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최근 몇 년, 유독 날이 추웠다.
여름은 십수 년 전과 비교하면 짧게 지나갔고, 겨울은 빨리 찾아왔으며 한참 이어졌으니 말이다.
세간에는 춘하추동(春夏秋冬)에서 하동(夏冬)만 남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도 마찬가지로 일찍 겨울이 찾아왔고,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증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눈인가.”
가장 먼저 일어난 송윤천이 마당으로 나왔다.
손바닥을 위로 펼쳐 보이자 눈송이가 떨어져 내렸다.
한참을 그렇게 눈을 맞으며 서 있는데 풍전이 문을 열고 나섰다.
“빌어먹을, 어쩐지 밤새 좀 춥다고 생각했는데 눈이 오는구먼.”
“눈 하고 원수라도 졌나?”
“거지 치고 겨울 좋아하는 놈이 있겠소? 여름이야 더우면 그늘로 들어가고 비가 쏟아지면 높은 곳으로 피신하면 되는데 겨울에는 어딜 가나 얼어 뒤지니까 그렇지.”
“너도 그랬나?”
“왜 아니겠소. 아주 어릴 때도 몇 번이나 동상 걸려서 개고생하고, 정마대전 당시에도 열댓 놈이랑 추격전 벌이다가 눈보라에 갇혀서 죽을 뻔하고…….”
풍전은 눈과 관련된 여러 경험담을 늘어놓았는데 하나같이 좋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제법 오래 살았다면서 낭만이라고는 없는 모양이야.”
“낭만 찾던 놈들은 이미 다 뒤졌을 거요.”
“그런데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송윤천은 계속 말을 이어가는 풍전을 보고서 자신에게 할 말이 있음을 눈치채고는 미리 물었다.
“으음, 내가 친우와 선약이 있었는데 여기로 오면서 지키지 못했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무림맹에 가봐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소?”
“그 나이에 친우도 있나? 낭만 찾던 놈들은 다 뒤졌다면서?”
“무림맹주 놈이 내 친우요. 그놈도 혼인 한 번 못했으니 낭만하고는 거리가 멀지.”
“마음대로 해라. 뭐 문제라도 있나?”
“그것이 말이오. 혹여라도 장원이나 장주가 노출될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괜찮겠소?”
“왜지?”
“맹주 그놈이 호승심이 대단한 놈이오. 한참 어린 시절부터 막역하게 지낸 사이라서 잘 아오. 내가 좀 달라진 걸 보면 득달같이 달려들 것 같아서 미리 밝히는 거요.”
“그 정도는 상관없다. 너무 시끄럽거나 귀찮은 일만 없으면 된다.”
맹주 한 명이 알고 관여하는 정도는 흔쾌히 넘어가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말이었다.
무림맹과 깊게 연관된다거나 하면 분명히 일이 생길 테니까.
“명심하겠소. 그럼 다녀오겠소.”
어렵지 않게 송윤천의 허락을 받아낸 풍전은 곧장 장원을 나서려 했다.
“멈춰라.”
“음? 왜 그러시오?”
“어차피 나가는 길이니 겸사겸사 철가방을 가져가라. 눈도 오니 아침은 달콤한 호박죽에 시원한 동치미로 해결하지.”
“……. 알겠소.”
풍전은 어느새 자신과 한 몸이 되다시피 한 철가방을 들고서 무림맹으로 향했다.
물론, 이전과 같이 쉽게 들어갈 수는 없었다.
* * *
“어허이, 노인장, 거기 멈추시오.”
무림맹 정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추운 날씨에 입김을 불면서 다가와 말했다.
“설마 나 말인가?”
“그럼 내가 허공에 대고 말했을까. 아무리 배달이 급하셔도 신고는 하고 들어가셔야지.”
“신고……?”
풍전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과거 무림맹을 집처럼 드나들던 시절에도 누군가 자신을 막아선 적이 없었다.
자신이 무림맹에 소속되지는 않았지만, 구성(九星)이라는 명성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어느 객잔에서 오셨소? 어디 새로 영업하는 객잔이라도 있나?”
“풍전이다.”
“풍전객잔? 내가 그래도 무림맹에서 십 년을 일했는데 그런 객잔은 금시초문이오만……. 배달은 어디로 가시오?”
“풍전객잔이 아니라 내가 풍전이다.”
“노인장 이름이 풍전 대협과 같구먼. 그래서 당최 어느 객잔에서 오셨소? 빨리 말씀하시오, 뒤로 줄이 길어지고 있소.”
풍전은 구구절절 사연을 읊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문지기를 상대로 무작정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문지기는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고, 그는 당장 자신을 증명할 게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대놓고 무력시위를 하기에는 좀 민망한데…….’
풍전 뒤로 새벽부터 무림맹에 출입하려는 이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심지어 자신과 비슷한 행색으로 한 손에는 철가방을 들고 있는 이들도 열댓 명이 넘었다.
