무림에서 주화입마를 경계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그로 인한 피해 탓이다.
이성을 잃고 광기에 완전히 사로잡혀 날뛰는 무인은 필히 죽음을 불러오기 마련이었으니.
붉은 달로 인해 강력한 음기에 심취한 괴력난신 역시 무인의 주화입마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송윤천을 온전히 감싸고 있는 피처럼 붉은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천하는 위험천만했다.
‘긴장이라……,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송윤천에게 시선을 고정한 검선 여동빈이 왼 소매로 흥건히 젖은 이마를 훔쳤다.
언제라도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검 손잡이에 오른손을 올린 채 목석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지만, 감정마저 숨길 수는 없다는 듯.
전신이 긴장감에서 비롯된 땀으로 흥건히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자신의 발이 영원토록 여기에 붙잡힐지언정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불상사는 피해갈 수 있을 테니까.
여동빈이 움직이지 않으니 다른 이들도 무어라 앞장서 나설 수 없었다.
송윤천이 마지막으로 이르기를 모든 결정권을 여동빈에게 맡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과거 둘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송윤천이 자신의 목숨을 믿고 맡길 정도라 하니, 반대할 수도 없었다.
얼마나 주변이 고요한지 숨소리가 크게 들릴 지경인 가운데.
송윤천이 움직였다.
꿈틀-
손가락 끝마디가 살짝 움츠러들었을 뿐인데 지켜보는 이들은 전신의 모든 근육이 바짝 쪼그라들어갈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검선 여동빈 역시 마찬가지.
검 위에 올려두기만 했던 오른손은 이미 검을 뽑은 후였다.
당연히 그의 검은 송윤천을 향하고 있었다.
언젠가 과거 천하를 어지럽혔던 악룡의 목을 베어냈을 때처럼 천둔검법을 펼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내 송윤천의 팔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덥썩-
송윤천이 두 손이 서서히 위로 올라가서는 이내 제 목을 쥐고는 거세게 조르기 시작했다.
마치 자결이라도 할 것처럼.
“……!”
“장주님!”
남궁연이 식겁하여 송윤천의 알 수 없는 행동을 막아보려 달려들었으나 그 앞을 짙은 구름이 막아섰다.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겠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검선 여동빈이 도술을 펼쳐 송윤천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가로막았다.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을 것이니 끝까지 지켜보아라.”
지난날 지켜본 바로 이런 상황에서 외부의 개입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여동빈 역시 송윤천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송윤천의 손아귀는 점차 강하게 제 목을 조르고 있었다.
* * *
심신(心身).
때로는 마음이 몸을 따르기도, 반대로 몸이 마음을 따르기도 한다.
현재 송윤천의 몸은 마음을 따르고 있었다.
오직 송윤천만이 존재해야만 하는 심상 속.
기껏 해봐야 분열된 자아에서 비롯된 또 다른 형태의 자신이 나타나는 게 전부일 터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려나.’
송윤천이 살아온 세월만 수천 년.
붉은 달 정도는 지난날에 수없이 경험했었기에 큰 기대도, 큰 걱정도 딱히 없었다.
악신 흉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때도 무난히 버텨냈으니까.
‘그런데 이건 대체 무슨 일인지.’
의문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상대는 송윤천이 어떤 생각에 잠겨있는지 충분히 짐작한 모양.
“끝인 줄 알았나?”
분명 송윤천과 마주하는 형상은 악신 흉이었다.
지난번에 있었던 짧은 만남 이후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었다.
화과산 수렴동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줄로만 알았던 악신 흉이 대체 왜 등장한 것인지는 송윤천 역시 알 수 없었다.
문제는 형상만이 악신 흉처럼 보일 뿐.
전해지는 기운은 온전히 자신과 같다는 점이었다.
“어찌 된 일이지?”
속으로만 남겨둔다고 해결될 질문이 아니기에 송윤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악신 흉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자신이 답했다.
