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집 말이 죽은 데는 간다는 말이 있다.
염대산은 세상 그 어떤 대감보다도 대단한 인물.
하지만 격언과 다르게 염대산이 마지막 떠나는 길에는 많은 이들이 얼굴을 비췄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금와장은 건재했으므로.
물론 모두가 그런 생각으로 찾은 건 아니었다.
“감사했습니다.”
전형적인 거지와 같은 모습을 한 무리가 나란히 염대산의 시신을 향해 절을 올렸다.
가진 것을 주변에 베풀며 살아온 염대산 덕분에 굶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물러난 자리에는 금와장처럼 거듭나고 싶은 상계의 거물, 금와장의 후원을 받아 우뚝 선 무림 세력 등 다양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원, 아니 천하제일에 올라선 거부의 장례식은 황제에 비견될 만큼 크게 진행되었다.
다만, 찾는 사람이 많아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으나 겉모습이 화려하지는 않았다.
금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상계 최고.
굳이 얼마나 많은 황금을 쌓아 올렸는지 자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로 죽음을 맞이한 염대산의 시신이 담긴 관 역시 그저 단단한 바위를 깎아 마련한 게 전부.
대대로 금와장을 이끌어온 주인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무덤 내외로도 약간의 금은보화조차 보이지 않았다.
며칠에 걸친 장례식마저 끝난 이후.
금와장은 다시 평소와 같이 돌아갔다.
그저 염대산의 빈자리를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염호산이 채웠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멀리서나마 자리를 지켰던 송윤천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 무덤으로 다가섰다.
금와장 뒤편에 잘 정리된 한적한 장원과 같은 분위기.
그 중심 부근에서 가지런히 정렬된 무덤들이 그를 반겼다.
묘비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가득했다.
여기 묻힌 이들 하나하나가 송윤천이 젊은 날 보았고 늙은 날에 보내주었으니까.
‘잊은 줄로만 알았는데.’
시간이 워낙 많이 흘렀기에 기억나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묘비에 적힌 이름들을 보니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목소리가 들리기까지 했다.
송윤천은 가장 앞줄에 놓인 염대산의 묘비를 시작으로 천천히, 하나씩 놓치지 않고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잘 관리되었음에도 세월의 흔적이 선명히 남은 한 묘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미리 챙긴 술 한 병을 들었다.
그리 귀한 술은 아니었지만, 예전에 둘이 종종 즐겨 마셨던 술과 최대한 비슷한 술로 구해왔다.
마개를 여니 콧속으로 몰려드는 향기에도 추억이 아련히 담겨 있었다.
“결국, 내 머릿속에 남은 건 마지막에 봤던 모습과 목소리구나. 먼저 떠나서 송구하다고 했었지.”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원한다면 송윤천은 언제라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으니까.
“예전에는 죽을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목숨을 끊겠다고 확신했지만, 막상 처지가 바뀌니 아니더구나.”
송윤천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
더 짧지도, 더 길지도 않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보낸 다음에 남들과 똑같이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너무 미안해할 필요 없다. 언젠가는 우리도 다시 마주하게 될 테니까.”
죽음 이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송윤천 역시 알 수 없었다.
죽음이 곧 완전한 끝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는지.
그것도 아니면 위든 아래든 어디론가 다른 세상과 시공간으로 떠나든지.
여러 번 이에 대한 진실을 알법한 작자들에게 물었지만, 그들은 확실한 대답 대신 어색한 미소로 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그래도 한 번은 더 만났으면 좋겠구나.”
송윤천은 그저 언젠가는 자신의 소원이 이뤄질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었다.
술병이 점차 가벼워지고, 마지막 방울이 송윤천의 입으로 떨어졌을 때.
송윤천은 그제야 길었던 혼잣말을 그만두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르겠다만,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거라.”
다시금 묘비들을 하나씩 눈에 담은 송윤천이 뒤돌아서 금와장을 떠났다.
그렇게 송윤천이 다시 무한의 거처로 돌아왔을 때.
“오셨습니까?”
“식사는요?”
“같이 드시죠. 아, 혹시 몰라서 연초도 가득 가져다 두었습니다.”
