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철컥-
언제 뻗어졌는지도 모를 송윤천의 손바닥이 팽무석의 도두(刀頭)를 밀어쳤다.
이에 맹렬한 기세로 뽑혀 나오던 도가 다시 도집에 꼽히고 말았다.
“어떤 덩치 큰 녀석은 대뜸 한 판 붙자고 달려들고, 어떤 거지 녀석은 음흉하게 멀리서 관찰하고, 어떤 무식한 녀석은 도부터 잡고……. 가관이로구나. 가관이야.”
“너, 아니 당신은 누구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도를 뽑아 들려 하다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팽무석이 물었다.
“왜? 지금 와서 내가 누군지 알면 뭐가 좀 달라질 것 같은가?”
달라지는 건 없다.
먼저 도를 뽑으려 했으니 응당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뿐.
그게 바로 무림의 법칙이다.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송윤천에, 팽무석의 관자놀이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그래도 살기는 일으키지 않았으니 사정을 봐주마.”
“봐주다니, 잠시만!”
“자고로 매가 약이라 했지.”
가볍게 툭 빗겨 친 주먹 한 방에 노인의 턱이 돌아가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래, 이게 무림이었지. 정말 한심한 녀석투성이인 세상.’
최근에 송윤천이 곁에 둔 무림인이라고 해봤자 무림맹주 마석동과 풍전이 전부.
둘이야 성정이 그럭저럭 봐줄 만하지만 실상 지금 보이는 게 바로 무림의 현실이며 정파의 실체였다.
힘만을 믿고 남을 깔보는 이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모습.
강자존, 오직 힘만을 숭배하는 세계.
세상은 이들을 굳이 정파니 사파니 마교니 나눈다지만, 송윤천의 시선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중에 착한 놈은 언제나 그리 많지 않았고, 조금 나쁜 놈과 몹시 나쁜 놈은 언제나 많았다.
더 나아가 이게 바로 송윤천이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 이유였다.
‘그 옛날 하나였던 무림이 지금과 같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듯, 세상에 정파만이 남더라도 또다시 정반합을 통해 나뉘고 이런 녀석들이 모여 정(正)이 아닌 사(邪)가 될 터.’
송윤천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 멀리서 익숙한 기운을 가진 몇몇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송윤천이 팽무석을 기절시키고 얼마 후.
딱 제시간에 맞춰서 남은 인원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에휴, 팽가 이놈 이거…….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러게 진작에 성질 좀 죽이라니까.”
그중에 가장 먼저 나타난 풍전은 송윤천과 구석에 처박혀 기절한 팽무석을 번갈아 보다가 단번에 어떻게 됐는지 파악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자신도 송윤천과 첫 만남에 저렇게 맞고 기절했으니까.
다음은 마석동이었다.
“장주.”
“왜?”
“혹시 저놈 죽였소? 아니면 반신불수라든지.”
“멀쩡하다. 괜히 혼자 열이 올라 시끄럽게 굴길래 귀찮아서 조용히 시켰을 뿐.”
“아, 그거면 됐소. 다 큰 사내들이 홧김에 주먹다짐 정도야 할 수도 있지.”
산전수전 다 겪은 마석동은 어디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괜히 유난 떨 것도 없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며 앉았다.
“석동아, 명색이 맹주인데 그렇게 넘어가도 되겠냐?”
풍전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뭐, 사지 멀쩡하게 붙어있고 보나 마나 무석이 저놈 잘못일 텐데.”
그 자존심 강한 팽무석이 어디 가서 맞았다는 소리를 입에 올리겠는가?
그런 일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잠시 후, 진현과 양준혁이 함께 등장했다.
“장주님, 별일 없으셨지요?”
진현은 바로 송윤천에게 달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놈만 빼면 아무 일도 없었다.”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 주시지요. 무석이 저 친구도 성정이 조금 불같아서 그렇지 나쁜 녀석은 또 아닙니다.”
진현이야 이미 송윤천의 신봉자나 다름이 없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라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저기 구석에 나가떨어진 팽무석이 죄인으로 확정된 상태였다.
‘저 젊은이가 누구길래?’
양준혁은 뒤에서 그 장면을 보고 조금 놀란 듯했다.
진현이 분명히 성격 좋은 친구라지만, 이제는 나이도 있고 무림과 화산파에서의 위치도 있어 어디 가서 이처럼 쉽게 고개를 숙이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현, 자네도 화산에서 장주한테 된통 당했나 본데.”
“당했다니, 장주께서 성심성의껏 가르침을 주셨지.”
