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아직 곤륜에서 벌어진 천살성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았을 시기로.
송윤천과 그 일행이 막 곤륜을 나설 무렵.
중원 곳곳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무림맹에 모여들었다.
“다들 소문은 들어서 아실 겁니다. 공동파가 화양연화에게 멸문지화를 당했지요.”
이 비극적인 소식은 일파만파(一波萬波) 멀리 퍼져 나갔다.
비록 최근에 와서는 공동파의 기세가 옛날 같지 않았다지만 엄연히 구파일방의 일원.
“물론 천운이 따라주어 외부에 있던 몇몇 제자가 공동파의 역사를 계승할 수는 있지만…….”
현실은 암담했다.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공동파는 과거와 같은 공동파가 아닐 것이며 역사 깊은 구파일방의 시대 역시 막을 내렸다는 사실을.
무림맹 역시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이처럼 자리를 비운 맹주의 지엄한 명에 따라 소집령이 떨어졌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화양연화로 인하여 길었던 평화의 시대는 끝났다고 여겨집니다.”
제갈과.
자리를 비운 무림맹주의 대리이자 와룡당주이자 총군사를 겸임하는 이의 강한 발언이 대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귓가에 매섭게 꽂혀 들어갔다.
“누군가는 성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예,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당장 그 위기가 우리에게 또 여러분에게 닥쳐오지는 않았으니 말이지요.”
겉으로는 정파는 하나이며 무림맹 아래에 한뜻, 한마음으로 뭉쳤다고 하지만 막상 그 속내는 전혀 다르다.
지금도 속으로는 공동파가 영향력을 떨치던 지역에 어떻게 손을 뻗을 수 있을지 고심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고,
또, 감숙성에서 벌어진 비극이 저 멀리 하북, 산동, 안휘까지 영향을 주진 않으니 남의 일이라 생각하는 자도 있을 테다.
“하지만 맹주님의 전언이 그러하듯 조금 늦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이제는 무림맹 차원에서 하나가 되어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서야만 합니다.”
만약 이번 일을 아무렇지 않게 유야무야(有耶無耶) 넘겨버린다면?
앞으로는 그 누구도 정파를 그리고 무림맹을 믿지도 지지하지도 않을 게 분명하다.
“이 의견에 모두 동의하십니까?”
“…….”
와룡당주가 다른 의견이 있다면 밝히라는 듯 잠시 말을 끊었으나 회의실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침묵은 곧 동의.
와룡당주가 그 뜻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언을 이어갔다.
“좋습니다. 그럼, 우선 외부의 적을 상대하기에 앞서서 내부의 적을 단속하겠습니다. 권한은 무제한이며 시기 역시 무제한입니다.”
현실적으로 무림맹에 가입된 구파일방 혹은 오대세가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들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무림맹에 한 다리쯤 걸치고 있는 게 사실이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출신이나 문파와 가문을 떠나 무림맹에서 일하는 자들.
분가 혹은 속가제자들과 충성을 다하는 무리.
또 그들과 끈을 만들어 무언가를 주고받는 자들.
과연 그들은 한 점 부끄럼도 없을까?
그중에서 지저분한 뒷주머니를 차고 있는 이가 한 명도 없을까?
“그러니 부디 여러분 모두 만반(萬般)의 준비를 마치길 바랍니다. 후회할 때는 이미 늦은 법이니.”
부재중인 맹주 대리이자 와룡당주의 호소력 짙은 말에 감히 반기를 드는 이는 없었다.
여기서 목소리를 높인다는 건 어딘가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모두 살펴가십시오.”
와룡당주의 마지막 발언으로 회의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아직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모르는 게 있으니 이건 선포가 아니라 통보라는 사실이었다.
‘이미 각지로 감찰관이 출발했으니 지금쯤이면 신나게 털고 있으려나.’
우연인지 아닌지, 와룡당주의 시선이 문득 태양이 저무는 방향을 따라 서쪽으로 향했다.
너무 멀어서 보이지도 않는 그 끝에는 무림맹 최서단 격이목 지부가 있었다.
* * *
“젠장……, 이러니까 표국에서 삼 년만 일해도 치질은 기본이라고 하지.”
