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45
45화
“헥, 헤엑-, 헥, 헥.”
마치 한여름에 더위 먹은 개가 헐떡거리는 듯한 소리가 지하에 울려 퍼졌다.
다만 그 소리를 내는 존재는 더위 먹은 개가 아니라 그 유명한 정파의 영웅, 풍전이었다.
끝내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악에 받쳐서 부숴보려 뇌기를 쏟아부었지만,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인지 아무렇지 않게 흡수되어 버렸다.
“어르신, 역시 저도 무리입니다.”
풍전의 뒤를 이어 조심스럽게 금왕 염대산도 도전해봤지만, 당연히 실패했고 그는 깔끔하게 물러났다.
애초에 무력으로 따지면 풍전보다는 한 수 아래였으니 말이다.
사실 여기서 송윤천을 제외하면 이 문을 열 수 있는 자가 없다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무너져 버렸다.
“사제, 괜찮아?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 후……. 괜찮습니다.”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남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닌데? 다리가 막 떨리는데.”
“그럴 리가요.”
“정말인데.”
“전혀 아닙니다. 전혀.”
그런 풍전이 불쌍했는지 남궁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힘들어 죽겠구먼. 여기서 몇 번만 더 시도했으면 주화입마로 죽을 뻔했어.’
송윤천이 풍전의 상태를 보고 적당한 시기에 막아섰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다가는 본인도 모르게 무리할 뻔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으니 슬슬 들어가도록 하지.”
단전이 바닥을 치는 바람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풍전을 뒤로 한 채 송윤천이 철문 앞에 섰다.
그리고 풍전과는 다르게 아무런 준비 동작도 없이 아주 가볍게 한 손으로 철문을 쓱 하고 밀었더니.
드드드득-
풍전이 전력을 다했을 때는 미동도 없었던 거대한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금…….”
은빛으로 빛나던 거대한 문이 열린 뒤 시야는 온통 금빛으로 가득했다.
* * *
옛날, 송윤천이 상계에 투신하여 어느 거상(巨商) 밑에서 일하던 시절.
송윤천은 거상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무언가 숨겨진 비법이나 거창한 대답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거상은 이렇게 말했다.
-간단하네. 걸음마를 떼고 부모를 따라 이득을 따라다녔지. 이렇게 머리가 하얗게 물들 때까지 말이야.
-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날부터 송윤천은 그 조언을 몸소 실천했다.
처음에는 각 시대의 화폐에 집착했으나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함에 따라 부질없음을 느끼고 금은보화(金銀寶貨)를 모았다.
거상이 세운 상단과 재산이 무너지고 여러 왕조가 피고 지는 세월 속에서도 송윤천은 크게 욕심내지 않고 능력이 닿는 선에서 거상의 조언을 실천했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가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함께 들어온 이들 중에서 놀라지 않은 이는 단 두 명.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송윤천과 어린 시절 한 번 출입했었던 금왕 염대산뿐이었다.
그나마 남궁연은 아직 어린 탓인지 너무 놀라지 않았지만, 풍전과 염호산은 입이 쩍 벌어진 상태였다.
“여기도 금, 저기도 금. 이것도 금. 저것도 금. 온통 금일세…….”
“정말이었구나……. 아버지께서는 진심이었어.”
그들의 눈에는 과장 조금 보태어 천하의 모든 금은보화가 이 창고에 있는 것처럼 다가왔으니.
물론 그들의 감정은 딱 거기까지였다.
더 나아가 욕심으로 자라나지는 않았다.
풍전은 애초에 물욕에 어느 정도 초연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거지 생활을 때려치웠을 테다.
염호산 역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귀가 따갑게 들어온 말이 전설이 아니라 실화임을 확인했음에서 멈췄다.
둘의 눈빛에 흔들림이 사라지자 송윤천도 지체 없이 움직였다.
“이쪽이다.”
