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49
49화
오늘날의 매화, 진현 진인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 깨달았다.
아마도 어릴 적 검을 잡는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자신에게 취한 나머지 찾아온 어린 날의 착각일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특별함이 망상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화산 인근 초라한 무관의 제자 노일에서 촉망받는 화산파의 후기지수 진현이 되었으니 말이다.
특별한 이들이 모인 화산에서도 진현의 특별함은 유별났다.
“모두 지켜보거라. 바로 저 아이가 바로 대(大) 화산의 미래이니라.”
그렇게 수많은 화산의 제자 중 하나에서 금방 자하신공의 유일무이한 계승자가 되었다.
이후에도 진현의 특별함을 저물지 않았다.
청출어람(靑出於藍)할 무렵에 정마대전이 발발했다.
중원 무림의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화산파의 위명을 드높이기 위하여.
진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기꺼이 참전했고 최전선에서 맹활약했다.
무수히 많은 마인의 목숨을 거두고 동료를 구하면서 생각했다.
당연히 자신은 천하제일인이 될 운명이며 그에 따라 화산파 역시 천하제일로 거듭날 운명이라고.
지금 부족한 건 단지 약간의 시간뿐이라고.
하지만 천하에는 자신만큼, 아니 자신보다 특별한 존재가 있었다.
그저 중원에서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적과 아군이 쌓여 만들어진 시산혈해(屍山血海)에 천마가 등장한 그 순간.
진현은 자신이 특별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천마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 남긴 짧은 말은 그와 화산파의 창창한 앞길을 철저히 가로막고 말았다.
-너는 나와 닮았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왜 그따위 허무맹랑한 소리를 내뱉느냐고 욕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천마는 이 말을 끝으로 진현이 보는 앞에서 이유 모를 작은 미소와 함께 숨을 거뒀다.
천마의 죽음은 곧 사악한 마교의 패배였으며 정의로운 정파의 위대한 승리였다.
하지만 그의 숨통을 끊어 놓은 정파의 새로운 영웅 매화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자신이 천마를 상대하면서 알게 모르게 느꼈던 동질감이 무엇에서 기인했는지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하신공은 천마신공과 끔찍이도 닮아 있었다.
처음에는 의심했으며 애써 이 사실을 부정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자신이 환청을 들은 거라고.
그저 마귀의 간악한 술수에 홀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진현은 이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주화입마에 빠질 정도로.
그래서 모든 일을 뿌리치고 곧장 화산으로 돌아가 심산유곡에 홀로 처박혔다.
그는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자하신공의 경지가 더 높아질수록 천마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자하신공이 곧 천마신공이었으며 천마신공이 곧 자하신공이었다.
단지 드러난 형태와 하나는 정파이며 하나는 마교의 것이라는 게 다를 뿐.
그날 이후로 더욱 악화된 주화입마가 그를 흔들어 놓았다.
아무리 귀를 막고 눈을 감아도 천마의 마지막 모습이, 음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수십 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 모습은 흐려지지 않았으며 음성은 여전히 생생히 들려왔다.
오랜만에 친우를 만났지만, 여전히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은 한 줄기 희망마저 놓치게 되자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지경의 지독한 허탈함이 찾아왔다.
‘나는 이제 어떻게……, 역시 그 수뿐인가…….’
이 주화입마의 끝에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는 진현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더 깊은 심연으로 끌려가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 다짐했다.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마(魔)에 심취하여 이성을 잃기 전에.
화산, 나아가 중원에 해악을 끼치기 전에.
그래.
지금 끝내자.
스르릉-
진현은 검을 들었다.
언제나 적을 향하던 날카로운 검 끝은 이제 자신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뒤에서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그를 일깨웠다.
“너는 나와 닮았구나.”
“……!”
수십 년 동안 들려왔던 천마의 환청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 닥쳐왔나?
자신이 만든 환상과 현실이 마구 부딪치며 섞여 들어갔다.
그와 함께 진현의 이성이 저물어 가는 자리에 마(魔)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진현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너지는 이성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등을 돌려 다가오는 사내를 응시했다.
“너……, 너…….”
자신이 보았던 늙은 천마와는 전혀 닮지 않은 사내였다.
사방을 가득 메우는 기분 나쁜 마기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시선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누구보다 천마에 집착해왔던 진현은 상대가 서서히 천마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이 초연한 분위기는 그가 기억하고 있는 천마의 마지막 모습과 같았다.
“천마가 돌아왔구나. 천마가! 천마가 돌아왔어! 그 대마두가 마침내 중원에! 화산에 당도했어!”
심마에 완전히 사로잡힌 진현이 자신이 만든 공포 속에서 사납게 울부짖었다.
천마를 다시 한번 죽인다면 자신은 이 억겁과도 같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의 목을 향했던 진현의 검 끝이 이제는 상대를 향해서 돌려졌다.
그 무엇보다 천마신공을 닮은 자하신공으로 천마신공을 끊어내리라.
어느새 진현의 눈은 자신이 그리도 두려워했던 천마와 같이 칠흑처럼 물들어 있었다.
* * *
평화롭기 그지없던 화산에 난데없이 살기가 너풀거렸다.
그런데 그 대상이 살수도 마인도 아니다.
화산의 가장 큰 어른이며 동시에 최고의 무인이 오로지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발산하는 살기였다.
‘이런…….’
송윤천은 바로 직전까지 화산파 최고의 무인이었던 광인을 바라봤다.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데.’
분명히 풍전에게 사정을 전해 듣기로는 이 정도는 아니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눈이 붉게 물들고 얼굴과 목에는 핏줄이 솟아난 채 사방에 살기를 풍기는 모습을 보라.
저게 주화입마가 아니면 뭐겠나?
