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69
69화
무공에 흔히 붙는 표현을 꼽아보자면 대(大), 왕(王), 천(天), 신(神), 용(龍) 등을 꼽을 것이다.
각자 가진 뜻은 다르지만, 하나 같이 대단하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당장 이무기라는 말을 듣고 넋이 나가버린 풍전만 하더라도 개방의 절기인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을 수련했다.
모르긴 하지만, 양준혁 역시 익힌 무공에 이런 표현이 여럿 들어갈 터이고.
“장주, 정말 용을 만날 수 있는 거요?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고?”
너무나도 큰 충격에 잠시 넋이 나갔다가 간신히 정신을 붙잡은 풍전이 재촉하듯 질문을 던져왔다.
“다 늙어서 호들갑은. 용이 아니라 이무기라 하지 않았나.”
함께 폭우를 헤쳐 나아가고 있는 송윤천이 답했다.
“후, 용이나 이무기나 뭐가 다르오. 진정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인데.”
풍전의 반응이 크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백 년을 넘게 살며 천하에 드러나지 않은 신비가 있음을 짐작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으니.
“그런데 장주. 길은 알고 있소?”
뒤에서 따라오던 양준혁이 물었다.
곤륜산맥에 진입한 셋은 현재 곤륜파를 향해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문제는 풍전이나 양준혁이나 곤륜파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알고 있으니 내가 선두를 맡았지.”
“거참, 신기하구려. 아니, 이제 이 정도는 신기하지도 않은가.”
양준혁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송윤천이라는 존재는 그에게 있어 이해 불가의 대상이었으니.
“내가 다 신기할 노릇이군. 구파일방이니 뭐니 하더니 정작 교류는 없었나?”
“크흠, 거리가 거리지 않소. 그리고 저들이 워낙 폐쇄적이기도 하였고.”
풍전이 부끄러운 나머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물론 그의 변명에도 분명히 이유는 있었다.
그 말처럼 곤륜파는 중원의 서쪽 끝자락에 동떨어져 있으며 외부와의 교류가 없었으니까.
‘이 상황에서 나도 딱히 할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곤륜파와 접촉한 게 정마대전 당시였으니…….’
이것도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장주. 이러면 화양연화는 놓치게 되는 게 아니오?”
용? 이무기? 전설 혹은 신화와도 같은 존재를 만나러 가는 일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설마 그 송윤천이 감당하지 못할 일에 자신들을 끌어들이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자신들은 화양연화를 추격하는 도중이었는데 이건 옆길로 새는 게 되지 않는가.
“내가 아는 천살성이 맞다면 놈은 분명 여기에 있겠지.”
아직 확신은 아니지만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괴력난신으로서 천살성의 맹목적인 목표는 모든 생명의 소멸.
하지만 명백히 아직 거기에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과거 송윤천이 겪었던 여러 천살성이 그러했듯 본능적으로 더 강한 힘을 갈구할 터.
이 상황에서 승천을 앞둔 곤륜의 이무기가 옆에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이무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동시에 가장 취약한 순간.’
천살성은 절대 이 순간을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두르지.”
너무 늦으면 안 된다는 조급한 마음에 송윤천이 박차를 가했다.
“여기서 더 말이오? 장주! 장주! 같이 좀 갑시다.”
예상치 못한 속도에 놀란 풍전이 송윤천의 뒤를 바짝 쫓았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홀로 남은 양준혁은 자신의 처지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처량한 신세는 둘째치고 혼자 남아서 어디 있는지도 모를 곤륜파를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같이 좀 갑시다. 같이!”
이내 이를 악물고 풍전의 뒤를 따랐다.
* * *
천살성 사마성, 심안 은소소, 혈화백 강휘 그리고 시마까지.
감쪽같이 사라졌다던 화양연화 일행은 송윤천의 예상과 같이 곤륜산맥 어귀에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곤륜산맥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청해성으로 시선이 끌린 사이 사천을 시산혈해(屍山血海)로 만들었을 텐데.’
와중에 한 가지 변수가 생겼으니 화양연화의 수장 천살성의 변덕이었다.
“우리는 곤륜으로 간다.”
당연히 의문이 앞섰다.
공동파도 어렵지 않게 처리했으니 이번에는 곤륜파를 치겠다는 생각인가?
굳이 세상과 단절되다시피 한 무리를?
하지만 곁을 지키는 심안은 믿는다는 듯 침묵으로 동의했으며 혈화백은 전적으로 천살성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하였다.
결국, 질문을 던지는 것은 시마의 몫이었다.
“곤륜으로 가야 하는 이유가 있나?”
뭔가 거창한 이유라도 있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라……. 어이가 없군.’
정말 제대로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물론 시마는 거기에 대고 반항하지 않았다.
서로 간에 상하 관계는 아니었다만 이미 넷 중 셋이 그러겠다는데 이 상황에서 혼자서 무얼 어찌하겠는가?
그런데 막상 곤륜산맥에 들어서자 천살성의 예감이 완전히 틀리진 않았구나 싶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모양이로군.”
시마와 심안은 지금 동굴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것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발작이라도 일어난 듯 천살성의 상태가 이상해졌던 탓이다.
결국, 인근의 동굴을 발견하여 천살성 홀로 깊이 들어간 상황.
그게 벌써 사흘 전이었다.
‘마치 혼자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중얼거리던데.’
마공을 수련하다가 미친 녀석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증세였기에 시마에게는 이런 발작조차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혈화백은 좋은 풍경을 그리고 싶다며 동굴을 나섰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는데 뭘 그리겠다는 건지.’
이런 행동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심안도 시마도 혈화백의 외출을 막지 않았다.
“…….”