송윤천은 산더미라는 말로도 부족한 금을 지나쳐 안쪽으로 향했다.
한참을 걷자 이제는 보물이 좌우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언뜻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 한 자루가 눈길을 끌었다.
“장주, 내가 검은 잘 모르지만 저건 보통이 아닌 듯한데 이름이 어떻게 되오?”
“의천검(倚天劍)이다.”
“조조가 다뤘다는 그 검 말이오? 전설 아니었소?”
“눈앞에 있지 않나. 물론 전설만큼 대단한 물건은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 이번에는 거대한 언월도가 등장했다.
“이건 혹시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요? 관운장께서 쓰셨다는……?”
“맞다. 차남인 관흥이 마지막으로 사용했지.”
“그렇다면 저건 장팔사모?”
“맞다.”
“허허……. 허허허…….”
풍전은 계속되는 싱거운 대답에 그저 헛웃음만 늘어놓았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렇다고 하니 거짓은 아닌 듯했다.
애초에 송윤천쯤 되는 인물이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보물을 뒤로 한 채 송윤천과 그 일행은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때쯤 되자 일행도 과연 이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건 얼마나 귀하고 대단한 물건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금왕 염대산 역시 어린 시절엔 이렇게 깊이까지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의 송윤천이 멈추자 뒤따라오던 일행도 멈춰 섰다.
“이걸 찾으러 왔지.”
그 앞에는 표면에 기이한 문양이 가득 그려진, 거대한 바위의 형태를 한 운석이 안치되어 있었다.
의천검, 청룡언월도, 장팔사모, 쌍고검, 애각창, 여기에는 없는 방천화극과 간장, 막야, 담로 등 그 외 다양한 무구까지.
모두 이 운석, 정확히는 운철로 만들어진 보물이었다.
* * *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대체 어떤 우둔한 자가 이렇게 지껄였는지는 몰라도 송윤천이 경험한 바로는 전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도구가 좋지 못하면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법이다.
명필에게 붓이 있다면 무인에게는 무기가 있다.
수백 수천 년이 흘러도 녹슬지도 부러지지도 않는 운철로 만들어진 무기라면 필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송윤천은 운철로 제자들에게 어울리는 검과 창을 만들어주려 했다.
“이 검의 출처가 여기 있었군요.”
“모르고 있었나?”
“예, 그저 어르신께서 두 자루를 하사해주셨다고만 하셨지요.”
“그랬나……. 너희 시조에게 혼인 선물로 내어준 것이었다.”
“허허, 제가 시조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정말 기뻐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랬지.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렸어.”
이미 가보로 내려오는 운철검을 소지한 금왕 염대산이나 염호산은 운철을 눈앞에 두고도 욕심내지 않았다.
“이걸로 제 검을 만들어주시는 건가요?”
“그래. 연이 너와 헌이 그리고 곽범 녀석까지 말이다.”
“와아-!”
남궁연은 그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검을 선물로 받아도 기쁜데 이리도 귀한 운철로 만든 무기를 쓸 수 있다니 말이다.
그리고 사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풍전이 슬그머니 송윤천에게 다가오더니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보내왔다.
“장주, 외람되지만 이 거지가 존경한다는 말을 했었습니까?”
“그랬나? 그런 말은 금시초문인데.”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말씀을 올리지요. 혹여 이 막내 제자를 잊은 것은 아니시지요?”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군.”
속셈이 뻔히 보였지만 송윤천은 이 모습도 보기가 좋은지라 웃음을 머금으며 받아주었다.
반존대에 머물던 말투에 극도의 존중이 담겼다.
“뇌기만 다뤄도 충분할 터. 굳이 운철이 필요한가?”
“봉을 쓰지 않습니까. 봉을.”
“그거 귀한 물건이라 하지 않았나?”
“아무리 벽조목이니 뭐니 해도 나무가 어찌 철에 비하겠습니까? 예? 그것도 다른 철도 아니고 운철을 앞에 두고? 어림도 없지요. 사저 안 그렇습니까?”
