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6
6화
“이봐. 거기.”
송윤천이 멀리 구석에서 바삐 옷감을 정리하던 어수룩한 점원을 불러 세웠다.
그러자 남궁연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어린 점원이 냉큼 달려왔다.
“예? 예! 나리! 절 부르셨습니까?”
“그래. 의복을 맞추려 한다. 여기 이 둘의 신체에 딱 알맞게.”
“마, 맞춤! 그러면 몇 벌을 맞추시려 합니까?”
어린 점원이 놀라 외쳤다.
“각기 열 벌씩. 다섯 벌은 얇게, 다섯 벌은 두껍게. 질 좋은 것으로 내오너라. 아, 그리고 신발도 각기 다섯 켤레씩.”
송윤천의 예상치 못한 주문에 점원이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애초에 적당히 먹고살 만해야 의복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데다가 맞춤 의복 자체가 제법 값이 나가는데 무려 스무 벌이나 구매하니 말이다.
하물며 신발까지 더해졌으니 판매금의 오 푼을 정산받는다고 하면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점원의 일 년 치 삯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헙!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두, 두 분은 저를 따라오시지요!”
통이 커도 너무 큰 손님의 주문에 기분이 한껏 좋아진 어린 점원은 남매를 정중히 모시고 들어갔다.
잠시 후, 송윤천과 남매는 흔치 않은 대어를 놓친 탓에 썩어들어가는 얼굴의 점원 여럿이 지켜보는 가운데 포목점을 나섰다.
“또 찾아 주십시오! 세 분 모두 만수무강하시고요!”
어린 점원은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무렵까지 고개를 수차례 꾸벅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장주님!”
남매는 새로 얻은 의복을 쓰다듬으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사거라.”
“정말요? 아무거나요?”
“그래.”
“그러면 저는 저거요! 그리고 저것도!”
송윤천은 대로 좌우에서 풍겨오는 향미(香味)에 취한 남매의 다양한 요구에 흔쾌히 전낭을 꺼내 보이며 화룡점정을 찍어주었다.
다시 장원으로 돌아가는 길.
무거운 짐 따위는 모두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버린 송윤천과 양손 가득 다양한 먹을거리를 든 남매였다.
그날, 남매는 너무나도 푸근한 표정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냠냠-
그들은 넓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 꿈을 꾸었다.
예전이라면 이 꿈에서 깨어나는 게 너무나도 싫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남매는 어제가 행복했으며 오늘이 편안했고 내일이 기다려졌다.
* * *
다시 며칠이 더 지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송윤천의 장원.
마찬가지로 유유자적하던 남궁 남매.
바로 그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시작은 먹고 놀고 쉬고 자면서도 남아도는 시간에 동생 남궁헌이 남궁연에게 던진 물음에서였다.
“누나, 우린 이제 뭘 해야 해?”
“나도 잘 모르겠는걸.”
정자 위에 대(大)자로 뻗어 하늘을 바라보던 둘이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봤다.
“…….”
하지만 이렇다 할 답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는…….”
그때야 남매는 깨달았다.
자신들이 뭘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뭘 해야 하는 걸까?
고민해보았지만,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은 그저 다음 끼니는 어떻게 해결할지, 오늘 밤에는 어느 구석으로 가야 안전하게 잠들어 다음 날 멀쩡히 눈을 뜰 수 있을지가 대부분의 고민이었다.
“장주님께 가서 물어보자.”
“그래, 누나.”
결국, 남매는 이 장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송윤천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제 저희는 뭘 해야 하나요?”
“처음에 말했듯이 무엇이든 좋으니 너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떠오르는 게 없는걸요.”
“맞아요. 온종일 먹고 놀고 자고만 할 수도 없는데요.”
송윤천의 말에 남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송윤천이 솜털 하나 없이 매끄러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뭐라 말해줄까?’
조언을 구하니 답을 주고자 했다.
‘아!’
상대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는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봐야만 한다.
다행히도 이는 그에게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송윤천이 입을 열었다.
