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9
9화
남매의 입이 찢어질 듯 커진 가운데.
송윤천은 장원에서 가장 높게 솟아난 나무 꼭대기에 올라섰다.
그리고 다시 자연스럽게 허공을 계단처럼 밟고 내려와 남매의 앞에 섰다.
“이러한 경신법의 경지를 무림에서는 흔히 허공답보(虛空踏步)라 부른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경지가 높아진다면.”
하늘 높이 날아오른 송윤천의 신형이 하늘을 유유히 수놓았다.
마치 새와 같이 자유로운 비행(飛行).
“이를 능공허도(凌空虛道)라 부르곤 한다.”
송윤천은 짧은 비행을 마치고 가뿐하게 남매 앞에 내려섰다.
“…….”
남매는 아직도 정신이 혼란한 듯, 자신들의 뺨을 강하게 꼬집어도 보고 눈을 비벼도 봤지만, 이는 꿈이 아니었다.
“장주님. 저, 저도 열심히 수련한다면 할 수 있는 건가요?”
남궁연은 송윤천이 보인 이적(異蹟)에 가까운 행위에 다소 흥분한 듯 말을 더듬으며 물어왔다.
“그래, 아마도.”
이에 송윤천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은 되지 않겠다만, 언젠가는 가능할 게다. 열심히 하고 또 운이 따라 준다면 말이다.”
새와 같이 하늘을 날 수 있다니.
무공이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대단하고 멋진 것이었다.
그날 밤, 남매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꿈꾸며 두근거림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며칠 후, 남매는 나갈 준비를 하고 오라는 송윤천의 말에 땀 범벅이 된 의복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장주님, 오늘 어디로 가는 건가요?”
“뱃놀이다.”
“저, 정말요? 정말 오늘 가는 거예요? 와!”
이에 남매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수련할 때 보이던 진중한 모습과는 상반되는, 전형적인 아이의 모습이었다.
서로 손을 잡고 좋아서 방방 뛰어대는 남매를 뒤로 한가운데, 월은 괜스레 뿌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크흠, 장주님. 보십시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분명히 좋아한다니까요. 아무리 철이 들었어도 애들 아닙니까. 애들. 제가 배 싫어하는 애들은 살면서 본 적이 없습니다.
-입 좀 다물어라. 한 번만 더 들으면 열 번이다.
흡족한 표정의 월이 송윤천에게 한참 전음을 마구 쏘아 댔다.
‘그래도 이 녀석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긴 하네.’
송윤천이나 월이나 이제는 남매에게 있어서 유일한 가족이며 부모이고 스승이었다.
하지만 평소에 주로 대화를 나누는 쪽은 송윤천보다는 월이었다.
월이 송윤천보다 행동이 가볍고 농담도 자주 던지며 말도 많았기에 때로는 동년배와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틀 전, 송윤천이 산책이나 하고 오겠다며 장원을 나섰을 무렵.
월이 설거지에 한창이던 남매에게 다가가 물었다.
“연아. 헌아.”
“네?”
“왜요. 사부?”
“쉬는 날에 뭐 따로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매일 장원에만 처박혀 있으면 심심하잖냐.”
“저는 좋은데요. 있을 것도 다 있고, 두 분도 잘 챙겨주시고.”
“아니, 뭔가 사거나 먹거나 해보거나…… 왜 이런 것들 있잖아. 장원에서 못하는 것들로.”
“좋은 옷도 입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니까 딱히 없는걸요.”
“그렇게 당연한 것들 말고 특별한 일 있잖아. 예를 들면 저어기~ 물 좋고 경치 좋은 호수로 나가서 배를 타거나.”
“음……, 그러고 보니 옛날부터 한 번쯤은 뱃놀이를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치? 너희도 오다가다 봤을 거 아니야.”
과거부터 뱃놀이는 부유한 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배에 올라 주변 풍경을 즐기는 값만 하여도 상상을 초월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부럽지만,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월의 말을 듣다 보니 살면서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무튼, 너희들은 뱃놀이 가고 싶다는 거지?”
