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18
사실 낮에 야외에서 하는 공연은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가수에게는 어려운 공연이었다. 조명효과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나기에 시선집중이 되지 않았다. 또한 가창력을 중시하는 가수도 소리가 확산이 되어 죽어버리기에 쉽지 않았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의상을 원색으로 바꿔 시각적인 주목도를 높여야 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원색으로 하다가는 난잡한 모습이 되기 쉽습니다. 그날 흐릴지, 맑을지, 그것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일단 이런 형태, 이런 수준의 공연이 되도록 준비를 하겠습니다. 같은 무대라도 환경이 다르면 달라집니다.”
장인걸은 식전 행사와 더불어 기념 리셉션의 공연마저 논의를 했다. 총 세 곡인데 두 곡은 자작곡으로, 한 곡은 트로트로 부르기로 했다. 참석자의 나이가 많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한 시간 정도의 미팅이 끝날 즈음에 황영호가 물었다.
“방금 당선자님께서 사무실에 들어오셨는데 잠시 만났으면 하십니다. 더구나 장인걸씨가 프리웨이 창업자라는 것을 들으시고 상당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장인걸은 일거리도 없는 실정이라 이후에 특별한 약속이 없었기에 좋다고 말했고 미팅이 끝나고 조금 기다려 6시가 다 되어서야 잠시 당선자 집무실로 가서 인사를 했다.
장인걸은 당선자가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치적인 부담이 있지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생각도 있었다.
“어서 오시게.”
“안녕하십니까?”
장인걸은 애매한 느낌이라 호칭을 생략했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인데 이게 참 미묘했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자칫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향에 따라 원하는 호칭이 달랐다.
“내가 장인걸씨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바로 팬이 되었습니다. 요즘 나오는 노래는 즐겨 듣지 않는데 장인걸씨 노래는 귀에 쏙 들어오더군요. 더구나 2집 앨범이 나오자 들었는데 그 가사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장인걸은 노래라면 완전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가급적이면 어떤 노래라도 정돈을 하려고 했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노래가 정돈되지 않으면 거부감을 표명했다. 뮤지션인 장인걸 자체가 그렇기에 그가 만든 노래는 원형이 어떻건 깔끔하게 정돈이 된 형태로 발표가 되었다.
또한 외환위기가 온 상황을 알기에 가사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고 수사법을 동원하여 희망을 담으려고 노력을 했다. 조금만 문학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독서광인 당선자는 당연히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힘들어하는 국민들과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희망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리웨이를 창업했다고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살펴보고 그 기발함에 감탄을 했습니다.”
장인걸은 과분한 칭찬에 그저 머쓱한 표정만 지었다. 사실 미래의 포털 사이트나 잘 나가는 사이트를 도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것도 아직은 기술이 부족해서 겨우 흉내만 내는 정도였다.
“그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인터넷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만들다 보니 지금의 사이트가 되었습니다. 아직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운 경제정책의 하나가 중소기업, 벤처기업의 육성입니다. 거기에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분야의 혁신을 이루고 내수를 진작하여 지금의 외환위기,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장인걸은 이미 어떻게 경제정책이 추진되는지 알기에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단편적인 이야기를 하여 정책에 반영하기 쉽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30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개혁이라는 화두에 너무나 매몰이 되는 면도 있고요. 대학교 1학년 학생이라고 하던데 젊은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선자의 말에 장인걸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당선자의 옆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세 명의 인수위원과 두 명의 경호원이 같이 있었다.
장인걸은 슬쩍 그들을 살폈다. 그 중에 당선자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 칭해지는 두 명이 같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당선자의 복심이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 인물이었다. 신정권이 출범하고 당과 청와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이었다.
“간단히 제 생각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소외될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큰 부자는 흉년이 들어야 난다고 합니다.
흉년이 들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서민들이 생활터전마저 일부 부자들에게 보리 서 말에 넘겨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양극화가 심화될 것입니다. 부익부빈익빈,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했으면 합니다. 또한 내수 진작을 위해 소비촉진을 하는 과정에서 카드나 사채의 남용으로 인해 중산층이 몰락하여 신용불량자가 속출하지 않도록 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인터넷 산업이 발달하면서 관련 산업이 거대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성장이 있으면 반드시 거품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거품이 발생하지 않는지 주시하면서 그 예방대책을 준비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경제위기가 되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지금의 경제위기는 외환문제도 있지만 확장을 우선하여 부실을 키우고 그런 부실을 숨기는 분식회계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분식회계를 근절할 대책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분식회계를 한다면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상입니다.”
장인걸은 장황할 정도로 말을 했다. 그것은 회귀 전에 당선자의 과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몰라서 발생한 면도 많았다. 조금만 정책추진과정에서 염두를 두고 살폈다면 상당부분 줄이거나 폐해를 완화할 수 있었다.
“흠, 양극화, 개인 부채의 증가, 인터넷 산업의 거품, 분식회계 근절이라? 인터넷 산업의 거품을 제외하면 모두 위기극복과정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작용과 대책들이군.”