화양연화에 합류하고서 몇 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처럼 심안과 시마 둘이 남겨진 상황은 처음이기에 둘 사이에는 어색함이 흘렀다.
천살성의 발작이 언제쯤이면 멈출지, 혈화백은 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
며칠째 마냥 기다리는 것도 지루할 무렵에 시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질문 하나 해도 되겠나?”
그러자 심안 은소소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좋아요. 마침 저도 어르신께 궁금한 게 있는데요. 공평하게 하나씩 주고받는 건 어떨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어.”
사상 최악의 악인들이라 불리는 자들이 공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이상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이들은 아니었다.
“자네의 목적은 뭔가?”
시마가 화양연화에 합류한 이후 지난 몇 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홍일점을 제외한 나머지와는 적당한 교류가 있었다.
당연히 서로 간에 진심이 아니었기에 깊은 전우애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상대에 대해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정도 눈치도 없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테니까.’
무학사는 무공을 학문의 관점에서 극한의 효율과 성취를 추구하는 자였다.
파안대소는 오직 즐거움만을 추구했다.
혈화백은 무림과 무인을 혐오했다.
홍일점과 소수마녀는 자신과 이렇다 할 대화가 없어 그 목적을 알 수 없었다.
천살성은 모든 생명을 죽이는 일이 옳다고 믿는 자였다.
마지막으로 눈앞의 심안, 은소소는 이해하기 힘든 여인이다.
겉으로는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원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다점 ‘청연’의 주인이 바로 그녀였다.
원한다면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쥘 수도 있을 터.
비록 눈이 멀었다지만, 보이는 자들보다 많은 것을 보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이들과 어울리는 걸까.
거기에 은소소가 답을 밝혔다.
“목소리를 찾고 있어요. 제 눈과 가족, 집안. 제 모든 걸 앗아간 목소리요.”
그녀의 전부를 가져간 원수에 대해 기억하는 건 그 잔인한 목소리 하나뿐이었다.
“복수였군.”
“너무 뻔했나요?”
은소소가 괜히 미안하다는 듯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 행복은 거기서 거기라지만, 불행은 셀 수없이 많은 모양새라네. 나는 오늘 자네로 인하여 새로운 형태의 불행을 접하게 된 셈이지.”
시마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한다는 듯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는 제 차례인데…….”
은소소가 고마움의 표시로 그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말하게나.”
“대체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시는 거죠?”
“…….”
예상치 못하게 날아든 질문.
순간 시마가 당황했다.
시마가 고개를 돌려 은소소와 시선을 마주쳤다.
아니, 정확히는 시마가 일방적으로 은소소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이 멀었기에 그저 시마와 마주 보고 있을 뿐.
대신 그녀는 앞선 말처럼 시마의 심리를 꿰뚫어 보았다.
지금껏 쭉 그래왔던 것처럼.
물론 그녀라고 해서 모든 감정을 알아채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강렬한 감정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었다.
시마에게서 느껴지는 건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극도의 공포.
애써 숨겨보려 해도 그녀의 심안(心眼)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시마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거짓으로 꾸며내지는 않았다.
“교(敎)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시마는 천마신교를 저버린 배교자.
그러니 본교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태어날 무렵부터 삼백 년 가까이 속해있던 곳을 마교라 멸칭하지도 않았다.
“남들이 교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거기에 모르는 사실을 조금 더 아는 정도지요.”
은소소 역시 그의 태도를 짐작하고 에둘러서 교(敎)라고 표현했다.
그녀에게 천마신교는 신교도, 마교도 아니었기에.
이처럼 작은 배려에 불과했지만, 시마는 그런 은소소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조금은 편안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천마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교주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건 잘못된 표현일세. 중원에서는 교주를 보고 천마라 부르곤 한다만……. 그는 어디까지나 교도를 이끄는 교주일 뿐이지 천마가 아닐세.”
“천마가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로군요.”
은소소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성화(聖火)를 알고 있는가?”
“들어는 봤어요.”
“성화는 교에 전해 내려오는 신물일세.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며 동시에 마기에 반응하는 불이지.”
갑자기 대화의 주체가 천마에서 성화로 훌쩍 넘어가 버렸다.
“그렇군요. 어르신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네요.”
은소소는 이게 갑자기 뭔가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나서면 대화의 흐름이 끊겨버릴까 싶어서 시마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교를 떠나기 전, 성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네. 최소한 내가 기억하는 지난 삼백여 년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섭게.”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마기에 반응했다……. 그렇다면 설마?”
하지만 대화는 천살성의 등장으로 인해 툭 끊기고 말았다.
“미안하게 됐군.”
은소소로서는 그로 인하여 시마와의 대화가 끊겨버린 게 다소 아쉬웠지만 괜찮았다.
언제라도 여유가 생긴다면 오늘 듣지 못한 말을 마저 들을 기회가 있을 테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시마 어르신 덕분에 지루하지도 않았고.”
심안은 천살성을 아무렇지 않게 반겨주었다.
하지만 시마는 무언가 어색한 걸 느꼈다.
‘분명히 분위기가 바뀐 것 같은데.’
평소와 같이 스치기만 해도 찢겨나갈 것만 같은 날카로운 살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살기가 사라진 빈자리에는 평소와는 다른 묵직한 중압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옆에 있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은 분위기.
“마침 저기 강 대협도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셨네요.”
은소소가 입구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예상처럼 머지않아 자리를 비웠던 혈화백이 몸에서 진한 피 냄새를 풍기며 등장했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무슨 일을 벌였을 테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의도치 않게 지체되었으니 서두르지.”
넷은 동굴을 나서서 여전한 빗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쪽이다.”
천살성은 자신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따라나섰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