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87
87화
심안 은소소가 예견된 죽음을 앞두고 감정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끝없는 갈망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향한 분노와 증오.”
상대에 대한 원망조차 담기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가 천살성에게 닥쳐왔다.
“할 말은 그것뿐인가?”
“이 감정들이 당신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
“죽기 전이라 그런지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천살성은 왜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그녀의 말을 넘기려 했으나.
“그리고 이 거친 감정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진심은……, 공포.”
“공포……?”
저도 모르게 은소소의 말에 집중하게 되었다.
“갈망과 분노에 가려져 있지만……, 당신은 지금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하-, 내가? 너 따위가 감히 할 말은 아닐 텐데.”
감정이 들어간 탓인지 은소소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천살성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당신이 사마일 적에는……, 이런 감정은 없었어요. 전생(前生)에서 뭘 본 거죠? 그리고 어떤 경험을 한 거죠?”
은소소는 호흡이 끊어져 가는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천살성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터억-
“헛소리는 듣기 싫구나. 그만 닥치거라.”
천살성은 더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흡성대법을 시전했다.
“컥-.”
은소소는 실시간으로 전신에 가득한 내공이 빠져나가고 그다음으로는 선천진기가 천살성에게 흡수됨을 느꼈다.
숨통이 조여온 탓인지, 흡성대법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몸에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 팔다리가 제 것인지도 모를 정도.
이제는 목을 쥐어오는 압박에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와 다르게 천근만근 같은 눈꺼풀이 내려온다.
태어날 적부터 보이지 않았던 눈이 감겼다.
모두가 그러하듯, 죽음을 앞둔 은소소 역시 미약한 청각만을 남겨두었을 무렵.
“천살성.”
젊은 사내의 묵직한 목소리가 천살성으로 인해 고요해진 공동에 울렸다.
그와 함께 천살성의 흡성대법이 멈춰 섰고, 은소소의 목을 쥐고 있는 손아귀마저 풀어졌다.
하악- 하악-
‘이 목소리는…….’
거친 호흡과 함께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도중.
은소소는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주마등처럼 과거를 떠올렸다.
* * *
태어날 적에는 중팔 혹은 중칠 따위로 불렸다.
이후 흥종, 덕유로 불리다가 원장(元璋)으로 개명하였다.
대명을 세운 태조, 홍무제 주원장은 천민 출신의 고아에서 전염병을 이겨내고 스스로 일어나 황제가 되었다.
벌써 한참 지난 얘기다.
물론 그 전이나 이후로도 고아였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스스로 일어난 경우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다가 나오는 한두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고아는 불행한 삶을 얼마 이어가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명백히 어린 시절의 은소소는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와 다름없는 신세였다.
그녀가 돌이켜 떠올리기로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나눈 적이 없었다.
어쩌면 태어날 적부터 눈이 먼 자식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소소가 지금은 심안(心眼)이라 부르는 이 능력을 발휘한 이후.
남보다 못한 부모는 그녀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그녀 앞에 데려와 속내를 관찰하게 했다.
이에 감명받은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은소소를 작은 성녀님이라 불렀다.
부모는 이름도 모르는 신을 만들고 떠받들며 성녀를 보필하는 교주가 되었다.
당시 은소소는 워낙 어리기도 했고, 세상에 대한 정의가 똑바로 서지 않았기에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익숙하지 않은 냄새를 물씬 풍기는 사내가 자신을 찾아왔었다.
당시의 은소소는 몰랐지만, 그건 사람의 피와 연초가 뒤섞인 냄새였다.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처박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이들과 다르게 사내는 짧은 말을 남겼다.
“네 잘못은 아니다.”
사내는 이 말과 함께 어린 은소소의 손에 나무를 다듬어 만든 지팡이 한 자루를 쥐여준 뒤 훌쩍 떠나버렸다.
그로부터 며칠이 흐르자.
교주와 성도들이 더는 은소소를 찾지 않았고, 그녀는 사내가 남긴 나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처음으로 작은 방안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섰다.
