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14
‘그렇다면 회귀 전에는 3개월 사이에 부실이 3천억 원이나 커졌다는 말인가? 원래 한동그룹과 인수협상이 시작되는 것은 몇 달 후인데 벌써 협상에서 상당한 진척을 이룬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한데. 진짜 나 때문에 큰아버지가 추가대출을 동결하여 이런 결과가 생겼나?’ “알았어요. 연휴 끝나고 인수를 검토해 볼게요. 대충 10억 원을 인수대금으로 지불하고 20억 원을 증자하여 10억 원은 운영자금으로, 10억 원은 부채 상환을 하는 것으로 하고 남은 부채 50억 원은 3년 거취 후에 5년 분할 상환 정도가 최선이겠군요.”
이런 조건은 회귀 전에 전명전자에서 인수할 때 내건 조건과 상당히 비슷했다. 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는데 부채를 탕감한 액수가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부도가 난 상태로 서너 달 더 방치되면서 부채가 계속 증가한 것 같았다.
‘그런데 박시운 박사가 어떻게 3억 원을 투자하여 지분 30%를 받았지. 설마 유상증자를 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부채탕감을 더 받거나. 하지만 운영자금을 충당하려면 유상증자가 필요한데 그렇게 했다는 것은 재고자산을 일부 숨겼다는 말인데. 현금을 마련할 길은 그것 밖에 방법이 없는데.’ 장인걸은 뭔가 또 다른 비리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거야 현장실사 과정에서 자세히 조사하고 협상과정에서 면밀히 살펴보면 되는 일이었다.
설날 하루 전에 음식 장만을 어머니와 큰어머니가 알아서 한다고 하여 사촌들끼리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왔다. 더구나 장인걸이 고택을 구입하고 산을 샀다고 하니 다들 궁금해 했다.
“오빠가 진짜로 여기를 샀다고?”
장인걸은 인숙이와 사촌들을 데리고 안골의 고택을 방문했다.
“응, 집이 사실상 두 채야. 이쪽 말고 여기도 같은 집이래.”
고택은 빈집이 아니었다. 일종의 관리인으로 70대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매매할 때 집을 비워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냥 살도록 했고 기존처럼 집에 부속되어 있는 전답 2천여 평도 4천만 원을 추가로 들여 구입해 주기도 했다.
“집이 두 채라고?”
“100년 전에 집을 한 채 더 지었다고 하더라고. 99칸 이야기는 알지?”
“궁궐이 아니면 100칸을 넘지 못하는 것 말이야?”
“응, 그래서 일종의 작은 아들을 분가시키는 형식으로 옆집을 지었는데 해방 후에 작은 아들이 살던 집을 다시 큰 아들의 아들이 사들였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담 사이로 두 개의 쪽문을 내서 한 집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그러면 99칸이 넘는 거야?”
“그렇지. 이쪽은 80칸이고 저쪽은 45칸인가 되어 125칸으로 사실상 궁궐이나 마찬가지이지. 이거 궁궐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은데. 뭐라고 붙일까? 안골에 있으니 안골궁이라고 할까? 아니면 인걸궁이라 할까? 나중에 방송국과 협의하여 사극을 촬영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고택은 마을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아마도 부잣집이다 보니 서로 불편한 면이 있어 거리를 둔 것 같았다.
집 앞에 400평가량의 텃밭이 있는데 전에는 바깥마당으로 쓰였는데 해방이후에는 진입로만 남기고 밭으로 만들었다. 형태는 밭이지만 여전히 집터로 되어 있기에 언제든지 대지로 활용이 가능했다.
장인걸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오기 전에 전화로 방문한다고 했기에 장인걸이 당도하자 문을 열고 노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명절이기에 트렁크에 있는 선물세트를 하나 챙겨 할머니에게 건넸다. 일종의 고용인인데 명절에 그냥 찾아가기도 그랬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장인걸은 명절 전날에 집 구경을 한다고 찾아가는 것이 미안해 미안한 마음을 표명했다.
“명절이라도 누구 하나 찾아올 사람이 없어서 한적한데 이렇게 찾아오니 반갑제.”
노부부는 자식이 없어 고택에 둘만 남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들은 기존 주인, 삼형제의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도 같이 살던 사람이라고 했다. 장남이 집을 물려받은 이후에도 집에 딸린 전답을 경작하면서 집과 문중 선산을 관리했다.
“문간에 있는 집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제. 우리가 여기서 산 것도 40년이 넘어 50년 가까이 되어 가.”
