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 Genius Became a Middle School Student RAW novel - Chapter 143
제142악장, 가고팠던 때로 (2)
제142악장, 가고팠던 때로 (2)
오늘도 변함없이 열린 가게는 산뜻한 아침을 맞이했다.
어느새 가을.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나 내리쬐는 햇살은 따스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사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그러하겠지만.
그녀는 늘 그랬듯이 가게 안의 피아노를 바깥으로 옮겼다.
조금 무겁긴 하나 어느새 그녀 가게의 마스코트가 되어버린 피아노였다.
비록 아들이 직접 쳐주지 않더라도 동네 꼬마나 왕년에 한가닥 했던 몇몇 상인이 찾아오기도 했으니까.
그 피아노 의자에 앉아 햇살을 받던 때였다.
“아주머니!”
“어머, 채원아.”
이제 중학생 티를 벗기 시작한 귀여운 숙녀가 나타나자 은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침부터 여긴 무슨 일일까?”
요즈음 주인댁에 반찬을 나눠주기라도 하면 유난히 잘 먹는 채원이다.
현우를 잘 따르는 것만큼이나 자신도 곧잘 따르니 간식거리라도 줄까 싶었는데.
“오늘 맞죠?”
평소라면 어리광도 부리고 했을 채원이가 새삼 진지한 투로 물었다.
설마 세고 있을 줄은 몰랐던 걸.
“어?”
“오빠 예선이요.”
순간 바람이 불어오는 듯 했다.
어쩐지 서늘한 가을보다는 봄에 더 어울리는 듯한 바람이.
아주 살짝 불어왔다.
“응, 오늘이야.”
“······.”
묵묵히 눈으로 대답한 숙녀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건반에 이제 얼추 자란 손가락을 올렸다.
또래와 확연히 비견될 만할 정도는 아니나 제법 굳은살이 배긴 그 손가락으로.
♬
서서히 달빛을 그려냈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시간이기는 하나 묘하게 감각적인 분위기의.
그런 달빛을.
“······오빠가 저한테 처음 쳐줬던 곡이에요.”
여태 들어본 적 없던 정보에 은영의 눈동자가 아주 얕게 움찔거렸다.
달빛은 은은하게 햇빛에 몸을 가렸다.
연습한다고 했지만 그 당시 현우가 연주했던 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서투른 실력이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그렇게 쳤을까···.”
중얼거린 채원이 픽 웃음을 지었다.
“칼빈인지 뭔지 그 사람도 분명 힘들 걸요.”
국내에서 각종 신문사에서 알려주는 라이벌의 이름, 막스 칼빈.
비록 아직 예선이기에 그와 승부를 겨루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예고하고 있었다.
분명 이번 차이콥스키는 두 사람의 혈전이 될 거라고.
그런 기사를 수어 개 읽었던 채원이가 말했다.
“무조건 이기고 올 거예요.”
꼭 다짐 같은 그 말에 은영의 손이 머리를 푹 감쌌다.
어쩐지 아까보다도 더 따스해진 미소로 답했다.
“고마워, 채원아.”
혹여나 하는 걱정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거다.
노심초사 행여 예기치 않은 일이라도 생길까봐 아들이 걱정되지만.
잘 해낼 거라고.
밝게 웃으며 전화를 걸어올 거라고.
예선은 물론 본선에 이어 결선까지도.
분명 해맑게 웃으며 전화할 아들을 기다리면 될 뿐이라고.
“아줌마도 그렇게 생각해.”
스스로에게 대답해보이는 그녀.
아니, 한 아이의 엄마였다.
* * *
질주하는 열차에게서 한기를 느낀 참가자들은 모두 등골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아무리 매체에서 떠들어대고 극찬을 이어도 결국 직접 보는 것만큼 와닿는 건 없으니까.
설마 하는 마음으로 소년을 바라보던 이들이 넋을 놓은 채 귀를 기울였다.
예선 심사장을 맨몸으로 꿰뚫고 지나가는 열차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애초 모두가 우승을 노리고 지원하진 않는다.
우승은 커녕 결선까지만 가도 감사한 이들도 얼마든지 존재하니까.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고 어느 정도의 목표치만을 정한 채 지원하는 참가자들도 더러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그들조차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 이건···.’
애초부터 감히 넘보지 않던 벽이라 해도 이건 너무나 드높았으니까.
말도 안 되는 실력의 격차가 거대한 벽처럼 눈앞에 있었다.
고작 18살 소년의 선율이.