지나간 인연들을 대신하여 지금 이어져 있는 인연들이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래, 들어가자.”
이제 송윤천은 불로불사의 저주 속에서 과거에 묶인 몸이 아닌, 남들과 같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 * *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이란 언제나 어리고 부족하게만 보인다.
자식이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를 한참 지나서 얼굴에는 주름이 새겨지고 검은 머리와 수염이 새하얗게 물들더라도.
부모의 눈에 자식은 언제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물론 송윤천 역시 그런 말을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는 정신이 황폐해질 것만 같았기에 혼인도 하지 않았고 자식을 가지지도 않았기 때문.
그리고 이건 송윤천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송윤천을 시작으로 월, 풍전과 마석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곽범까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장원에 머무는 이들은 한참 어른이었음에도 혼인하지 않았고 자식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다녀왔습니다.”
평소 야근을 밥 먹듯 하던 남궁헌이 해가 지기도 전에 일찍 귀가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혼자가 아니었다.
한 걸음 뒤에는 남궁헌을 따라 들어오는 여인이 한 명 있었다.
수줍음이 가득한 얼굴.
굳이 둘이 어떤 관계냐고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어 보였다.
모두가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남궁헌에게 연인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던 까닭.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건 역시 남매인 남궁연이었다.
“왜들 그러세요……?”
수련 중이었기에 가장 늦게 등장한 남궁연의 시선이 남궁헌을 지나서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여인에게 집중되었다.
정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눈앞에서 떡하니 펼쳐지고 있으니 적잖이 놀란 모양.
까앙-
남궁연은 무인임에도 들고 있던 검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서, 설마…….”
“모두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서요.”
“소, 소개라면?”
“혼인할 사이요!”
남궁헌이 너무나도 해맑게 웃어 보였다.
누구는 웃고, 또 누구는 부끄러워하고, 다른 누구는 놀라는 모습.
이 장면을 바라보던 송윤천은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 * *
잔칫집에 은인과 원수는 보이지 않아도 거지는 보인다.
풍전 역시 개방 출신이니 당연히 수많은 잔칫집을 두드렸었다.
그래도 잔칫집에 거지가 떡하니 있으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음식만 얻어먹고 냉큼 나오는 게 거지 사이에서는 암묵적인 규율이었다.
“그때는 나도 몰랐지. 이렇게 잔칫집 한가운데에 앉아 있을지.”
“그래도 이 정도면 잔치도 아니다.”
풍전과 마석동은 평소와 다르게 전체적으로 잘 차려입은 행색이었다.
무인보다는 어느 동네에서나 두어 명쯤 볼 수 있는 고지식한 영감님처럼 말이다.
“관례대로 진행하면 좀이 쑤셔서 자리도 못 지키겠지.”
마석동이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혀를 내둘렀다.
무림맹주 시절 얼마나 많은 혼례에 참석했던가.
정작 자신은 백 살이 넘게 혼인도 못 한 처지였음에도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너희가 겪은 건 그래도 나름 간소화된 걸 텐데.”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송윤천이 입을 열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했다는 말이오?”
풍전이 질색하며 물어왔다.
요즘에는 혼례를 흔히 육례라 표현하였는데 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애초에 절차를 지키고자 하였다면 헌이가 먼저 소개해주지도 않았을 테지.”
아예 없는 집안이 아니라면 혼례는 오직 각 집안의 어른에 의해서만 진행되었다.
혼례의 당사자들이 서로를 만나는 건 마지막 순간에나 성사되는 것.
그러니 지금처럼 남궁헌이 먼저 혼인을 약속한 여인을 소개해주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쪽이나 저쪽이나 안타까워 따로 할 말도 없다만.”
“그렇기는 하오.”
남궁연이나 남궁헌에게 있어서 장원은 이제 단순히 잠시 머물다가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들의 집과 같았다.
함께하는 송윤천이나 월 그리고 사형제들과 마석동 역시 그들과 피를 나눈 부모, 형제와 같았고.
남궁헌과 혼례를 올리는 여인 역시 어릴 적 집안이 망해버리고 부모를 잃었다고 들었다.
