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심안 은소소는 죽음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도 반드시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왜……, 죽였…… 나요? 나만…… 빼고.”
쿨럭-
기침과 함께 그녀의 입가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 나왔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은소소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까닭인지.
송윤천은 그녀와 관련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다.
“굳이 원한다면 대답은 해줄 수 있다. 그건 어렵지 않다.”
불쌍한 인생의 끝자락에서 선택지를 주기로 했다.
“그러니 네가 선택해라. 절실히 원하는 게 비참하고 잔혹한 진실인지 아니면 네가 듣고 싶어 하는 거짓인지.”
송윤천은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진……실. 그게……무엇이든, 진실을……, 원……해요.”
확고한 의지가 드러났다.
목소리에는 일말의 고민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역시나 그녀의 선택은 진실.
어차피 죽을 운명.
분명히 거짓을 따르자면 마음은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평생 갈구해 온건 진실이었으니.
지팡이를 짚고 나서던 어린 날부터 죽음을 앞둔 지금까지 선택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네가 선택한 진실이다. 그러니 나를 원망하지 말거라.”
송윤천은 거듭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하지만 은소소는 묵묵히 진실을 요구해왔다.
“옛날 강서성 백운산 인근에 광신도가 들끓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흥 사이비 종교라고 하기에는 규모도 제법 컸더군. 신도는 천이 넘고, 교주에 성녀까지 있더랬지.”
송윤천이 차분하게 읊는 진실에 은소소는 당장 숨이 끊길 것만 같았다.
그가 설명하는 강서성 백운산의 성녀가 바로 어린 날의 은소소였기 때문이다.
“뭐, 바위도 믿고 나무도 믿고 하물며 동물에 곤충까지 믿는 세상에서 누구를 믿고 말고야 딱히 이상할 게 없다.”
지금도 온갖 믿음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예전과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본인들의 믿음을 위해서 있지도 않은 신에게 산 제물을 바친다면 말이 다르지.”
송윤천의 생각에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건 신이라고 불릴 만한 게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종교는 그저 미치광이의 집착에 불과할 뿐.
“…….”
은소소는 아니라고 외칠 힘도 없으며 눈물마저 말라버려 닥쳐오는 충격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건 기억하고 있나? 우연히 지나간 그곳이 백운산(白雲山)이 아니라 백골산(白骨山)인 줄로 착각했다. 조금 깊이 들어가니 사방에 하얗게 변한 사람 뼈가 널려 있었지.”
“그게…… 진실인가요?”
“내가 앞서 경고하지 않았나. 진실은 비참하고 가혹하다고.”
송윤천의 말대로 은소소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진실은 참담했다.
“너는 몰랐겠지. 혹시라도 알았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면 처음부터 알고자 하지 않았을 테니.”
만약 그랬다면 은소소는 진실을 억지로 잊어버리고 살았을 터.
아니, 처음부터 알려고 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네게 말하지 않았더냐. 네 잘못은 아니라고.”
눈이 먼 채로 비좁은 방에 갇혀 생활한 어린 성녀는 단지 가해자의 가족이었을 뿐.
당시의 그녀는 가해자의 가족인 동시에 피해자였다.
은소소의 전신이 미약하게나마 떨려왔다.
‘제 의지로 그런 게 아니라 큰 충격에 저절로 몸이 떨려오는 게지.’
그녀의 사연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나머지 뒤편에서 슬쩍 듣고 있던 풍전과 양준혁마저 고개를 푹 숙이고 침묵했다.
진실이 가져온 정신적인 충격은 은소소가 짧게나마 남은 삶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털어내게 했다.
“미안……, 미……안.”
은소소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수없이 용서를 빌었다.
아마도 자신과 그 주변으로 인해 피해를 본 모든 이들에게 하는 사과일 터.
따지고 본다면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비좁은 방구석에 갇혀 사악한 성정을 가진 부모에게 이용만 당한 게 전부였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평생을 억울해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성했다.