아니면 자신이 뭔가 잘못했는지 떠올려 봤지만, 그런 일은 딱히 없어 보였다.
‘그저 과거의 나와 닮았다고 했을 뿐인데 말이지.’
방황하는 진현의 모습이 먼 과거에 괴력난신이 되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자신과 흡사하여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상대에게는 그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 듯했다.
‘천마에 대한 집착? 착각? 아니면 다른 무언가?’
따져보면 이유야 다양할 수 있으나 이곳으로 오기 전 풍전에게 들은 바로, 일의적인 이유는 대강 짐작이 갔다.
‘천마신공과 자하신공의 본질이 닮았음을 알았기 때문이겠지.’
저렇게 된 이유를 따져보면 자신의 탓도 적지 않으리다.
‘아니 전적으로 내 탓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하긴 했었다.
‘까마득히 지나서 업보로 돌아오는구나.’
그 옛날 송윤천이 괴력난신이 되었을 무렵.
주체하지 못할 만큼 강대한 신력에 더는 끌려다니지 않고 억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고안한 방법이 있었다.
이는 곧 천마신공으로 불렸다.
그 뒤로 세월이 조금 더 흐른 뒤.
신봉자들과 함께했었던 천산을 떠나 화산에 머물며 신력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위하여 고안한 방법이 있었다.
이는 곧 자하신공이라 불렸다.
당연히 한 몸에서 나왔으니 두 신공의 본질은 같을 수밖에.
‘아마도 그 사이에서 오는 괴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저렇게 됐을 터겠지.’
진현이 이렇게 돼버린 것이 운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만난 게 운이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천하에 송윤천만큼 주화입마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겹도록 경험했지.’
스스로가 주화입마에 빠지기도 했고, 다른 이의 주화입마를 보기도 했다.
‘그나마 아주 늦은 건 아니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선 심마에 잠긴 이성을 일깨워야 했다.
‘그럼 시작해볼까.’
우웅-
송윤천과 눈이 돌아간 채로 미쳐 날뛰는 진현을 중심으로 반경이 수십 장에 이르는 기막이 형성되었다.
이제 이 내외는 단절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송윤천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그 어떤 충격도 이 단절된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는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상대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천마여-!”
진현은 송윤천을 그리 부르며 달려들었다.
손에 들린 검은 자연스럽게 급소를 향했다.
“내게 천마라 하였나?”
송윤천이 진현에게 물었지만, 역시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두 눈이 검붉게 물든 진현은 당장이라도 송윤천을 찢어 죽일 기세로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 역시 딱히 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기에 더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보여주마.”
그저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이제는 모두에게 잊힌 존재.
초대 천마이자 진정한 의미에서의 천마로서.
그 무엇보다 순도 높은 마기가 사방을 뒤덮어 나갔다.
만마(萬魔)의 주인이 이 앞에 당도했다.
* * *
-너는 나와 닮았구나.
-너는 나와 닮았구나.
-너는 나와 닮았…….
“그 더러운 입 닥치지 못할까-!”
천마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진현은 그 속에서 분개하며 울부짖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귀를 막아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의 검으로 천마를 죽여야만 했으니까.
진현은 이성을 잃었으나 머리에 각인된 화산의 무공까지 잃지는 않았다.
자하신공과 함께 자줏빛 기운이 마치 피안개처럼 넘실거렸다.
화산제일이라는 명성답게 이십사수매화검은 자하(紫霞) 속에서 매화를 흩뿌렸지만…….
짙은 마기에서 불쑥 튀어나온 검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수백, 수천 번을 죽이려 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검은 상대에게 닿지 못했다.
“설마 이게 끝인가?”
“이노오오옴-!”
비아냥대는 상대의 목소리에 진현은 고통 속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층 더 힘을 내어 환상 속의 천마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짙어지는 살기와 그 사이에서 날카롭게 흩날리는 매화가 송윤천을 감쌌다.
빠져나갈 작은 틈조차 보이지 않는 가운데, 송윤천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송윤천은 지금과 같은 구도를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신이 상대를 멈추게 만드는 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
‘그러니 어서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찾거라.’
송윤천은 한 송이 작은 매화가 마(魔)를 깨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화입마에 빠진 상대를 앞두고 무모하고 가망 없는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구성이니 매화니 그런 것들은 몰라도 자하신공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자하신공은 신공절학 이전에 도가의 무공.
즉, 현기(玄機)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소림, 아미와 같은 불가의 심법과 화산, 무당, 곤륜과 같은 도가의 심법은 딱 하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항마(抗魔)의 성질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마기와 사기에 강한 면모를 보였고, 이는 당연히 주화입마에도 해당하였다.
물론 항마의 성질이 있다고 하여 주화입마가 아예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화입마에 대항할 수 있지.’
외부의 천마신공에 대항하기 위해, 진현은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도 자하신공을 끊임없이 구사해야만 한다.
‘그리되면 자연스럽게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마기에도 대항할 터.’
지금까지는 이 계획이 느리지만 나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갔다.
진현이 이성을 잃고 마에 심취한 상태로 자하신공 속에서 쉬지 않고 날뛴 것도 어느덧 이틀째.
검붉게 물들었던 눈이 조금씩 돌아오고 전신에 징그럽게 올라온 핏줄이 내려앉았다.
‘그래도 여전히 제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함을 보면 아직인가.’
모든 내공을 쥐어 짜내고 난 뒤, 생명의 근원과도 같은 선천진기를 끌어내기 직전을 노려야만 했다.
진현은 그렇게 몇 시진을 더 자신이 만든 환상 속의 천마를 죽이려 들었다.
송윤천은 그 공격을 숨도 고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진현이 멈칫하며 동작이 조금씩 끊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송윤천이 기다리던 그때가 당도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