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0
“나는 학교에 가려면 한 시간 이상 걸려 학교 앞으로 가서 자취한다고 하니 집에서 다니라고 하더라. 너무 멀다고 하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된다니, 참.”
“집에서 다니는 것이 좋지. 나도 집에서 다닐 수 있다면 집에서 다니고 싶다.”
자신이나 민기나 다를 것이 없지만 장인걸은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넌 여자 친구 없어?”
민기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장인걸보다 훨씬 더 모태솔로에 가까운 녀석이라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 친구 있으면 귀찮기만 하지. 여동생 있으니 알 것 아니냐? 내숭이나 떨 것이고.”
“하긴 친구들 말로는 여자들도 다를 것 없다던데.”
민기는 장인걸의 말에 실망한 기색이 되었다. 엄마나 여동생에게 당하는 입장이라 그리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학에 가서 마음씨 고운 여자나 사귀어. 군대 가기 전에 사귀는 여자와 끝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니. 여자가 고무신 바꿔 신지 않으면 남자가 군화 벗으면서 새 신발로 바꿔 신는다고 하잖아.”
“하긴 그런 말도 있긴 있지.”
민기는 책상 앞 의자에, 장인걸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사촌동생인 은지가 와서 과일을 먹으라고 해서 거실로 나가 적당히 먹다가 다시 민기의 방으로 왔고 혼자 있기 심심한지 은지도 따라서 들어왔다.
“혼자 살아서 편하겠네.”
“몰라서 하는 소리지. 밥 해먹고 빨래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아줌마들이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는 말이 괜히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장인걸은 막상 자신이 홀로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 할 때까지 혼자 살아야 할 것이니 그런 생활이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하기는 밥도 혼자 해야 하고 김치도 담그고 하려면 쉽지 않겠네. 남에게 얻어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던데.”
“그러니 말이야. 그래도 해 나가야지.”
장인걸은 혼자 살아갈 생각하니 두렵지는 않아도 걱정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사이 은지가 나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동생인 인숙이 이야기였다.
큰아버지가 퇴근한 이후에 저녁을 같이 먹고 술자리를 가졌고 장인걸과 민기도 같이 자리하여 한두 잔 같이 마시다가 민기의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을 잤고 다음날 집으로 일찌감치 내려왔다. 서울에 올라 갈 때에는 트럭에 짐을 싣고 가 주기로 했다.
장인걸은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명상을 했다. 나머지 시간은 영어공부를 하면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었다. 전에는 매일 오전에 나가 저녁에나 들어왔고 가끔은 친구 집에서 외박을 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중간에 화공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강원도 청평에서 술만 잔뜩 마시다 돌아왔다. 남자가 대부분이라 주구장창 술만 마셔댔다. 개강을 하고 대학에 다닐 때도 그럴 것 같아 불안했다.
황명환이나 안석진도 딱 한 번 양진에 나가서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들과 만날 때마다 전의 기억이 남아 찝찝한 느낌이 들어 계속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오히려 같은 마을에 사는 최향림과 종종 이야기를 했다. 같은 마을에 산다고 해도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읍내에서 친구 두 명과 같이 자취를 했기에 별로 접점이 없었다.
“집 계약 했다면서?”
시골이라 비밀이 없었다. 어머니들끼리 만나면 자식 이야기를 했고 그러다보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했지. 너는?”
“나는 일단 기숙사 들어가기로 했어. 시골이라 신청할 자격이 되더라고. 너도 되지 않아?”
“나도 자격은 되는데 우리 학교는 기숙사가 적어 경쟁률이 높아. 더구나 기숙사에 있으면 남자들은 오히려 더 좋지 않다고 해서. 혼자 독립하고 싶기도 하고.”
“나는 혼자 사는 것이 무서워서. 같이 자취할 친구라도 구하면 2학년이 되면 나와야지.”
잠시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가 최향림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으르렁거리는 것이 보통인데 졸업하니 달라졌다.
“그보다 너 원경희 좋아하지 않아?”
시골 학교에서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은 금방 소문이 나기 마련이었고 장인걸이 원경희를 좋아한다는 것은 특별반 친구들은 대부분 알았다.