‘거기에 나머지 둘도 친분이 있어 보이고.’
마석동, 풍전, 진현.
함께 있을 때야 막역한 친우이나 저들의 신분을 보자면 무림맹주와 개방의 태상방주, 화산파의 가장 큰 어른이자 최고수였다.
저 셋이 사내에게 저렇게 예의를 갖추면서도 친근히 대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아, 거기 있지 말고 준혁이 자네도 이리 와서 인사나 드리게. 이분은 송윤천 장주일세.”
마석동이 능청맞게 양준혁을 불러댔다.
“반갑소. 양준혁이오.”
“송윤천이다.”
반말이 조금 거슬렸지만, 황궁에만 가도 이런 부류는 널리고 널려, 적응이 된 지 오래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송 장주가 이렇게 어려 보여도 우리에게는 선배 되시니 이해해라.”
진현은 혹시 양준혁이 팽무석처럼 들이받을까 걱정되어 먼저 양해를 구했다.
“괜찮다. 황궁에서도 한 번 겪었으니.”
“황궁에 그 정도 수준의 무인이 있나?”
진현이 놀라 물었다.
그가 송윤천의 도움을 받아 속세로 나온 지도 어언 삼 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기억과 상식은 수십 년 전에 머무르는 부분이 많았던 탓이다.
“진현, 아무리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지만, 귀 좀 열고 살게나.”
“혹시 금군의 대영반인가? 아니면 동창의 제독?”
마석동 역시 곧바로 황궁 무력을 양분한다는 세력들의 수장을 떠올렸다.
“그 둘 역시 강자이나 나와 비등한 수준일세.”
“그렇다면 누구를 말함인가?”
“천자의 호위대장일세. 천자께서 무공을 겨룰 기회를 주시어 한 번 마주했지.”
“호오……. 어떻던가?”
“젊고 강하더군. 물론 외모가 젊은 게지, 그 실체는 나 역시 정확히 알지 못하네. 정말 젊은 천재인지, 환골탈태의 반복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반로환동인지…….”
황궁은 양적으로 우위를 가지며 무림은 질적으로 우위를 가지는 게 잘 알려진 상식이었다.
“아무튼, 송 장주. 기회가 되면 이 양 모도 그 귀한 가르침을 한 번 받을 수 있겠소?”
주변의 호기심을 해소해준 양준혁이 나름 정중함을 담아 요청해왔다.
“얼마든지.”
“하하, 좋소. 조만간 날을 잡읍시다.”
송윤천은 양준혁의 순수한 도전 정신이 마음에 들어 흔쾌히 그 부탁을 받아 들여주었다.
“그런데 회의는 언제쯤 시작하나?”
송윤천이 여기에 당도한 목적을 떠올리며 마석동에게 물었다.
“저놈도 일어난 것 같으니 시작해야지.”
모두의 시선이 구석에서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팽무석에게 향했다.
* * *
“으윽…….”
팽무석이 턱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자신은 구석에 처박혀 있는 채였고, 저 원탁에서는 시끌시끌하게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눈을 몇 번 껌벅이니 흐릿한 시야가 제대로 잡혔다.
무림맹주 마석동과 매화, 풍전, 유수 모두가 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기절시킨 정체 모를 사내까지.
“어이, 무석이 일어났나?”
팽무석이 조심스럽게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대화를 나누던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 사이에는 당연히 송윤천도 있었다.
팽무석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자신 따위를 가볍게 제압한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때, 진현 진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팽무석에게 다가왔다.
“무석이, 몸은 괜찮나? 어찌 된 일인지는 대충 들었네. 물론 몰랐으니 실수할 수도 있지. 자네도 사람이니 말일세.”
진현은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선 팽무석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의 친절은 딱 거기까지였다.
“다만 자네도 앞으로는 명심하게나. 저분은 화산의 은인이시네. 그러니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용서치 않겠네.”
진현의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으나 눈은 그렇지 않았다.
“…….”
그 모습에서 팽무석은 자신이 최고인 줄로만 알았다가 처음으로 진현이라는 벽을 마주했을 당시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다.
열등감.
팽무석은 맹호가 되었지만, 진현 역시 매화가 되었다.
매화는 굳이 검을 꺼내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에 날카로운 검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일세. 자, 어서 자리에 앉게나. 모두 모였으니 슬슬 시작해야지.”
진현은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기며 팽무석이 자리에 앉기를 유도했다.
