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위기는 곧 기회다.
과거, 정마대전이라는 대위기는 많은 희생을 낳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희생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세인들이 평가하기를 현 정파 무림이야말로 역대를 통틀어 정점에 올랐다고 하였다.
다른 시대였다면 능히 천하제일인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절대 고수가 무려 아홉 명이나 등장했으니 말이다.
남궁세가의 창천(蒼天) 남궁겸
하북팽가의 맹호(猛虎) 팽무석
사천당가의 신의(神醫) 당유신
신창양가의 유수(流水) 양준혁
무당파의 태극(太極) 청운
화산파의 매화(梅花) 진현
소림사의 금강(金剛) 명원
개방의 풍전(風電)
마지막으로 일인 전승의 신비 문파 출신의 참월(斬月) 마석동까지.
천하는 높은 하늘 위에서 별처럼 빛나는 영웅들에게 존경심을 담아 구성(九星)이라 부르곤 했다.
그리고 나머지 여덟 명은 다시 자신의 가문과 문파로 돌아갈 때, 남은 참월은 만장일치로 선출되어 무림맹주가 되었다.
사실 당사자는 명예나 직위를 탐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함께 전장을 누볐던 선후배들의 간절한 부탁을 빙자한 협박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풍전이었다.
“석동아, 아무래도 네가 맹주 해야겠다. 나도 그렇고 다른 놈들도 그렇고 돌아가야 되잖냐.”
“아니, 진짜 싫다니까. 귀찮으니까 대충 아무나 세워. 어차피 당분간은 큰일도 없을 텐데.”
“크흠, 저번에 우리 다 같이 천산에서 철수할 때 있잖아. 신의 녀석이 야관문(夜關門)을 발견했는데 이게 얼추 이백 년은 묵었다네.”
“이백 년……?”
깊은 산골에서 이백 년을 묵으면 더덕이나 칡도 영초가 되거나 못해도 명약 수준은 될 터였다.
“그래. 그거 차기 무림 맹주한테 선물로 준다는 말도 했거든. 아직은 우리만 알고 있는데. 이거 너 줄게.”
“정말이냐?”
“그래, 이게 남자한테 참 좋은데 말도 못 하고……. 그리고 또 혹시 모르잖냐. 요즘 이백 년 정도 되는 영초가 어디 흔해? 언제까지 구성(九星)이라고 불릴 거야? 혹시 알아? 석동이 네가 그거 먹고 잘 풀리면 일신(一神) 팔성(八星)이 될지.”
천하제일 거지의 입담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스승님의 유지(遺志)가 천하제일이지 않았는가.
역시 참월보다는 무신(武神)이 끌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공이 조금 늘어났을 뿐.
이후로도 벽을 깨는 일은 없었고, 참월은 역대를 통틀어서 가장 긴 재위 기간을 자랑하는 무림 맹주로서 칭송받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속았다는 마음에 괘씸한 나머지 금방 관두려 했지만, 알고 보니 맹주도 조금 귀찮을 뿐이지 딱히 나쁜 자리는 아니었다.
특히 품위 유지라는 이름으로 외공 수련에 도움이 되는 값비싼 약초와 영약 지원이 컸다.
또한, 가끔 행사에 참석만 하면 되니 누리는 권리보다 의무가 적은 것도 마음에 들었고.
결과적으로 홀로 심산유곡에 처박혀 수련하는 것보다 무림맹의 지원을 받는 것이 실력향상에 훨씬 유리했다.
‘문제는 그런 노력과 정성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거지.’
물론 그는 지난 수십 년이 허사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인을 상대하며 상했던 심신을 치유하기도 했으며 작게나마 발전을 이루기는 했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나 혼자 앞서간 게 아니었다는 거지…….’
굳이 풍전을 무림맹으로 초대한 이유는 그간 자신의 성과를 증명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충격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자칫하다가는 심마가 찾아올 지경이다.
‘풍전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피땀 흘려 쌓아온 지난 세월보다 이 장원에서 보냈다는 며칠이 더 뛰어났다는 것이니.’