이토록 감미롭게 자신의 귀를 휘감는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그러나 누군가의 충격이 누군가에겐 만족이 되고 있었다.
‘너도 열심히 달려왔구나.’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거뒀던 활약은 이미 곱씹은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혹여 고꾸라지지 않을까.
행여 갑작스레 음악을 놓아버리진 않을까.
마음 한 구석에 생기는 라이벌에 대한 걱정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 지워낸 칼빈. 허나 그가 만족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나도 너 못지 않게 달려왔다, 이현우.’
아직 남아있는 본선과 결선.
칼빈이 원하는 건 모든 단계에서 소년을 꺾는 것이었으니까.
설령 그게 불가능할지라도.
“11번 참가자, 막스 칼빈.”
도전하고 싶은 그의 마음을 따라.
선율이 고개를 쳐들었다.
자리한 모두의 눈동자에 다시 한 번 더 놀라움이 깃들었다.
소년에게 젖었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라이벌이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알렸다.
마찬가지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선율로.
* * *
똑똑.
조용한 집무실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쇤베르트는 문 너머의 상대를 가볍게 예상하며 안으로 들였다.
“들어 오거라.”
원래는 단 한 명뿐이었던 그의 제자, 휴멜.
“부탁하신 것 정리해왔습니다, 선생님.”
노크를 두드렸던 그의 손엔 오전 시간 쇤베르트가 부탁했던 자료가 들려있었다.
“그래, 고생했다.”
센스 있게 함께 준비해온 커피 잔을 집은 쇤베르트는 이윽고 가만히 선 휴멜에게 시선을 옮겼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보였기에.
“정말 안 가보셔도 되는 겁니까?”
“···뭐를 말이냐.”
내심 알면서도 묻는 그에게 제자는 속을 이미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모를 리가 없었다.
여태껏 옆에서 모셔온 기간만 해도 얼마인데 알아채지 못할 리가 있나.
“현우 말입니다.”
처음 제자로 받아들여졌을 때 느꼈던 감정을 잊지 않고 있다.
딱딱하디 딱딱하며 매몰차다는 평마저 듣는 선생님께 인정받았을 때.
유일한 제자로서 인정받았다는 그 희열은 모든 시간을 버티게 했다.
버티다보니 알게 되었다.
결국 선생님께서도 자신 나름대로의 애정을 가지고 표현하시는 분이라는 걸.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지.
“가보고 싶으시잖아요.”
그건 현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부러 무심한 척하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두 번째 제자를 향한 더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최소한 곁에서 그를 모셔온 휴멜 자신만큼은 알아챌 수 있었다.
“······.”
쇤베르트는 말이 없었다.
가뜩이나 이번 일정은 예선에 이어 본선과 마지막 결선까지.
러시아 현지에서 모든 걸 끝마치고 돌아오기로 한 현우였으니까.
마지막 남은 연습은 그곳에서 마무리 짓기로 한 지금.
어찌 가고 싶지 않으시겠는가.
해서 여쭌 것이었음에도 쇤베르트는 곧 담담하게 대답해보였다.
“······굳이 내가 가지 않아도 그 친구면 충분할 게다.”
“그래도···. 걱정되시는 거 아닙니까.”
자신을 대신해 현우와 함께 간 로저스, 친우를 언급했으나 돌아오는 반문.
그 반문에 쇤베르트는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며 천장을 응시했다.
걱정이라.
“휴멜.”
“네, 선생님.”
그 눈동자에 서려있는 건 걱정이나 두려움이 아니었다.
아쉬움.
소년의 선율을 생생히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지.
“내겐 나의 일이 있다.”
그럼에도 눈동자에 섞인 아쉬움을 지워낸 쇤베르트의 시선이 다시금 서류를 향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에게 주어진 남은 사명은 지금 이 자리였다.
이미 그로서 가르칠 건 모두 가르쳤기에.
그간의 가르침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듯도 했다.
아마 소년의 머릿속도 이와 비슷하겠지.
기다릴 건 오직 하나뿐이다.
자신의 손을 떠나 이제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올 소년.
그 소년의 우승을.
‘기다리마.’
흔들림 없는 믿음이 그에게 단단히 자리해있었다.
* * *
예선 이후 양강 구도의 열기는 더더욱 불을 지펴갔다.
마치 휘발유라도 부은 듯 타오르는 열기가 러시아 전체를 잡아먹었다.
동양에 환생한 모차르트의 영혼을 담은 천재 소년.
미국의 두 번째 영웅이 되기 위하여 돌아온 빈민가의 천재.