“네게 남은 것도 줄 것도 이것뿐이구나.”
송윤천은 힘없이 펴진 은소소의 손바닥 위에 유일하게 의지할 대상이었던 나무 조각을 올려주었다.
잠시 후.
안 그래도 작은 은소소의 숨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숨이 완전히 멎어 들고 말았다.
“미련 없이 떠나가거라.”
천살성, 혈화백, 무학사 그리고 심안 은소소까지.
이로써 화양연화의 절반이 이곳 진시황릉에서 공석이 되었다.
송윤천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은소소의 시신을 뒤로하고 몸을 일으켰다.
“여기에 더 볼 일이 남아 있나?”
그리고 몇 걸음 뒤에서 묵묵히 서 있던 풍전과 양준혁에게 물었다.
“장주가 오기 전에 시신을 뒤져봤는데, 저기 저놈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요. 아, 오해는 마시오. 혹여나 엄한 생각을 가진 놈들 손에 들어가 괜한 혼란을 불러올까 싶어서 그런 것이니.”
양준혁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됐다. 오해는 무슨.”
송윤천이 그에게서 받아든 물건들을 확인해보았다.
무학사 제갈유의 품에서 나온 낡은 서책.
그리고 서책보다는 조금 작아 보이지만 몇 배는 두꺼워 보이는 수첩.
마지막으로 짙은 붉은색을 띠며 크기는 손바닥 절반 정도인 비늘이었다.
송윤천은 비늘은 나중에 이곳을 벗어난 후에 자세히 살피기로 하고서 먼저 고서를 살펴봤다.
제법 오래된 모양인지 표지는 닳고 닳아서 변색하여 있었다.
게다가 보관이 잘되지 않은 듯 고서 특유의 꿉꿉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자세히 보면 표지에 뭐라 글자가 적혀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읽을 수가 없었다.
하여 표지를 넘기고 첫 장부터 차분히 읽어보았다.
송윤천이 집중하여 몇 장을 넘기고 있는데 풍전이 옆으로 다가왔다.
“제대로 읽을 수는 있소?”
“읽을 수 있으니까 보고 있겠지. 어떤 내용인지 봤나?”
“뭔가 싶어서 양가 놈하고 같이 대충 훑어는 봤는데 아는 글자보다 모르는 글자가 많아서 접었소.”
풍전이 어깨를 으쓱거리고 말았다.
“그래서 내용이 뭐길래 그리 열심히 보고 있는 거요? 대단한 거요?”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허무맹랑하다면 허무맹랑하지.”
“응? 그게 정말이오? 무슨 무공이길래?”
“음양일원공(陰陽一元功)이라 적혀 있군.”
여기저기 다 붙는 신(神), 천(天), 용(龍), 무극(無極)이 붙지 않았다.
명칭만 놓고 보자면 그 악명 높은 화양연화의 무학사가 품에 보관하고 있던 무공치고는 평범해 보였다.
“음양일원공이라……. 금시초문인데. 양가 너는 들어봤냐?”
풍전이 머리를 긁적였지만, 떠오르는 게 없는 듯했다.
“나도 처음일세.”
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궁 무고를 수시로 들락날락 해왔던 양준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무공이니까. 여기 보면 기록이 남아 있는데, 총 아흔일곱 명이 수련 도중에 사망했다는군.”
“……그건 마공이 아니오? 그 정도면 마교에서도 금지할 수준인데.”
호기심을 나타내던 풍전은 몸서리를 쳤다.
그 사이 송윤천은 서책을 끝까지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험 대상이 사람이었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겠지.’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 무공은 애초에 사람이 익힐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괴력난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절반은 사람, 절반은 괴력난신이라면 모를까.’
예를 들면 송윤천과 함께 지내는 남궁연, 남궁헌 남매 같은 존재 말이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이에게 주도록 하마.”
“마음대로 하시오.”