그러다가 우연히 차밭을 둘러보러 온 찻집 주인을 만났다.
찻집 주인은 은소소를 딱하게 여겨 양녀로 삼았고 그녀의 심안 덕분에 상당한 규모의 찻집과 차밭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은소소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복수를 위해 강해졌으며 천살성과 만남으로 화양연화에 이르게 되었다.
-네 잘못은 아니다.
그래, 천살성을 부른 사내의 목소리는 자신을 세상으로 나오게 한 사내와 같은 목소리였다.
짧은 회상을 끝낸 은소소는 심신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졸도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죽고 싶지 않다는 듯, 쓰러진 그녀의 가슴팍이 얕게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 * *
송윤천의 부름에 한 손으로 은소소를 붙잡고 있던 천살성의 행동이 완전히 멈춰버렸다.
천살성은 땅에 떨어진 은소소를 두고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여기 있었나?”
이건 인연인가 아니면 악연인가.
이 넓은 천하에서 어찌 이렇게 매번 운명과 같이 마주할 수 있는가.
“때가 되면 내가 어련히 찾아갔을 터인데.”
저놈은 왜 자꾸 앞에 나타나서 나를 방해할까.
“옛날에도 그리고 이번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하늘이 우리의 만남을 점지라도 했다는 말인가?”
천살성이 송윤천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섰다.
“불멸자여, 이 또한 하늘이 내게 내린 억겁의 시련이라 여기겠다.”
몇 걸음을 앞두고 마주 보고 선 가운데, 송윤천이 닫혔던 입을 열었다.
“천살성, 너는 절대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이루고자 하는 염원 역시 헛된 망상으로 남을 테지. 과거에도 그러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시간은 나의 편이다. 과거의 나와는 다르다.”
전생(前生)과 전생(轉生)이 있는 한.
천살성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세워져 있었다.
“과연 그럴까?”
송윤천은 자신만만한 모습과 함께 검을 뽑아 들었다.
천살성 역시 금방 익숙해진 송문고검을 쥐었다.
“이 몸이 누구인지 아는가? 태극이라 불리던 녀석인데……, 참으로 재밌더군.”
천살성의 검이 원을 그리며 검무를 추듯 허공에 태극을 그려냈다.
“이런 힘을 가졌으면서 산골에 처박혀 있었다니 참으로 우스워.”
신체의 주인과 정신의 주인이 가진 경험이 합쳐지니 이전 태극 청운 진인이 그린 태극을 뛰어넘었고.
“이대로 두기는 아쉬우니 별수 있나. 내가 쓰는 수밖에.”
손쉽게 완성되어 흑백으로 선명한 태극이 하나에서 둘, 셋, 넷……. 그리고 끝으로 아홉.
“그러니 부디 그대도 재밌기를 바라지.”
사방을 가득 메운 태극의 문양이 송윤천에게 쏟아졌다.
쿠우웅-!
공동에 또다시 한 차례 굉음이 일고 비산하는 흙먼지 속에서 비명이 울려댔다.
천살성의 공격을 막아낸 송윤천은 긴장으로 굳은 얼굴과 함께 쉽지 않다는 감정을 슬쩍 내비쳤다.
그리고 이 모습은.
“앞으로는 없을 것 같구나. 지금, 이 순간이 곧 종말이로다.”
천살성의 갈증과 분노를 자극했다.
‘공포? 내가 이놈에게 겁을 먹어?’
심중에 떠도는 은소소의 말이 깨끗하게 지워졌다.
여기에 송윤천이 통로를 통해 도주하는 모습이 더해졌다.
“그래, 도망쳐라! 도망쳐-! 세상 그 어디라도 쫓아갈 터이니!”
수백 번에 걸친 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낯선 광경에 천살성의 광기 어린 웃음이 더해졌다.
천살성은 곧장 송윤천의 뒤를 쫓았다.
“…….”
괴물이 사라진 공동에 잠시 고요함이 흐르는 것도 잠시.
