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38
38화
혈화백에 시마까지.
사도(邪道)와 마도(魔道)의 거물들이 차례로 움직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단지 며칠에 걸쳐 사람들의 입에 유일한 희생자인 청수문이 오르내렸을 뿐.
그마저도 청수문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형산 부근에서나 그랬지, 다른 지역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게 전부였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비극은 그저 소소한 이야깃거리에 불과했기에.
무림맹 역시 마찬가지.
과장 좀 보태어 매일 나타나고 사라지는 게 중소 문파의 숙명이다.
단지 이번에는 거기에 혈화백이라는 거물이 연관되었기에 유독 경계했을 뿐.
무림맹 역시 며칠이 지나자 평소와 같이 돌아왔고, 한동안 외출을 삼가던 마석동이 오랜만에 장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석동이 왔냐? 오랜만이네. 그놈들은?”
풍전이 가장 먼저 마석동을 맞이해주며 근황을 물어왔다.
“두 놈 다 종적을 감춰서 쫓을 수도 없다더라. 그렇다고 흔적도 없는 마당에 무조건 찾아내라고 할 수도 없고.”
요즘 저자에 유행하는 무협지를 보면 뭔 추격대니 뭐니 해서 누구라도 찾을 수 있다는데 직접 해보라고 하고 싶었다.
막말로 수십 수백 명이 몰려다니면 어렵더라도 추적할 수 있다.
그놈들이 사파든 마교든 배는 고프고 목은 마르니 어디서든 해결할 테니까.
하지만 혼자 다니는 놈들을 무슨 수로 찾겠는가?
또한, 피풍의나 죽립 따위로 인해 생김새를 제대로 못 알아볼 수도 있다.
하물며 인피면구를 착용한다면 애초에 다른 생김새이니 찾을 수도 없다.
족적을 쫓으라고? 솔직히 거의 다 비슷하고 보법이나 경신법에 숙달되면 흔적이 잘 남지도 않는다.
‘땅덩어리가 좀 넓어야지.’
막말로 바람 좀 불고 비 좀 내리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
심지어 상대가 고수면 더욱 그러하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결국, 무림맹에서도 현 상황에 대하여 한동안 경계를 늦추지 않는 수준으로 격상하는 게 최선의 대처였다.
혹자는 이런 결정을 내린 마석동을 보고 안이한 판단이라며 비난하겠지만, 막상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면 알아서 입을 닥치는 게 무림맹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보면 모르냐? 수련이지. 말 걸지 마라.”
풍전이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쭈그려 앉았다.
마석동은 풍전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애들도 아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얇은 나뭇가지 대여섯 개를 한 치 정도 간격을 두고 나란히 땅에 박아 세우는 게 아닌가.
“그게 수련이라고?”
“어허, 그냥 가만히 보라니까.”
풍전은 고개를 돌려 마석동의 질문을 가볍게 무시하고 나뭇가지와 스무 걸음 정도 거리를 벌린 뒤 마주 섰다.
“흐읍-.”
풍전이 앞으로 왼손을 쫙 펼쳤다.
그리고 검지 끝에서 한 줄기 뇌기를 천천히 뽑아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석동은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얼마나 진지한 모습으로 집중하는 모양인지 눈매는 잔뜩 찌푸려졌고 이마에서는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굵고 짧은 뇌기가 조금씩 얇고 가늘어 지고 있었다.
마석동이 보는 것처럼 풍전은 심기일전(心機一轉)의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침착하게, 서두르지 말고.’
이 수련은 송윤천이 그를 위해 고안한 것이었는데 뇌기를 자신의 의지대로 완벽하게 다루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하였다.
그래서 수련으로 큰 성과를 보았느냐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일단 시작한 게 얼마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수련 자체에 익숙해지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치지직-
손끝에서 시작된 뇌기는 어느새 스무 걸음 너머의 나뭇가지에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
‘다 됐다!’
여기서 저 나뭇가지 사이 한 치 공간을 통과하면 첫 단계는 성공이었다.
그런데 안심이 다 끝나기도 전에.
파지직-!
나뭇가지와 종이 한 장 차이의 간격을 두고 있던 뇌기에서 튕겨 나간 작은 불씨가 나뭇가지를 터트리고 말았다.
“안돼-!”
“가만히 지켜보라는 게 이거였냐?”
풍전이 안타까움에 지르는 비명을 유심히 지켜보던 마석동이 한심하다는 듯 물었다.
그 말에 악이 바친 풍전이 이를 악물고 뇌기를 줄기줄기 뿜어대더니.
