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34
34화
평상시 무림맹주의 일과는 크게 둘로 나뉜다.
먼저 외부에서는 무림맹과 연관된 온갖 행사에 친히 참석하여 얼굴을 비춘다.
때에 따라 필요하다면 앞에 나서서 각종 연설이나 덕담 등을 읊기도 한다.
그것마저도 귀찮고 시간이 아까워서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마치고 복귀하는 마당이다.
내부에서도 딱히 큰일은 없다.
어차피 이 거대한 무림맹에서 맹주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일 뿐.
무언가 업무상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나마 중요하면서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격일로 진행되는 회의에 참석하여 각종 보고를 듣고 결정을 내리는 정도였다.
이른 아침, 무림맹주 마석동의 집무실에 중년의 사내 넷이 차례로 들어왔다.
이들은 맹의 기둥과도 같은 각 당의 당주들이었다.
“시작해라.”
“내강당 보고드립니다. 저희 쪽에서는 자잘한 분쟁 이외에는 특이사항 없습니다.”
“외유당 보고드리겠습니다. 북쪽은 혹한이 찾아와 궁에서 나오지 않고, 서쪽은 늘 그렇듯 마적질 중이며 동쪽은 바다 건너라 아직 소식이 닿지 않았습니다. 남쪽 역시 숲 외부에 이상 없습니다.”
내강당은 주로 무림맹에 소속된 정파를 아우르며 외유당은 중원을 벗어난 잠재적인 적대세력, 새외무림을 아우른다.
그러니 이 두 당에서 이렇다 할 특이사항이 없다는 건 무림맹 입장에서 큰 호재였다.
“다행이구먼. 다음.”
“승천당은 조만간 다음 기수를 대상으로 입당 시험이 있을 예정입니다. 매번 그러셨듯이 시상식에는 반드시 참여해주셔야 합니다.”
“벌써? 시간 참 더럽게 빨리 가는구먼. 까먹지 말고 미리 일정만 잡아라. 다음.”
“와룡당 보고입니다. 철혈성 부근에서 미동(微動)이 보여 현재 자세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 그놈들이? 뭔데?”
마석동이 첫 보고부터 놀라서 물었다.
이합집산(離合集散) 현상이 원활하게 일어나는 사파의 특성상 무림맹보다는 그 세가 적으나 철혈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래 봬도 사파 최대 세력이었으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철혈성주가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왔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 자식이 아직도 살아 있었나?”
“예, 지금까지 죽었다는 소문도 은근히 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이번에 나오자마자 수작 부리던 장로 하나가 목이 날아갔다는 말도 나오고요.”
“허……, 폐관 수련 후에 멀쩡하게 제 발로 살아나왔으면 골치 아픈데.”
폐관 수련이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대충 절반은 나오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
누구는 깨달음이 오기 전에 수명이 다해서, 누구는 주화입마가 와서 쓸쓸하고 비참하게 숨을 거둔다.
특히 무공의 특성상 정파보다 사파나 마교 쪽에서 더욱 그러한 경향이 컸다.
다만, 이런 고초를 견뎌내며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왔다는 것은 곧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는 뜻과 같다.
그러니 무림맹으로서는 철혈성의 호재를 경계해야만 했다.
“물론 철혈성 내부에서 퍼진 헛소문일 수도 있지요. 잠입시킨 첩자를 통해서 확실하게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나도 헛소문이면 좋겠어. 골치 아픈 녀석이 조용해서 참 좋았는데……. 그리고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다 알려질 테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무림을 떠나 어느 세력이든 상대쪽으로 첩자를 잠입시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만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자금이 막대하게 소모되니 첩자의 존재가 밝혀지는 일은 자제해야만 했다.
첩자가 발각되면 경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또 다른 첩자를 침투시키기에 어려움을 겪을 테니 말이다.
“더 있나?”
“와룡당은 이상입니다.”
“좋아, 오늘도 다들 고생해라.”
“맹주님 또 어디 나가십니까? 요즘 외출이 잦으십니다. 하루가 멀다고 아침에 나가셔서 늦은 밤이 돼서야 돌아오시던데요.”
마석동을 어려워하는 다른 당주들과 다르게 나름 편한 태도를 유지하는 와룡당주가 그의 근황을 캐물어 왔다.
“거지 녀석이랑 수련하러 간다.”
마석동은 굳이 송윤천과 장원의 존재를 밝히지 않았다.
