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송윤천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상당한 유명세를 떨쳐왔다.
겉으로 드러난 수면 위가 아니라 아는 사람이 적은 수면 아래에서.
물론 세월이 세월이었으니 송윤천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먼저 죽음을 맞이한 이가 태반이었다.
다만 그중에서도 유독 뛰어난 몇몇은 수면 아래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송윤천의 변화는 알음알음 소문이 되어 퍼져 나갔고, 그를 기억하는 존재들의 귀까지 흘러 들어갔다.
생각보다는 조금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이러한 소문은 중원을 벗어나서 망망대해를 건너고 다시 육지에 닿기도 했다.
“그 늙은 괴물이 더는 괴물이 아니렷다……? 그 말이 사실이더냐?”
“그러하옵니다.”
사람을 통해 건너 알려진 소식은 괴력난신에게 도달했다.
똑- 똑- 똑-
무엇이든 찢어발길 듯 날카롭게 가다듬어진 손톱이 탁자 위를 두드려댔다.
“돌아갈 시간이 당도했으니 배를 준비하거라. 아주 화려하게 치장된 배를.”
“받들겠나이다.”
그녀의 정체는 한때 중원을 파멸로 이끌었던 구미호 달기(妲己).
보다 못해 수면 위로 나선 송윤천에 의해 꼬리 하나가 잘리고 바다 건너 왜국으로 도주한 희대의 괴력난신이었다.
마침내 꼬리가 잘린 채 팔미호로서 정체를 감추고 왜국을 지배하던 달기가 중원을 향해 다가왔다.
자신을 이런 신세로 만든 송윤천을 죽이고 자신과 같은 꼬리 여덟 달린 여우를 취하여 다시금 구미호로 거듭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
이러한 소식은 다시 사람을 통해서 괴력난신이 아니게 되어버린 송윤천에게 닿았다.
* * *
모두가 나름대로 바쁜 터라 송윤천은 홀로 장원을 나와 한성객잔에 들러 끼니를 해결하고자 했다.
“여기 국밥 한 그릇 주시게.”
하여 대충 한적한 창가 근처에 자리를 잡았는데 맞은편에 낯이 익숙한 여인이 착석했다.
“여기 국밥 한 그릇 더 주세요. 간도 가득 넣어서요.”
여인은 마치 그와 일행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설화, 네가 여기는 무슨 일로?”
그녀의 정체는 백두산 출신의 꼬리 여덟 달린 백여우.
하오문에서 한창 바쁘게 지내는 그녀가 이 무한까지 그냥 방문했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송윤천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느껴져요. 달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요.”
설화가 확신에 찬 눈빛을 보냈다.
여타 다른 괴력난신과 다르게 세상에 구미호(九尾狐)는 오직 한 마리만이 존재할 수 있었다.
설화와 달기는 구미호로 거듭나기 위해 서로의 목숨을 노려야 하는 숙적과 같은 관계였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다시 구미호로 거듭나고자 하는 달기의 입장이었다.
설화는 굳이 구미호로 거듭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기가 돌아왔다, 라…….”
어느새 국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낸 송윤천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네 생각은 여전한가?”
송윤천은 다시 한번 설화의 입장을 확실히 해두고자 했다.
사람이든 괴력난신이든 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
그녀가 과거에 가진 생각이 현재에도 같다고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설화는 자신과 다르게 하오문을 꾸려나가며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다른 욕심이 자라났을 수도 있었다.
“저는 지금이 좋아요. 다른 이들과 같이 살아가는 지금이요.”
“…….”
송윤천은 맞은 편의 설화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좋다.”
그 사이에 설화의 앞에 놓인 국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우선 배부터 채우지. 음식을 남기면 죽어서 거대한 그릇에 생전 남긴 음식들을 섞어 먹어야 한다고 하더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도 잘 모른다. 애들이 그러더라고.”
상황에 맞지 않는 시답지 않은 농담에 설화가 표정을 풀고 수저를 들었다.
그렇게 배를 든든히 채운 뒤.
“잠시 다녀오마.”
송윤천은 잠시 장원에 들러서 월에게 바다를 구경하고 오겠노라 말했다.
“갑자기 바다요? 또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별일은 아닐 거다. 아마도.”
“예, 오랜만에 바닷바람이라도 쐬고 오시지요.”
송윤천이 아니라고 하니, 정말 아무 일도 아닐 것만 같았다.
“오냐.”
고개를 끄덕인 송윤천이 자신을 뒤따르는 설화와 함께 하늘을 비행하여 동쪽으로 나아갔다.
달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 * *
송윤천 앞에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는 했다만, 설화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달기의 존재감은 갈수록 선명하게 다가오고 있었고, 자신을 짓누르기까지 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사나운 맹수와도 같은 기세.
지금도 등 뒤에서 달기가 달려들 것만 같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긴장했나?”
송윤천이 그런 모습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냥요.”
설화는 그저 작게 웃어 보였다.
송윤천이 옆에 있으니 그나마 조금은 진정이 되는 듯했다.
그 대단했던 요물 달기의 꼬리를 잘라내고 도망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제 달기는 그 당시의 구미호가 아닌 설화와 같은 꼬리 여덟 달린 신세.
완성을 직전에 두었지만, 결국에는 미완성인 존재였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자신이 거둔 하오문의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댔건만.
막상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보니 마음을 다스리는 게 여간 쉽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쿵-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댔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게 수백.
그리고 그 작은 점은 점차 거대해지면서 배의 형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 달기가 우뚝 서 있었다.
꼬리를 감추고 살아가는 설화와 다르게 당당히 눈처럼 새하얗고 풍성한 여덟 개의 꼬리를 드러낸 채로.