“예……, 그런데 어쩌시게요?”
“허허, 이 사부님만 믿고 있어. 장주님이 가자고 하면 바로 찬성하고. 알겠지?”
그렇게 늦은 밤 협상과 유혹이 뒤섞인 대화를 마친 월은 이른 새벽부터 잽싸게 송윤천에게 다가가 뱃놀이를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이를 원하는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남매였고.
-그래. 네가 맞았으니 나갈 채비나 해라. 미리 가서 괜찮은 배 한 척도 준비해두고.
-흐흐, 아무렴요.
사실, 송윤천도 이러한 자초지종을 대충은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뭐든 즐겨보는 것도 좋지.’
장원 바깥에서의 경험 또한 중요했으니, 기회가 된다면 이렇게 나서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그럼 가자꾸나.”
“월 사부는요?”
“그놈은 미리 나섰다.”
조금은 들뜬 상태의 남매가 송윤천을 따라 장원을 나섰다.
가는 길도 평범치는 않았다.
수련을 겸하여 남매가 신나게 뛰어나갔고, 송윤천은 평범한 걸음으로 그들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월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도착한 남매는 자신들이 곧 탑승할 배의 실체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아-.”
고작 넷이서 뱃놀이에 쓰기에는 매우 거대했고, 매우 화려했기 때문이다.
기대와 함께 시작된 뱃놀이는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우선 야밤에 물 위에 둥둥 떠서 노닥거리는 것도 좋았다.
주변에 보이는 뱃놀이 무리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음악과 노랫말도 뭔지는 몰라도 무척 흥겨웠다.
게다가 월이 직접 공수해 온 만찬이 차려져 있었다.
“음-.”
남궁연은 눈을 감고 귀를 열어 이를 즐겼고.
“장주님,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제일 좋은 거 같아요.”
남궁헌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배 한 척이 유유히 그들이 타고 있는 배를 스쳐 지나갔다.
“……?”
거기서 한 시선이 아주 잠시, 남궁연과 남궁헌의 얼굴에 머물렀다.
* * *
“내가 이 흑도 짓을 열일곱에 시작했다. 그 나이 때부터 흑도 짓 하던 놈이 백 명이라고 치면 지금 나만큼 잘 나가는 놈? 나밖에 없어!”
다른 이들은 흑도라 하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 거다.
“개소리 집어치우라 해! 흑도라고 다 같은 흑도가 아니다~ 이 말이야!”
적어도 공필성은 그리 믿었다.
저기 안휘의 남궁세가나 하북의 팽가와 같은 정파의 고명하신 오대세가 나리들이 그러하듯.
흑도에도 엄연히 전통이란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족보에 적힌 까마득히 먼 조상님들부터 시작하여 끊기지 않고 내려와 이제는 조부와 친부 그리고 자신까지.
무한공가는 대대로 흑도였다.
“무려 십칠 대에 걸쳐서 무한에서 흑도로 먹고 살아왔으니 이 정도면 흑도계의 명문가가 아니겠어? 응? 안 그래?”
“암, 그렇고말고. 다 맞는 말이오. 무한에서 흑도하면 당연히 공가를 빼놓을 수 없지 않겠소?”
굳이 배까지 빌려 가며 만취한 공필성과 친분을 나누려는 흑룡방의 삼인자 곽범이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징그러운 새끼. 처음에는 얌전하다가 술이 들어가니까 쓸데없이 목청만 커져서는…….’
그가 진심으로 공필성과 친분을 나누기 위함은 아니었다.
흑도 사이에 진심 따위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그저 안면이 있던 정도의 관계였던 공필성이 대뜸 흑점의 점원이 되며 벌어진 일이었다.
‘역시 사람은 출세하고 봐야 해. 어디 기루 뒷문에서나 간신히 빌어먹던 놈이 흑점이라고 이러고 있으니 말이야.’
