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88
88화
모든 분야가 다 그러하듯, 무공 역시 강해지기 위해서 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과거에는 어떠했고 지금은 또 어떠한지를 알아야만 더욱 확고한 목표를 세울 수 있고.
노력해야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어야 미래도 있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그건 완성에 가까운 미완성이 될지언정 완성에는 이르지 못한다.
하지만 천살성은 단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물론 변명은 있었다.
그는 꼭 무공이라는 방식에 한정되어 강해진 게 아니었으니.
남들과는 달랐고, 남들보다 빨랐다.
남들과 다르게 그에게는 한계가 없었다.
그래서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몰랐다.
천살성은 언제 어떤 모습이었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강해졌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은 어떤지 떠올릴 시간이 있었다면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삶을 선택해왔다.
그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세상에 유아독존 하는 미래였으니.
만약 송윤천이 지금까지 천살성을 막아오지 않았다면, 천살성의 방식 역시 먹혔을 테다.
하지만 이미 천살성이 가려는 길의 종착지에 도달해 있는 존재가 바로 송윤천.
선지자에게 예언하는 게 아무런 소용이 없듯, 천살성도 매번 실패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천살성은 자신이 거쳐온 전생(前生)의 경험과 깨달음을 떠올렸다.
동시에 현재 자신이 빙의한 태극, 청운 진인의 경험과 깨달음마저도 받아들였다.
수백에 달하는 삶에 고작 하나를 더했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달라졌다.
과거와 다르게 강한 힘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깨달았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천살성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또 받아들였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본능적으로 이게 더 강해지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쿠웅-
“……?”
하지만 송윤천은 여전히 높은 절벽 위에서 천살성을 내려다보듯 했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천살성 네놈이 생각하고 고민한 모든 건 이미 과거의 내가 지나온 길의 초입에 불과하다.”
초입(初入).
그러니까 한참 멀었다는 뜻이었다.
천살성이 새롭게 시작하고 죽고 또다시 시작하는 걸 반복할 때, 송윤천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월 속에서 과거를 쌓고 또 쌓아 나가 현재에 도달했으니.
그 간격은 감히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비교한다는 생각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네가 끝에 도달하여 맞닥트릴 미래가 곧 현재의 나와 같다.”
“웃기는 소리.”
천살성은 송윤천의 논리가 맞아떨어짐을 알았다.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맞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자신의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인정하고 또 받아들이는 건 곧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모양새였으니.
이는 곧 천살성의 전생을 부정함과 같았다.
“글쎄, 지금부터는 웃음이 나오지 않을 텐데.”
송윤천은 이 한 가지 사실만큼은 반드시 알려주고 싶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나는 너를 막아설 뿐이다.”
송윤천의 자조적인 말이 다시 천살성의 충동을 일깨웠다.
감히 자신의 운명을 단정 짓겠다는 듯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억압된 세상을 거스르는 존재.
그 누구도 자신의 대의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 저놈만 먹어치울 수 있다면.’
모든 건 제 뜻대로 이루어지리라.
천살성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어서 저놈을 먹어치우고 만천하를 멸망시키자고.
송윤천을 먹어치운 미래의 자신.
그 강함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번에는 내가 널 죽여주마.”
이 공허함과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천살성이 천살성 그 자체로 존재하기 위하여.
고작 한 명의 불멸자는 치워버리는 게 옳았다.
스르릉-
천살성이 손아귀에 딱 들어오는 송문고검을 앞으로 세웠다.
지금 자신이 깃들어 있는 육신이 과거를 통틀어서 최강은 아니다.
‘하지만, 육신이 전부가 아니지.’
천살성의 혼백과 합쳐진 태극의 육신에 담긴 힘의 크기만큼은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흡성대법을 통해 성장한 과거 초대 혈마를 뛰어넘은 수준이다.
그리고 천살성이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힘을 발출하는 방식.
바로 청운 진인이 평생에 걸쳐 갈고 닦은 태극혜검이었다.
“안타깝지 않나? 이렇게 대단한 무공이 어찌 그 진가를 뽐내지 않았는지.”
천살성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강해지고도 산에 처박혀서 얌전히 지낼 거면 처음부터 가부좌나 틀고 명상이나 할 것이지.’
물론 이런 평가와 다르게 지금은 온전한 자신의 일부가 되었으니 만족할 따름이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이지, 지금부터 이 몸의 검으로 너를 죽일 테니까.”
천살성이 상상만으로 전해지는 짜릿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대뜸 송윤천이 질문을 던져왔다.
“태극혜검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는 알고 있나?”
“알다마다. 장삼봉이라는 녀석이지 않나. 멍청한 나머지 홀연히 우화등선 해버렸다는 녀석 말이다.”
왜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답했다.
태극, 청운 진인의 기억마저 흡수한 천살성이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 그렇게 알려졌지.”
“그게 무슨 소리지?”
“안타깝게도 장삼봉은 태극혜검을 끝까지 완성 시키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그렇다고 우화등선한 녀석을 탓할 수도 없지만.”
천살성과 마주 보고 선 송윤천이 상대를 향해 검을 겨눴다.
“그 녀석이 떠나기 전에 내게 부탁했었다. 자신이 떠나고 세상에 미완으로 남게 될 태극혜검을 완성 시켜 달라고.”
오직 우화등선한 장삼봉과 지상에 남은 송윤천만이 공유하는 비화(祕話)가 천살성에게 살며시 흘러 들어갔다.
“그럼 내가 아는 태극혜검은 불완전하다는 말이더냐? 궁지에 몰리니 미친 소리를 다 지껄이는구나.”
천살성은 송윤천의 말을 허언이라 여기며 부정했다.
태극이 곧 자신이며 자신이 곧 태극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몸이 가진 태극혜검은 이미 완성에 이르렀다고.
