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송윤천은 아주 긴 시간을 견뎠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무림에 발을 걸쳐 놓았었다.
또한,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하지 않았다.
정, 사, 마, 흑, 새외.
그 어디든 가리지 않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했다.
그 결과, 송윤천은 제법 많은 별호로 불리곤 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애초에 천재가 아니었으니 그럴듯한 별호로 불리는 데에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화산의 이름 없는 심산유곡에서 검을 익혀서 만인에게 검성이라고 불리기까지 오백 년 남짓.
마공에 심취하여 천산에 홀로 처박혀 사백 년을 지새워 신마라 불리고.
불가에 귀의하여 면벽 수련만 삼백 년을 넘게 하자 생불이라 하였다.
그 외에도 천하제일 혹은 그 이상이거나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의 별호 역시 제법 있었다.
이처럼 송윤천이 얻은 모든 별호에는 세월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지금 거지가 원하는 대답은 아마도 뇌기와 관련된 것일 터.’
오래 살았고 천하를 주유했으니 당연히 수백 년에 한 번 정도는 기연(奇緣)을 마주하기도 했다.
무공비서와 영물, 영초, 기물까지.
그중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하고 그리 필요치 않은 것들은 제자리에 두기도 했다.
그리고 송윤천이 망설임도 없이 손에 넣은 기연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뢰옥(天雷玉)이었다.
지금은 고대의 신화로 여겨지는 뇌공(雷公)이 유일하게 세상에 남겼다고 알려진 기운의 파편이 바로 천뢰옥의 정체.
‘어차피 내가 아니면 그 누구라도 죽었을 테니 고민도 없이 취했었지.’
사람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뇌기가 담겨 있는 신물이었다.
자신 역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버텼음에도 끝끝내 전부 소화하지 못했다.
결국, 천뢰옥에 담겨 있던 뇌기의 극히 일부만을 소화했음에도 이전과는 비교할 바 없이 강해졌다.
당시에는 그런 송윤천의 활약을 보고 뇌공(雷公)이 현신했다는 소문이 천하에 떠들썩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뇌공이라 밝히는 것도 우습지.’
뇌공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서 무려 고대 무림이라고 불리던 시절의 별호였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딱히 여기서 거론할 만한 별호가 없는데.’
송윤천이 마지막으로 무림에서 활약하며 별호로서 불린 지가 어느덧 이백 년이 훌쩍 넘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송윤천은 자신에 대해 정의하기를 포기했다.
“딱히 별호는 없다. 나 역시 수많은 기인이사(奇人異士) 중 한 사람일 뿐이지. 지금은 굳이 따지자면 소일거리로 무공을 가르치는 한량 정도다.”
“한량이라……, 알겠소.”
본인이 밝히기 싫다는데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명 숨겨둔 무언가가 있을 터인데.’
다만 풍전은 여기서 물러나기도 애매하여 조금 더 알아보고자 했다.
‘거기에서 무언가 얻을 수 있다면 더 좋고. 그리고 어쩌면 여기서 더 나아갈 수도…….’
구성이라 불리며 칭송이 자자하지만, 지금의 경지에 발을 디딘 지 어언 삼십 년이 지났음에도 다음 경지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더 강해지고자 하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본능.
풍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이 좋다면 구성(九星)이 아니라 팔성(八星)과 일신(一神)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정파제일인, 아니 천하제일인 신개(神丐)!
상상만 해도 웅장함이 몰려왔다.
마침 알맞은 핑계가 있지 않은가.
“가능하다면 그대에게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겠소?”
스승이 작고한 지도 어언 수십 년.
이후 누군가에게 이렇다 할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보다 강자는 한참 전에 늙어 죽거나 정마대전에서 죽었으니까.
‘세간에는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지만, 그것도 수준 차이가 정도껏 나야 가능한 일이지.’
그렇기에 백발이 성성한 늙은 거지 풍전은 자신의 부족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제대로 된 가르침을 얻고자 하였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부끄럽지 않냐고?
전혀.
그러면 백 년 동안 거지 노릇도 하지 못했다.
장담하건대 풍전은 이때만큼 자신이 거지여서 다행이라 여긴 적이 없었다.
* * *
인연은 강요할 수 없다.
진작에 이 이치를 깨달은 송윤천은 오는 이와 가는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풍전은 그의 기준에서도 보기 드문 뇌기를 다루는 고수.
개인적으로 조금은 관심이 가기도 했다.
‘이 정도까지 강한 뇌기를 구사하는 존재는 괴력난신 중에서도 쉽게 볼 수 없으니까.’
아마도 강함의 척도를 ‘뇌기’로만 따진다면 송윤천 다음이 바로 풍전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풍전은 남궁연에게 일종의 이정표(里程標)가 되어주기에 적합해 보였다.
괴력난신으로서의 목표는 자신과 월을 두고 볼 수 있다.
‘남은 절반인 무인으로서의 목표를 풍전으로 삼는다면 거기에서 나름대로 깨닫는 점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송윤천은 가르침을 내려 달라는 풍전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좋다. 원한다면 허락하지.”
“오오! 고맙소!”
이렇게 흔쾌히 허락할 줄은 몰랐다는 듯 풍전은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감사를 표했다.
“다만, 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다.”
“말씀하시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감내하겠소.”
이건 진심이었다.
그가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거지 집단인 개방이라지만 총타에 금은보화도 적지 않았고, 실전된 무공서나 약간의 영약도 있었으니 말이다.
태상방주이자 개방의 최고수인 풍전이라면 그중 일부를 사용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그게 치매지.’
