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염병할……, 이렇게 남의 눈치 보기는 오랜만이구먼. 이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로…….’
솔직히 말하자면, 풍전은 이미 한참 전에 깨어난 후였다.
되려 전에 없을 정도로 완벽한 상태.
그런데도 눈을 뜨지 못하고 여전히 기절한 척하는 이유는 한 가지.
오로지 이 상황에 끼어들기가 민망했던 탓이다.
‘제발 가라. 가.’
어중간한 자세로 땅바닥에 누워있는 풍전을 중심으로 송윤천과 월, 남궁연, 남궁헌, 곽범까지.
총 다섯 명이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그리고 현재 곽범이 대화를 주도하고, 나머지 넷이 번갈아 한 마디씩 꺼내고 있었다.
“장주님, 혹시 이분과 어떤 인연입니까?”
“인연이라니, 아까 못 들었나? 너와 월이 나갔다 오면서 붙은 혹이라고 했는데.”
“크흠, 이분이 혹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런데 이분 설마 죽은 건 아니겠죠? 그러면 정말 큰일 납니다. 아니 큰일이 아니라 당장 여기서 도망가야 합니다.”
“내가 설마 시체를 들고 올까. 멀쩡히 잘 살아있다.”
“휴,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곽범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이 약골, 왜 그래? 이 늙은 거지 아는 놈이야? 아, 혹시 흑룡인가 흑지렁이인가 거기 출신인가?”
월이 질질 끌려오다시피 등장한 불청객에게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물었다.
후-
입김을 따라 허공에 흩뿌려진 큼지막한 귀지 덩어리들이 풍전의 입가에 떨어졌다.
아무리 거지라고 해도 자신이 더러운 건 익숙해져서 잘 참는 것이지 남이 더러운 건 또 못 참는 법.
‘이 때려죽일 개자식을 그냥.’
풍전은 당장 벌떡 일어나서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다들 정말 모르십니까?”
“거참, 우리는 잘 모른다니까. 뭐 치매라도 왔어? 왜 자꾸 물어보는 거야?”
“아, 설마 곽 사제도 옛날에 거지였어? 아니면 혹시 같은 패거리에 있던 할아버지야?”
“누나, 아니면 이 할아버지가 사제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아닐까?”
그 와중에 유일하게 송윤천만 말없이 연초를 피워댔다.
실력이 제법인 걸 보아 무림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크게 얻기는 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이가 없다 못해 더 들으면 미칠 것 같은 대화에, 참다못한 곽범이 풍전의 팔뚝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목! 다들 여기를 한 번 봐주십시오.”
“땟자국?”
“아니, 물론 땟자국이 심해서 잘 안 보이기는 하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카아아악~, 퉤!”
곽범이 물을 끼얹으려다가 그냥 제 손바닥에 침을 한가득 뱉어냈다.
그리고 끈적한 침이 흥건하다 못해 방울져 뚝뚝 떨어지는 손바닥으로 풍전의 팔뚝을 마구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꺼먼 땟자국이 지워지고 속에 가려져 있던 맨살이 조금씩 드러났다.
“여기 보이시지요?”
“흉터투성이네. 뭐가 길게 이어진 게 신기해.”
“예, 여기 양 팔뚝에 기이하게 생긴 흉터가 있지 않습니까. 이게 벼락을 맞아 생긴 흉터입니다. 그리고 또 여기 흑갈색 타구봉은 벽조목(霹棗木)이고요. 이래도 모르시겠어요? 이분이 바로 그 유명한 풍전 대협이십니다. 풍전(風電)!”
“풍전? 바람과 벼락? 그게 이 거지 할아버지 이름이야? 너무 이상한데.”
“사제, 그래서 이 할아버지가 대체 누군데 그래. 설명을 좀 자세히 해줘야 알지.”
“그러니까 그냥 이름 이상한 거지라는 거잖아?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큰 소리야.”
각자 다른 반응에 곽범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아니, 이쯤 되면 사부와 사형제들이 짜고 자신을 놀려 먹으려는 건 아닌가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냐, 정말 모르는 눈치 같기도 하고.’