무림맹주 마석동의 직할부대 소속 박문수는 엉덩이에 알이 배길 지경이었다.
무림맹을 나서서 한 곳에 들려 몇 시진에 걸쳐 감찰이 끝나면 또 말에 올라 이동하기를 반복했던 탓이다.
“정말 우리 맹주님도 너무하신다니까.”
박문수가 투덜거렸다.
앞에서야 감히 뱉지 못한 말이지만, 알게 뭔가 지금 당장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자신뿐인데.
위대하신 마석동 맹주님께서 화양연화를 추격하기 위하여 무림맹을 떠나시기 전, 직할부대를 모아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마 내가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데 너희들은 여기 처박혀서 놀고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예? 그러면요?
-나이들 처먹고 봉급도 빠짐없이 잘만 받아먹는데 다들 밥값은 해야지? 몸도 좀 찌뿌둥하고 할 일도 없어서 심심할 텐데 나 없을 때 감찰이나 한 번씩 다녀와.
-감찰이요?
-왜? 싫냐? 싫으면 나랑 같이 가고. 아, 대신에 뒤처지면 각오해야 할 거야.
-어휴, 감찰 정도야 마실이라도 갈 겸 다녀오죠. 그렇지 애들아?
-예!!!
-그렇습니다!!
거기서 부대장의 질문에 차마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감찰 가기 싫다고 하면 정말 맹주님을 따라가게 될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운칠기삼이라고 알지?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운구기일이야. 알아서 잘 뽑아봐.
“젠장, 하필이면 청해성을 뽑아서 이 개고생을 하네.”
종이에 감찰에 나설 지역을 적은 뒤 통에 넣고 한 장씩 뽑았는데 하필이면 박문수 자신이 가장 먼 청해성을 뽑은 게 아니던가.
호북을 뽑은 녀석들은 눈물이 나도록 좋아했다.
하물며 근방의 하남, 섬서, 안휘, 중경, 호남, 강서를 뽑은 녀석들도 시시덕거렸고.
사천을 뽑은 막내 녀석이 울상을 짓길래 박문수는 출발하기 전에 뒤통수를 한 대 강하게 갈겨주고 나선 참이었다.
“뭐, 그래도 일은 일이니까. 이왕 맡은 거 확실하게 해야겠지.”
무림맹주나 부대장이나 제 할 일만 하면 아랫사람이라고 해도 한없이 편하게 대해주지만, 혹시나 잘못이 걸리기라도 하면 정말 마귀가 따로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여기가 마지막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말에서 내려선 감찰관 박문수는 무림맹 격이목 지부의 대문에 다가섰다.
“거기 멈추고 신분부터 밝히시오.”
대문을 지키던 무사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둘 다 얼굴에 피멍이 가득했다.
“무림맹에서 감찰관으로 방문한 박문수라 하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여기 있으니 확인하게나.”
한 명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남은 한 명이 다가왔다.
“격이목 지부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박문수에게 무림맹에서 발급한 호패를 받아, 자세하게 확인한 다음에야 약간 이나마 경계를 늦췄다.
“고맙네, 지부장은 지금 어디에 있나?”
“지부장께서는 업무 중이시니 집무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입니다.”
박문수는 무사를 따라 지부장을 찾아가며 내부를 유심히 살폈다.
외부의 습격에 대한 방비는 철저한지, 지부원들의 상태는 전반적으로 어떠한지, 장비는 멀쩡한지.
‘괜찮군.’
지금까지 박문수가 감찰을 시행한 여섯 건 중에서도 이곳 격이목이 단연 최고였다.
“맹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명을 받고 살펴보기 위해 왔으니 협조하면 고맙겠소.”
“예, 얼마든지 좋습니다.”
지부장 역시 살이 조금 쪘고 무사들과 같이 얼굴이 퍼렇게 물들어 있었지만, 자세는 나쁘지 않았다.
박문수는 몇 시진에 걸쳐 감찰을 진행했고, 사소한 몇몇 부분에서 발견된 미흡함을 제외하면 대부분 합격점을 주었다.
