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인연(因緣)은 참으로 다양하며 천차만별이다.
상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대신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좋은 인연도.
상대를 죽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마저도 미련 없이 내던질 수 있는 나쁜 인연도 존재했다.
송윤천의 길었던 삶 역시 수없이 많은 인연의 가닥으로 어지러이 이어져 있었다.
다만 그 인연의 대부분은 이제 과거형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인연에는 끝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스치듯 곁에서 멀어져 갔다.
송윤천을 세상에 남겨둔 채로.
그래서인지 송윤천은 의식적으로 어떤 인연이든 간에 쉽게 맺으려 들지 않았다.
결국에는 슬픔으로 마무리 지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지금.
급히 적어 보낸 기색이 역력한 짧은 전서 한 장이 송윤천과 누군가의 인연이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왔다.
위급(危急)
휘갈겨 쓰다시피 한 서체에는 다급함이 가득 담겨 있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래에 찍혀 있는 직인은 평범한 붉은 인주가 아닌, 금가루를 곱게 갈아 찍어낸 두꺼비.
“금와(金蛙)…….”
송윤천은 홀로 섬서성으로 향했다.
하늘을 접어가듯 비행하여 무한에서 섬서성까지의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하늘에 닿지 않을 기도를 올렸다.
자신이 너무 늦은 게 아니기를.
* * *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던 주원장이 중원의 주인이 되어 홍무제로 거듭난 이후.
중원에서 주(朱)라는 성은 그 무엇보다도 특별하게 섬겨져 왔다.
그러나 적어도 섬서성에서는 그보다도 훨씬 명예로운 성이 있었으니 바로 금와장의 핏줄인 염(閻)이었다.
대체로 사람의 질투심에는 끝이 없기에 많은 재산을 쌓은 이들은 그 방법이 옳든 그르든 간에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기 마련이다.
멀리서 바라본 금와장은 단순히 천하제일의 거부(巨富)에 불과했다.
하지만 적어도 섬서성에서 금와장을 비난하는 이들은 없었다.
혹여 누군가 금와장을 비난한다면 그 즉시 양민이고 무인이고 몰려들어서 죽기 직전까지 매타작할 정도.
섬서성에서 금와장은 단순한 거부가 아닌 만인의 은인과도 같았다.
금와장은 가진 재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기도 했다.
그런 금와장의 주인이자 금왕(金王)이라는 별호로도 유명한 염대산이 앓아눕자 섬서성의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그들은 솔직한 말로 평생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목소리 한 번 들을 일 없는 북경의 황제가 죽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은인이 쓰러졌다 하니 다들 노심초사하기는 마찬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송윤천은 분위기가 잔뜩 가라앉아 땅을 뚫고 들어가려는 섬서성에 안착했다.
마치 쓰러진 주인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약간의 소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드나드는 사람과 마차 등으로 시끌벅적했던 분위기의 금와장이 어울리지 않게 고요했다.
정문 앞을 지키는 무사들 역시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방문을 거절했다.
하여 송윤천은 하늘을 걸어 전에 방문했던 금왕 염대산의 거처 앞에 내려섰다.
사방에서 귀한 약재로 약탕을 끓이는 향기가 물씬 풍겨댔다.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귀한 약재를 이렇게 들인다는 건 그만큼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얘기였으니까.
송윤천은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의 가운데에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노인이 보였다.
그가 바로 금왕 염대산이었다.
“뉘시오?”
곁에서 염대산을 지켜보던 의원이 뒤늦게 뒤에서 다가오는 송윤천의 존재를 확인했다.
동시에 염대산의 호위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으나.
“오셨군요.”
금와장의 다음 주인이자 섬서염가의 소가주이기도 한 염대산의 아들, 염호산이 송윤천을 바로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호위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보이는 태도에 다시 제자리로 물러났고, 의원 역시 경계의 눈빛을 지웠다.
“얼마나 지났더냐?”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기미가 있었나?”
“아닙니다. 어느 날인가 아침에 갑자기 쓰러지셨지요. 항상 부지런하던 분이 모습을 보이지 않아 확인했더니…….”
다행히도 너무 늦기 전에 발견하여 더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거기까지.
쓰러진 염대산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무공을 수련하여 그 경지 역시 상당했고, 면밀하게 살펴본 결과 독 따위에 당한 것도 아니었다.
“의원님께서 말씀하기를 노환이라 하더군요…….”
염호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일하기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의 부모가 노환이 온 줄도 몰랐다.
자식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부모가 쓰러졌으니 자신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네 탓이 아니니 고개를 들어라.”
송윤천의 말은 되지도 않는 위로가 아니었다.
실제로 무공이 고강한 이들은 노환이니 뭐니 해도 멀쩡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쓰러지고 또 죽음을 맞이하는 게 대다수였으니 말이다.
의원 역시 말을 아꼈다.
섬서성에서 실력이 가장 좋은 의원으로 정평이 나 있었음에도 염대산은 아무런 차도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의원이 실력을 발휘하여 뛰어난 의술이 더해졌기에 의식을 차리지 못함에도 그의 숨이 끊기지 않은 거였을 터다.
“뒤로 물러나라.”
송윤천은 염호산과 의원을 뒤로 물리며 염대산에게 다가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없이 많은 침이 꽂힌 상태.
염대산이 코로 내쉬는 숨소리가 아주 약하게 들려왔다.
당장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약한 숨.
생명이라면 태어날 적부터 주어진 선천진기마저도 가뭄에 메마른 강바닥과 같이 느껴졌다.
