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82
82화
같은 시각.
홀로 떨어져 이동하던 송윤천은 고민에 빠졌다.
‘은근히 거슬려.’
마치 자신이 혼자 남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은밀하여 그로서도 집중하지 않으면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기척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문제는 현재 송윤천이 처한 상황.
잘 단련된 살수로 추정되는 미지의 존재는 자신을 향해서 살기를 내비치지도 않고 그저 숨죽여서 관찰하는 데에 그쳤다.
게다가 사방이 온통 기관과 진법 따위로 가득한데 그 틈에 숨어 있으니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외부였다면 주변을 일격에 파괴하고 헤집어 놓아서 어렵지 않게 찾아냈겠지만.’
이 통로는 잘못 건드리면 주변까지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자신이야 죽지 않는다지만, 분명 근방에 풍전과 양준혁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송윤천은 꼬리가 붙은 걸 인지한 채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시간을 짐작할 수는 없기에 걸음으로 계산하여 대략 삼만 보 정도를 걸었을 무렵.
자신이 지나온 함정과 미로가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아주 교묘해,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만큼.’
그냥 걷기만 해도 인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몇 걸음마다 방해요소가 등장하니 알아채는 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툭- 툭- 툭-
송윤천이 우측 벽을 가볍게 두드리며 천천히 이동했다.
그러다가 기를 담아서 나아가는 파동이 울리는 순간.
스윽-
검을 가볍게 밀어 넣자 두꺼운 벽이 마치 두부처럼 부드럽게 썰려 나갔다.
그리고 손바닥을 펼쳐 쓱 밀자 조각난 바위가 밀려났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큰 충격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면 붕괴의 위험이 있기에 송윤천은 딱 자신이 몸을 살짝 굽혀서 통과할 수 있을 만큼의 구멍을 뚫어냈다.
“혹시?”
구멍 사이로 밝은 빛이 쏟아졌다.
* * *
한 장 정도 되는 벽에 구멍을 뚫고 통과하자 오랜 세월 밀폐된 공간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훅하고 송윤천에게 날아들었다.
‘아무래도 여기는 내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자신이 뚫어놓은 구멍을 제외하면 사방 그 어디에도 출입구가 없는 거대한 공동.
‘화양연화 녀석들도 여기는 찾지 못한 모양인데.’
공동을 둘러봤지만, 그 어떤 침입자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괜히 따로 보냈나.”
이럴 줄 알았으면 풍전과 양준혁을 데리고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게 있으니 자신에게 거리를 두고 붙은 녀석.
하지만 그 녀석도 이 공동 내부에서는 몸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여기까지 쫓아오지는 않았다.
‘볼 일만 마치고 나갈 터이니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거라.’
드르륵-
송윤천은 원기둥 모양으로 잘린 바위를 들어서 자신이 들어온 구멍을 잠시 막아두었다.
“여러모로 대단한 놈이로다.”
송윤천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눈에 담으며 진시황을 떠올렸다.
천장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값비싼 야명주가 촘촘히 박혀 있기에 햇빛이 비치는 것처럼 공동 내부를 밝혔다.
공동에는 병마용, 그러니까 진흙을 구워 만든 병사들과 말의 모형이 수없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진시황 본인의 위엄을 죽어서도 잃지 않겠다는 듯 하나같이 구척장신을 자랑했고.
아마 이 정도의 집착과 광기 정도는 있어야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 천하의 주인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그리고 이건…….’
벽과 바닥에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 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송윤천이 무릎을 굽혀 먼지가 내려앉은 바닥을 조심스럽게 쓸어내고 문자를 유심히 보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쥐어짜니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천오백여 년 전 사용되었던 문자들.
“연, 조, 위, 제, 한, 초…….”
진시황에 의해 멸망했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문자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세월이 오래 지났고 송윤천 역시 사용한 지가 한참이라 막상 쓰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읽는 건 떠듬떠듬 가능해 보였다.
“쯧, 지독한 녀석.”