“나 역시 너희와 비슷한 처지였다. 어린 시절 부모가 돌연히 역병으로 세상을 떠났었지.”
“…….”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송윤천의 고백.
남매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홀로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지고자 했고, 배우고자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지 배우고 또 강해졌다. 그다음은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이렇게 살아남았지.”
그 말을 들은 남매가 각자의 고민에 빠져들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송윤천은 연초를 꺼내물며 자리를 떠났다.
‘답은 너희가 구하거라.’
자신이 무언가를 정해준다면, 그것은 저들의 성장이 아닐 테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원하는 바도 아니었다.
‘그건 내 삶의 답습에 불과한 일.’
송윤천은 남매가 스스로 답을 찾길 기다렸다.
남매가 다시 그를 찾아온 건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
대면한 남매의 표정은 한결 가볍고 편안해 보였다.
‘아무래도 답을 찾았나 본데.’
역시 처음에 느낀 것과 같이 남매는 기회가 없어 지식이 없었을 뿐, 지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혜롭지 못하면 나를 만나기 전에 진작에 명을 달리했겠지.’
남매는 우둔한 것이 아니라 그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경험이 부족하고 지식을 쌓지 못했을 뿐이다.
“답은 찾았나?”
“네! 저는요. 강해지고 싶어요. 장주님처럼요!”
남궁연은 흑점에서 자신들을 구해주었던 송윤천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장 장주님처럼 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차근차근 배워 나가서 최소한 자신과 동생의 안위를 충분히 지킬 정도의 무력은 키우고 싶었다.
“헌이 너는?”
“저도요. 다만……, 강해지고 싶기도 하지만 글도 배우고도 싶어요.”
같은 길거리에서 남궁연의 우상이 지나가던 무사였다면, 남궁헌의 우상은 학사였던 모양이다.
다행히도 남매는 어느 정도 원하는 목표를 찾은 듯했다.
둘이 추구하는 방향은 다소 다르지만 틀리지는 않았다.
무엇이든지 제대로 배우기만 한다면 힘이 될 수 있을 테니.
“그래, 그렇단 말이지.”
송윤천이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가 흔쾌히 답을 주었다.
“좋다. 내일부터 오전에는 월에게 글을 배우거라. 오후에는 내가 직접 맡아서 너희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도록 하마.”
“예? 월 아저씨요……?”
동시에 남매의 표정에 의심이 가득 찼다.
잠시나마 그들이 옆에서 지켜보고 경험했던 월 총관의 모습이란 마치 한량의 극치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빠르게 장원의 각종 업무를 정리하고 그들과 노닥거리다가 낮잠이나 자는 게 월 총관의 일과였다.
또한,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누가 보아도 학문과 가까운 외모는 아니었다.
다소 강한 인상에 근육질의 신체는 호리호리한 학사보다는 전형적인 무인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걱정인지는 알겠다만 괜찮다. 지금은 저래 보여도 한때는 관직에 올라서 일하기도 했던 놈이니 말이다.”
물론 그 시기가 한참 전이기에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지식이 다소 부족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천자문을 시작하려는 녀석들을 가르치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할게요!”
송윤천은 남매의 표정을 읽고 그들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그리고 먼저 배움에 나서기 전에 한 가지 조언을 해주마.”
“어떤 건가요?”
“따라 해 봐라. 오히려 좋다.”
“오히려 좋다…….”
“오히려 좋다!”
“그래,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말아라. 그렇게 나아가다가 보면 어느샌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매와 같이 힘든 생활을 겪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태도가 머릿속 깊이 박혀있기 마련이다.
당장 미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현재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태도는 곧 사람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과거에 발목이 붙잡히게 만들곤 하지.’
자신 역시 한때는 그러했다.
도(道)와 무(武)를 얄팍하게 수련하던 평범하고도 조금은 부족했던, 천하를 정처 없이 떠돌던 도사에서 괴력난신이 된 이후.
제법 오랜 시간 자신을 원망하고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놈을 원망하고 나아가서는 빌어먹을 세상을 원망했다.