“걔가 예쁜 것은 아는데 직접 사귀고 싶은 생각은 없어.”
장인걸은 자신의 속을 보이고 싶지 않아 적당히 대답을 했다. 최향림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민망하기도 했고 이전에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끔찍했다.
“하긴 걔 노리는 애들이 한둘이어야지.”
약간 부러운 기색으로 말을 하는 최향림을 보자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최향림도 그리 빠지는 얼굴은 아니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원경희 못지않은 미모를 보이기도 했다.
“여자 친구 사귀면 뭐하냐? 당장은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애인 비위맞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고등학교 때도 사귀다가 싸우고 헤어지는 애들 얼마나 많았어.”
“그건 그렇지. 아침에 운동하는 거야? 저번에 보니까 골목을 달리던데?”
“고3이라 공부한다고 게으름을 피워서 그런지 몸이 약해진 것 같아서 뛰고 있지.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갔다 온다.”
“하긴 너 중학교 때까지 달리기를 했지. 소년체전에 나가기도 했고. 계속 운동했으면 전국체전에 나가고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도 나갔을 텐데.”
“그냥 애들 사이에서 잘하는 것이지. 그리 잘 달리는 것도 아니야. 100m 12초이고 1000m는 3분15초를 넘어가는데.”
그 정도라면 단거리나 중장거리나 별로 실력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일반인 수준에서 조금 잘 달리는 정도였다.
“그거야 모르지. 계속 했다면 기록은 훨씬 좋았을 거야.”
“더구나 박춘삼 그 인간 밑에서 있던 애들 다 골병들어서 그만두었는데, 뭐.”
장인걸이 달리기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나아졌다고 해도 달리면 횡경막의 통증이 남아있어 여전히 좋지 않은데 감독은 무조건 달리라고 윽박질렀고 결국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런 것을 알기에 최향림은 달리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서울에 가면 연락해라. 나 이번에 오빠가 휴대전화 만들어 주었다. 졸업선물이라고 주던데.”
그러면서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당장 장인걸은 서울에서 연락을 받을 전화번호가 없었다. 자취방에 전화를 놓기 전까지는 연락처가 없었다. 대학생 신분에 휴대전화를 가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요금도 만만치 않을 텐데?”
“오빠가 내준데. 내가 낸다면, 용돈 받아서 전화비 내면 한 달 내내 손만 빨아야지.”
그러면서 상당히 크기를 줄였지만 벽돌폰이라 불릴 정도로 여전히 커다란 휴대전화를 은근히 보이면서 자랑을 했다.
당시에는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장인걸도 전화번호 정도는 외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나중에 번호를 저장하면서 기억할 필요가 없어지지만 당시에는 당연했다.
고민을 했지만 적당한 방법이 없어 결국은 그냥 찾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동촌마을로 가서 창선이네 집이 어디인지 물었다.
“오랜만이네.”
창선이는 같은 중학교를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인접한 도시의 명문 은성고등학교로 갔기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러게 말이야. 중학교를 졸업하고 보지 못했으니 3년이 지난 것 같다. 우리 중에 너와 몇몇만 양진고등학교로 갔으니.”
공부를 제법 한다고 하는 학생은 이웃한 도시의 은성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거기는 대부분의 학생이 서울과 수도권의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높았다.
“명석대학교에 들어갔다면서. 나는 한영대학에 들어갔다.”
“들었다. 서울에 가서라도 가끔 보자.”
“그런데 무슨 일이야? 네 성격에 아무런 일도 없이 괜히 찾아온 것은 아닐 텐데.”
“뭐 하나 묻고 싶어서. 왕전 할아버지가 일가이지?”
“종조할아버지신데. 우리 할아버지 동생이시지. 왜?”
“우리 할아버지랑 친구시고 우리 할아버지 묘소도 그분이 정해주셨지. 더구나 내가 배가 아팠을 때에 아프지 않은 방법을 일러 주시기도 했고.”
“그래? 사실 일가라도 우리 어머니가 싫어해서 사실은 왕래를 거의 안 해. 사실 조금 그렇잖아.”