자신이 멸망시킨 나라의 문자들은 바닥에, 이후 자신이 세운 진나라의 문자는 벽에 새겨 놓았다.
‘죽는 순간까지, 아니 죽어서도 그 지긋지긋한 정복욕을 놓지 못한 모양이구나.’
괜히 진시황을 위대한 폭군이라 부른 게 아니었다.
그런데 송윤천이 보기에는 이 공간은 뭔가 이상했다.
-……하여 연(燕)이 멸망하였다.
-……하여 조(趙)가 멸망하였다.
-……하여 위(魏)가 멸망하였다.
-……하여 제(齊)가 멸망하였다.
-……하여 한(韓)이 멸망하였다.
-……하여 초(楚)가 멸망하였다.
바닥에 새겨진 연, 조, 위, 제, 한, 초의 문자는 모두가 비슷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각 왕조의 시작부터 역사를 단순하게 나열하며 그 종말은 진시황에게 멸망하는 것으로.
– 시황제께서 진(秦)의 이름 아래 천하를 통일하셨으니…….
벽에 새겨진 진나라의 소전체 역시 딱히 특이하다고 여겨지는 점은 없었다.
시황제 일생과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투성이.
‘굳이 이런 공간을 만든 이유가 뭐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입구도 출구도 두지 않은 비밀스러운 공간.
단순히 보여주기식으로 만든 공간은 아닌 듯했다.
“으음…….”
송윤천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당장 아쉬운 건 자신이니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해보려 노력해야만 했다.
‘내가 진시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왜 그랬을까.’
굳이 떠올리자면 무언가를 숨기려는 목적 정도.
“그래, 특히 저 병마용들.”
멀리서 대충 훑어보면 다들 똑같아 보이지만, 그 시대를 겪었던 송윤천이 보기에는 몇몇 구는 조금씩이나마 차이가 있었다.
결국, 직접 나서서 하나씩 확인해보는 수밖에.
‘어차피 당장 떠오르는 건 이것뿐이니.’
송윤천은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확실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끝까지 살펴본 결과, 총 여섯 구의 병마용만이 행색이 달랐다.
병마용이 착용한 갑주의 가슴 왼편에는 각 나라를 상징하는 문자가 짙은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대상을 추렸으니 이번에는 세밀하게 관찰하고 혹여 숨겨진 게 있나 여기저기를 눌러보기도 했지만, 딱히 나오는 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바닥에 새겨진 문장들이 떠올랐다.
“연, 조, 위, 제, 한, 초가 멸망하였다.”
누구에게? 진시황에게.
진시황은 그들의 문화와 문자를 포함한 잔재마저 깨끗이 지우려 했다.
‘그렇다면 혹시?’
뭔가 번뜩하고 떠오른 송윤천이 먼저 한나라를 상징하는 병마용을 파괴했다.
그리고 진시황이 멸망시킨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조, 위, 초, 연, 제를 상징하는 병마용마저 파괴했다.
“이게 아닌…….”
자신이 잘못 집고 괜한 짓을 한 건 아닌지 고심하려 할 때.
드드드드득-
마치 지진이라도 발생한 것처럼 바닥이 마구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송윤천이 파괴한 여섯 구의 병마용을 제외한 나머지 병마용들이 위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더니 저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모든 움직임이 끝나자 병마용들이 원을 그리고 물러나면서 텅 빈 중앙에는 진(秦)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문이 바닥에 생겨나 있었다.
“황제를 알현하기라도 하란 말이더냐?”
송윤천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했을 진시황을 떠올리며 바닥에 생긴 문을 활짝 열어 재꼈다.
“드디어 찾았다.”
아래는 황금, 위는 유리처럼 안이 비치는 재료로 만들어진 거대한 관.
“불로불사를 꿈꿨던 진시황이여.”
그 안에는 이 거대한 무덤의 주인이 살아생전 그 모습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 * *
혹자는 과거 춘추전국시대를 낭만이 넘치던 시대, 원대한 야망의 시대로 포장한다.