“물론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훌륭하오. 조금만 더 지금처럼 고생해주시오.”
“시국이 흉흉하니 살펴 가십시오.”
지부장은 끝까지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하며 좋은 평가와 함께 감찰관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드디어 끝났다! 드디어……!”
얼마 전에는 풍전에게 죽도록 맞고 또 오늘은 감찰관의 기습적인 방문까지.
정말 근래에 다시 없을 불운을 연이어서 겪었지만, 이제는 정말 끝난 모양이었다.
지부장은 감격에 찬 모양인지 눈물을 찔끔 흘리고 터질 듯한 볼을 부들거렸는데, 보기 좋지 않았다.
“총관! 당장 기루에 연락하시게. 오늘 화려하게 놀아 젖힐 테니!”
“지부장님…….”
“총관, 왜 그러나?”
“역시 화통하십니다-! 저는 지부장님께서 변한 줄 아셨지 뭡니까.”
“어허, 사내로 태어나서 그렇게 쉽게 변하면 쓰겠나! 뭐하나. 한시가 아까운 마당에 어서 준비하지 않고!”
옛말에 거소습 불이여구(渠所習 不以與狗)라 하였다.
개는 똥을 먹는 버릇을 고칠 수 없다는 뜻인데 꼭 격이목 지부를 꼬집어 말하는 듯했다.
지부장을 시작으로 총관과 그 아래 지부에 소속된 전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만취했다.
“히끅-! 오랜만이라 그런지 금방 취기가 올라오는구나-! 여봐라! 무엇 하는가! 어서 풍악을 울리지 않고!”
지부장은 지난 고초를 싹 잊어버리겠다는 듯 가장 앞서서 즐겼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아직 그들이 겪을 고초는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콰아앙-!
지부의 대문이 완전히 박살 나는 굉음과 그 자리에 피어나는 먼지에 모두가 움츠러들었다.
“야……, 재밌네, 이 새끼들 참 재밌어.”
그리고 그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아주 담담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다지 큰 목소리가 아니었음에도 시끌벅적하게 술판이 벌어지던 격이목 지부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모두의 시선이 천천히 고개를 꺾어 귀에 익은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거기에는 풍전이 서 있었다.
* * *
솔직히 풍전은 자신이 직접 나섰으니 아주 조금이라도 변할 줄 알았다.
피, 땀, 눈물이 흐를 정도로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한 번 크게 혼이 났으니 생각이란 게 있다면 하는 척 정도는 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했었다.
“허허……, 내가 미친놈이지. 내가 미친놈이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십수 년에 걸쳐 해이해진 격이목 지부 역시 변하지 않았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이거지.”
격이목 지부를 둘러본 풍전은 너털웃음과 함께 왠지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지으려 의도한 게 아님에도 어이가 없어서인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대, 대협, 그게 아니고. 제가 말씀드릴 터이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양옆으로 기녀를 끼고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던 지부장이 냉큼 풍전 앞에 달려와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너희는 사람 말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니 지금부터는 사람 새끼가 아니라 개새끼다.”
풍전은 지부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예? 대협. 저희가 개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가 애써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봤지만, 풍전이 여기에 속아 넘어갈 리가 없었다.
“허허, 어디 사악한 마두가 환술을 건 모양이로다. 개가 짖지는 않고 사람 말을 지껄이는 게. 가만있자…….”
풍전이 주먹을 꽉 쥐려다가 정말 여럿 잡을 것 같아 힘을 풀고는.
“카아아악-! 퉤!”
손바닥에 찐득한 침을 한가득 뱉어 비빈 뒤 타구봉을 잡았다.
타구봉(打狗棒)
그 의미처럼 개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봉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개 대신 개만도 못한 새끼들을 잡을 셈이었다.
빡-!
“악!”
“악? 개가 악?”
빠악-!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지부장을 향해 타구봉이 날아갔다.
“악……, 깨갱!”
풍악 대신 개 짖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왈- 왈- 왈-! 컹! 컹컹!
그날, 격이목 지부에서 시작된 개 짖는 소리에 답하듯 동네 개들 역시 있는 힘껏 따라 짖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