“무림맹주와 선약이 있다.”
“쉿! 그분이 노인장 친우시오? 맹주님이라고 해야지. 나야 괜찮지만, 그러다가 혹여 누가 잘못 듣기라도 한다면 큰일 나시오.”
“하아……. 잘 보시게.”
대화를 나눌수록 두통이 생겼다.
풍전이 어쩔 수 없이 뇌기라도 선보이며 자신을 증명해야겠다고 결정하고, 시도하기 직전.
하늘에서 얇디얇은 구명줄이 내려왔다.
“어라? 선배님?”
시의적절하게 한성객잔에서 풍전과 우연히 만났던 와룡당의 맹원 하나가 문지기 옆에서 머리를 들이미는 게 아닌가.
“오 형 아는 분이시오?”
마침 그는 문지기와도 친분이 있어 보였다.
“아이고, 이 사람아. 무림맹의 얼굴이라는 사람이 이분을 모르면 쓰나? 이분이 바로 풍전 대협이시네.”
“……!”
그 말과 함께 입장이 지연되어 뒤에서 불만이 한가득하던 인원들까지 소리를 죽였다.
당연하게도 얼마 안 가 문지기의 사과와 함께 바로 문이 열렸다.
“대협, 저 친구도 나쁜 마음에서 그런 건 아닐 테니 너그러이 이해하시지요. 그런데 어디로 가십니까?”
“맹주에게 간다. 가는 길은 익히 알고 있으니 너는 갈 길 가거라. 도와줘서 고마웠다.”
“예, 그러면 다음에 뵙겠습니다.”
“오냐.”
잠시 소동이 있었지만, 어찌어찌 무림맹에 들어온 풍전은 곧장 맹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로 이동했다.
‘확실히 못 알아보는구먼.’
맹 내부에는 당연히 개방 소속으로 보이는 이들이 제법 보였다.
그런데 그중에서 나름대로 친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녀석 몇몇도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나마 한 놈이 맞은편에서 자신을 지나치고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냥 지나가 버렸다.
‘나쁘진 않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풍전의 색다른 모습을 몰라본 건 아니었다.
“석동아. 형님 오셨다.”
풍전이 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거구의 근육질에게 다가가며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댔다.
“나보다 형님이면 이미 세상 하직했을 텐데? 어떤 놈이 감히 본 맹주의 존함을……, 어? 거지 너 정말 늘그막에 살림이라도 차렸냐?”
“너도 참 헛소리는 여전하구나. 누가 차에 환각제라도 탔더냐?”
오랜만에 마주하는 친우였지만, 무림맹주는 단번에 알아봤다.
주름이 많이 늘었지만, 아주 옛날에 무공보다 외모로 무림에 그 명성을 떨치던 풍전이었으니.
“그런데 거지야 너…….”
“왜 그래? 여전히 너무 잘생겨서 말이 안 나오나?”
무림맹주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 손에 들고 있는 철가방은 뭐냐? 금분세수(金盆洗手)하고 점소이로 취직이라도 했어?”
“크흠, 그게 말이다. 사실은…….”
“아니, 잠깐. 네 놈 그러고 보니 예전에 봤을 때보다 좀 강해진 것 같은데? 어디서 벼락이라도 몇 방 더 처맞고 왔어? 응? 어디야? 어디냐고! 빨리 불어 나도 가서 맞아 보게!”
무림맹주가 풍전의 멱살을 잡고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질러댔다.
“진정하고 앉아봐. 내가 다 말해줄 테니. 그런데 여기 술은 없나? 목이 좀 마른데.”
“내 당장 내올 테니까 어디 도망갈 생각은 하지도 마라.”
쿠웅-!
무림맹주는 하늘로 솟아오를 듯 뛰어나가 금방 술 두 짝을 가져왔다.
“됐지? 어서 불어라. 어서. 혹시라도 헛소리를 지껄이면 무림 공적으로 만들어주지.”
“캬아-, 술맛이 기가 막히네. 그러니까 내가…….”
풍전은 흥분한 무림맹주를 진정시키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해괴한 기연을 천천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사연을 얌전히 앉아 경청한 이후, 무림맹주는 마지막으로 막역한 친구의 정신이 온전한지를 확인해보려 했다.
“친구야.”
“왜 또 그러나?”
“혹시 치매는 아니지?”
“석동이 너 정마대전 때 나랑 같이 천라지망에서 탈출하다가 바지에 똥 지렸던……, 읍읍!”
혹여 숨겨둔 흑역사를 누가 들을까 싶어 마석동이 솥뚜껑같이 크고 두꺼운 손바닥으로 풍전의 입을 막아버렸다.
“멀쩡한 거 알겠으니까 제발 그 입 좀 닥쳐라.”