그쪽에서 그러기를 원하기도 했고 풍전을 파는 게 부담이 없었다.
수준이 현격히 다르지만, 저들도 홀로 수련하는 것과 동수와 함께 수련하는 것의 차이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 풍전 대협과 협동 수련이시군요.”
“구성(九星)의 두 분이 함께하시면 더 할 말이 없지요.”
마석동의 예상대로 여기서 다른 의문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사실, 그들이 의문을 표한다 해도 맹주의 발걸음을 막을 힘이 없기는 했다.
“그럼 나는 가보마. 아, 말했던 건 준비됐나?”
“예, 여깄습니다.”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수행원이 그의 외침에 냉큼 나타났다.
마석동은 그 짧은 사이에도 몸이 근질근질했는지 회의를 끝내자마자 가장 먼저 집무실을 나섰다.
물론 빈손은 아니었다.
* * *
쿠웅-!
장원에 도착한 마석동이 바로 양손 한가득 들고 있던 두 보자기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무시할 수 없는 소음과 향긋한 내음에 식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오오- 이거 설마 그거냐?”
코를 킁킁거리면서 다가온 풍전이 보자기를 풀어대며 물었다.
보자기를 풀자 기름먹은 종이로 하나씩 정성스럽게 포장된 만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림맹 특제 고기 왕만두입니다! 사저, 사형들 어서 하나씩 드십시오.”
풍전은 막내랍시고 제 사형제부터 챙기고 봤다.
“사제, 고마워.”
“잘 먹을게.”
“고맙다. 아니 고맙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남궁연, 남궁헌, 곽범의 손 위에 사람 머리통만큼 거대한 만두가 하나씩 올라갔다.
“어허, 거지야, 이 사부부터 챙겨야지.”
“끄응, 여깄소. 사부도 많이 드시오.”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월이 구시렁거리자 풍전이 마지못해 투덜거리며 만두를 가져다 바쳤다.
“꼬마들아, 어떠냐? 맛있지?”
“네. 진짜 진짜 맛있어요.”
“많이 먹어라. 다음에 또 잔뜩 가져다주마.”
마석동은 남궁연과 남궁헌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왕만두를 마구 해치우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루가 멀다고 새벽부터 장원을 찾아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생활이 어언 한 달.
자주 보다 보니 풍전뿐만 아니라 아이들과도 나름 친해지고 정도 들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늦게 만두를 손에 들었던 월이 우물거리는 동시에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으음…….”
“왜 그러나?”
마석동이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하여 물었다.
뭔가 입맛이 까다로운 작자인가?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지난 한 달 동안 저 작자가 무언가 음식을 가리는 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석동의 물음에도 답을 내놓지 않고 만두 하나를 해치운 월이 알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외쳤다.
“이거 맛이 꼭 황궁에서 먹어본 것 같은데?”
“엥? 어떻게 알았나? 내 전용 숙수가 만든 것인데 그 사람이 황궁 출신이거든.”
“그렇지? 역시. 어디서 많이 먹어본 맛이었거든.”
“혹시 황궁 출신인가?”
마석동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자신이 경험한 황궁 출신은 재수가 없고 콧대가 높을지언정 이렇게 천박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뭐, 옛날에 잠시 있었지. 야식으로는 또 만두만 한 게 몇 없어서 자주 먹었고.”
월이 마치 오래된 기억을 더듬듯 가뜩이나 작은 실눈을 더 작게 찌푸리며 답했다.
보기에는 허장성세(虛張聲勢)처럼 보였지만, 누구도 이 점을 지적하고 들지 않았다.
남매는 여기서 유일하게 송윤천과 월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그 둘의 말이라면 그게 혹여 맹물로 고기만두를 빚는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곽범은 허튼소리 말라며 욕먹을까 싶어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서로 시선을 마주친 마석동과 풍전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
월이 틈만 나면 떠벌리는 ‘나 때는~’에 이제는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뭐, 아무튼 자네 미각이 어느 객잔 숙수 뺨치게 예리하군. 창잡이 녀석도 몇 년 전에 와서 감탄하고 갔어. 그놈도 똑같은 말을 했지. 황궁 맛이 그대로라고.”
“엥? 창잡이 그놈이 무림맹에는 무슨 일로?”
마석동과 풍전이 창잡이라고 부를 이는 당연히 구성(九星)의 일인, 유수(流水) 양준혁이었다.