무림을 떠나 중원에서 모르면 새외의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유명한 별호가 바로 풍전이지 않은가.
하지만 적어도 여기 모인 이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송윤천과 월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남궁연은 언제 한 번 길을 떠돌 때 들어봤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는 당장 먹고사는 게 유일한 관심사였을 뿐.
다른 일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반응이 온 건 남궁헌뿐이었다.
“아! 곽 사제. 나 기억났어. 구성(九星)! 맞지?”
“와-! 사형! 구성 아시는구나! 맞습니다!”
곽범은 눈 세 개 달린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눈 두 개 달린 사람을 만난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했다.
“헌아 구성이 뭔데? 전에 들어본 것 같은데.”
“응, 누나. 객잔 인근에서 구걸할 때 매담자 할아버지들이 말해줬잖아. 옛날에 중원을 구원한 영웅들이라고.”
“그런데 나는 왜 몰랐지?”
“그거야 당연히 한참 전이거든요. 사저나 사형은 물론이고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니까요.”
“아, 그거 설마 옛날에 그 정마대전을 말하는 건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하네.”
월이 그제야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예, 맞습니다. 정마대전 당시에 대활약했었던 대협 아홉 분이시지요. 월 사부님도 아시는군요.”
“당연히 알지. 그때 개고생하면서 장주님이랑 둘이 이 장원을 짓고 있었는데 웬 눈 돌아간 마인 놈들이 어찌나 무한에 쳐들어오던지.”
“정말요?”
“진짜라니까. 장주님, 그렇죠?”
“사실이다. 당시에 무림맹을 급습하겠다면서 파도처럼 밀려왔더랬지. 그중에 길치 몇 놈이 이쪽으로 지나다가 맞아 죽어 나갔고.”
송윤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월의 말을 거들어 주었다.
“거봐, 그때 그놈들 별호가 뭐였더라? 아! 건곤쌍마(乾坤雙魔)랑 혈영노마(血影老魔), 지옥마제(地獄魔帝)? 또 몇 놈 더 있었는데 나머지 잡다한 놈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별호가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하군요. 누가 이기셨습니까?”
“사제, 당연히 사부님들이 이기셨으니까 여기 계시지.”
“아……, 그렇지요. 제가 멍청한 질문을 했습니다.”
“알았으면 됐다. 그놈들 죄다 피똥 지리면서 맞아 죽었거든.”
맹세코 풍전은 이 정신 나간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았다.
진작에 눈치챘던 송윤천이 부르기 전까지는.
“거지. 이제 슬슬 일어나라.”
“…….”
풍전은 송윤천의 부름에도 숨을 천천히 들이 내쉬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듣고도 무시하시겠다? 좋다, 셋을 셀 때까지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영영 잠들게 해주마. 하나, 둘, 세…….”
파지지직-
순식간에 송윤천의 손아귀에 뇌기가 뭉쳐 풍전의 심장 어귀로 닥치기 직전.
“헙! 일어났소! 나 일어났다니까!”
겁에 질린 풍전은 곧장 일어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어색함이란, 쉽게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휴, 한심하네. 한심해. 그냥 죽지 그랬냐.”
월은 뭐 이런 멍청한 거지가 있냐는 듯 한심하게 쳐다봤다.
남매는 곽범의 말을 듣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곽범은 한참 어린 시절, 자신이 무공을 익히기 전부터도 자자했던 명성의 고수를 직접 마주한다는 사실에 긴장한 듯했다.
“다들 각자 하던 일이나 마저 해라. 거지 너는 날 따라오고.”
송윤천의 목소리가 민망한 상황에 놓인 풍전을 구원해주었다.
* * *
무림은 강자존의 논리가 지배한다.
강자의 말이 곧 법이고 진실이 된다.
그래서 풍전은 송윤천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가 이렇게 말을 털어놓는 것 자체가 강자로서 약자에게 베푸는 자비와 같았다.
만약 송윤천에게 다른 생각이 있었다면 풍전은 이미 벼락을 맞아 시신은커녕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죽었을 테니까.
