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일원 진인이 눈을 감고 송윤천의 태극혜검을 떠올리자 사소한 동작까지도 면밀하게 들어왔다.
그가 어떤 형태로든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오늘 송윤천이 두 차례에 걸쳐 펼친 태극혜검은 잊지 못할 것이다.
“네가 수련한 태극혜검만을 고집하지 말아라. 그렇다고 네 스승이나 내 태극혜검을 맹목적으로 쫓지도 말아라.”
송윤천은 세상을 떠난 스승 청운 진인을 대신하여 약간의 조언을 남겼다.
“……굉장히 어렵군요. 중심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깊게 고민하지 말아라. 네 빛나는 재능이 답을 알려줄 터이니.”
천하에 살아 숨 쉬는 대다수 둔재나 범재에게는 너무나도 미안한 말이지만, 이는 일원 진인이 천재이기에 갈 수 있는 길.
이른바 천재만의 특권이었다.
이건 송윤천이 직접 그가 펼치는 태극혜검을 관찰했기에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구성 혹은 화양연화와 같이 연이 닿은 무림의 정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부족함이 없는 재능.
‘굳이 따지자면 연이가 조금 더 낫다고 보지만.’
송윤천은 현시대에 한정 지어서 남궁연보다 뛰어난 재능은 아직 보지 못했다.
‘어쩌면……, 다음 세대는 이 두 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그림이 나올지도 모르겠어.’
송윤천은 떠나기 전, 일원 진인에게 태극혜검과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그중에서 나중에라도 너무 멀리 돌아갈 것만 같은 문제 혹은 반드시 알아야만 하거나 피해야만 하는 문제는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주었다.
“차후에 질문이 있거나 하면 무림맹주 아니면 와룡당의 남궁헌을 통해서 연락해도 좋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나서 재밌었다. 장삼봉의 후인(後人)이여.”
“저 역시 너무나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로써 용건을 모두 마친 송윤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절벽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어째서일까.
떠나가는 송윤천에게서 문득 몇 년 전에 홀연히 무당산을 떠난 스승 청운 진인의 마지막 모습이 겹쳐 보였다.
다시 천주봉에 홀로 남게 된 일원 진인은 태극혜검에 대해 떠올렸다.
자신의 것. 스승의 것. 송윤천의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세 가지 태극혜검은 모두 만상의 근원인 태극으로 귀결되지만, 과정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장점은 더하고 단점은 상쇄시키겠다는 마음가짐과 함께 검이 움직였다.
그의 의지에 따라 한참을 유려하게 움직이던 검이 완전히 멈춰 섰을 때.
일원 진인을 중심으로 현묘한 기운이 가득 담긴 운무(雲霧)가 피어나며 머리 위로는 세 송이 복숭아꽃이 나란히 피어났다가 은은한 향기만을 남겨 두고 저물었다.
“덕분입니다.”
일원 진인이 송윤천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삼화취정(三花聚顶).
일원 진인은 송윤천이라는 기연을 만나 한 계단 더 높이 올라설 수 있었다.
* * *
밤이 깊어서야 천주봉에서 내려온 송윤천을 기다리고 있었던 청송 진인과 풍전이었다.
“무사히 전달하였소?”
“축하한다.”
“……?”
청송 진인이 던진 질문에 송윤천이 뜬금없이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조만간 가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터.”
송윤천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천주봉을 가리켰다.
“장주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아하니 사질이 보통은 아닌 모양이야.”
그 의미를 먼저 눈치챈 풍전이 청송 진인을 툭툭 건드렸다.
“이렇게 여러모로 도와주니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소.”
청송 진인 역시 뒤늦게 둘의 언행에 눈치채곤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장주, 이제 막 밤이 깊어가는데 경치 좋은 곳에서 하룻밤 쉬어가는 게 어떻소?”
“내일 출발하면 되겠군.”
“역시나 훌륭한 판단이오. 좋은 술이나 몇 병 내오게. 내 친우이자 자네의 사형을 기리고, 자네의 사질을 축하할 겸.”
“아쉽게도 이 아우의 신분이 도사인지라 좋은 술은 없지만, 좋은 곡차는 넉넉하게 있습니다. 항아리째 내오지요.”