이 정도의 작은 소란이야 무인이 둘 이상 모이면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팽무석은 유일하게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마석동이 맹주이자 오늘로써 새롭게 만들어진 특임대, 통칭 멸사대의 대주로서 회의를 이끌어 나갔다.
“먼저 지금까지 확정된 사실을 밝히자면. 확정된 대원들은 나를 포함하여 여기 있는 우리 여섯이 전부요.”
그리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화양연화가 여덟이고 구성은 아홉이니 이쪽에서 전원이 참여한다면 일단 수적으로는 우위를 가져간다.
“그런데 막상 보니 여섯으로 여덟을 상대해야 한다니.”
오히려 수적으로 열세가 되었다.
충격적인 발언에 그 어느 때보다 얌전해진 팽무석과 누가 있든 관심이 없던 송윤천을 제외한 나머지가 입을 열었다.
“으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쉽지 않겠어.”
“그러면 다른 녀석들은? 무슨 말이라도 없었나?”
“태극과 창천 쪽에서는 폐관 수련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수련을 마치고 나온다면 바로 전하겠다고 하더군.”
“누가 검성 아니랄까 봐 그 두 놈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하네.”
“그놈들은 이름도 검(劍)으로 바꿔야 해.”
매화검성 진현
태극검성 청운
창천검성 남궁겸
여기 있는 진현과 함께 삼대검성이라 불리는 게 바로 태극과 창천이었다.
여기 있는 이들도 다들 목숨 걸고 폐관 수련 한 번쯤은 해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고 넘어갔다.
사실 일부러 폐관 수련을 핑계로 삼는 이들도 있지만, 적어도 그 둘은 그런 부류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신의는? 녀석도 통 소식이 안 들렸는데.”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정말 미안하다고 전해왔네.”
“금강은 어떻게 되었나? 삼천 배라도 하고 있나?”
“그 역시 사정이 있어 힘들다 하였네.”
“각자의 사정이 있을 터이니 이해해야지.”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의 연이은 불참이 안타까웠지만, 어쩌겠는가.
“다음으로는 금군이 포위망을 짜고 화양연화의 이동 경로를 파악 중이네.”
“위치상으로 본다면 사방을 막아낼 수는 없을 터인데?”
풍전이 매섭게 허점을 찌르고 들어왔다.
공동파가 자리한 공동산은 감숙성과 사천성의 경계에 있다.
“가장 가까이로는 조금만 남하한다면 사천성이며 서쪽으로는 청해성, 동쪽으로는 섬서성, 가장 멀리 북상한다면 북원이 점령 중인 초원이지.”
마석동이 전도(全圖)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또한, 아무리 금군이라 하여도 사천과 섬서까지만 영향력을 가질 뿐, 사실상 북의 초원과 청해성은 포기해야 했다.
“화양연화 그 녀석들, 괜히 공동파를 친 게 아니었군. 탈출로를 생각하고 친 게야.”
양준혁의 발언에 마석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와룡당주가 올린 보고로 진작에 파악했기 때문이다.
“금군과 무림 모두의 손아귀를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는 위치지.”
“그렇다면 놈들의 다음 행선지로 유력한 곳은 어디인가?”
“그건 짐작이 가지 않는군. 와룡당에서도 전해지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측 중이고.”
사실 화양연화에 대해 밝혀진 사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별호와 특징을 비롯하여 몇몇의 출신 성분 정도가 전부.
“천살성은 사마세가, 무학사는 제갈세가, 시마는 마교 그리고 나머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심지어 정, 사, 마를 가리지 않고 표적으로 삼기까지 하지.”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으나 먼저 화산파와 종남파, 아미파와 사천당가, 청성파는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어.”
“마교나 북원에 붙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나?”
“그것 역시 염두에 둬야겠지. 제대로 미친 녀석들만 모인 거라, 범인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야.”
대화는 돌고 돌뿐.
결국, 회의랍시고 모였지만 제대로 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송윤천은 더 들어도 도움이 되지는 않겠다고 여겨 먼저 일어섰다.
“장주 어디 가시오?”
“따로 알아보러 다녀오마.”
“오, 그렇다면 나도 장주와 같이 가겠소.”
풍전도 여기서는 별 소득이 없겠다고 여겨 차라리 송윤천을 따라가겠다며 나섰다.
‘장주라면 뭔가 특별한 계책이 있겠지.’
하지만 송윤천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풍전을 저지했다.
“넌 안되지.”
“응?”
단호한 거부에 어디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는데.
“곧 있으면 저녁이니 배달할 사람은 있어야지.”
“아…….”
풍전이 바로 이해하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