풍전의 입에 술병을 쑤셔 넣은 맹주가 자신도 답답한지 술을 물 마시듯 꿀꺽꿀꺽 넘긴다.
그만큼 풍전이 언급한 내용은 맨정신으로 듣기 힘들었다.
“어이가 없네. 너보다 한참 강한 녀석이 무림맹 앞마당에 있었다고?”
“그 녀석이 아니라 장원의 주인이고 따지자면 앞마당은 아니라 조금 거리가 있네.”
“거지야, 시끄럽고. 먼저 나랑 여기서 한 판 붙어보자. 내가 직접 부딪쳐서 확인해봐야겠다.”
“지금 말인가?”
“그래, 대체 어떻게 해서 얼마나 강해졌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야.”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하군.”
“왜 그러지? 더 숨길 거라도 있나?”
“더 지체되면 식사 시간에 늦거든. 다른 이들은 몰라도 우리 사저와 사형은 굶으면 안 돼. 아직 한창 자랄 때거든.”
풍전이 옆자리에 놓아둔 철가방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거지야 설마 네가 식사 당번 뭐 이런 거냐? 장난이지……?”
“장난이면 내가 철가방을 들고 왔겠나? 아무튼, 나는 이만 가도록 하지. 다음에 또 올 테니까 그때 기회가 되면 오랜만에 한 판 붙어보자고. 흐흐, 네놈 근육 두들길 생각하니 벌써 웃음이 나오네.”
“잠깐, 그러면 나도 같이 가도록 하지.”
“뭐?”
“왜, 그러면 안 되나? 아, 말이 세어 나갈까 봐 그러나? 그건 걱정하지 마라. 다른 녀석들한테는 절대 알리지 않을 테니. 내 사부님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흐음…….”
풍전이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만…….’
그래도 자신의 친우가 거칠어 보여도 경우가 아예 없는 녀석은 아니었다.
‘장주도 너무 널리 퍼지지만 않게 하라고 했으니 이놈 하나쯤은 괜찮겠지. 만약 장주가 거부한다면 그때 문 앞에서 돌려보내면 되는 일이고.’
“좋아, 가자. 여유가 많지는 않으니 서두르자고.”
결국, 풍전은 고민 끝에 무림맹주와 동행하여 한성객잔으로 가서 호박죽과 동치미를 챙기고 장원에 도달했다.
풍전보다 조금 느릴 뿐, 맹주 역시 경신법에 자신이 있었기에 다행히도 호박죽은 여전히 뜨거웠다.
“장주님, 거지 녀석이 무슨 거대한 덩어리 하나를 달고 왔는데요?”
월이 멀리서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는 무림맹주를 발견하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어쩔까요? 내쫓을까요?”
“아니다. 풍전이 나갈 때부터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으니 들여도 좋다.”
“예, 그러시다면야. 막내야! 어서 들어와서 상부터 차려라!”
송윤천의 허락이 떨어지자 월이 멀리서도 들리도록 크게 외쳐서 풍전을 재촉했다.
“풍전이 막내라니, 세상이 정말 미쳐 돌아가려나.”
무림맹주는 월의 외침을 듣고도 믿을 수 없는지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지. 참고로 실눈 뜬 사내가 월 사부, 차갑게 생긴 사내가 송윤천 장주다.”
“걱정 마라. 절대 사고 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 제발 네 두 발로 멀쩡히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라.”
풍전은 여러 번 친우에게 확인을 받고서야 같이 장원으로 들어섰다.
풍전의 뒤를 따라 대문에 닿지 않도록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들어선 무림맹주는 친우가 미친 것도 아니고 허언증에 걸린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
송윤천으로부터 전해지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순식간에 그를 덮쳐왔다.
그가 경험했던 이 중, 이정도의 위압감을 가진 존재는 오직 단 하나.
현재 영웅이라 불리는 구성(九星) 전원과 전대(前代)와 전전대(前前代)의 절대 고수 수십여 명이 합공하여 간신히 상대했던 마중마(魔中魔).
천마(天魔)뿐이었다.
그리고 천마와 비등한 위압감을 자랑하는 송윤천이 드디어 입을 열더니…….
“호박죽이랑 동치미는?”
“당연히 잘 가져왔소.”
“상부터 차려라. 날이 추워서 그런지 배가 출출하군.”
호박죽부터 찾았다.
그 말에 풍전이 숙련된 점소이와 같은 자세로 순식간에 철가방을 열고 호박죽과 동치미를 꺼내 가지런히 차려 놓았다.
그 사이 송윤천은 새로 온 손님, 무림맹주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침은 먹었나?”
“아직.”
“잘됐군. 눈도 오는데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넉넉하게 가져온 듯하니 같이 들지.”
무림맹주는 졸지에 무림과는 다른 의미의 진정한 식객(食客)이 되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