서로의 의견을 일치시킨 뒤, 송윤천과 풍전이 조사전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청송 진인이 거대한 항아리를 양쪽에 끼고돌아왔다.
쿵-!
조심히 내려놨는데도 내용물로 인하여 무게가 제법 나가는 모양.
항아리에 들어있는 곡차가 철렁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댔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청송 진인이 잽싸게 다시 뛰어나가더니 똑같이 거대한 항아리를 양쪽에 끼고 돌아왔다.
그렇게 그가 어딘지 모를 곡차 저장소를 몇 번 더 다녀오니 조사전은 발을 디딜 틈조차 없이 항아리로 가득 찼다.
겉으로나마 무당의 도사는 술을 마시면 안 되니 에둘러서 곡차라 표현하면서도 이러는 모습을 보니 그는 애주가가 임이 틀림없었다.
“참으로 아쉽지만, 밤이 깊은 까닭에 안주는 이것뿐입니다.”
청송 진인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두부를 각자 앞에 한 판씩 내려놓았다.
“자, 이제 시작하시지요. 여기 잔입니다.”
“이보게. 아우. 그러니까 지금 이게 잔이라고?”
풍전이 잔이라며 건네받은 거대한 그릇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청송 진인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어, 아니다. 아니야. 내가 잘못 생각했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청송 진인의 두껍고 거대한 손을 보니 잔의 크기가 단박에 이해가 됐다.
저 손을 두고 평범한 술잔을 사용하는 것도 상당히 우스운 꼴이었으니.
“자, 그러면 한 잔씩 올리겠습니다.”
청송 진인이 가까이에 있는 항아리를 열어 바가지로 술을 퍼 송윤천과 풍전에게 차례대로 따라주었다.
풍전이 송윤천을 대하는 모습만 옆에서 슬쩍 봐도 윗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
풍전이 익힌 개방의 항룡십팔장과 함께 최고의 장법으로 손꼽히는 십단금을 평생 수련한 덕분일까.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임에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진가를 자랑했다.
거대한 잔은 흔히 볼 수 있는 술 한 병이 딱 넘치지 않고 채워질 정도였다.
셋은 각자 들고 있는 잔을 앞으로 높게 들고 있다가 침묵 속에서 잔을 말끔하게 비웠다.
침묵 속에 애도.
이 첫 잔은 떠나간 청운 진인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두 번째 잔부터는 일원 진인의 태극혜검이 발전했음을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건배(乾杯)-!”
풍전이 앞서서 호기롭게 외쳤다.
건배(乾杯)란 말 그대로 잔을 말끔하게 비운다는 의미.
이번에도 셋은 나란히 잔을 비워냈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계속해서 비워졌던 잔이 채워지고 누군가가 건배를 외치고 잔을 비웠다.
몇 번째 건배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쉬지 않고 마셨다.
안주로 내왔다는 판두부는 한 잔에 한 입씩 비우다 보니 이미 동이 난 지 오래.
셋 중에서 경지가 가장 낮은 청송 진인의 전신이 술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붉게 물들어갔다.
항아리 몇 동을 더 비우자 풍전 역시 눈이 서서히 풀려가고 그릇만 한 술잔이 조금씩 흔들리며 술을 흘리기도 했다.
“둘 다 취기가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힘들면 이쯤하고 쉬어라.”
송윤천이 청송 진인이 채워준 잔을 비워내며 걱정을 담아서 충고했지만.
“허허, 무당산은 그 기운이 천하에서 가장 영험하니 아무리 마셔도 취하는 법이 없지요.”
“장주, 응당 거지라 하면 태어나서 죽는 그 날까지 취해 있는 법이니 나 역시 끄떡없소-! 내가 누구요.”
“추잡하게 늙은 거지?”
“맞소! 그것도 맞는데! 내가 그전에 개방의 태상방주란 말이오. 자, 어서 한 잔씩 더 합시다.”
청송 진인과 풍전은 마치 자신들이 무당과 개방의 자존심이라는 듯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거의 모든 항아리가 동이 나버렸을 무렵.