노인은 자신들이 대문 옆에 있는 문간방만 사용한다고 가리켰다. 입구에만 각종 생활용품이 있었다. 문간이라고 해도 방만 10여 개나 되었고 창고로 쓰는 광도 4개나 되었다.
그들은 다시 문을 통과하여 안채로 들어갔다. 안채는 가장 낡은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였고 좌우로 건물이 보였다. 집 내부에도 담이 있었다.
“문간채가 20칸, 안채가 20칸, 좌채와 우채가 각각 15칸씩, 뒷채가 10칸으로 80칸이여.”
집안 곳곳에 크고 작은 화단이 있지만 상록수 몇 그루를 제외하고 낙엽이 져서 황량한 모습이었다.
“문간 양 옆으로 헛간채가 각각 10칸, 9칸이 있었는데 초가라서 해방 후에 철거했어. 당시 법도로 기와집은 80칸만 지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뭔 소린지 모르겠더라고. 양반이어도 주인의 벼슬이 낮아서 그런다고 하던데···.”
그렇게 보니 문간채 옆으로 담 안에 두 개의 텃밭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략 100여 평 정도 되었다. 밖으로 나가는 쪽문이 앞쪽으로 나 있었다. 거기에 각각 수백 석의 벼를 저장하기도 했다고 했다.
“뒷채를 갔다가 우채를 보고 좌채를 본 다음에 저쪽 집으로 건너가면 되제.”
노인이 앞장서서 안내를 했다. 처음에야 신기했지만 기와집 모양이 거기서 거기기 때문에 대충 둘러보았다.
뒷채는 상당히 넓은 공간에 세 채의 건물이 나란히 있었다. 뒷채 뒤로는 임야와 연결이 되어 있고 산 아래 담장이 쳐져 있는데 담장 아래쪽에는 대나무 밭이 있고 그 사이 공터에는 장독대도 있고 감나무 같은 유실수가 심어져 있었다.
우채와 좌채는 대칭형 구조로 되어 있었다. 좌채라고 하는 동쪽의 집을 한 바퀴 돌고 옆으로 난 쪽문을 열었다.
“집을 바로 붙이면 99칸이 아니게 되어 밭을 하나 두고 집을 지었다고 하더라고. 누군가 고발하면 역적으로 몰린다고 하여 거리를 띄었제.”
노인은 자랑스럽게 집의 이력을 말했다. 쪽문으로 나가니 넓은 마당이 있었다. 앞뒤로 큰 감나무가 서너 그루씩 서 있었다. 섬돌을 깔아서 궂은날 다닐 때 문제가 없도록 했다. 대략 10m 정도 거리를 두고 담이 또 있었다. 감나무는 나중에 심은 것이라고 했다.
“집을 하나로 만들면서 인공 지난 후에 앞뒤로 담을 쳤제.”
그렇게 말하고 남쪽과 북쪽의 담을 가리켰다. 모양이 거의 비슷해 나중에 만든 것이라고 알기 어려웠다. 그들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채가 나타났고 앞으로 문간채, 뒤로 별채가 있었다. 각각 15칸 정도가 된다고 했다.
“여기 기와산은 집을 지을 때 나중에 깨진 기와를 갈아주기 위해 여벌로 남겨놓은 것으로 여태 절반도 사용하지 않았어. 다른 기와를 사용하면 잘 맞지 않아 집 지을 때 넉넉히 주문하여 남으면 이렇게 쌓아두어.”
그런 설명을 듣다가 생각해 보니 반대편 집에도 여전히 기와가 수북하게 쌓여 있던 것이 기억났다. 일종의 수리용으로 예비해둔 것 같았다.
장인걸은 집을 둘러보면서 나중에 어떻게 집을 개장할 것인지 고민했다. 회귀 전에 한 번 가족들과 같이 구경을 왔을 때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런 모습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집 앞의 텃밭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입장권 판매소와 식당, 카페, 기념품 판매소로 사용할 건물을 건축하기로 했다.
집을 둘러본 네 사람은 고택에 딸린 주변의 땅도 둘러보았다. 집 뒤쪽으로 나지막한 산이 하나 있었는데 고택 전 주인들 문중선산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노인이 관리했는데 이제는 산지기 역할은 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 장인걸 일행은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양진산까지 가서 새로 구입한 임야를 살펴보았다. 사촌과 인숙이는 장인걸이 넓은 산을 하나 샀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 정말 엄청나게 돈 벌었나 보구나. 서울 집도 대단한데.”
