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1
장인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노인만 보았다. 역시 상대가 무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비라고도 욕하지만 제법 잘 맞추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장인걸의 모습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것 같았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형상인데. 이런 관상은 살다가 처음인데. 얼굴에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어.”
그러면서 이상하다는 듯이 장인걸의 몸을 더듬었다. 내심 짐작이 되었지만 당황하여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사주를 말해 봐.”
장인걸은 생년월일과 난 시간을 말했다. 그러자 옆에 놓인 책을 하나 들고서 뭔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만세력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한동안 살피다가 탄식을 내뱉었다.
“나이 서른 무렵에 죽어야 할 상인데 뭔가 요상하네. 마치 그 액이 사라진 것처럼. 그렇다고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 것도 아니고. 도화살도 있었는데 그것도 뭔가 이상하게 변했고. 정해진 사주마저 뒤틀려서 나오는 것이 없고.”
장인걸은 노인이 사이비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지만 시치미를 떼고 가만히 있었다. 그것을 알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기에 모른 척 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보다 자신의 비밀을 들킬까 그것이 더 걱정되었다.
혹시 시간을 역행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까 긴장을 했지만 그나마 그런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생각도 못 했는지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그런데 숨 쉬는 방법이라니, 깊게 들이쉬는 것 말이냐?”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결국은 장인걸이 달리 말을 하지 않으니 포기하고 용건을 물었다.
“예, 그 호흡법이 무엇인지요? 뭔가 다른 것이 있어 보이는데 배우다 중간에 그만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것은 나도 잘 모르는 책에서 얻은 것이다.”
구구절절 자기자랑을 겸한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방구석으로 가더니 책 더미 사이에서 아주 오래 되어 보이는 책을 하나 들고 왔다.
일제강점기에 먹고 살기 힘들어 스님이 되었는데 어느 절의 나이든 스님의 상좌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책은 주지였던 월명 큰 스님이 가지고 있던 불경이라고 했다. 큰 스님은 그가 절에 들어갔을 때 이미 나이가 환갑이 지난 나이였고 10년 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처음에 그 스님은 꽤나 정정했고 그 밑에서 독경부터 각종 부적술을 배웠다는 말을 했다. 아울러 먹고 살기 위해 의술까지 배웠다고 했다.
순수하게 절에 다니는 사람들의 시주만 받아서 절간을 운영하는 것이 힘들었다. 주지인 그 스승도 왕전 할아버지처럼 온갖 잡다한 것을 다했다는 말을 했다. 스승이 너무 일찍 죽어 공부를 다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불경의 유래는 정확히 모르지만 큰스님의 말에 의하면 중국에서 건너온 서적이라면서 서역의 불경을 필사한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뒷부분을 펼쳐서 보여주었다. 사람의 형상을 그린 곳에 선과 점이 찍힌 그림을 하나 보여주면서 그 아래 적힌 글을 읽으면서 내용을 풀이해 주었다.
“나도 큰스님한테 겨우 호흡법만 배웠는데 그 어른이 죽고 난 다음에 내용을 아무리 읽어도 더 이상 깨우치지를 못했어. 궁금하면 이 책도 가져가게. 나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니. 저기 있는 책 중에 필요하면 다 가져가.”
그 책들은 대부분 큰스님에게 물려받은 것들로 불경부터 점술, 도술, 부적, 의서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대부분 필사본으로 누가 지은 것인지도 대부분 불분명한 책이라는 말이었다.
그 책의 절반도 읽지 못했고 물려받은 것이니 버리지 않고 여태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큰스님이 죽고 절간이 무너져 내리자 아예 고향으로 내려온 덕분에 유실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준다고 하니 고서라 가치가 있어 보여 전부 다 달라고 했다. 죽고 난 후에 후손이 없으니 창선이네가 가져갈 것이지만 기독교 집안에서 그것을 보존할 리도 없으니 사라지기 전에 챙기는 것이 좋았다.