그 어떤 고수라도 지금과 같이 안전이 보장된 자리에서 술을 마실 때는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규율.
무당파 제일의 주당과 개방 제일의 주당은 이미 상 위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져 코를 골고 있었다.
“쯧, 둘 다 그렇게 건배를 외치더니 벌써 나가떨어졌나. 술을 못하면 알아서 적당히 끊어야지.”
송윤천이 양옆으로 쓰러진 이들을 보고 한심함에 혀를 찼다.
진상도 이런 진상들이 또 없었다.
홀로 멀쩡한 송윤천은 손을 쭉 뻗어 마지막 항아리를 옆으로 가까이 끌어와 남은 술을 싹 비워냈다.
워낙 일찍 시작했고 또 빠르게 진행된 터라 해가 뜨려면 두어 시진은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
밖으로 나선 송윤천은 적당한 봉우리에 올라 찬바람을 맞으며 운기조식에 몰입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하늘이나 원시천존의 장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막역지우였던 장삼봉과 한 오래된 약속을 지키게 되어 그의 마음속 깊이 남아 있었던 무언가가 반응이라도 했는지.
송윤천의 머리 위로도 복숭아꽃 세 송이가 피어났다가 저물었다.
복숭아꽃이 머무른 자리에는 다섯 개의 작은 태극이 그려지면서 무당산의 자연지기가 송윤천에게 흘러들어왔다.
태극이 사라진 이후 송윤천의 몸이 위로 둥실 떠 오르더니 그 주변으로 신묘한 기운이 깃든 짙은 운무(雲霧)가 장막처럼 펼쳐졌다.
그리고는 윗머리의 중심, 정수리 부근에 자리한 백회혈(百會穴)로 운무가 남김없이 흘러 들어갔다.
삼화취정(三花聚頂)
오기조원(五氣朝元)
등봉조극(登峰造極)
소위 천재라 불리는 무인들이 평생에 걸쳐 수련해도 쉽게 닿지 못한다는 세 가지 기현상이 차례로 일어났다.
삼화취정, 오기조원, 등봉조극 정도야 지난날에 셀 수 없이 겪은 만큼 일원 진인과 같은 진전은 없었다.
하지만 목욕재계(沐浴齋戒)라도 한 것처럼 심신이 깨끗해지면서 오는 상쾌한 기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무의식 속에서 깨어난 송윤천이 감았던 눈을 떠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새벽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하늘에 여전히 별이 촘촘히 박혀 빛나고 있듯.
송윤천의 눈 역시 별을 담아 놓은 듯 빛을 발하고 있었다.
“봤느냐? 당연히 위에서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겠지. 항상 나를 따라 천주봉에 올라서서 아래 풍경을 지켜보는 게 네 낙이었으니.”
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지만……, 너와 나누었던 약속은 지켰다.”
또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네가 남긴 태극혜검은 천년이 흘러도 기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기억될 터이고.”
송윤천은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 녀석’의 주장에 따르면 지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일일이 내려다보지는 못하더라도 자신과 관련된 일들은 볼 수 있다고 하였으니.
분명히 자신의 말을 빠짐없이 주워 담고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잠시 후, 송윤천이 조사전으로 돌아왔다.
“으으……, 머리가 깨진다. 깨져.”
인기척에 머리가 깨질 듯한 숙취에 시달리던 풍전이 소주천과 함께 짧은 운기조식을 마치고 일어섰다.
“힘들면 더 누워 있어라. 조금 더 있다가 출발해도 좋다.”
“장주, 나를 뭐로 보고……. 이 정도 술은 끄떡없소. 정말 거뜬하오.”
“입을 열 때마다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그것참 대단하군.”
둘은 청송 진인을 깨워 인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약속은 지키고 떠난다. 언젠가 올 수 있으면 또 들리도록 하마.’
송윤천은 무당파의 입구인 해검지를 통과하며 속으로 잠시 장삼봉을 떠올렸다.
무당산을 완전히 벗어난 송윤천과 풍전은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속도를 올렸다.
당연히 목적지는 무한.
월과 남궁연, 남궁헌, 곽범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그들의 집이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