다시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지기 위하여 탐욕으로 점철된 시선이 매서웠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군.”
아무래도 상대 쪽에서도 각오를 다지고 나선 모양이었다.
물론, 송윤천이나 설화에게는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고 문제가 되지 않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아니었다.
‘이쪽에서 먼저 나서는 게 좋겠어.’
송윤천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설화는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가진 힘과는 별개로 정신적으로 닥쳐오는 압박감이 워낙 컸기 때문.
송윤천 역시 한때나마 악신 흉을 겪어본 바로 설화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너는 여기 남아 있거라.”
설화의 운명이 엮인 일이었지만, 굳이 앞으로 나설 필요가 없어 보였다.
송윤천이야말로 설화와 달기 사이에 엮인 운명의 연결고리와도 같은 입장이었으니까.
그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지금처럼 약간의 혼란 속에서 평화로울 수도, 천지가 혼란해질 수도 있었다.
툭-
송윤천은 바닷가 모래를 밟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 앞은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한 바다.
하지만 송윤천은 한참 전에 땅과 바다, 하늘의 경계를 벗어난 지 오래였으니.
파도와 함께 철썩이는 푸른 바다 위를 걸어 나가 다가오는 수백 척의 배 앞에 도달했다.
선두에는 달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송윤천에게 꼬리가 잘리고 중원에서 도망칠 적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왜국 특유의 생소한 복장을 하고서.
마지막으로 도망칠 적과 같은 표정이었다.
* * *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며 속으로만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분노를 식히려 노력하고.
누군가는 밖으로 분노를 표출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주변에 있는 것들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리고 달기는 분노의 원인을 제공한 대상에게 표출하기로 유명했다.
그것도 아주 잔인무도한 방식으로.
콰직-
달기가 옆으로 손을 뻗어 잡히는 수하의 머리를 단번에 터트려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아주 천천히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쉬운 죽음을 선사했다.
쿠웅-
머리를 잃고 쓰러져 나간 몸통의 정체는 거짓된 정보를 가져와서 자신이 왜국을 떠나 중원으로 오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조금이나마 분노가 가시자 이제는 혼돈에 휩싸였다.
달기는 송윤천의 본모습을 직접 경험한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얼마나 강한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송윤천이 더는 괴력난신이 아니라는 정보를 전해 들었을 때.
중원에서 도망친 이후로 정체를 숨기고서 항상 숨죽이고 있던 달기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오로지 송윤천에 대한 복수뿐이었다.
“멍청한 작자 같으니.”
누구나가 바라마지 않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운명을 스스로 저버리고 인간으로 돌아가 버리다니.
영원불멸하며 만천하의 지존이 되고자 하는 달기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악수(惡手) 중의 악수였다.
‘그래도 고맙구나.’
송윤천이 잘못된 결정을 내린 덕분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확신하며 중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송윤천을 마주하는 그 순간.
달기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게 잘못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달기도 알지 못했다.
자신을 꿰어내기 위하여 송윤천이 허튼수작을 부렸던 것인지.
이제는 자신의 손에 죽어버린 수하 녀석이 멍청한 까닭인지.
그게 아니면 자신의 부족함 때문인지.
문제는 이런 원인을 분석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음이다.
철썩-
어느새 수십 장에 달하는 높은 파도와 함께 올라선 송윤천은 달기를 태운 거대한 배를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기는 당장이라도 배 위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거대한 파도의 그림자 아래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마침내 내려다보는 송윤천과 올려다보는 달기의 시선이 마주쳤다.
“네 녀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군.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달기의 정신이 현재를 벗어나 아득히 먼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 그 눈빛.
“이렇게 다시 마주할 거였다면 굳이 살려둔 보람이 없는데 말이지.”
그때 그 목소리.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살려 준다면 두 번 다시는 중원으로 돌아오지 않겠다.”
“이미 늦었다.”
송윤천이 고개를 저으며 의지를 일으켰다.
그러자 자연지기를 가득 머금은 파도가 거칠게 울렁이다가 쏟아져 내렸다.
자신의 꼬리를 앗아간 그 힘이었다.
조금도 약해지지 않은.
오히려 더 높아만 져서 보이지 않을 지경인.
달기를 죽음 직전까지 내몰았고.
이제는 정말 죽음으로 몰아넣을.
철썩-
아래에서 송윤천을 받치고 있었던 거대한 파도가 내리쳤다.
달기와 함께 중원을 정벌하려 했던 수백 척의 배가 하나둘씩 작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모두의 입이 벌려지며 끔찍한 비명이 새어 나오고 전율했지만, 파도가 치며 나는 소음에 가려진 탓에 들리지 않았다.
송윤천이 의지로 일으킨 자연재해가 지나간 뒤 살아남은 건 오직 달기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달기 역시 죽음을 맞이할 차례.
“네놈은 어째서-!”
죽음을 앞두자 달기의 본성이 드러났다.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며 만인 위에 올라서려는 패도.
하지만 다시 입을 열어 무어라 외치기도 전에 파도가 세상 만물을 파괴할 기세로 다시 거칠게 내리쳤다.
모든 게 가라앉은 뒤, 수면 위는 평소와 같았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시작된 송윤천과 달기의 악연은 바다 한가운데서 끝을 알렸다.
“…….”
송윤천이 다시 바다를 건너 돌아왔다.
설화가 그를 맞이했고, 송윤천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네 생각은 여전한가?”
구미호가 되고자 하는 달기라는 숙명의 존재가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진 이상.
이제 설화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구미호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의 송윤천이 불로불사의 괴력난신으로서 그러했듯, 구미호로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겠지만.
“이대로 살다 가렵니다.”
설화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자.”
설화는 하오문으로, 송윤천은 장원으로.
각자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세상은 그대로였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