부족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무당파에 천재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다만,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버렸지.”
장삼봉이 우화등선하고 수백 년.
과거, 송윤천은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짜며 완성한 태극혜검을 전수하려 무당파를 찾아갔다.
하지만 당대의 계승자는 이미 그들의 방식대로 태극혜검을 완성한 후였다.
무당파는 그들이니 그들의 세월이 완성한 태극혜검이 옳다고 여겨 송윤천 역시 수긍하고 물러났다.
이후 홀로 완성한 태극혜검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니 오늘 한 번 시험해보지.”
송윤천이 여유와 함께 태극을 그려냈다.
“……!”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천살성 역시 빠르게 태극을 그려냈다.
같으면서도 다른 태극이 대칭으로 떠올랐다.
휘이이잉-
서로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태극이 맞부딪치며 공동에 거친 바람이 일어났다.
흑백으로 가득한 태극에 맞서며, 송윤천은 장삼봉이 풍기고 다니던 진한 먹물 향을 떠올렸다.
그래, 그때도 지금과 흡사했다.
서로가 태극혜검으로 우위를 가리고자 했던 날들이 송윤천의 시야에 겹쳐졌다.
* * *
무당산이 먼 옛날 아직은 태화산이라고 불리던 시절.
혼란한 세상살이에 지치고 실망한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도를 찾기 위해 산에 들어와 수련에 임했다.
그리고 일흔두 개에 이르는 봉우리 중 유난히 험난한 봉우리에는 도사이자 무인의 거처였다.
산에 기거하는 수천에 이르는 도사 중에 가장 뛰어나며 무력으로는 천하제일이라는 사내.
지금은 중원에 모르는 이가 없다는 장삼봉이 바로 그 사내였다.
송윤천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장삼봉과 친분을 나누게 되었고, 서로에게 좋은 비무 상대로 지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비무를 마치고 송문고검을 어루만지던 장삼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송 형, 아무래도 떠날 때가 된 것 같소.”
장삼봉은 괜히 혼자 길을 떠나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지금 말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만, 시간이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소.”
“부럽네. 부러워.”
송윤천은 봉우리 아래로 펼쳐진 경치를 훑었다.
좋은 마음으로 우화등선하는 녀석의 얼굴을 마주 보면 진심으로 질투가 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말인데……, 송 형에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소?”
“뭔데 또 그렇게 말을 질질 끌고 그러나.”
“태극혜검을 완성해 줄 수 있겠소?”
장삼봉이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애원하듯 했다.
“이봐, 제자로 들인 녀석은 어쩌고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하나.”
“송 형도 내가 왜 이러는지는 잘 알지 않소.”
송윤천은 괜히 남의 제자를 욕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모르는 척했지만, 사정은 뻔히 알고 있었다.
장삼봉이 제자로 얻은 도사 녀석은 분명 재능이 남달랐다.
하지만 그것도 범재의 기준.
이미 천외천(天外天)의 경지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삼봉이나 송윤천을 따라오기에는 한참 멀었다.
“그래도 태극권과 십단금을 대성했는데 제자를 믿어봄은 어떤가. 무림에서는 권성(拳聖)이라고도 불린다던데.”
송윤천이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장삼봉의 제자에게 붙은 권성이라는 별호가 허명은 아니었다.
“당연히 나도 제자를 믿고 싶기는 하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권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배우는 녀석이 검만 잡으면 다른 사람이 돼버리니 원…….”
다만, 장삼봉도 알고 송윤천도 알듯이 이상하리만치 검에는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
장삼봉 역시 성정이 모질지 못하여 남에게 쓴소리를 못 하는 편인지라 답답함에 가슴을 치는 데 그쳤다.
“그래, 좋게 떠나는 마당인데 훼방을 놓을 수야 있나.”
말투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다고 대충할 생각도 없다만.’
이 당시의 송윤천은 무엇이든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게 옳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오오-, 어려운 부탁인데 흔쾌히 들어주니 참으로 고맙소-!”
장삼봉은 유일하게 남은 미련을 해결하게 되어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태극혜검을 완성 시켰는데, 네 사손이나 그 아래에서라도 다른 형태로 완성 시킨다면 어찌하면 좋겠나?”
“흠……, 송 형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겠구려.”
장삼봉은 송문고검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다가 답을 내렸다.
“송 형의 생각은 어떻소?”
“나라면 겨루어서 더욱 뛰어난 태극혜검만을 남겨두겠지.”
“그건 너무 아깝지 않소? 그러니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한다면 송 형이 완성한 태극혜검은 송 형의 것으로 합시다.”
“그래도 되겠나? 의도치 않게 혼란이 올 수도 있을 텐데.”
“분명히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안될 건 또 어딨겠소. 애초에 태극(太極), 그러니까 우주의 근원에서 나온 것들인데.”
장삼봉이 창시한 태극권과 십단금 그리고 태극혜검을 비롯한 무공들 모두가 그러했다.
그는 언제나 말하기를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아서 가능했던 일이라 하였다.
“좋다, 네 뜻이 그렇다면 그리하마.”
송윤천은 장삼봉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으니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음 날 아침.
장삼봉은 아무런 미련도 남기지 않고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자욱하게 번진 운무를 뚫고 우화등선하였다.
세월이 지나고 찾아간 무당파에는 이미 송윤천의 태극혜검과는 다른 태극혜검이 있었다.
이후 송윤천은 태극혜검을 기억 속에서 잊고 지냈다.
그리고 다시 오늘.
‘장삼봉, 네 판단이 옳았구나.’
태극, 청운 진인이라는 천재가 일생에 거쳐 갈고 닦은 태극혜검과 과거 송윤천이 완성한 태극혜검이 마주하게 되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