파지직-
파직!
파바박!
남은 나뭇가지들도 시꺼먼 재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쯧, 늙어도 곱게 늙어야지.”
마석동은 더 볼 게 없었기에 풍전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자에는 송윤천이 늘어지게 누워 있었고 반대편 연무장에는 월과 남궁연, 남궁헌, 곽범이 모여 있었다.
‘……!’
며칠 만에 오는 신세라 인사나 나눌까 싶어 송윤천에게 다가서던 마석동이 흠칫하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누워 있는 송윤천의 머리 부근에 꽃이 하나둘 가지런히 피어나는 게 아니던가.
어이가 없어서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는데 금방 세 송이 꽃이 피어났다.
‘삼화취정(三花聚顶)?’
물론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마석동 자신도 그러하고 풍전도 그렇듯 지금의 경지에 올라서는 과정에서 다들 한 번씩은 겪었으니 말이다.
다만, 삼화취정은 깨달음의 과정에서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나 가끔 나오는 현상이다.
‘장주는 대체 저 경지에서 또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에?’
마석동은 자신이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젓고 조심스럽게 물러나려는데, 꽃이 모습을 감추고 송윤천이 먼저 말을 꺼냈다.
“맹주 왔나?”
“일이 있어 며칠 오지 못했네. 그런데 자네 괜찮나……?”
마석동은 혹여 자신이 송윤천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게 다 허사라는 듯 송윤천은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아니, 자네 지금 삼화취정에 들었지 않은가.”
“그냥 할 일이 없어서 잠시 멍을 때렸다.”
“멍을 때려? 그러니까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삼화취정에 들었다는 건가?”
“자주는 아니고 가끔은.”
“하…….”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나, 자신이 눈앞에서 직접 보았으니 거기에 대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송윤천이 자신을 상대로 괜히 허장성세를 부릴 이도 아니었고.
“그런데 손에 든 그건 뭔가?”
송윤천의 시선이 마석동의 손아귀에 쥐어진 뭉뚝한 두루마리로 향했다.
“지원서일세. 애들에게 주려고 가져왔지.”
마석동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틈만 나면 장원을 들락날락하며 다른 이들과도 제법 친분을 나눌 수 있었다.
‘곽범이라 했나? 그 녀석은 어쩐지 나를 좀 무서워하는 것 같다만.’
다행히도 가장 어린 애들 둘은 나름대로 자신을 편하게 대해주었다.
남매가 그를 부르는 호칭마저도 ‘맹주 할아버지’로 나름의 친근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남매가 무림맹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후로 온갖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애들아, 혹시 그거 알고 있니? 무림맹은 식사, 간식, 야식이 기본적으로 제공된단다.
-승천당에서 지난 수백 년에 걸쳐서 많은 고수를 배출했단다. 말 그대로 용이 승천하도록 돋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지.
-아, 그래서 장주보다 강한 사람도 있었냐고? 그건 잘 모르겠는데 돌아가서 한 번 알아보도록 하마.
송윤천처럼 강해질 수 있냐는 질문에는 양심상 차마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물론 마석동이 그저 애들을 좋게 보아서라는 단순한 이유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무림맹과 작은 연결고리라도 만들어 두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송윤천을 자신의 직권을 써서라도 장로로 영입하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이 한적한 장원에서 조용히 머무는 것만 봐도 그 성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석동이 차선으로 선택한 게 바로 그의 제자인 남매였다.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아낀단 말이지.’
송윤천이 제자를 대하는 모습만 슬쩍 봐도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입당 시험이란 게 신청만 하면 누구나 다 통과하는 건가?”
“안타깝게도 그건 아닐세.”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무림에서는 오로지 실력만이 전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평화로운 무림에서는 인맥이 중요시되곤 한다.
무림맹 승천당은 후기지수 사이에서 그 무엇보다 뛰어난 인맥의 장이었기에 경쟁률 역시 높은 편.
결국,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중이떠중이를 걸러내기 위해 승천당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특히 이번 기수부터는 그 난이도가 한 층 더 올라갈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그 융통성 없는 자식. 맹주가 말하면 두 자리 정도는 그냥 줘도 되는 거 아닌가?’
물론 남매를 옆에서 지켜봤기에 충분히 합격하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람 일은 끝까지 가야 알 수 있다.
하여 맹주의 체면에도 불구하고 몰래 승천당주를 만나 부탁하였는데 단박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두 자리요? 맹주님 지금 저랑 농담하십니까? 입당 청탁은 금물(禁物)입니다.