“꼭 안 살아본 놈들이 그따위 헛소리나 지껄이지.”
하지만 송윤천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라고 완전한 평화는 아니지만, 그가 기억하기로 당시는 정말 피로 피를 씻어내는 그런 시대였으니까.
그리고 바로 지금.
송윤천의 눈앞에 그 시대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니 눈을 감은 시신의 주름과 점까지 아주 세세히 들여다보였다.
“이런 꼴로 죽었나.”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진시황은 잔인무도하면서도 패기가 넘치는 젊은 정복 군주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놓인 시황제의 시신은 어떠한가.
수은 중독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허언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뼈만 남아서 앙상해진 몰골에 피부는 거칠고 더러웠다.
또한, 이마에 깊게 새겨진 주름에는 생전의 광기가 담겨 있었다.
“고작 반백 년에 이룩한 업적을 영원토록 남겨두려 했구나.”
아마 진시황은 몰랐을 터다.
자신이 통일한 나라가 사후 몇 년 만에 흩어질 줄은.
“그래도 고맙다고 말해주마.”
송윤천이 시황제의 시신을 향해 애도와 감사를 표했다.
만통자가 그에게 스리슬쩍 언질을 주었던 무한팔괘진(無限八卦陣).
혼백을 영원히 현세에 붙잡아 둔다는 천고의 절진의 중심이 바로 이 황금관이었다.
“혼백으로 남아서 또다시 천하를 통일하지는 못하겠지만, 위기에 빠진 천하를 구할 수는 있을 터이니.”
투명한 관 뚜껑 위에 살포시 손을 올린 송윤천이 눈을 감고 기감을 펼쳐 무한팔괘진을 파악하였다.
진법에도 일가견이 있기는 하다만, 워낙 복잡하기에 이걸 단박에 따라 만들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송윤천은 먼저 무한팔괘진에 남아있는 기운을 남김없이 흡수하였다.
‘내가 아니었어도 몇십 년 안에 흩어졌겠어.’
천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기도 하거니와 당시 무한팔괘진을 설치한 진법가 역시 내공이 대단한 건 아니었기에 진법에 남아있는 기운은 미미했다.
그로 인하여 무한팔괘진의 작동이 멈췄으니 진시황의 혼백 역시 계속 현세에 남아있을 수는 없다.
“미련 없이 떠나거라.”
문득 미약한 울부짖음이 송윤천을 스치듯 지나갔다.
허무하게 혼백이 떠나자 강제로 유지되고 있던 진시황의 시신 역시도 먼지가 되어 관 내부에 내려앉았다.
‘이제 네놈만 여기 눕히면 끝이겠구나.’
이로써 환경은 갖춰졌으니 남은 건 천살성의 혼백을 무한팔괘진으로 영원히 봉인시키는 것뿐.
용건을 마친 송윤천은 우선 이 공간을 벗어나 다시 병마용이 가득한 공동으로 올라왔다.
신기하게도 송윤천이 파괴한 여섯 병마용이 다시 자리했다.
‘모르는 놈은 들어가지 못하겠어.’
혹여 자신이 천살성을 사로잡기 위해 떠난 사이 불청객이 들어설까 내심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송윤천은 원기둥의 바위를 쓱 밀어내고 난 구멍을 통해 미로로 돌아와 다시 구멍을 막아두었다.
그리고 왔던 길을 따라 미로를 거슬러 나가는 도중.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천살성이 같은 공간에 들어와 있음을 감지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풍전, 양준혁과 헤어졌던 갈림길의 입구까지 도달한 송윤천이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공동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숨어서 은근히 자신의 신경을 자극하고 들던 놈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탓이었다.
‘그놈이 설마?’
그의 시선이 풍전과 양준혁이 들어갔던 통로로 향했다.
‘죽지 말고 버티고만 있어라.’
송윤천이 모자란 둘을 구하기 위해 속도를 내어 빠르게 뛰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익숙한 외침이 들려왔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