길었던 방황을 끝낼 수 있었던 이유는 우연히 마주쳤던, 이병건이라는 학사가 조언이랍시고 자신에게 내뱉었던 말.
바로 그가 남매에게 전해 준 ‘오히려 좋다’였다.
‘이를 계기로 내가 바뀌었듯이, 너희도 바뀌기를.’
송윤천은 시작하기에 앞서 남매가 항상 긍정적인 태도로 행동하기를 원했다.
“오히려 좋다. 오히려 좋아…….”
남매 역시 이런 송윤천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그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날 이후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오히려 좋다는 마음가짐’이 남매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는 데에 일조했다.
* * *
다음 날, 진시(辰時) 초.
월 총관이 인근의 작은 학관에서 천자문을 비롯한 서책을 몇 권 정도 구해오면서 남매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사실 중원의 역사를 통틀어 문자라는 일종의 문화를 누리는 인구는 극히 적었다.
우선은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한 대다수의 양민은 이를 배울 여력조차 없었다.
더하여 배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고, 문자라는 것이 일종의 권력과 같은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만 다행히도 남궁연, 남궁헌 남매는 첫날부터 월 총관의 가르침을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신력의 존재로 인하여 남매의 오성(悟性)이 뛰어난 덕분이다.
또한, 월 총관이 학문을 가르치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월 아저씨. 저는 바로 무공을 배우고 싶은데 왜 헌이와 함께 문자를 배워야 하나요?”
그녀가 처음에는 의아하여 무공만 원하는 자신도 왜 문자를 배워야 하냐고 물어왔다.
이에 여기에 월 총관이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무공은 어떻게 배우게?”
“장주님이 알려주신다고 했어요.”
“그래, 그런데 온종일 연이 너를 붙잡고 무공서를 읊어주시지는 않겠지?”
“…….”
“자, 그러면 빠져나갈 생각은 그쯤하고 시작하지.”
할 말이 없어진 남궁연은 동생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천자문을 펼치고는 하늘 천(天)부터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에 걸친 철저한 교육을 거치자 문자를 읽고 쓰는 데에 있어서 큰 문제가 없어졌다.
가르치는 재주가 있는 스승과 받아들이는 재주가 있는 제자의 만남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리고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은 월 총관은 남매가 무공을 익힐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오냐.”
총총걸음으로 별관을 나선 남매는 기대로 부푼 마음을 가지고 마당으로 향했다.
후우-
늘 그러하듯, 송윤천은 정자에 늘어지게 앉아 연초를 피워대고 있었다.
“이것만 마저 피우고 시작하지.”
“그러면 이제부터 스승님이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그렇게 거창할 필요 없다. 난 그냥 장원의 주인일 뿐이니까.”
“예?”
“나는 되었으니 월에게 스승이든 사부든 편한대로 부르거라. 월도 나를 도와 너희를 가르칠 터인데 아저씨라 부르는 건 서로 어색할 게다.”
“네 장주님!”
“맞아요!”
“좋다.”
너털너털 자리를 털고 일어선 송윤천이 남매의 앞에 섰다.
그 모습에 남매는 저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취했고.
“원래 사제(師弟) 관계를 맺을 때는 구배지례(九拜之禮)를 해야 하나 귀찮으니 생략하지. 절 좀 몇 번 안 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송윤천은 그 누구보다도 옛날 사람이었지만, 허례허식 따위는 질색이었다.
‘옛날에는 절을 하니 마니 하는 조잡한 행위는 있지도 않았는데 대체 언제 구배지례가 당연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건 할 생각도, 받을 생각도 없었다.
“예……, 예!”
“그리고 다행히도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 신력 덕분에 자질구레한 선행 과정 몇 가지는 생략하겠다.”
“그래도 되는 건가요?”
“당연히 그래도 된다. 너희는 특별하니까.”
“우리는 특별하다…….”
남매가 그 말을 작게 되뇌었다.
평범, 아니 그 미만의 부족한 삶을 살아왔던 남매였다.
그렇기에 ‘특별함’이라는 말은 생소하면서도 더욱 반갑게 와닿았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