“그 어떤 일이든 아주 자그마한, 사소한 흔적이라도 남기기 마련.”
“네 모습이 내가 남긴 흔적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괴력난신으로서 네 정신에 남아 있는 흔적이겠지.”
“왜 지금에 와서야?”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붉은 달이 뜬 날 저런 게 나타나려면 진작에 보여야 했거늘.
어째서 괴력난신이라는 저주받은 운명을 벗어던진 지금에 와서 등장한 것인지.
“내가 곧 너의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이니라.”
송윤천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과거면 과거였지, 저게 어째서 자신의 현재이며 미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 의문은 금방 풀려나갔다.
서걱-
악신 흉의 길쭉한 손톱이 허공을 내리긋자 송윤천의 한쪽 옷소매가 떨어져 나갔다.
뒤로 물러나지 않았으면 옷소매가 아니라 팔이 떨어져 나갔으리라.
“이런 방식이었나.”
현재이며 미래가 된다는 말은 자신에게 남은 흔적이 곧 자신을 먹어 치우겠다는 뜻이었다.
상대가 작정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드는데 당하고만 있을 송윤천이 아니었다.
“네가 나를 없애고자 한다면, 나 역시 너를 제거하겠다.”
상대가 그러했듯.
송윤천이 검을 위에서 아래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내리그었다.
검기니 검강이니 하는 건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검에는 반드시 상대를 베어내고자 하는 송윤천의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었으니까.
이미 검과 하나가 된 경지에 올랐으니 이번에도 송윤천의 검은 주인의 의지에 반응했다.
서걱-
검은 곧 악신 흉의 형상을 한 또 다른 자신에게 닿았다.
머리끝부터 시작된 아주 가느다란 선이 아래로 미끄러지듯 이어지고, 이내 온전한 형상은 좌우로 갈라졌지만…….
‘쉽지 않겠어.’
고작 일격만으로 이 불쾌한 상황을 끝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지나온 과거였으니 어려울 일도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상대는 자신의 과거.
즉, 악신 흉이 잠재되어 있었던 불로불사(不老不死)의 괴력난신.
그러나 현재의 자신은 불로불사도 아니었으며 괴력난신조차 아니었다.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끝난 모양이군.”
어째선지 상대의 말이 크게 울려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세상이 원래 그랬듯이.
이곳도, 지금도 그랬다.
* * *
문득 떠올랐다.
불로불사였던 과거의 자신과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빛이.
그 눈빛에 담겨 있었던 다양한 감정을 쉽게 정리하자면 존경 혹은 공포였다.
그때는 그 감정들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까드득-
전력이 담긴 검이 길쭉한 손톱을 잘라내고 목에 닿는다.
피부는 질겼고, 그 아래에 있는 근육과 뼈는 단단했으나 검을 막아서지는 못하고.
서걱-
마치 통나무를 베어내듯 검이 지나가면서,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 거무죽죽한 피를 사방에 흩뿌려댔다.
하나 송윤천의 감정은 전혀 격양되지 않았다.
이미 앞서 수백, 수천, 수만 번을 베었지만…….
“하-.”
불로불사를 자랑하는 과거의 자신은 어떻게 해도 죽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상대와 정반대로 자신은.
푸욱-
상대의 계속된 공격과 반격의 틈바구니에서 아주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재생과 회복을 반복하는 상대와 다르게 송윤천은 언제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부질없는 반항은 그만두고 내게 굴복해라.”
상대는 송윤천에게 항복을 종용했다.
이미 수없이 거절했음에도 말이다.
그즈음, 송윤천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죽이지 않지?’
이상했다.
자신을 지치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자신이 수없이 상대를 죽이려 했듯.
상대 역시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끝내 죽이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음에도.’
송윤천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대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고민하다가 한 가지 이론을 떠올렸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급박한 상황.
혹여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지나갔을 수도 있으나 당장 떠오르지 않으니 무용지물이었다.