집에 와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아버지는 쓸데없는 것을 가져온다고 역정을 내면서도 고서로서 가치가 있어 보인다고 하니 일단 트럭을 몰고 갔다. 방 한구석에 있던 책장으로 쓰던 반다지마저 필요 없다고 가져가라고 하여 같이 그 안에 책을 담아서 가져왔다.
고서도 오래 된 것 같아 골동품으로 가치가 있어 주는 대로 받았고 반다지를 보니 꽤나 오래된 것 같고 골동품인 것 같아서 가져왔다.
물론 아버지 장재현은 그냥 가져오기 미안하다면서 막걸리라도 한 잔 하시라면서 약간의 돈을 주기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벼 한 섬 값을 주었다고 했다. 일종의 책값과 반다지 값을 지불한 것이다.
4. 변화를 모색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한 장인걸은 거실 한쪽에 놓인 반다지를 보았다. 그것을 보면서 뭔가를 더 기억하려고 했지만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1997년으로 돌아왔지만 뭔가 좋아질 여지가 거의 없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제약도 많고.’당시에 다른 사람과 달리 큰 문제없이 지나간 면이 있었고 연애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원체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큰 건이 있을 것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아. 일단 최유림 형을 접촉하여 뭔가 달라질 여지를 만들 생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다. 뭔가 크게 움직일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거의 없었다.
‘우리 집 재산을 다 정리해도 고작 몇 억이 전부이다. 막상 정리하려고 해도 정리할 수도 없지만. 어디선 일확천금은 아니더라도 횡재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여지가 없으니.’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런 기억이 없었다. 눈먼 돈이라도 있다거나 산삼이라도 발견이 되는 일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래도 논을 사지 않도록 했으니 그것이 호재인가? 그것으로 뭔가 방법을 찾도록 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은데.’물론 돈이 많아 보이는 장유현을 움직인다면 좋겠지만 그는 알아서 자신의 재산을 불릴 것이니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아니, 있다. 외삼촌이 헛짓을 하지 않도록 단속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려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놔두지 말아야 해.’주변을 다 돌아보다가 외가를 생각하자 뭔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가 일부 유산을 상속해야 하는데 양보하고 외삼촌에게 몰아주었다. 외삼촌이 그것으로 장사를 시작했지만 홀라당 다 날려먹었다. IMF 외환위기 직전에 호프집을 창업했는데 잘 될 리가 없지.’장인걸은 어머니가 속상해 하는 것이 기억났다. 어머니 손설향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형표가 호프집을 차리지 않고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외갓집이 어려워지지 않았을 것 같았다.
‘차라리 어머니나 막내 이모가 유산에서 자기 몫을 차지했다면 아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가외인이라면서 친정 식구를 위해 포기한 결과가 그렇게 되었으니 내내 억울해 했다.’외할머니는 양진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주천이라고 하는 곳에 살고 있었다. 시골에서 보통 남자들이 먼저 세상을 뜨는 경우가 많은데 외할아버지가 50살을 갓 넘어 돌아가셨다.
‘5월경인데, 그날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버이날은 지나서이고 스승의 날은 지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하는데.’2년 전까지 주천읍에서 음식점을 하던 외할머니는 건강이 나빠지자 음식점을 정리한 상태였다. 나이 50살에 홀로 되어 생계를 책임진 상황이라 모든 재산을 본인명의로 관리했기에 외할머니 명의의 재산이 꽤나 되었다.
외삼촌은 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에 눌러 앉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사업을 한다고 하여 실패하고 지금은 다시 직장 생활을 하지만 벌이가 그리 좋지 못한 상황이라 여전히 외할머니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본래 주천읍이 아닌 상금리라는 마을에 살았는데 농사짓기가 힘이 들어 음식 장사를 하러 20여 년 전에 주천으로 나왔다. 거기에 논과 밭은 그대로 두었고 오히려 장사를 하여 돈이 모이면 마을을 떠나는 사람이 파는 땅을 야금야금 사두기까지 했었다.