감시하던 이를 무력으로 제압한 뒤 멀쩡하게 살려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거기에 송윤천은 자신의 목적을 일부 털어놓았다.
“그게 진심이오? 흑도 세력을 이용해서 무한 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납치를 방지하려는 것이 전부라는 게?”
“못 믿겠으면 말고. 뭐, 네가 믿고 안 믿고는 딱히 중요치 않으니까.”
“크흠…….”
풍전이 송윤천을 상대로 뭔가 해볼 수 있는 건 없다.
그만큼 완벽한 패배였다.
“아무튼, 내 쪽에서는 솔직하게 밝혔으니 이제 네 의도를 들을 차례인 것 같은데. 거지가 여기는 무슨 일이지?”
“정체를 숨긴 이들이 무한 흑도를 모아 무슨 수작을 부릴지 궁금하여 호기심에 따라왔소.”
“흐음, 그래? 뒤에 누가 있는 건 아니고? 예를 들어 무림맹이라든지.”
개방 역시 무림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만큼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뭐, 무림맹이든 황궁이든 딱히 관심은 없고. 거슬리게 하면 치울 뿐이다.”
“……, 명심하겠소. 혹시 모르니 무림맹 쪽에도 차후 이에 대한 사항을 전달하겠소.”
송윤천의 시선에서 진심임을 직감한 풍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이 사내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니까.
“그리고 따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소?”
풍전이 한 손을 자신의 단전 부근에 올리며 물었다.
깨어난 순간,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느끼며 깜짝 놀랐다.
누가 전신 혈도를 청소라도 한 것처럼 깨끗해졌으며 텅 비어 버린 단전이 가득 차다 못해 더 넓어졌다.
또한, 뇌기의 수발(受發)이 편해졌으며 강도의 조절도 한층 더 수월해졌다.
기연도 이런 기연이 또 없었다.
따로 깨달음을 얻어 벽을 허물어 버린 것도 아니며 영약을 흡수한 것도 아닐 테다.
그러면 이는 어찌 된 일인가?
당연히 눈앞의 사내, 송윤천이 자신에게 무언가 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송윤천은 이를 숨기지 않았다.
“내버려 두면 주화입마로 죽을 것 같아서 미리 손을 좀 썼다. 내가 가진 뇌기를 나누어 주었지.”
“그, 그게 그렇게 쉽게 가능한 일이오……?”
“물론이지. 충분히 가능하다. 시전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를 뿐.”
같은 내공심법을 익힌 관계에서는 종종 격체전공(隔體傳功)이 전개되곤 했다.
‘다만, 격체전공의 효율이 그리 높지 않으며,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은 과정에 비해서 이렇다 할 결과를 낳지 못할 뿐.’
한 갑자의 내공이 전달되면 그 절반도 채 남지 않았고, 많아 봤자 이 할에서 삼 할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렇다면 이 자의 내공은 대체…….’
자신이 한평생 쌓아 올린 게 이 갑자를 넘은 지도 오래된 마당이다.
격체전공으로 자신의 단전을 전부 채우려면 단순히 계산해봐도 대충 최소 서너 배에 이르는 내공이 필요하다는 뜻.
‘게다가 그만큼의 내공을 소모했으면 지금 정상이 아닐 터인데.’
송윤천은 자세히 봐도 자신과 붙기 전과 같은 상태였다.
‘강하게 보이려 멀쩡한 척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자신의 기억과 경험이 맞다면 그 대단했던 천마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무림에 이런 고수가 있었던가?’
천하가 워낙 넓으니 기인이사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고수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막상 마주했을 때 풍전 자신과 비슷한 경지에 오른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또한,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만의 수련을 이어가다 보니 무공의 경지는 높다 하여도 막상 실전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자는 그 누구보다 실전에 익숙해 보였다. 심지어 나보다도 더.’
지난 한평생을 혈투 속에 살아온 풍전이었다.
그런 자신이 상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의구심이 깊어져만 갔다.
“출신이 어떻게 되시오? 그게 아니라면 별호라도 알고 싶소만.”
풍전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별호? 별호라…….’
송윤천은 풍전이 던진 예상치 못한 물음에 잠시 추억에 젖어 들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