장인걸은 당선인의 말에 이미 그런 것이 검토가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하긴 외환위기나 경제위기는 지금의 대통령이 OECD 가입 및 금융시장 개방을 검토할 때 거론이 되었지만 무시하고 추진을 했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저런 위험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근다면 그것만큼 멍청한 것도 없습니다. 항상 경계를 하겠지만 저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사태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당선인의 확고한 말에 장인걸은 달리 반론을 할 수가 없었다. 저것에 중점을 두고 머뭇거릴 정도로 현재 상황이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손을 놓고 있다면 당장 얼마나 많은 기업이 무너질지 몰랐다.
“알고 있습니다. 상황이 급해 머뭇거릴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신중하게, 조금 더 완벽하게 일을 추진하면 후유증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 봅니다. 무리한 요구이지만 새로운 정부는 충분히 하실 역량이 있다고 봅니다.”
장인걸의 말에 당선자는 그저 웃기만 했고 다른 사람은 답답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장인걸은 사전에 문라이트에게 협조를 구해놓은 상황이었다. 그들도 백밴드로나마 그런 무대에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꺼이 참여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무료로 참여했다.
“우리 말고 다른 밴드도 많이 있지 않아?”
“문라이트도 탑 실력이야. 괜히 걱정할 필요는 없어. 더구나 ‘희망으로’는 연주 자체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세션 녹음에 참여하여 너희만큼 잘 아는 밴드도 드물잖아.”
장인걸은 만나자 걱정부터 하는 권세라를 격려했다.
“코러스나 백댄서는 저번 가요대축제 때 같이 한 팀을 쓸 거야? 그들의 실력이 좋지만 이름값이 높은 팀을 불러야 하지 않아? 나중에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지. 사실 20명 가까운 인원이 동원되는데 염가로 봉사한 면이 있는데 이럴 때라도 같이 해서 그 공을 보답해야지.”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명성은 바로 성공이고 돈을 의미했다. 그들이 실력은 있지만 명성이 없기에 일류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번 공연은 일류가 될 기회이기도 했다.
“다른 가수도 많은데 너를 불러서 공연하라고 했다니 너는 실력도 좋지만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운칠기삼이라는 말도 있고. 이 바닥은 운 좋은 놈이 최고라는 말도 있잖아.”
장인걸은 이번 일도 운이 상당히 작용했다. 물론 ‘희망으로’라는 노래를 발표한 것도 있지만 운 좋게 당선자가 그 노래를 듣고 선택한 면도 크게 작용했다.
“나도 네가 사는 집을 구경하고 싶은데 집들이 한 번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유현이 아저씨나 한정수 사장님이 집들이를 하라고 하니 그 때 같이 부르도록 할게. 대략 10여 명 정도를 부를 생각이야.”
“우리 셋 다 부를 거야?”
권세라가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럴까 하는데 너무 부담이 되는 거야?”
“그거야 아니지만 조금 기분이 이상해서. 서로 좋다고 하지만 일반인의 관점에서 정상적인 만남은 아니고.”
장인걸은 권세라의 말에 아무런 말도 없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뭔가 결단을 해야 할 시점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급하게 관계를 정리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둘 다 좋아. 도둑놈 심보인 것 같아 나도 마음이 불편한데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항상 심복지환처럼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둘 다 자유연애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그와 만나지만 그것이 진심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상황이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았다.
“알았어. 우리에게는 아직 많은 시간이 있으니. 흔한 말로 지금 헤어지나 나중에 헤어지나 상처는 남을 것이고. 빨리 헤어진다고 해서 너랑 나랑 만난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아.”
권세라의 말에는 체념과 아쉬움과 미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체념, 장인걸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미련을 담고 있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너도 그런 생각을 했네.”
장인걸은 인간은 참 모순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을 동시에 만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욕망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울러 지금 두 사람과의 만남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 시간이 흐르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권세라는 그렇게 말하고 장인결의 곁으로 다가왔고 장인걸도 권세라를 끌어안았다. 둘은 더 이상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여 상처를 키울 필요는 없었다.
모교의 졸업식 때문에 양진에 가기 전에 고등학교 동기인 황명환에게 전화를 했다. 한때 거리를 두었지만 박성희와 혼인을 하여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 관계를 개선하기도 했다.
여전히 안석진은 원경희를 쫓아다니고 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장인걸은 씁쓰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아버지한테 네가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비밀을 유지하라고 당부해도 소문이 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학교와 연락을 하는 동창회 사무국장은 아는 것 같았다. 아마도 졸업식 때 동창회장상 수여문제로 학교와 연락을 하다가 들은 것 같았다.
“계속 시골집에 있는 거야?”
“명절 때 내려왔다가 며칠 후에 올라가려고 했지. 개강할 때까지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그러면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럴 게 아니라 저녁에 시간이 되면 양진에서 보자. 오늘 저녁에 내려가야 할 것 같아. 학교 음향설비가 워낙 좋지 않아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장인걸은 황명환과 통화를 마치자 수첩에서 전화번호를 하나 찾았다. 같은 대학교에 다니는 진성민의 시골집 전화번호였다. 방학이라 시골집에 내려가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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