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52
52화
시마(屍魔)는 여러모로 특이한 점이 많은 자였다.
첫 번째는 그의 나이였다.
현 무림에서 흔히 노고수라 불리는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마는 노고수라고 불렸다.
그러니 대충 계산해봐도 그는 최소 이백 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양민들은 반백 년을 살다 가면 장수했다고 하며 환갑에는 없는 살림에도 크게 잔치를 열 지경이다.
이러니 혹자는 시마를 보고 동방삭의 후인이 아닌지, 진시황이 그토록 찾던 불로불사의 비법을 찾은 건 아닌지 의심할 지경이었다.
두 번째는 그의 무공이었다.
별호에 시체를 뜻하는 시(屍)가 붙어있음을 보면 예상할 수 있듯, 그는 사술이자 금술로 지탄받는 강시술의 대가였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자신의 신체를 개조 및 변경하여 이미 불로불사(不老不死)의 경지에 올랐다고도 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그의 최근 행적이었다.
중원에서는 천마신교에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진 괴물이 득시글하다고 알려졌다.
시마는 그런 천마신교에서도 손에 꼽히는 무력으로 정파의 구성(九星), 사파의 칠악(七惡)과 같이 칠마(七魔)의 위치에 올라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시마가 탈교(脫敎)하여 천산을 내려와 중원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천하에 널리 퍼졌다.
……이후 공식적으로 시마의 행보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시마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안달이 난 상황이었다.
황제의 오른팔과 왼팔로 불리는 금의위와 동창은 지엄한 황명(皇命)을 받아 불로불사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접근했다.
정파 최대 세력인 무림맹과 사파 최대 세력인 철혈성, 각종 새외 세력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들은 마교의 정점으로 오랜 세월 군림했던 시마에게 지금까지 그 어떤 첩자도 알아내지 못했던 고급 정보를 캐내기 위해 접근했다.
당연히 시마는 대부분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저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기를 원하며 쓸모가 다하면 바로 사로잡아 제거할 생각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하나쯤은 흥미가 가서 고심하기도 했다.
시마는 고민 끝에 딱 하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온갖 매력적인 제안을 던져오는 이들과 다르게 너무나도 짧고 담백하게 만남을 권유하는 내용의 초대장이었다.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
“크-, 건방진 녀석이 따로 없구나.”
시마에게 초대장을 보낸 이는 바로 칠악(七惡)의 일인으로 악명이 자자한 천살성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마는 마침내 천살성을 마주하고 있었다.
“유명인을 만나서 반갑소.”
“초대장에 성의가 없더군.”
“장황하게 주절거린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닌 듯해서.”
눈 밑이 피로로 시꺼멓게 물들어 당장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내, 천살성이 손님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요청했다.
양민들 사이에서나 악수가 오가지 무림에서는 사장된 방식이었다.
상대에게 맨손을 내준다는 건 암기나 독 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반갑게 악수할 사이는 아닌 듯하군. 초대에는 응했으니 이제 슬슬 설명을 듣고 싶네. 그래, 왜 나를 초대했는가?”
그렇기에 시마는 상대의 악수를 가볍게 무시하며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뭐, 그럽시다.”
어찌 됐든 인사를 거부했으니 자칫 기분이 나쁠 수 있었으나 천살성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제 자리에 앉았다.
“아, 그런데 호칭을 뭐라 하면 좋겠소? 장로님? 노선배? 대협? 선배님? 그쪽께서 나보다는 한참 선배이시니 원하는 대로 불러드리지.”
“대접을 받을 생각이면 탈교를 했겠나? 그따위 정파 놈들이나 하는 고리타분한 짓거리에는 딱히 관심 없다. 본론부터 시작하지.”
하나는 칠악이라 불리며 또 하나는 칠마라 불리는 이들이다.
당연히 성격이 그리 좋을 리가 없었다.
“좋소……, 이거 하나만 물읍시다. 탈교(脫敎)한 이유가 대체 뭐요?”
천살성은 첫 질문부터 매섭게 날렸다.
“그게 궁금했나?”
시마는 대놓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재밌다는 것처럼 작게 미소를 지었다.
“궁금하지 않다고 하는 게 거짓말이겠지. 그렇지 않소? 시마 그대 정도면 마교에서 뭐든지 차고 넘칠 만큼 대접받고 살 수 있을 텐데.”
막말로 황제가 부럽지 않은 삶을 내팽개치고 사방이 자신을 이용하려는 적으로 가득한 중원으로 도망쳐 왔으니 미친 짓이 따로 없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있으면 되겠나? 그때라도 당장 시작해야 뭐라도 할 수 있는 법일세.”
“속 빈 강정이 따로 없군.”
시마가 대충 넘어가려 하자 천살성이 비아냥거렸다.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시마는 굳이 뒷사정을 먼저 밝히고 싶지 않았고, 천살성은 시마의 입으로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아쉬운 건 천살성이었기에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쪽에서 파악한 소문으로는 당신이 마교를 떠날 즈음에 검마가 피습으로 회복 중이라 하던데……. 어디 이것도 우연의 일치라고 할 텐가?”
“쯧……, 쓸데없이 입이 싼 교도들이 많아.”
시마가 인정하지 않고 애써 돌려 말했지만, 이는 사실을 인정함과 다름이 없었다.
“물욕에 눈이 먼 놈은 마교에도 적지 않게 있더군. 그래서 왜 검마를 습격했지?”
천살성의 질문에 시마는 입을 닫았다.
똑- 똑- 똑- 똑- 똑-
그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천살성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한 손가락으로 탁자를 일정한 박자로 계속해서 두드려댔다.
똑- 똑- 똑- 똑-
언뜻 보기에는 그저 좋지 못한 습관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손끝에서 발산되는 기의 파동으로 주변을 탐색하는 방법이었다.