그렇다고 자신의 성정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백 번 듣는 것보다는 한 번 겪는 게 맞았다.
타악-
무림 맹주 마석동이 호박죽을 싹싹 긁어먹고는 시선을 송윤천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
“이보게, 이만하면 배도 적당히 채웠으니 나와 가볍게 한 판 붙어보겠나?”
“지금 바로 말인가?”
“왜? 인제 와서 겁이라도 먹었나?”
“하……, 내 저럴 줄 알았다.”
맹주의 대범한 도발에 풍전은 저 무식한 놈이 저럴 줄 알았다는 듯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큭, 친구끼리 닮는다더니 거지 녀석이 비슷한 놈을 데려왔네.”
월은 저놈도 흠씬 맞겠다 싶어서 비웃음을 자아냈다.
“헉…….”
곽범은 말로만 듣던 무림 맹주의 위엄에 호박죽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우와-. 누나, 진짜 큰 할아버지다.”
“헌아, 너도 잘 먹고 잘 자면 금방 저만큼 클 수 있어.”
“저 할아버지는 너무 큰 것 같은데?”
남궁연과 남궁헌은 생전 처음 보는 거인의 등장이 신기했는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아무래도 풍전 녀석이 치매라도 걸린 듯하군. 내가 잘못 찾아온 모양이야.”
기세를 탄 마석동의 일방적인 도발이 이어졌다.
“기다려라. 식후에는 연초 한 대부터 피워야 하니까. 그다음에 시작하지.”
“하……!”
고작 식후 연초 따위에 미뤄진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마석동의 널찍한 이마에 굵은 혈관이 다발로 튀어나왔다.
신체의 떨림이 사방으로 전달되는 듯한 분위기.
하지만 송윤천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후련한 표정으로 연초를 피워댔다.
‘그냥 붙기만 하는 건 나에게나 애들한테나 별 도움이 안 될 터인데. 어찌할까. 아, 그게 괜찮겠군.’
송윤천은 잠시 고민하다가 괜찮은 생각이 떠올라 끝만 남은 연초를 비벼 껐다.
그리고는 마당 중앙 즈음에 지름이 한 장 정도 되는 원을 그리며 말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내가 이 원 밖으로 나가면 패배다.”
마치 한참 모자란 하수를 상대하는 식.
“괜찮겠나? 많이 다칠 수도 있는데.”
“그럴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군.”
“……. 그렇다면 손님 된 처지에서 마땅히 받아들이도록 하지.”
마석동은 저놈이 확신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살펴보려 했다.
“장주님, 저희는 알아서 관전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월이 간만에 사부로서 든든히 나섰다.
“자, 꼬마들이랑 약골은 내 뒤로 와라. 거지 너는 알아서 하고.”
“사부 혼자 괜찮겠소? 필요하면 내가 좀 도와주겠소.”
“됐다 거지야. 이 정도쯤이야 누워서 식은 죽 먹기지. 노구(老軀)나 탈 나지 않게 조심해라.”
“끄응-.”
참월(斬月), 참으로 오만하고 마음에 썩 들지 않는 별호였지만, 전해지기로 그 실력만큼은 인정해야만 했다.
‘물론 그래봤자 장주님에게는 발끝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월이 짐작하기로 결과는 뻔했지만,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즐거울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딜 가나 비슷한 놈이 있구나.’
저 거대한 근육 덩어리를 보니 문득 과거 송윤천과 함께 떠난 서역 여행이 떠올랐다.
신기한 것이 서역에서는 무인이 아니라 기사(騎士)라 하는데 두꺼운 철갑으로 전신을 가리고 두껍고 거대한 장검이나 장창을 주로 사용한다.
‘그놈이 제 입으로 서역제일검 사자왕이라 하였나?’
물론 서역제일검이니 사자왕이니 하는 건 송윤천 앞에서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나마 한 지역의 패자(霸者)였으니 하루를 꼬박 버티고 버티다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는데, 과연 저 덩어리는 얼마나 버틸지 궁금하기도 했다.