그것도 도망치는 기녀나 돈 안 내고 내빼는 사내새끼 뒤꽁무니나 쫓던 번견 사육사 놈이 바로 공필성이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은 속에 담아둘 뿐.
곽범은 겉으로는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공필성을 접대함에 모자람이 없게 했다.
‘참자, 나는 지금 이 새끼를 접대하는 게 아니라 흑점을 접대하는 거다.’
흑룡방과 같은 흑도 세력에게 있어서 흑점의 활용도는 실로 무궁무진했다.
직접 거래를 틀 수도 있고, 체면 때문에 흑룡방과 직접 거래하기를 꺼리는 이들과 흑점을 통해 거래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내가 이따위 접대에 나서야만 하는 건지. 하여튼 게을러터진 총관 새끼. 아래로 떠밀기만 하고 밖에서 뭔 짓거리를 하는지.’
당장 흑룡방에서 자신은 방주와 총관에 이은 삼인자인데 접대나 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충할 수도 없고.’
그러다가 방주에게 책잡히면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
실제로 곽범이 사인자이던 시절, 삼인자가 그렇게 방주에게 골로 가버렸다.
어부지리로 삼인자가 되었지만, 크게 기쁘지는 않았다.
재수 없으면 자신도 그 꼴이 날 테니까.
“자, 자. 이렇게 좋은 경치에서 공 형과 함께 잔을 나누니 이 곽 모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겠소. 여기 한 잔 더 받으시오. 그러다가 목마르시겠소.”
전직 삼인자의 최후를 떠올린 곽범이 기세를 한껏 올리며 술병을 들었다.
“좋아! 곽 형이 주는 술이라면 배가 터질 때까지 마실 수 있지!”
곽범은 다시 한번 억지로 미소를 크게 지으며 술병을 내밀었다.
하지만 공필성은 그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옆으로 꺾은 채로 잠시 동작을 멈춰 섰다.
‘이 새끼가 그렇게 죽어라 처마시더니 기절이라도 했나?’
무슨 일인가 싶어 자신도공필성의 시선에 닿은 화려한 배를 바라보니, 문득 사내아이 하나가 고개를 쭉 빼 들고는 두리번거리고 있는 게 않은가.
“배를 보니 어디 명문가나 부잣집 아이 같은데 안면이 있는 녀석이오?”
“곽 형, 저기 보이는가? 저기 애새끼 둘 말이야.”
“애새끼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그때 왜 흑룡방에서 의뢰했던 애들을 못 구해서 위자료를 크게 치르지 않았는가. 저게 바로 그놈들이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흑점의 점주가 직접 찾아와 사과까지 하며 전낭도 아니고 목함 가득 은화를 채워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뭐, 무려 흑점의 점주가 직접 고개를 숙이며 들어오니 총관이 지랄 맞게 성질을 내도 방주께서 그냥 넘어갔지만.’
흑점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보상금도 나름 두둑하게 받아서 방주 역시 순순히 넘어갔지 않은가.
“뱃놀이까지 다니는 것을 보니 누군지는 몰라도 부잣집에 팔려갔나 보오.”
“부잣집? 그건 잘 모르겠고 상당히 강하더군. 그 개자식 때문에, 끄응……. 제기랄. 아으, 내 허리.”
공필성이 말을 하다 말고 허리를 부여잡고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 사내가 애들을 데려가고 점주에게 얼마나 혹독하게 굴려졌는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정도였다.
‘주제도 모르고 덤비다가 진탕 당했나 보군.’
곽범은 말하지 않아도 공필성의 반응을 보고서는 무슨 일인지 대충 알겠다는 듯 말을 아꼈다.
‘그나마 상대의 성정이 그리 잔혹하지는 않은가 본데.’
그렇지 않다면 지금 공필성이 이리 멀쩡하게 살아있을 리가 없다.
사지 중 하나 이상이 잘려나가거나.
아니면 살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을 터.
“그런데 공 형은 대체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된 거요?”