송윤천은 다음으로 수첩을 폈는데 조금은 악필이기도 하거니와 워낙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내용을 보니 무학사 제갈유의 일기와 메모 그리고 기타 기록 등이 짧은 문장으로 마구 뒤섞여 있었다.
“장주도 한 번 보시오. 보다가 역겨워서 몇 장 넘기지도 못했소.”
풍전은 무학사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 일부를 공유한 것만으로도 진저리를 쳤다.
송윤천 역시 수첩을 살피며 제갈유라는 인간이 어떠한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문득 송윤천의 시선이 제갈유의 시체로 향했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그 텅 빈 동공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제갈유의 인생이 담겨 있는 수첩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이론 그리고 확률, 효율 등이었다.
-이론상 어떤 생명이라도 여섯 세대가 지나면 공유하는 특징이 미비하다.
-그러므로 직계와 방계의 차이는 매우 미비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상 제갈세가는 직계가 그 자체로 특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우주에 불과하다.
-무공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느냐 혹은 천재이냐를 평가하는 지점을 절정으로 두고 가정한다.
-동 세대에 나를 제외한 직계와 방계 전원이 둔재로 판정된다.
-그러나 직계는 방계를 천한 노예로 여기며 그들이 가진 절기를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이론상으로 볼 때 스스로 고립된 제갈세가는 쇠퇴하는 과정에 놓여 있으며 향후 오대세가에서 탈락할 확률이 매우 높다.
-‘제갈’이라는 성이 꼬리표처럼 붙어 누구도 나를 제자로 삼으려 하지 않으며 무공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다른 무공을 얻어 수련하고 변화를 주는 것보다 내가 처음부터 직접 무공을 만드는 게 더욱 효율적이다.
-이론상 검법과 도법을 동시에 구사할 수만 있다면 장점은 극대화되는 동시에 단점은 상쇄시킬 수 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무공은 죽은 무공임을 깨달았다.
-무공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궁극적인 목적, 살인(殺人)에 이르러야만 한다.
-오늘로써 정확히 천 번에 이르는 시험이 종료되었다. 미완성의 무공을 일 할, 일 푼, 일 리라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고 일정 수준의 개선이 진행되었다.
-이론상으로 내가 가진 무공을 대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다섯 갑자에 준하는 내공이 필요하다.
-기존 세력이 확보한 영약, 영초를 독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낮다.
-최근 천살성이라는 악명이 붙은 사마세가의 마지막 생존자 사마성이 내게 접근해왔다.
-그의 계획에 동참한다면 영약과 영초를 제공하겠다는 거래.
-저울질 끝에 받아들였다.
-단순히 나의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것치고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으니 내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거래이다.
-사마성은 죽고 태극, 청운 진인의 신체에 빙의하여 등장했다. 빙의라는 현상에 관해 연구했지만, 이는 이론상 말이 되지 않는다.
-확률적으로 볼 때 당분간은 천살성을 경계함이 옳다.
이 문장을 끝으로 제갈유는 천살성에게 배신당하여 죽었다.
마찬가지로 수첩의 내용 역시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 알겠어.”
송윤천이야 워낙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쪽으로는 감정이 조금 무뎌지기도 했기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풍전이나 양준혁은 다르다.
그들이 보기에 무학사 제갈유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임에도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감정은 완전히 배제되고 이론이나 효율에 집착하는 광기라……. 신선하군.”
“그걸 보고도 신선하다고 여기는 건 장주 밖에 없을 거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살펴보니 이 수첩에 딱히 중요한 건 없는 것 같은데, 가져가겠나?”
“됐소. 괜히 기분만 이상해질라.”
“나도 두 번은 보고 싶지 않소.”
송윤천이 수첩을 앞으로 내밀었으나 둘 다 받을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 수첩은 여기까지 인걸로 하지.”
송윤천이 기운을 일으키자 수첩은 금방 잿더미로 산화했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없애는 건 예의가 아니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