창선이네 집안은 인근에 있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당인 그 할아버지와 친할 수가 없었다. 그 집안 사람들이 신기가 있는 사람이 많아 그것 때문에 할아버지 때부터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만날까 하는데 집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 내가 데려다 줄게.”
그러면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너도 기숙사 들어 가?”
“아니,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려고. 너는?”
“창용이 형이 있잖아. 2학년이 되면 기숙사에서 나와야 한대. 같이 살기로 했어. 학교는 달라도 둘이 같이 사는 것이 비용이 줄어들 것 같아서.”
창선이는 연년생인 형이 있었다. 그렇기에 같이 자취를 하려는 것 같았다. 대학교는 기숙사가 충분하지 않아 2학년이 되면 대부분 다 나와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외딴집으로 갔다.
“저기야. 나는 그만 갈게. 괜히 만나면 그래서.”
창선이는 집 근처까지 갔지만 같이 들어가지 않고 돌아가려고 했다. 서로 의절하고 지낸다는 말도 도는데 그것이 사실인 것 같았다. 굳이 그들 사이의 일을 캐물을 필요는 없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들 사이의 일에 관여할 이유는 없었다.
왕전 할아버지의 집은 무당집 특유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담은 있지만 대문을 활짝 열어놓아 누구라도 들어갈 수가 있어 보였다. 집 근처로 가자 향내인지 약초 냄새인지 모를 냄새가 풍겨왔다.
마당에 들어서자 더욱 더 그 냄새가 진했다. 외딴집이라면 개를 키울 수도 있는데 그마저도 없었다.
‘하긴 개는 귀신이 보여 짖는다고 키우지 않는다고 했던가?’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았다. 밤이면 하도 짖어 대서 결국은 키우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어릴 때 들은 이야기인데 마침 기억이 났다.
“계십니까?”
마당에 들어가도 아무도 없어 소리를 내서 불렀다. 두세 번을 불러서야 마루위에 있는 문이 열렸다.
“뉘여?”
꼬부랑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노인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계단을 올라 마루에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살아 계신다면 85세일 할아버지와 친구로 지냈다면 최소 80은 넘었을 것이니 그런 모습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런 독거노인이 외딴집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한정에 사는 장인걸이라고 합니다. 제 할아버지 함자가 주자 선자입니다.”
“누구 손자라고?”
“주자 선자, 장주선씨의 손자입니다.”
귀가 좋지 않은지 잘 듣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기억력도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주선이 손자라고?”
한참만에야 기억을 하는지 알은 체를 했다. 그때에야 눈에 초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주선이 죽은 지 근 10년은 되는 것 같은데 손자가 무슨 일이여? 누가 아파 아니면 죽었어?”
사람이 아프거나 죽어야 찾는 경우가 많은지 그렇게 물었다. 무당에 지관 일을 하니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건 아니고요. 제가 어릴 때 아프다고 해서 숨 쉬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달리기 하다가 힘들어서요.”
장인걸이 몇 번을 설명해서야 그런 사실을 기억해 냈다. 나이 든 사람이라 기억이 흐릿해 답답하기 짝이 없지만 할머니도 그런 적이 많기에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아, 네가 인걸이구나. 안에 들어 오거라.”
장인걸은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으로 들어가자 향내와 더불어 오래된 집 특유의 냄새가 났고 윗목에 놓인 요상한 장식물에 자신도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불화인지 탱화인지 모를 무당집 특유의 그림으로 신당을 꾸며 놓았다. 오래 되었는지 색이 바랐고 테두리는 누렇게 변해 있었다.
“손 좀 줘봐.”
자리에 앉으니 손부터 달라고 했다. 손을 내밀자 한의사가 진맥을 하듯이 한참 동안 손목을 잡고 있었다.
“기력이 아주 좋은 것 같은데. 몸도 아주 좋고. 그런데 뭐가 문제가 있어서 왔어? 별로 걱정이 없는데.”
그러다가 장인걸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더니 뭔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비비고 다시 살폈다.
“아이고야, 뭐가 이래? 너 어떻게 된 거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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