두 사람이 보인 두각은 과연 다른 참가자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곧 이어진 본선 무대조차도 충격에 휩싸이기 일쑤였다.
러시아 출신 참가자들에 대한 코멘트를 빼놓지 않던 러시아의 평론가들마저 시선을 고정시킬 정도로.
결선을 앞두고 점점 고조되는 기대는 동유럽부터 북아시아까지 이어지는 연방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올 해 차이콥스키의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막스 칼빈과 이현우, 두 천재 피아니스트가 벌일 감미로운 결투의 향방은?』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의 영광을 드높이고자 목표했던 차이콥스키의 주인공은 올 해에도 러시아를 빗겨가는 듯 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아쉬움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이제 결선까지 일주일 남았군.”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았다고?”
기다리는 관객 입장에서도 얼른 귀를 즐겁게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하물며 무대에 오르는 참가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것도 그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참가자라면.
“간만에 좀 쉬는 모양이구나.”
“아, 선생님.”
놀랍게도 현우의 속마음은 평안할 따름이었다.
“잠깐 창밖 좀 보고 있었어요.”
로저스의 옛 요청대로 교수에서 선생으로 바뀐 호칭은 뒤로 하고.
현우의 시선은 바깥에 덮인 눈을 담아내고 있었다.
새하얀 눈이 꼭 건반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뿜는다.
그 사이사이 남은 발자국은 여기까지 오던 과정을 보여주는 듯 했고.
이 방향으로.
저 방향으로 찍힌 발자국이 길을 잃었던 전생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눈이 참 예쁘지?”
어느새 곁에 다가온 로저스가 그리 중얼거렸다. 맞닿은 시선이 다시금 창밖의 눈으로 향했다.
“집에서 막 눈을 뜬 누군가에겐 가슴 벅찬 아침이 되기도 하고, 산 속에 갇힌 누군가에겐 죽음의 장애물이 되기도 하는 눈이다.”
짧은 물음이 현우에게 전해졌다.
“지금 네겐 어떻게 보이느냐?”
일주일.
길었던 여정의 끝이 당장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저 길을 잃은 듯한 수많은 발자국이 마치 시행착오가 되었던 것처럼.
내딛었던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길을 이루고 있었다.
“저에겐···.”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을 이루고 있었다.
“끝처럼 보이네요 꼭.”
과거 무너졌던 차이콥스키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생명을 앗아간 가혹한 무대였다.
누구보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싶었던 한 청년은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해내지 못한 증명이 빛바랜 듯이 이곳에 묻혀있길.
그 증명의 기회는 이번에도 비슷하게 청년이 아닌 소년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꼭 운명처럼.
“······.”
이내 진중했던 분위기 사이로 로저스의 손이 탁 날아들었다.
현우의 등짝을 가볍게 때렸다.
“크큭, 끝 같은 소리하긴.”
고개를 돌리자 중년과 노년 사이의 인물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으로 미소가 번들거렸다.
“누가 들으면 인생 다 산 노인네인 줄 알겠다. 이게 어떻게 끝이냐?”
이제 겨우 18살.
끝이라고 칭하기엔 말에 어폐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작일 게다.”
21세기로 다시 태어난 모차르트, 피아니스트 이현우의 시대가 시작일 거라는.
그리고 그 시작은 분명 올 해 차이콥스키의 우승에서부터일 거라는 확신이.
로저스 그의 눈가 밑에도 진득하게 자리해있었다.
* * *
결선.
가장 중요하면서도 무거운 자리를 채우기 위해 많은 객들이 발을 딛었다.
수많은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들이 낙방한 가운데에도 줄 지은 러시아인 관객들.
기대에 찬 눈을 한 그들의 시선은 명백히 두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대의적으론 미국의 영광을 한 번 더 드높이기 위해 이 땅을 밟은 막스 칼빈.
그리고······.
‘이현우.’
그의 진짜 목적인, 그의 시선까지 한 몸에 받고 있는 한 소년에게로.
집중되는 관심을 모른 척하는 현우를 로저스는 슬그머니 찔러봤다.
“자신 있는 게지?”
“네.”
떨림 없는 목소리.
옆에 선 중년 신사의 말에 소년은. 아니, 작은 거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리에서도 손꼽히는 명장에게 서용민이 직접 부탁해 공수해온 턱시도는 작은 조명을 받자 탁한 색감을 짙게 뿜어내고 있었다.
만약 무대 위 조명이라면 그 칠흑 속에서 더욱 존재감을 빛낼 터.