당사자에게는 너무나도 큰 비극이었지만, 적어도 무림에서 어느 세력이 무너지는 건 흔한 일이었기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성격이 참으로 좋아 보이니 다행이오.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가까이 살게 되지 않았소.”
가까이도 아니었고, 벽 하나를 두고 바로 옆 평지에 지어진 또 다른 장원이었다.
“가족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남궁연이 거두어 보살피는 아이들도 돌볼 수 있으니 좋다고 하던데.”
송윤천은 처음에 남궁헌에게 얼마든지 지원해줄 터이니 원한다면 어디로든 독립해도 좋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이곳에서 같이 머물겠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오랜만에 힘 좀 썼지.”
“쯧……, 몇 시진이나 움직였다고 생색을 내고 그러나.”
그리하여 장원 바로 옆에 부부가 함께 머물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작게 지은 게 아니었지만, 손꼽히는 강자들이 나서니 새집을 짓는 일도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장주, 그런데 둘은 어찌 만났다고 합니까?”
풍전이 궁금하여 물어왔다.
자신의 어린 사형은 평생 일만 하다가 죽을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른 새벽에 나가 늦은 밤에 귀가하는 게 지난 몇 년 동안 남궁헌의 일상이기도 했고.
“헌이 이상형이 뭔지 알고는 있나?”
“이상형? 사형에게 그런 것도 있었답니까? 장주에게 그걸 말해줬소?”
겉보기에 풍전이나 마석동, 하물며 곽범은 남궁연의 부모 혹은 조부모처럼 보이기도 했다.
막상 속으로 보면 가장 늙은 건 송윤천이었지만, 가장 말이 잘 통하는 것도 송윤천이었다.
‘사실은 그냥 들어주는 게 전부인데 말이지.’
그래서 남궁헌은 남들에게는 잘 털어놓지 못하는 말들도 송윤천에게는 부담 없이 털어놓고는 했다.
“아무래도 헌이가 연이와 함께 자라와서 그런지 연이처럼 강한 여인이 매력적이라고 했더랬지.”
“아…….”
풍전과 마석동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남궁헌과 나란히 서서 수줍은 표정을 짓는 저 여인이 막 떠오르기 시작한 신성이라나 뭐라나.
“자, 잡담은 여기서 끊고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혼례를 진행하는 이는 무림맹주인 제갈과였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수하인 남궁헌이 혼례를 하는데 가만히 넘어갈 수 없다나 뭐라나.
혼례를 간략하게 올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지지부진했다.
아무래도 진행을 맡은 제갈과의 말이 길어지는 탓일 수도 있었고.
그래도 혼례에 참석한 이들의 엉덩이에 굳은살이 배기기 전에 슬슬 혼례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놈아, 적당히 해라. 적당히. 그러다가 좋은 날에 사람 잡을라.
여기에는 제갈과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낸 마석동의 전음이 큰 역할을 했다.
“……크흠, 이로써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으니 백년해로(百年偕老)……, 아니 천년해로(千年偕老) 하기를 하늘에 기도하는 바요!”
제갈과는 백 년을 훌쩍 넘게 살아남은 몇몇과 눈을 마주치고 급하게 말을 바꿨다.
이왕이면 조금 더 오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주께서 한 말씀 해주시는 것으로 혼례를 마치겠소.”
신부 측과 신랑 측 모두 덕담해줄 어른이 딱히 없었다.
하여 어쩌다 보니 가장 큰 어른인 송윤천이 나서게 되었다.
딱히 미리 준비한 말은 없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차분하게 내뱉었다.
“사는 게 순탄하지만은 않기에 살다가 보면 위기가 옵니다.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니니까 너무 두려워 맙시다.”
모두의 시선이 송윤천에게 집중되었다.
더 오래 살았다고.
더 많이 겪었다고 해서 길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용기가 나지 않다면 그냥 시작하세요. 그러면 용기가 뒤따라올 겁니다.”
언젠가는 살고자 했고 또 죽고자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살고자 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계속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돌이켜 보니 남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송윤천 본인에게 하는 말이었다.
-외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