‘마지막에 도달했구나.’
염대산은 상계 최고의 거부이면서도 송윤천으로부터 시작되어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무공을 익히는 걸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여 무림에 내놔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고강한 무공을 자랑했지만…….
‘육체가 한계를 이겨내지는 못한 모양이야.’
어떻게 본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분명히 염대산은 금전적인 감각을 비롯한 오성이 뛰어났고, 조상을 닮아 자신의 신체를 잘 활용하는 편이었다.
그가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을 무공에 전념했으면 어쩌면 풍전이나 마석동을 뒤쫓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천부적인 재능에도 한계가 있기 나름.’
그는 무인이기 전에 근본은 상인이었기에 현실적인 여건상 무인만큼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과 같은 모습이다.
결국에는 수명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만약 풍전이나 마석동 역시 송윤천을 만나 수차례 깨달음을 얻어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면 염대산과 비슷한 운명으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 가는 건 본인도 원치 않는 일이겠지.’
송윤천이 중단전이 자리한 염대산의 심장 어귀에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남은 한 손은 머리로 향하여 백회혈을 찾았다.
서서히 멈춰가는 뇌와 심장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게 송윤천의 목적이었다.
자신이 가진 기운의 극히 일부만을 활용해도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염대산에게는 큰 도움이 될 터였으니.
송윤천의 손끝에서 새하얀 빛이 퍼져나가 염대산의 백회혈과 중단전으로 흘러 들어갔다.
죽어가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
자신의 생명을 깎아 가면서 하는 일이기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송윤천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아직도 허락된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기 때문에.
이 정도 줄어드는 건 성에 차지도 않았다.
이윽고 차갑게 식어가던 염대산의 신체가 온기를 띄기 시작했다.
송윤천의 손끝에서 빛이 사라질 무렵.
미동도 없던 염대산의 손가락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이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의원은 말 그대로 입신의 경지에 도달한 의술에 말없이 감탄했다.
염호산은 한줄기 눈물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다가가 염대산의 손가락을 잡았다.
잠시 후, 염대산이 조심스럽게 감았던 눈을 떴다.
가장 먼저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건 송윤천이었다.
“아직 살아있군요.”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던 까닭인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 아직은.”
“다행입니다…….”
염대산은 다시 눈을 감았다.
염호산이 깜짝 놀라 상태를 확인해 보려 했으나 송윤천이 그를 막아섰다.
“체력이 떨어진 탓에 잠시 잠들었을 뿐이다.”
사방이 조용해지니 편히 잠들었는지 숨을 내쉬는 소리가 작게나마 들려왔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너부터 먼저 쉬어야 할 것 같구나.”
염호산은 염대산이 쓰러진 이후 줄곧 곁을 지킨 모양이었다.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컸던 탓.
하지만 효심이 아무리 깊다 한들 한계는 있었으니 겉으로 무리했다는 게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었다.
눈가부터가 죽은 사람처럼 거무죽죽하게 물들었으니 말이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괜찮을 리가 있나.”
툭-
송윤천이 빠르게 수혈을 짚자 염호산이 바로 잠들어 버렸다.
“연초나 한 대 태우고 오지.”
송윤천은 나란히 잠들어 버린 부자(父子)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섰다.
기쁘면서도 기분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소생(甦生)과 비슷하기는 하나 아주 잠시 염대산의 정신을 돌려놓고 마지막에 이른 육신에 묶어둔 것에 불과했기 때문.
하지만 송윤천 역시 여기까지가 한계.
인연의 마무리를 준비해야 했다.
다 타버린 연초가 한가득 쌓여갈 즈음.
염대산이 메마른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려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꿈이 아니었군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염대산이 어렵게 고개를 옆으로 돌려 송윤천을 보며 말했다.
한층 더 초점이 또렷해졌다.
조금 전에 정신을 차릴 무렵에는 희미하게 보였던 송윤천이 평소와 같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으니.
“저승사자가 저를 보고 자신에게 오라 손짓을 하더군요.”
염대산이 작게 웃어댔다.
“아슬아슬했던 참이네.”
“어르신 덕분이지요.”
좋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많은 것을 가지고 또 누렸다.
되돌아보면 축복받은 인생이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왜 저러고 있답니까?”
염대산이 제 옆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걱정되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곁을 지켰다는군.”
“허허…….”
아들이 자신을 이리 생각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지.
몸이 상할 수 있으니 그만두라 해야 하는지.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나가서 금와장을 돌보라고 해야 하는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두어라.”
죽음을 앞둔 염대산에게도,
부모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아들 염호산에게도,
자신보다 한참 늦게 시작되었으나 한참 먼저 떠나는 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송윤천에게도.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지금은 마지막 순간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얼마나 남았습니까?”
“당장은 아니지만, 며칠 가지 못하겠지.”
“인사도 하지 못하고 갈 뻔했는데 다행이군요.”
염대산은 제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덕이 높은 도사나 승려처럼 달관한, 보기 드문 초연한 모습.
쓰러지기 직전의 거목과 같았다.
정신을 차린 염대산은 송윤천의 말처럼 며칠 동안 가족을 포함한 친지와 그동안 하지 못한 말들을 나눴다.
그리고 며칠 후.
송윤천이 미리 알린 바와 같이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신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시야마저 다시 어둡게 물들었다.
오감(五感)이 소멸하기 직전에 남아 있는 건 청각뿐.
“고생 많았다.”
마지막으로 슬픔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염대산은 작게 웃는 얼굴로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호상(好喪)이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