“삽 아니면 곡괭이 없나? 없으면 아무거나 좋으니 출구부터 확보해라!”
어찌어찌 살아남은 이들 중 누군가 목소리를 냈다.
갑자기 등장했다가 도주한 사내 역시 앞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쉽게 죽을 거로 여겼다.
천살성이 되돌아오면 그때는 또 누가 죽을까.
너? 나? 우리? 전부?
아니, 저 미치광이를 상대로 여기에서 한 명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죽고 싶은 자는 가만히 있고, 살고 싶은 자는 서두르시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와 죽음을 앞두고 숨을 헐떡거리는 자들을 제외한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어디가 짓눌리거나 꿰뚫린 자들.
팔다리가 하나씩 망가진 이들도 힘을 도왔다.
당장 깊은 땅속에 갇혀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생겼는데, 품속에 금은보화가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자 가장 중요해진 건 금은보화 따위가 아니라 바로 목숨이었다.
살고자 하는 강한 집착이 죽고 죽이던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삼인 일조로 나누어 행동하시오!”
“좋소, 뒤로 서시게.”
바위를 쪼개고 돌을 나르고 막힌 입구를 파내기 시작하며 시장바닥같이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 * *
송윤천이 지난 세월에 걸쳐 겪어본바.
가장 우둔한 자가 누구냐 하면 감히 천살성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결국, 네놈은 악감정의 잔유물에 불과하다.’
지금만 봐도 그랬다.
아주 약한 도발에도 눈이 돌아갔지 않은가.
힘이 약하고 강하고는 둘째다.
그전에 자신을 온전히 조절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쿠궁- 쿵- 쿵- 쾅-!
천살성은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거침없이 파괴하며 송윤천을 쫓아왔다.
송윤천은 앞서 나가는 도중에도 잡힐 듯 말 듯 천살성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
몇 장 뒤에서 난데없이 날아온 날카로운 검격이 송윤천의 어깨 부근을 얇게 스쳐 날아가 천장을 무너뜨렸다.
천살성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과 함께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잔해를 부수고 득달같이 송윤천에게 달려들었다.
……이렇듯 때때로는 천살성이 날려오는 검격을 피하지 않으며 아슬아슬하게 맞기도 했다.
‘이 모든 행동은 천살성이 끝까지 증오와 분노에 눈이 돌아간 채로 나를 쫓아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송윤천의 의도는 그대로 적중했다.
지금 천살성에게는 오로지 송윤천을 향한 분노만이 남아 다른 생각은 조금도 떠올리지 못했다.
송윤천과 천살성이 추격전을 이어가는 가운데.
자신을 뒤따르는 천살성을 확인하며 송윤천은 미로를 돌고 돌면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다 왔다.’
송윤천은 혹여나 찾지 못할까 싶어서 떠나기 전 해두었던 표식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 멈춰 섰다.
탁-
송윤천이 갑자기 도주를 멈추고 뒤돌아서자 천살성 역시 그 앞에 섰다.
“네놈……, 무슨 수작질을 부리는 거지?”
조금이나마 머리가 식자 의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건 송윤천의 방식이 아니었다.
‘놈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날 죽여왔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그런데 대체 왜?
그 의문은 바로 풀리게 되었다.
퍼어엉-!
송윤천이 대뜸 손을 옆으로 뻗어 우측 벽을 부숴버렸다.
“이곳에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한다.”
벽 뒤로 드러난 공동.
여기가 길고 길었던 천살성과의 악연을 매듭지을 장소였다.
바로 이곳에 진시황의 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송윤천이 떠나보낸 진시황의 혼백을 대신하여.
“네가 들어갈 차례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천살성이 태극을 그려냈지만.
촤악-
천살성이 가늠조차 하지 못할 만큼 아래로 빠르게 내리그어진 검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태극이 파괴된 자리.
그 뒤에서 송윤천의 검이 천살성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었다.
“이제, 그만 끝낼 시간이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