“다들 잘 지켜봐라. 여러모로 재밌을 테니까.”
기대를 담은 시선이 송윤천에게 집중되었다.
우웅-
무림맹주의 전신이 철색(鐵色)으로 물들어갔다.
적에게는 끝을 모르는 공포를, 아군에게는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가져다주었던 철인(鐵人)의 등장.
그 앞에서도 송윤천은 그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마석동은 그 자세가 마음에 들었고, 이 장난과도 같은 행위에 진심을 더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하고 굳센 것을 이겨낸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제대로 실천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부드러운 것보다는 더 강해지는 게 훨씬 빠르고 쉽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말을 쫓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송윤천도 과거 이 말을 체득하기 위해 백 년을 넘게 부딪쳐야만 했다.
‘제대로 된 스승이 가르쳐 주었다면 달랐을 테지.’
자신의 제자들은 자신처럼 멀리 돌아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이 스승으로서 그 사실을 알려주려 했다.
“집중해라-!”
송윤천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지 않음을 눈치챈 마석동이 고함을 질렀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자이든 약자이든 간에 승부에 집중하는 것이 무인으로서의 기본이자 예의.
또한, 집중하지 않았다는 변명 따위로 승부의 결과가 더럽혀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쐐애애-
과장 조금 보태어 송윤천의 머리통보다 거대해 보이는 주먹이 정면에서 하복부를 노리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듯이 쇄도했다.
‘바로 달려오시겠다?’
원에서 벗어나는 순간 송윤천의 패배이니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방어와 회피에 나서야만 했다.
쿠우웅!
콰아-
송윤천이 오른쪽 무릎을 들어서 주먹을 그대로 받아쳤다.
힘과 힘의 대결에도 조금도 밀려남이 없었다.
투두둑-
그 순간, 마석동의 팔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굵은 혈관이 마치 뱀처럼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타고난 괴력에 내공과 외공이 더해졌고, 모든 힘이 송윤천의 무릎과 맞닿아 있는 주먹에 함축되었다.
‘단번에 날려 보내주마.’
애초에 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의 비무를 시작한 것을 후회하게 해줄 작정이었다.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다면 그다음에는 제대로 붙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여기서 자신의 주먹을 막아내고 있는 무릎을 뒤로 뺀다면?
자신도 앞으로 달려들면서 가슴이나 턱을 날려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송윤천은 이런 마석동의 의도를 완전히 꿰뚫고 있었고, 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
힘이 폭발적으로 집중되는 찰나의 순간.
송윤천이 남은 한쪽 다리로 여전히 중심을 잡으며 무릎에 맞닿아 있는 주먹을 위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상체를 뒤로 구부리면서 완전히 뒤로 넘겨버렸다.
“어-?”
쿠우웅!
마석동은 예상치 못했던 대처에 당황하면서 크게 반원을 그리며 둥실 떠올랐다가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자신이 발휘한 힘에 자신이 당한 꼴.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섞여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석동은 얼빠진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그대로 일어나 뒤로 회전했다.
그 사이, 송윤천은 이미 원의 중심으로 되돌아간 상황.
상대로부터 어떤 공격이 닥치든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듯 굳이 먼저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여유 있게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 마주 보는 이에게는 심히 건방지게 다가왔다.
흐으읍-
각오를 다진 마석동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겉으로 보기에도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오른 모습.
휘잉-
마석동이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바짝 숙인 자세 그대로 송윤천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대부분 무인은 자신만의 거리를 두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다.
마석동은 이 ‘거리’를 파훼할 생각이었다.
또한, 그 이후로 상대가 사지를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딱 달라붙으면 그대로 끝이나 다름이 없었다.
분명히 그랬어야만 하는데…….
쿠우우웅-!
낮은 자세로 접근하는 마석동보다 더 낮은 자세로 접근한 송윤천의 얼굴이 보이며 의식이 끊겼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