똑- 똑- 똑-
‘쯧,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다만.’
예상했던 대로 사방이 포위된 상태였다.
똑- 똑-
앞서 자신을 여기로 안내한 혈화백 강휘가 출입구를 막아섰다.
몇 장 너머에는 조금 전 차를 내왔던 눈먼 여인이, 천장 위에는 살수의 움직임을 띄는 녀석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가장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천살성이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이 와중에도 살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군.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 이거지.’
똑-
그렇다는 건 이들이 자신을 납치하거나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건 왜 그리 궁금해하는 거지?”
계속해서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춰 세운 시마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시마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이렇게 초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교와 끈이 연결되어 있다면 곤란하겠지.”
천살성은 시마를 동료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그전에 시마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치명적인 법.’
그러니 시마가 검마를 습격했지만 실패하고 완전히 탈교한 것인지 혹은 이 모든 게 잘 꾸며낸 마교의 함정인지 듣고 판단하려 했다.
“검마 녀석의 검을 손에 넣고자 했었지.”
“구유마검 말인가?”
“맞네.”
구유마검이란 대대로 주인의 기운을 흡수하며 막대한 마기를 저장하고 있다는 신병이기이자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검이었다.
“당신이 대체 왜 마검을 필요로 하지?”
정사마를 막론하고 사술이라며 멸시받는 강시술 하나만으로 마교의 정점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 바로 시마였다.
‘그런데 굳이 왜 마검을 탐했을까.’
아무리 신병이기라 하여도 평생 마교도로 살아온 이가 제 목숨을 걸고 마교를 배신하면서까지 욕심낼 필요는 없어 보였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답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
아직 시마는 마검을 탈취하려 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밝힐 필요는 없지.’
이래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만이었다.
‘단지 조금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귀찮은 일이 많아질 뿐.’
시마라고 하여 반드시 이들과 함께할 필요는 없었다.
천살성도 이쯤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판단하여 시마를 더 몰아가지는 않았다.
자신을 비롯한 칠악 모두 서로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시마, 우리와 함께하겠나?”
천살성은 칠악의 수장으로서 정식으로 시마에게 합류를 제안했다.
그리고 시마는 이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들이 순수한 목적과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자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니 적당히 믿으며 적당히 이용하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칠마가 아니라 육마가 되겠군. 잘 부탁하네.”
“앞으로는 칠악이 아니라 팔악의 일인이라고 소개해야 하나?”
이는 전례(前例)를 따져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정파가 보기에는 사파나 마교나 그놈이 그놈이었지만, 둘은 엄연히 추구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다.
“악(惡)이라……, 사실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지금까지 그들을 지칭했던 칠악은 단지 천살성과 그 동료들을 비롯한 이들의 행보를 보고 자연스럽게 붙은 표현이었다.
“그저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이 조금 다를 뿐인데 말이지.”
정파는 자신들의 세상을 추구한다.
사파, 마교, 새외 모두가 그렇다.
천살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최종적으로 모든 생명을 무(無)로 돌리는 것 역시 정의라 여겼다.
본디 그렇게 탄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잠들어 있는 이 몸의 주인은 그렇게 생각지 않으나 결국에는 제 뜻대로 될 것이다.
‘무엇이 좋을까.’
그러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한겨울에도 붉게 피어나는 동백(冬栢)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저 겨울에 피어난 동백처럼 지금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피어났다.
“화양연화(花樣年華)……. 그래, 앞으로 우리는 악(惡)이 아니라 화양연화다. 마음에 드는가?”
“들고말고. 마교니, 뭐니 불리는 것보다 훨씬 괜찮군.”
“아, 그래. 새로운 동료를 맞이하는데 소개가 늦었군. 다들 모여 봐라.”
천살성의 명령에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주변에 흩어져 있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시마를 안내한 혈화백 강휘와 차를 내왔던 눈먼 여인, 뒤늦게 당도하여 검과 도를 소지한 사내, 모습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살수까지.
“둘이 없어 안타깝지만 우선 소개토록 하지, 우리 화양연화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시마라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매화를 포함한 구성(九星)
하나가 줄어 육마(六魔)
하나가 늘어 화양연화(花樣年華)
정, 사, 마의 균형의 축에 약간의 변화가 일었다.
머지않아 천하에 이 소식이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 * *
간략하게나마 환영식을 치른 시마가 인근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어린 녀석들과 어울리는 게 쉽지는 않군.”
제 또래는 한참 전에 모두 황천길을 건너기도 했고, 마교에서는 자신에게 쉽게 다가오는 이가 없기도 했다.
‘그나마 내게 하대할 수 있는 존재는 교주뿐이었으니.’
시마는 저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마교를 배신하고 완전히 떠난 입장이었지만, 그의 모든 관심은 여전히 마교를 향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교가 아니라 천마겠지만.’
천살성에게 밝히지 않은 진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속 편한 녀석들.’
중원에서는 천마와 교주를 동일시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며 오산이었다.
실상 교주는 허명에 불과한 반쪽짜리 천마에 불과했다.
시마의 시선이 자연스레 서쪽을 향했다.
보이지 않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러내리며 전신이 딱딱하게 굳었다.
천마동(天魔洞).
지금껏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초대 천마의 지고지순한 천마신기가 잠들어 있는 미지의 공간.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오직 한 명만이 나올 수 있는 천고의 성지.
“그곳에서 이제 곧 두 번째 천마가 모습을 드러내리라.”
그때가 되면 구유마검의 주인을 제외한 마인은 모두 이성을 상실하고 그의 노예가 될 것이다.
이는 시마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천마의 등장은 자신으로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미래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진 않았다.
꽉 쥐어진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 들어가 피가 흘렀지만, 시마의 시선은 여전히 서쪽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