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07
“그렇게 해야죠. 아버지나 우리는 한 다리 건너니 슬퍼도 절제가 되지만 엄마에게는 가장 가까운 혈육인데요. 더구나 상황이 이러니 더 감정이 복받칠 수도 있고요.”
분란이 없는 상갓집이 드물다고 하더니 상주가 자리에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을 보는 엄마 손설향의 마음은 그만큼 더 아플 것 같았다.
“큰아버지는 내일 오전에 오시겠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대학 친구들은 내일 왔다가 간다고 하네요. 연예인들 몇도 왔다가 간다고 하고. 유현이 아저씨나 가수 한정수 사장도 오고요.”
“네 손님이 많구나. 그런데 이번에 새로 집도 샀다면서 여기서 산을 살 돈이 있어?”
“그동안 꽤나 많이 벌었어요. 2집도 냈고요.”
“새로 사업을 시작하여 돈도 많이 들었다고 하던데 괜찮은 거야? 형님말로는 사업 시작하면 한동안 돈을 넣기만 한다던데.”
“다른 사람의 돈도 받았고 내가 보유한 지분의 일부를 처분하여 투자한 돈 전부를 사실상 회수했어요.”
30억 원을 받고 보유 지분 10%를 처분하면서 투자한 돈의 두 배를 회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디어나 기술의 가치를 제외하면 사실상 망해도 금전적인 손실은 보지 않았다.
“그래? 알았다. 그러면 추진을 하도록 하마. 그런데 고택이야 겉보기에는 멋있어 보이지만 그거 아무 쓸모도 없지 않아? 관리하지 않으면 폐가 되는 것 금방인데.”
“사실 지금이야 고택이 그리 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집은 사적지로 지정이 되어 보존이 되고 관광지로 개발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그 건물 중에 하나는 200년 이상, 300년 가까이 된 건물입니다.”
중간에 있는 안채를 수리하면서 발견한 상량문에 그 집의 건축시기가 청 옹정연간으로 적혀 있었다. 나중에 각종 기록을 살피자 원래 안채 하나만 있던 양반집을 후대에 천석꾼, 만석꾼이 되면서 계속 증축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기에 150년 전, 100년 전에 걸쳐 두 번의 증축이 이루어진 것도 확인이 되었다.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돈을 묻어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아쉽지. 네가 번 돈으로 허비하는 것은 아니니 뭐라 할 것은 아니지만.”
둘은 대화를 하다가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장재현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 사이에 조화를 배달 온 사람이 세 개나 더 세우고 있었다.
“조화가 너무나 많이 오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이러다가 내일은 더 둘 곳이 없을지 모르겠다. 괜히 허례허식이니 호화장례식이니 하는 말이 나올까 걱정이다.”
“다들 사업적으로 알고 지내는 관계이니 척을 지기 싫어 보내는데 어쩔 수 없죠. 제가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 어지간한 곳에서는 다 보내죠. 일면식도 없는 장관도 보내고 일부 국회의원도 보냈잖아요. 이 바닥에서 조화 안 보내면 엄청나게 욕을 먹고 만일에 거절하면 그것도 구설수에 올라요.
그래도 부의금은 받지 않기로 했으니 이것으로 대신하죠.”
장인걸은 자신이 모든 장례비용을 댄다는 조건으로 부의금을 거절하기로 했다. 외삼촌이 있다면 부의금 문제로 충돌할 여지도 있지만 어쨌든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를 줄인 것은 다행이었다. 부의금이 많이 걷힌 것을 알면 외삼촌이 장사꾼처럼 지분을 주장할지도 몰랐다. 그런 패륜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나았다.
장인걸은 이미향과 권세라, 강진경이 같이 빈소에 와서 조문을 하자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켕기는 마음이 들었다. 두 여자를 외할머니 빈소에서 한꺼번에 보니 좀 민망하기도 했다.
“같이 버스로 왔어요?”
“아니, 내가 운전해서 왔어.”
장인걸이 접객실로 가서 자리에 앉아 어떻게 왔는지 물었다. 강진경이 차를 가지고 있는 사실이 떠올랐다.
“동아리에서는 우리만 올 것 같아. 몇은 봉투만 보냈고.”
이미향이 대표로 상황을 설명했다. 방학 중이지만 지방이라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선뜻 오기 쉽지 않았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밤새 눈도 와서 길이 미끄러울 텐데 조심해서 올라가.”