막말로 무림의 최정상에 오른 이가 그보다 높은 경지의 고수에게 가르침을 얻을 일이 많아 봤자 얼마나 있겠는가?
아마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명도 버선발로 뛰쳐나와서는 가르침을 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할 터였다.
“당장 목욕부터 마치고 와라. 아, 그 더러운 의복도 버려라. 난 내 옆에서 악취 풍기는 꼴은 못 본다.”
“씻으란 말이오……?”
그 말을 들은 풍전이 예상 밖의 요구에 흠칫거리며 물었다.
무공을 익혔다지만, 개방의 근본은 거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씻지 않는 이들이 거지가 되는지, 거지여서 씻지 않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사실은 거지는 당연하게 씻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풍전에게 씻으라는 말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라는 말과 같았다.
“싫은가? 그러면 가도 좋다. 나야 아쉬울 게 없으니.”
“하겠소! 바로 하겠소! 여기 욕탕이 어디요?”
송윤천이 뒤돌아서려 하자 풍전이 다급하게 외쳤다.
지금은 체면이니 정체성이니 근본이니 따지고 나설 때가 아니었으니.
“물이 썩을 수도 있으니 멀리 가서 알아서 씻고 오도록. 남는 의복 한 벌은 미리 챙겨주도록 하지.”
“크흠, 알겠소…….”
송윤천에게 지금 입고 있는 황의(黃衣)와 달리 작은 얼룩조차 없는 하얀 백의를 받아든 풍전이 털레털레 걸어 장원을 나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목욕을 언제 했었더라?’
생각해보니 대충 이십 년은 지난 것 같았다.
거지로서의 신념보다는 무인으로서 강해지고자 하는 욕심이 컸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하자, 가르침을 얻어야 하는 데 잘 보여서 나쁠 건 없겠지.’
금방 강가를 찾아낸 풍전이 뇌기로 전신을 감쌌다.
그러자 오래 쌓여 묵은 때들이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갔다.
몸이 깨끗해지는 대신 때가 섞여 들어간 강물이 더럽게 물들어갔다.
목욕을 마치고는 산발이 되어 있었던 백발을 빗고 수북한 수염까지 깔끔하게 정리했다.
거기에 새로운 의복까지 더해지자 자신이 아닌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흐음……,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당연히 감내해야지.”
무공을 배울 수만 있다면.
그것도 무려 보통 무공이 아니라 신공으로 취급받는 뇌기다.
풍전은 다른 의미의 환골탈태를 거치고 다시 장원으로 향했다.
풍전이 모습을 드러내자 송윤천이 장원의 구성원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모인 이들의 태도가 조금은 이상했다.
아까 봤던 더러운 거지와는 전혀 다른, 아주 낯선 외모의 노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장주님. 이분은 누구십니까? 이분이 정말 풍전 대협이 맞습니까?”
“아까 봤지 않았느냐. 악취가 심하여 씻고 오라 하였지.”
“설마 아까 거지 할아버지……? 정말 맞아요?”
남궁연과 남궁헌은 혹시 사람이 아니라 괴력난신이었는지 아니면 둔갑술을 쓰고 나타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크흠, 내가 왕년에는 별호가 백옥개(白玉丐)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워낙 세월이 많이 흘러 알려나 모르겠소.”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비록 세월이 많이 흐르고 험한 일을 오래 겪다 보니 갖은 흉터가 깊게 새겨졌으나 본판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만고불변(萬古不變).
대체로 미소년(美少年)이 미청년(美靑年)이 되고 미중년(美中年)이 되며 미노년(美老年)이 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얼굴이 밥 먹여 주냐는데,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실제로 풍전이 젊은 시절에는 따로 길가에 나서서 구걸하지 않아도 처자들이 찾아와 산해진미를 대접해주기도 하였으니까.
물론 이 역시 오직 곽범만이 아는 일화였다.
“풍전 대협께서 한때 무림 사대미남(四大美男)이라 불리기도 하셨지요.”
풍전의 변신에 잠시 좋은 말이 오갔다.
다만, 풍전은 아직 한 가지 고비가 더 남아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자, 알다시피 여기는 오늘부터 장원에서 함께 거주하게 된 풍전이다. 자, 스승과 사형제들에게 인사해라.”
‘아……!’
풍전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크게 한탄했다.
정파의 영웅, 개방의 태상방주, 내일모레면 백 살에 이르는 풍전은 제 발로 찾아와 장원의 막내가 되었다.
* * *
이제는 정마대전을 기억하는 이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십 년에 걸친 정마대전을 직접 겪었던 이들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풍전 역시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자신은 천운이 따라 살아남았고 명성을 얻으며 영웅이 되었지만, 그뿐이었다.
너무 많은 것들을 잃고 말았다.
고아였던 자신에게 부모가 되어주고 형제가 되어준 스승과 사형제들마저도 모두 죽고 말았다.
이후 졸지에 개방의 방주가 되었고 태상방주가 되었다.
그는 수장이며 큰 어른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보냈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 막내라니.
‘젠장, 눈앞이 막막하구먼.’
송윤천이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머지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사형과 사저.
하물며 저 재수 없어 보이는 실눈은 스승?
사형제까지는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이가 어리고 약한 사형이야 흔했으니까.
‘하지만 스승은 말이 다르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처럼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경우도 있다만, 저놈에게 딱히 배울 점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풍전은 이러한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갈 정도로 성정이 약하지 않았다.
“장주, 하나 궁금한 것이 있소만.”
“뭔가?”
“스승이 될 사내가 나보다 강하지도 않으며 배울 게 딱히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도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오?”
더없이 도발적인 발언에 이제는 모두의 시선이 월에게 향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