‘···비서한테 시켜서 가져다줘도 될 걸.’
일주일 전 찾아와 직접 턱시도를 건네주던 서용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가의 탄생을 미리 기뻐하고 있겠습니다, 현우군』
그가 남겼던 마지막 말에 잠시 기억이 스쳤다.
스쳐가는 기억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잘해낼 수 있지? 나 미리 자랑하고 다닌다? 내가 발굴한 신동이 올해 차이콥스키 우승자라고, 내 안 목이 이 정도라고, 응?』
좀 철딱서니 없긴 하지만 누구보다 믿어주고 신경써주는 행동력 하난 끝장나는 양반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현우군』
조용하고 담백하지만 그만큼 늘상 진지한 눈길로 자신을 지켜봐주는 이.
『다음 오케스트라 광고에 미리 큼지막하게 적어놓을게요. 한국 클래식의 영광을 몰고 올 천재 소년! 어때요?』
어째 부쩍 밝아진 동시에 가까워진 한 재벌가의 막내딸도.
그리고.
『성우랑 나도 이번에 청소년 국제 콩쿠르 우승 했어, 그러니까······』
전생엔 지나쳐가는 인연에 불과했던 두 어린 신동도.
『너도 우승하고 와야 된다? 꼭···』
마지막으론.
『아들』
그저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눈가가 젖어오며 자극되는 그 말에.
『잘하고 와, 아들 좋아하는 거로 차려놓을게』
네.
라고 대답했던 것처럼.
화악.
빛이 어느새 온 몸으로 내려앉았다.
그 무대 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무대 위에 다시 섰다.
발걸음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아니, 더없이 가벼웠다.
어깨에 짊어진 수많은 짐들을 덜어놓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주변 이들이 함께 그 짐을 들어주기 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소년은 손짓했다.
과거의 실수를 딛고 일어섰다.
Rachmainoff Piano Concerto No.3.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삶을 무너뜨렸던 곡.
그러나 혼자 남은 학원 연습실 안이면 매번 버리지 못한 미련을 되살렸던 곡.
관객들이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아니, 그 누구의 입도 벌어지기 일쑤였다.
그 어떤 18살도. 행여 그보다 많은 나이와 경력을 자랑하는 피아니스트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할 수 없는 선곡 아닌가?
그걸 가능케 하는 소년의 막대한 재능으로 인해.
툭.
펜대를 돌리던 한 심사위원이 볼펜을 책상에 떨어트린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어우러지기 시작하는 소년의 선율은 한 폭의 예술.
도화지 위에 칠해지는 아름다운 색감 그 자체였다.
“······.”
“······.”
말문이 막힌 칼빈의 동공도 충격으로 물들기 마련이었다.
예선과 본선 모두 자신과 호각을 다투었던 소년이었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뜨거운 열정을 불러주던 소년이었는데.
그게 일말의 착각이라는 듯.
“하, 하···.”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천재성.
격동하는 선율이 물살을 탄 파도처럼 밀려온다.
귓가를 마치 집어삼킬 듯이 부딪히는 건반의 떨림이 소년에게도 전해졌다.
소년의 손등을 타고 올랐다.
『이게』
악보가 말을 건네는 듯 했다.
『네가 원하던 거였지?』
아니, 이미 세상을 떠난 라흐마니노프가 말하는 듯 했다.
그가 지켜봤다면 과연 작금의 연주를 무어라 평가했을까.
“······.”
아마 자리한 모두가 그러하듯 말문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물살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감탄도, 탄식도 나오지 않고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마비된 듯 굳어버린 가운데.
그 마비를 풀어내는 건 다름 아닌 소년이었다.
이번 결선을 위해 전생과 달리 새롭게 연습한, 새롭게 고른 곡.
차이콥스키, 비창(Pathéque).
그건 바로 소년의 전생을 관통하는 지독한 슬픔이었다.
비창(悲槍).
지독하게 내려앉는 슬픔이 소년에게서부터 흘러나왔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깊고 어두운 음영이.
차마 저런 천재로서는 느껴볼 수 없으리라 여겨지는 고독이.
차갑게 어깨를 두드리자 관객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목구멍이 막혀오는 슬픔이 그에게도 느껴졌기에.
“······.”
뚝.
떨어지는 한 방울이 건반을 적셨다.
그 눈물 한 방울에 소년을 제외한 모두가 확신했다.
올 해 차이콥스키의 주인공은.
저 소년이 될 것이라고.
다시 없을 참가자 될 거라고.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