‘분명히 자신을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라고 했다.’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가 앞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단순한 순서?
추론하기로는 그게 아니었다.
송윤천은 도박에 나서기로 했다.
“이봐.”
“유언이라도 남기고 싶은가?”
이미 한참 전부터 우위를 점한 또 다른 자신이 흉측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면서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가 없다면 과거도 사라지며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
“그리고 현재인 내가 없다면 과거인 너도 이대로 사라지겠지.”
과거인 자신이 현재인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현재가 사라지는 순간, 과거 역시 사라지기 때문에.
“그렇지?”
“어디서 허튼수작을…….”
송윤천이 검을 역수로 들었다.
이제 검은 과거의 자신을 가리키지 않았다.
그리고.
푸욱-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찔렀다.
복부를 파고 들어간 검이 등으로 튀어나왔다.
“노오오옴-!”
승리를 자신하며 송윤천을 내려다보던 악신 흉의 형상이 아래로 떨어져 고통에 몸부림쳤다.
“정답이었군.”
송윤천이 자신의 몸을 관통한 검을 뽑아내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생각은 없었기에.
푸욱-
이번에는 심장을 찔러넣었다.
동시에 불로불사를 자신하던 악신 흉의 형상 역시 희미해졌다.
자신이 죽어야 과거와의 악연 역시 완전히 끊기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는지.
송윤천도 결과는 알 수 없었다.
과거가 어쨌고 현재가 어쨌든.
미래는 알 수 없었으니까.
‘춥다…….’
자신의 몸을 관통한 검이 유독 시리게 느껴졌다.
이게 죽음인가.
죽어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다.
눈꺼풀이 무거워 버틸 수 없었던 송윤천이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니 붉은빛으로 가득했던 세상이 아닌,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자신을 반겼다.
“……!”
“……, ……!”
옆에서는 익숙한 얼굴들이 자신에게 무어라 외쳐대는데 탈력감이 심한 탓에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가운데.
정신적으로 쌓인 피로에 다시 눈이 스르르 감길 지경이었다.
“졸리다.”
대체 언제 마지막으로 뱉었는지도 모를 말이다.
한참 전, 언젠가부터 느끼지 못했으니까.
“하-.”
그래서 더욱 웃음이 나왔다.
과거의 괴력난신과 완전히 이별했음을 깨달았기에 나오는 순수한 웃음.
짧은 웃음이 끝나고 송윤천은 꿈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만통자가 말하기를 의식적으로 회피하려는 억압된 기억은 다른 기억보다 더 자주 꿈에 등장한다고 했다.
송윤천은 자신이 수없이 후회했던 만약을 떠올렸다.
괴력난신으로 거듭나지 않고 아주 평범한, 삼류 도사로서 별 볼 일 없는 삶을 마감하고 마는 자신을.
모든 인연을 벗어던지고 심산유곡에 홀로 처박혀 다가오지 않는 죽음을 기원하는 자신을.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과거를 지나서 염원하는 미래가 펼쳐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일어나지 않은 과거는 뚜렷했음에도 염원하는 미래는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했다.
하지만 송윤천은 굳이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이내 길었던 꿈 역시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 다가왔다.
송윤천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까닭을 깨달았다.
미래는 이제부터 자신이 직접 겪어나가야 하므로 보이지 않았음을.
가장 먼저 송윤천을 맞이한 건 검선 여동빈이었다.
“다행입니다. 진심으로.”
여전히 검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는 편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자신이 우려하던 마선의 탄생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단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조님,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여동빈은 한결 후련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날을 잡고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이 이상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나서 반가웠다.”
“저 역시 사조님을 만나 즐거웠습니다.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더 긴 말은 필요 없었기에 검선 여동빈은 정중한 작별 인사를 마친 뒤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
“돌아왔다.”
송윤천이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서자 반겨주는 이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이 모습이야말로 송윤천이 앞으로 그려나갈 미래의 한 장면이었다.
-完-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