“이쪽만 눈이 왔지 서울은 쨍쨍 맑아. 장지로 바로 가는 것 같은데 눈이 와서 불편하겠어.”
“요즘에는 포크레인으로 작업하니 힘들 것도 없어. 조금 날이 추운 것이 문제지만 옷을 두껍게 걸치면 되니.”
“외삼촌이 있는 것 같은데 안 보이네?”
권세라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장인걸의 부모와는 인사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궁금한 기색을 지었다.
“그럴 사정이 있어요. 지금 말하기 곤란하니 나중에 말씀을 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고 이미향을 슬쩍 보았다. 이미향은 세 사람을 살피는 기색이었다. 셋의 관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제 3자였다. 강진경과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몇 있지만 권세라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강진경과 이미향이 전부였다.
“진경이가 프리웨이에서 일하는데 나도 일할 거리가 없을까?”
이미향이 자신도 할 일이 없는지 물었다. 강진경이 프리웨이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기회를 보려는 것 같았다.
“선배는 지금도 과외하지 않아요? 그건요?”
“2년을 했더니 너무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것을 해보고 싶고.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들어오는 것도 별로 없고 들어와도 조건이 나쁘고.
이제는 음악이나 컴퓨터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어서.”
이미향은 음악에 조예가 깊지만 컴퓨터도 제법 다루는 편이었다. 여자이지만 기계를 다루는데 능숙한 면이 있었다. 키보드 조작도 잘하고 복잡한 음향기기도 척척 세팅했다.
“그래요? 혹시 MP3 관련된 일을 해보지 않을래요?”
그렇게 묻자 강진경이나 권세라도 궁금한 기색을 보였다.
“은마기획을 말하는 거야?”
강진경이 눈치를 챘는지 그렇게 물었다. 최근에 프리웨이에서 일하게 되면서 장인걸이 관여한 회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강진경은 장인걸이 노래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능한 것을 알고 무척 놀라기도 했었다.
“응, 거기서 지금까지 확보한 음반을 디지털 파일로 저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조금 문제가 있어요. 사실 편집이 필요한데 음악과 편곡을 아는 전문가가 필요해요.”
아르바이트를 써서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고 그것을 MP3 파일로 변환하는 것은 기계적으로 가능했다. 기기에 음반을 넣고 작동만 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니 제대로 음악이 재생되지 않고 변질이 되었다.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과정에 각종 노이즈가 발생하고 심지어 버그마저 생성이 되기도 했다.
“거긴 어떤 회사인데?”
“장유현님과 내가 반반씩 투자하여 만든 기획사인데 지난 1년 사이에 음악저작권을 상당히 많이 확보했어요. 그것을 인터넷에서 유통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려면 모든 파일을 MP3 형태로 변환해야 합니다.”
장인걸은 프리웨이에 관한 것은 일단 말하지 않았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그러면 음반을 파일로 변환하고 검토하여 에러를 잡고 그것을 다시 MP3 파일로 변환시켜 다시 검토하라는 말이지? 그렇게 하려면 하루에 많아야 음반 다섯 개 정도 작업하는 것이 고작일 텐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많은 사람을 모아서 일 하는 법을 가르쳐야죠. 최소 20명 이상을 모아 1년가량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음악을 아는 사람을 모아 작업하는 요령을 알려줘야죠.”
“일종의 음악감독의 일을 하라는 말이지? 재미있을 것 같아. 배우는 것도 많겠고.”
이미향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좋은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 되었다.
장인걸은 외할머니 장례를 치른 직후에 이사를 했다. 원래는 삼일 전에 해야 하지만 발인 다음날이라 미뤘다. 시골에서 온 김에 처리할 일이 있었다.
산과 고택의 매매계약도 체결하고 그와 관련하여 금융기관과 부채 문제도 확실하게 정리해야 했다. 아울러 고등학교 동기들 모임도 참석했고 외할머니 삼오제까지 참석을 한 후에 올라왔다.
기존의 세간이야 1톤 용달에 실어도 될 정도로 단출했다. 악기나 음악 관련된 것은 다 회사에 있으니 책과 개인 용품이 전부였다.
“나중에 필요하면 네 물건 대부분 버리지 않을 것이니 와서 가져 가. 무한정 보관할 수는 없고 대충 2년 정도 시간을 두고 말이야.”
장인걸은 권동환에게 약간의 용돈을 주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 고작 한 학년 차이지만 한참 어리게 느껴졌다.