풍전이 남궁연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듯 간절한 말투로 재촉했다.
“장주님, 풍 사제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남궁연은 다 늙은 막내의 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워 그의 의도에 따라주었다.
송윤천은 사이좋은 사형제의 대화를 들으며 흔쾌히 풍전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원한다면 하나 만들어주도록 하지.”
검 두 자루와 창 한 자루 마지막으로 봉까지.
송윤천은 손날을 세워 필요한 만큼의 운철을 잘라내어 풍전에게 넘겨주었다.
“장주님, 제가 들까요?”
“아이고, 사저.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 막내가 들어야지요.”
“막내가 들면 되겠군.”
“흐흐, 물론이오.”
금방 말투부터 평소처럼 되돌아온 풍전이 심부름꾼을 자처하고 나섰다.
은철처럼 강하지만 그 어떤 철보다도 가벼운 운철이기에 풍전은 손쉽게 들어 옮길 수 있었다.
이로써 용건을 모두 마친 송윤천 일행이 창고를 나섰다.
지상으로 올라선 송윤천은 바위에 꽂혀 있는 금두꺼비를 회수하며 염대산에게 물었다.
“괜찮다면 이 근방에서 가장 솜씨 좋은 야장을 추천해줄 수 있겠나?”
“마침 섬서성 최고의 야장이 근방에 있습니다.”
태음현이 섬서성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절대 작지 않았다.
먼저 구파일방에서도 수위로 꼽히는 화산파가 있었다.
거기에 상계에서 천하제일로 꼽히는 금와장이 있으니 철을 다루는 대장간의 수요가 날로 커졌다.
“그런데 그 야장의 고집이 보통이 아닙니다. 저희나 화산파의 의뢰도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받는 형편이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군요.”
염대산의 시선이 운철로 향했다.
과연 고집불통의 늙은 야장은 저 운철 앞에서 어떻게 나올까?
답은 정해져 있음이나 다름이 없었다.
염대산은 곧장 화산파 및 금와장과 수백 년에 걸쳐 거래 중인 야장에게 일행을 안내했다.
거대한 대장간에서도 가장 거대한 화로.
일행은 한눈에 봐도 야장임을 알 수 있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철(鐵) 노야, 오랜만이오.”
“몇 년 만에 뵙는군요. 그런데 금왕께서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괜히 여기까지 왔겠소? 당연히 귀한 손님과 귀한 재료를 모셔왔지.”
그 말에 평생 열기를 가까이했던 탓인지 온통 구릿빛 피부를 한 노인이 염대산과 함께 온 이들을 쓱 훑었다.
“아니, 저것은!”
송윤천을 소개하기도 전에 철 노야라 불린 야장의 시선이 큼지막한 운철에 집중되었다.
“이것으로 검, 창, 봉을 의뢰하려 하는데. 아, 검은 두 자루라네.”
“내게 맡겨주시오! 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기필코 필생의 역작을 만들어 보이리다!”
“부탁하지.”
“그리 부탁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늙은 야장의 신경은 온통 송윤천이 건네준 운철 덩어리를 향하고 있었다.
야장은 어쩌면 저 운철로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역작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꿈에 빠져들었다.
이로써 당장 송윤천이 금와장을 찾아서 할 일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저 운철이 명기(名器)로 거듭나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터.
“당장 볼 일은 마쳤으니 화산으로 가도록 하지.”
“차후에 뵙지요.”
“다녀오마.”
어차피 철 노야에게 의뢰한 무기를 찾기 위해 돌아와야 하니 금왕도 미련 없이 보내주었다.
송윤천 일행은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한 시진 남짓 인파를 뚫고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화산에 당도할 수 있었다.
“어라?”
그리고 화산의 초입에 발을 내디딘 일행은 여러모로 흔치 않은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