-아니, 누가 다른 합격자를 탈락시키라고 했나? 그냥 두 자리를 더 늘리면 되는 걸 참…….
-그렇게 늘리다 보면 죄다 합격하겠지요. 저보고 모자란 놈들 다 거르라고 하신 분이 누구셨더라? 혹시 기억하십니까?
-……나였지.
-저는 못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결국, 호쾌하게 까이고 말았고 당원에게 신청서만 받아서 이렇게 오게 되었다.
“봐도 되나?”
“물론이네.”
송윤천은 내용이 뭔가 싶어서 받아든 두루마리를 펼쳐보았다.
-입당 시험은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온전히 무림맹 승천당 내부 기준에 의거.
一 인적 사항 확인 (추천인 必)
二 인성 및 적성 평가
三 무공 평가
四 최종 면접
-단, 각 사항에서 일정 기준 미달 시 탈락 통보.
“내가 본 게 맞나? 지금 조정 관직 선출하려는 게 아니고 승천당 입당 시험이 맞나?”
송윤천이 기억하기로는 들어가겠다고 전서 한 통 보내면 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네 차례에 걸쳐야 합격할 수 있단 말인가.
‘무림맹이 변한 것인지 세월이 흐른 것인지.’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자신이 기억하는 무림맹과 지금의 무림맹은 천차만별이었으니까.
“나도 잘 몰랐네. 다만 요즈음 무림에도 조기 교육 열풍이 거세진 탓에 지원자가 많아서 기준을 강화했다고는 들었네.”
마석동 역시 처음에 이 기준을 보고서 송윤천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무림이 황궁을 따라 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게다가 최근 추세가 굳이 무인이 아니더라도 조금 있는 집 자식들, 어디 상단이나 표국까지 모여든다고 하니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일세.”
“그 정도인가?”
“간단하네. 겉으로 보기에 현 무림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대니까.”
마석동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평화라……. 그럴 수도 있겠어.”
송윤천은 그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무(武), 무공(武功), 무림(武林)
피와 죽음이 익숙한 시대에는 꺼리지만, 평화롭기만 하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관직에 나가 괜히 골머리를 썩이거나 위에 고개 숙이지 않고 적당히 실력을 쌓으면 그만이었으니까.
평화로운 무림이란 잘난 놈들은 잘난 놈들끼리 어울려 다니니 좋고 못난 놈들은 신분 상승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었다.
송윤천은 이런 이들을 비난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 하여도 고작 애들을 받는 것 치고는 너무 복잡해 보이는데.”
“현실이 그런 것을 어찌하겠나. 이해해주시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여기 이 추천인이 필수라는 게 무슨 말이지?”
“방금 말했듯이 지원자가 워낙 많다 보니 그중에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이들도 있다네.”
굳이 누군지 밝힐 것까지는 없었다.
무림맹을 견제하는 세력.
무림맹의 의도를 파악해 이득을 보려는 세력.
사파, 마교 심지어 황궁과 멀리 새외에서도 혼혈이나 매수한 중원인으로 하여금 접근한 바가 심심치 않게 드러났으니 말이다.
“그래서 신원이 확실치 못한 지원자의 경우에는 확실한 추천인이 필요하다고 하더군.”
“그건 나쁘지 않네.”
송윤천이 생각하기에도 필요해 보였다.
원래 중원인은 명예를 중요시하는데 무림인은 그보다 더하다.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 여기면 당장 칼을 뽑아 들고 피를 보는 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세상이 바로 무림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추천인 역시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을 터였다.
자신이 추천한 이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그것이 곧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건 유래 깊은 전통과도 같았다.
지금의 명문 세가나 거대 문파 역시 이런 식으로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면 우리 애들도 추천인이 필요하겠군.”
현 무림에서 그들은 소속 없는 야인.
송윤천 자신이나 월이 얼마나 강한지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크흠, 그래서 말인데, 애들은 나와 저 거지가 추천인으로 나서도 되겠나?”
“그래, 부탁하지.”
마석동이 조심스럽게 물어왔고, 송윤천은 흔쾌히 허락했다.
무림맹주와 개방의 태상방주가 추천하는 인재를 의심한다?
적어도 무림맹에 그런 미친 작자는 없을 것이다.
바로 다음 날, 남궁연과 남궁헌의 이름으로 지원서가 접수되었다.
그 아래 추천인으로 무림맹주 마석동과 개방의 태상방주 풍전이 적혀 있었으니.
쾅-! 쾅-!
당연히 그 위로 두 차례 합격 도장이 찍히며 첫 단계를 가뿐히 넘어섰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