“알았어요. 시가보다 더 잘 쳐주었다고 들었어요. 더구나 우리들 편의도 여러 가지 봐주고요. 어쨌든 고마워요.”
망해서 떠나는 상황이지만 조금 희망이 있어서 그런지 표정이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장인걸이 상당한 부채를 승계하는 방식으로 처리를 한 상황이라 명진전자와 권이조 사장의 채무정리가 쉬워지게 되었다.
“집이 아주 좋은데. 이렇게 큰 집에 혼자 산다고?”
대충 짐 정리가 끝나갈 무렵 사촌 민기가 방문을 하더니 집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기색이었다.
“야, 나도 여기서 살 면 안 되냐?”
“되었다. 집이나 여기나 학교 다니는데 차이가 없는데 여기에 올 필요는 없지. 사람은 자기 집이 편해. 나야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지내지만 집에 있을 때보다 좋은 게 없어.”
장인걸은 민기가 와서 있어도 크게 문제는 아니지만 막상 다른 사람이 와 있는 자체가 신경이 쓰였다.
“은지가 온다고 하는 것을 떼어놓고 왔는데 곧 올 거야.”
“하여간 너도 은지한테 좀 잘 해. 나이가 먹었어도 왜 그 모양이야. 나는 인숙이에게 잘 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인숙이와 은지가 같아? 인숙이가 얼마나 싹싹하냐? 은지는 독 오른 살쾡이인데.”
그 때 벨소리가 울렸고 문을 열자 은지와 큰어머니가 같이 들어왔다. 둘 다 민기를 보는 눈이 곱지가 않았다.
“넌 같이 가면 어디가 덧이 나서 그 새를 참지 못하고 혼자서 가냐, 자식아? 하여간 철이 없어.”
큰어머니가 욕설까지 하면서 민기를 혼냈다.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지만 시골출신이라 그런지 화가 나면 시골 아주머니들처럼 괄괄한 성격이 튀어 나왔다.
“그거야 엄마랑 은지가 다 마치기를 기다리려면 복장이 터지니까 그렇지. 천천히 준비한다고 하는 사람을 재촉하여 빨리 준비하게 하더니 다 마치고 오락을 한 판을 해도 끝나지가 않아.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는 것도 아닌데.”
“하여간 저 주둥이. 너는 저러지 말아라.”
큰어머니가 나서서 민기를 타박했고 은지는 그렇게 하자 조금 풀린 기색이 되었다.
“이거 청소라도 하는데 써라.”
이사를 했다고 세제를 가지고 왔다.
“감사합니다.”
“집이 마음에 든다. 저 짐들은 다 전 주인이 놓고 간 것들이라고. 큰집이라 가구나 전자제품을 채우는 것도 돈이 많이 들 것인데 당분간 사지 않아도 되겠다.”
“아는 사람이 살던 집이라 일단 가구와 전자제품은 2년간 맡아두기로 했습니다. 그 때까지 가져가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처분하기로 했습니다.
나야 당장 비품을 사지 않아도 되니 좋고 그들도 당장 둘 곳이 없는 상황이라 괜찮은 것 같아 그렇게 제안했습니다. 단지 문제라면 도배가 문제인데 내가 쓸 공간만 일부 했으니 크게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집이 커서 관리도 쉽지 않을 것 같아 파출부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사정이 어렵다면 편의를 봐주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 그런데 그 사람이 회생할 길이라도 있는 거야?”
큰 어머니는 장인걸의 말 속에서 뭔가 자부심 같은 느낌이 있어 그 이유를 물었다. 큰어머니도 은행원 부인이라 그런지 경제에 대해 제법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집 주인이 명진전자를 경영하던 분입니다. 환성전자에서 판매하던 컴퓨터를 실질적으로 조립하던 회사입니다. 환성전자가 부도나면서 받았던 어음이 부도가 나서 연쇄부도가 난 상황인데 다행히 제가 아는 회사에서 하청업체를 물색하던 중이라 소개를 해주었고 기술이 좋아 서버의 조립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는 관계로 지분 30%를 받고 급한 자금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장인걸은 명진전자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여 폴라텍스트란 회사, 부품조립을 맡긴 영일전자의 사정까지 대략적으로 설명을 했다. 물론 영일전자에서 조립단가를 터무니없이 올려달라고 요청한 사실이나 그 속내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했다.
장인걸은 그런 것에 대해 말할 사람이 없는데 큰어머니가 묻자 자랑 삼아서 자신도 모르게 말을 하고 말았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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