‘이번에 외할머니 댁에나 다녀오자. 입원을 시켜야지.’아직 거동을 하고 있지만 몸이 그리 좋지가 않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서 심장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하지만 너무 늦게 발견해 회복하지 못하고 심부전에 의한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버지, 외할머니 댁에 한 번 갔다 오시죠?”
“저번 설날에 다녀왔지 않아?”
굳이 또 가야 하는지 의문을 표했다. 남자라면 본능적으로 처갓집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장재현도 마찬가지였다.
“어젯밤 꿈에 외할머니가 보이더라고요.”
장인걸의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골에서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하면 허투루 듣지 않았다. 결혼하고 1년이 지나지 않아 장인이 쓰러졌고 항상 처가가 마음에 걸려하던 참이었다.
“너도 졸업을 했으니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서울 가기 전에 가보자. 오늘 점심이라도 가서 먹고 오자.”
장인걸의 말에 따라 외할머니 댁으로 가기로 했고 할머니 식사는 혼자 차려 먹게 조치하고 네 식구가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갑자기 외갓집은 왜?”
인숙이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 되어서 되물었다. 갑작스러운 외출이라 불만이 있어 보였다.
“그냥, 서울 가기 전에 한 번 보자고. 건강도 좋지 않아 보여서. 할머니에 비해 10살이나 나이가 적은데 더 늙어 보이잖아.”
그 말에 달리 토를 달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서 마저 준비를 했다. 여동생도 천성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어머니는 모처럼 친정에 가자고 하니 신이 나 보였다. 가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니 무척 즐거워했다.
“식사는 나중에 생각하고 병원부터 가요.”
주천의 외할머니 댁에 가니 아무도 없는 집에서 외할머니는 힘이 없다고 방안에 누워 있었다. 벌써 심부전 초기 증상이 와서 활동이 쉽지 않아 보였다.
“무슨 병원. 그냥 쉬면 좋아지는데.”
외할머니는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했고 거부하는 외할머니를 다그쳐 인근의 주천병원으로 갔다. 11시 경에 당도한 상황이라 서두르면 오전 진료가 가능했다.
“일단 병원에 가서 살피고 문제가 없다면 요 앞 오리탕집에 가서 점심이나 같이 하시죠. 어머님, 오리 좋아하시잖아요?”
아버지까지 나서서 채근하자 결국 따라나섰고 일단 병원에 가서 접수를 했고 의사가 검사 의뢰를 하여 검사가 시작되었다. 검사가 끝나자 12시가 넘었고 일단 식사를 하고 오기로 하여 밖으로 나왔다.
점심을 먹고 다시 병원에 가자 의사의 진료실에 들어갔고 장인걸도 같이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만성심부전입니다. 지금은 그리 심한 편은 아니지만 며칠만 지났다면 심각한 상황이 왔을 것입니다. 일단 입원을 하시고 영양보충을 해주면서 심장의 기능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미 4~5년 전부터 심장병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 외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고 어머니 손설향도 짐작은 하고 있는지 그리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선생님, 회복은 될 수 있습니까?”
“만성이라 쉽지 않습니다.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영양제를 투하하면 당장 상태는 나아질 것입니다.”
전에는 방치를 하다가 4월 초에야 병원에 데려갔는데 한 달 이상 먼저 병원에 데려갔으니 어떻게 될지 몰랐다. 외할머니가 당장 돌아가시지 않으면 외삼촌도 재산을 처분하지 못할 것이고 뜬금없이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을 것이니 뭔가 바뀔 소지는 다분했다.
괜찮다고 그냥 집에 가자는 외할머니를 더 큰 병을 얻어 옆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 병원에 입원하라는 어머니 말에 결국은 입원하기로 했다. 큰 병원으로 가더라도 그저 영양제 주사를 놓고 심장약을 처방하는 정도라는 말에 그 병원에 두기로 했다.
거동이 가능하기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침저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간병인도 필요가 없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나중에 전화를 받고 온 외삼촌 내외는 민망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못한 죄책감 때문에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일주일 정도 투약을 하면서 지켜보고 그 후에 퇴원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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