“나야 흑점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만, 동료들도 그렇고 아무도 그 정체를 아는 이가 없더군. 그 정도 고수면 거처나 별호 정도는 알 텐데 말이지.”
“그렇소?”
“아, 그렇다니까. 그리고 한참 젊어 보이는데도 우리 점주님과도 친분이 있어 보이고.”
“정말이오?”
“점주님이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는 손님은 아마 처음이었지. 들어보니 가끔 흑점에 방문한다고도 하더군.”
“그러면 아무래도 무림맹 쪽 후기지수 아니겠소?”
“분위기만 봤을 때 흑도는 아닌 것 같고. 미쳐서 사파의 촉망받는 후기지수가 이쪽에 드나들 리도 없고.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려나?”
이런저런 추측이 오갔지만, 확실한 건 없었다.
“하여간 정파 놈들은 그리 흑도를 멸시하면서 흑점은 잘도 이용하나 보오. 그런데 어찌 생긴 놈이었소?”
“죽립으로 깊숙이 가려진 탓에 제대로는 못 봤는데, 피부가 하관이나 목이나 새하얗더군.”
일단 생김새는 모르겠고.
“아, 나중에 들으니 주머니도 두둑한 작자라 하던데. 흑룡방에 지불한 위자료에 우리 쪽도 넉넉하게 받았으니.”
뭔지는 몰라도 부자이며, 무려 흑점의 점주와도 인맥이 있는 듯하다.
“으음…….”
누군지는 몰라도 듣기만 해도 그 밝혀지지 않은 정체가 평범하지는 않아 보였다.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뭐 못 봤다는 놈을 잡고 어쩌겠는가.
‘혹시 모르니 기억은 해둬야겠어.’
단순한 감에 불과하지만, 어쩐지 나중에 한 번은 더 부딪힐 것만 같았다.
무림이란 게 끝없이 넓은가 싶으면서도 어떨 때는 또 한없이 좁으니 말이다.
‘일단은 방주님께 슬쩍 전달해볼까. 가만있자. 이걸 어떻게 잘만 써먹는다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순간, 곽범은 머리를 굴려 차도살인(借刀殺人)을 모색했다.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서 흑룡방에 충성을 바치는 중이다.
‘하지만 흑룡방이 영원하리란 법은 없지.’
무한 흑도의 주인은 몇 년에 한 번씩 바뀌곤 한다.
당연히 흑룡방의 방주 역시 이전 주인을 쳐내고 주인이 되었고.
또 몇 년 이내에는 누군가가 흑룡방을 쳐낼 것이다.
매사에 남을 의심하며 물욕이 많은 방주.
성질 더러우면서 외유가 잦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 당최 알 수 없는 총관.
이 둘만 없어진다면 자신이 곧 일인자, 흑룡방의 방주였다.
만약 그 정체 모를 무인에 대한 정보를 방주에게 슬쩍 흘린다면?
‘그 새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안 그래도 그 애들에게 뭔가가 있는지 총관과 크게 다투기도 했다.
또한, 그만한 위약금을 흔쾌히 지불했으니 돈 나올 구멍이 충분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방주의 성격상 바로 나서지는 않더라도 간은 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운이 좋다면 그 사이에서 자신이 이득을 볼 수도 있으리라.
‘예를 들자면 그 무인이 분노하여 방주와 총관의 모가지를 따버린다든가 하는 그런 일 말이지.’
“자, 지나갔으니 술이나 마저 듭시다. 거추장스러운 일은 내일 다시 생각하면 되지 않겠소?”
“역시 곽 형이 뭘 좀 아네.”
“자, 공 형과 나의 우정을 위하여!”
“위하여!”
곽범은 겉으로는 이러한 흑심을 숨기며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공필성을 재촉했다.
‘가슴은 불처럼 뜨겁게, 머리는 얼음처럼 차갑게.’
평생 도박판을 제집처럼 여기다가 장난질로 손모가지가 잘려나간 아비가 곽범에게 남겨준 유일한 유산이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