신창양가의 사람으로서 현 무림에서 정, 사, 마, 새외무림을 통틀어 유일하게 창으로 정점에 오른 고수였다.
다만 신창양가는 황궁과 무림에 각각 한 발씩 걸쳐놓은 모양새인지라 보기가 유독 힘들었다.
풍전 역시 마지막으로 그를 봤던 게 삼십 년은 훌쩍 넘은 터였기에 물어온 것이다.
“비밀이다. 요놈아.”
풍전이 대뜸 대화에 끼어들었지만, 마석동은 답을 주지 않았다.
풍전이 입이 그리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만, 여럿이 듣고 있는 가운데에서 말하기에는 다소 민감한 사항이었다.
“됐다, 이놈아. 하나도 안 궁금해.”
풍전은 괜히 민망하여 만두를 한입 가득 씹어 삼켰다.
그로 인해 대화가 잠시 중단된 가운데, 다들 왕만두를 하나씩 손에 들고서 음미하는 와중, 마지막으로 송윤천이 등장했다.
“장주님, 이거 드세요. 맹주님이 가져오신 건데 맛있어요.”
“잘 먹으마.”
이에 남궁연이 제가 들고 있던 만두를 내려놓고는 보자기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만두 하나를 송윤천에게 가져다주었다.
이를 들은 마석동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송윤천에게 집중되었다.
사실 이렇게 음식을 챙겨오는 가장 큰 이유가 송윤천과의 대련을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금전적인 보상을 하려 했으나 이를 단칼에 거부하고 요깃거리나 가져오라 했지. 나중에 얼마나 민망했는지. 원…….’
알고 보니 그 이유가 참 어이가 없었다.
‘물욕(物慾)에 통달하여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게 아니라 마르지 않는 전낭을 가졌기 때문이었다니.’
원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얼마든 샀다.
그것도 중원 전역에서 통용되는 금와전장의 전표였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송윤천이 보인 반응 역시 예상 밖이었다.
“이거, 어디서 먹어본 맛인데. 혹시 황궁에서 가져왔나?”
“역시. 그렇죠? 저도 단박에 맞췄거든요.”
월이 자신만 알아챈 게 아니라는 사실이 기쁜지 마구 웃어댔다.
“어떻게 장주 입맛에는 맞으시오?”
“괜찮군. 간이 조금 싱거운 것 같기는 하다만.”
“그, 그렇소?”
마석동은 문득 송윤천과 월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황궁에 이런 수준의 고수가 있었나?’
생각해봤지만, 아니었다.
만약 송윤천이라는 존재가 무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황제의 손바닥 안에 있었더라면 지금 같이 무림이 평화롭지는 않았을 테니까.
“괜찮다면 다음 기회에 무림맹에 초대해도 되겠소? 숙수가 손맛이 좋으니 한 번 제대로 대접하고 싶은데.”
마석동이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송윤천에게 제안했다.
맹에서 이 제안을 들었다면 놀랐을 것이다.
마석동이 맹주가 된 이후, 같은 구성(九星)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대접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맹? 흐음…….”
송윤천은 여기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월은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듯 여전히 만두를 삼켜댔지만, 다른 이들은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남궁헌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고, 송윤천은 차마 어린 제자의 소망을 짓밟을 수 없었다.
“이틀 후에 저녁 어떤가? 다 함께 찾아가도록 하지.”
“나야 언제든지 좋소.”
“쿨럭-. 켁, 켁.”
관심 없는 척하면서 이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었던 곽범이 놀랐는지 만두를 삼키다 말고 기침을 토해냈다.
‘이 자리도 긴장되어 죽겠는데 무림맹주가 직접 초대한 자리에서 식사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사실 지금도 가끔 마석동과 시선이 마주칠 때면 괜한 긴장감으로 심장이 쫄깃해지는 마당이다.
저 드높으신 맹주님께서 자신과 같은 삼류 흑도 출신을 알아볼 리는 없는데도 말이다.
“갑자기 왜 그래? 너무 좋아서 그러는 거야?”
“그, 그럼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어린 사형을 앞에 두고 아니란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이틀 후, 삼류 흑도 출신 곽범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무림맹의 심처(深處), 무림맹주의 집무실에 입장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곽범은 이 기행이 어서 끝나기를 바랐다.
그리고 누군가 평범함이라는 행복을 만끽하는 사이.
당연하게도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