“나도 이번에 같이 가서 한 번 보자.”
인숙이도 궁금한지 서울에 같이 올라가자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장인걸은 계곡으로 난 소로를 따라서 산위로 올라갔다. 겨울이라 풀이 우거지지 않아 그럭저럭 올라갈 수 있었다.
‘저기이군.’ 대략 500m 정도 계곡을 따라 안으로 들어와서 노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암벽을 살폈다. 대략 암벽 높이는 30m 정도는 되어 보였다. 지질학과 교수나 되니 올라가서 암석 샘플을 살폈지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것 같았다.
장인걸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아래쪽을 보았다. 그들이 올라온 계곡 양쪽으로 구릉성 산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저 아래 계곡 양 옆에 있는 구릉성 산지는 나중에 골프장을 만들면 괜찮을 것 같다. 저번에 아빠랑 엘판시아 클럽에 갔을 때 산위에 있었지?”
민기가 은지를 보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
“응, 여름에 아빠 따라 간 골프장 말이지. 산속에 골프장이 있는데 거기랑 모습이 비슷하네.”
장인걸은 골프장을 만드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회귀 전에 그런 이야기가 나와 환경파괴라고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기억났다. 물론 양진 주민 상당수가 골프장을 만들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된다고 찬성하기도 했다. 결국 그가 회귀할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던 것도 생각이 났다.
“그런데 산에 골프장을 만들면 환경단체가 가만히 있을까? 내 생각에는 환경파괴 한다고 난리가 날 것 같은데.”
인숙이의 말에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반대가 나면 허가가 나더라도 공사를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경기가 어려워서 그간 각종 규제 때문에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사업의 허가를 쉽게 내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던데.”
은지마저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뽐내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는 얼마 전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에 관한 TV토론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전이라면 허가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지만 경제가 어려운 지금은 가능하다는 말이지? 그럴 수도 있겠네.”
장은지와 장인숙의 말에 장인걸은 항상 어리게만 보이는 두 동생들이 다르게 보였다.
“오, 우리 동생들 대단한데. 인걸아, 말 나온 김에 지금 골프장 허가를 신청하는 것 어떠냐? 돈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은데. 허가가 나오면 직접 공사하지 않고 비싸게 팔아도 되고.”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최소 50억은 있어야 18홀짜리 골프장을 만들 수 있을 거야. 나중에 적당한 업체가 나타나면 팔아 시세차익을 얻어야지.”
장인걸은 나중이 되면 골프장 건설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면 임야의 가격이 상승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일단 백제화학을 인수하는 것이 우선일 것 같아. 그런 다음 몰리브덴 광산을 개발해야지.’ 장인걸은 전날 밤에 큰아버지 장태현과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고 서두르기로 했다. 몰리브덴 광산만 개발해도 백제화학을 인수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전부 회수할 수 있었다.
장인걸은 설날 전날인데도 긴급으로 걸려온 전화 때문에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산에서 내려오자 민수길에게 전화가 왔는데 산속에 있어 연락이 되지 않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집에서도 회사에서 찾는다고 전화가 걸려왔다.
“인수위에서 연락이 왔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취임식 식전행사로 축하공연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특히 2집의 타이틀곡인 ‘희망으로’라는 곡이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서 당선자님이 선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수위에서 통화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전화번호를 불러주었고 장인걸은 전화를 했다. 물론 공연을 하는 것이라서 소정의 공연료를 받지만 그런 자리에서 축하공연을 갖는 자체가 영광이었다.
보통이라면 민수길이 일정을 잡았겠지만 정치인 관련 행사나 중요한 행사는 상의를 하고 결정하도록 했기에 확답을 주지 않은 것 같았다. 혹시라도 메모가 필요할 수도 있기에 필기도구를 갖추고 일단 불러준 번호로 전화를 했다.
“인수위 취임식 준비팀장인 황영호입니다.”
황영호는 나중에 홍보수석이 되는 인물로 당선자의 최측근 중에 하나였다. 벌써부터 인수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가수 장인걸입니다. 취임식 축하공연 관련하여 연락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선자님께서 ‘희망으로’라는 곡이 좋다면서 식전 행사로 축하공연을 했으면 하십니다. 조금 화려하면서도 힘찬 무대를 만들었으면 하십니다. 국가의 상황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취임식 분위기가 너무 처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끝ⓒ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