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2
장인걸은 2월 20일이 되자 아버지랑 같이 서울로 올라갔다. 어머니가 싸준 각종 반찬거리를 트럭에 한가득 싣고 가야했다.
전에는 왜 이렇게 많이 싸주는지 짜증을 냈지만 이번에는 주는 대로 받아서 가지고 갔다. 자취를 해보니 김치나 된장, 고추장,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참깨, 마늘 같은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집에 가서 가지고 오면 된다고 하지만 그런 것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니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트럭에 싣고 가져가는 것이 편했다.
물론 책을 담아서 가져온 반다지도 같이 가져갔다. 시간을 두고 책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반다지 자체가 꽤나 오래된 물건인지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나중에 전문가에게 감정을 받아볼 생각도 있었다.
“전화를 놓아야 해요. TV, 냉장고, 세탁기도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컴퓨터도 사야하고.”
대학에 다니려면 당연히 컴퓨터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와 같이 인근의 전자제품 대리점에 가서 한꺼번에 샀다.
“통신인가 인터넷인가도 있다던데 그것도 해야 된다면서.”
“그런 것 하나하나 갖춰 가야죠.”
에어컨도 필요할 것이지만 일단 그 부분에 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필요하면 사는 것이 나았다.
필요하다 싶은 것을 사서 집에 가져다 설치를 했다. 장인걸은 혼자 10년 가까이 살았고 사실상 집안 살림을 했던 경험이 풍부하기에 별도의 설치 기사가 없어도 척척 해내었다.
“눈썰미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꼼꼼한 것인지 모르지만 살림살이를 잘 챙기는 것 같구나.”
점심 무렵에 큰어머니가 와서 집안을 살피더니 그런 말을 했다. 전화도 신청을 하자 바로 오후에 와서 가설을 해주었고 그 후에 시골집과 큰집에 통화를 하여 번호를 알려 주었다.
“우리 민기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너는 야무지게 잘 정리를 했구나. 냉장고 안에 음식물도 잘 정리했고.”
부엌살림을 적절히 정리하는 것은 살림을 한지 3년은 되어야 가능한 일인데 빈틈이 없이 마무리를 해놓고 있었다. 각종 물품을 적절하게 갖추고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 가끔 나도 놀러 와야겠네.”
같이 따라온 민기가 놀러 오겠다고 말을 했다. 전에는 전화도 한참 지난 후에 놓아 이런 자리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입주한 당일에 처리를 한 덕분에 큰집 식구들도 왔다.
“아버지도 여기로 퇴근하신다고 했죠?”
사촌인 장은지가 엄마 옆에서 집안을 살피다가 물었다. 방금 전에 외부와 통화를 하기도 했다. 장인걸은 큰집 식구들이 들락거리면 번거로울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처음에는 관심을 보일 것이나 시간이 흐르면 무관심해질 것이니 그리 걱정할 것도 없었다.
10여분 정도 곳곳을 살피던 큰집 식구들도 방안에 모였다. 장인걸은 침대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라서 방에는 작은 서랍장과 책상, 의자만 놓여 있었다. 서랍장은 별도로 구하지 않고 시골에 있는 것을 가져온 상황이었다.
책을 담아둔 반다지는 거실에 두니 제법 어울리기도 했고 그 위에 자잘한 생활용품을 진열해놓으니 그 자체로 좋았다.
“방도 꽤나 넓은 편이고 남향이라 빛도 잘 들어오는 것 같다. 이 정도면 혼자 살기는 적당한 것 같아.”
집안을 다 둘러보고 그런 평가를 했다.
큰아버지도 집에 오면서 각종 세면용품과 빨래를 하는데 사용할 세제를 가져왔고 그 덕에 따로 사지 않아도 되었다. 역시 저녁은 근처 중국음식점에서 시켜서 먹었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TV를 켜 놓자 부도난 대기업에 관한 보도가 계속 이어졌고 장태현이 한마디를 했다.
“그런 것 같아요. 이러다가는 남아나는 회사가 없을 것 같아요. 점점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장재현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 옆에서 동조를 했다. 대기업이 속속 부도가 나는 상황이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럴수록 지출을 줄이고 현금을 확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가도 연일 폭락하고 부동산도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장인걸은 아버지가 여전히 동네에 나온 논 10마지기에 욕심을 내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것을 샀다가는 본전도 찾기 어렵고 구입자금의 절반 정도를 대출로 충당하면 그것으로 인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가 있었다.
“급전을 마련하려고 집이나 땅을 내놓아도 거래가 되지 않아. 시가 2억 원이 넘는 아파트가 지금은 5천만 원을 깎아주어도 팔리지가 않아. 은행에서 담보로 잡은 물건을 경매로 돌려도 번번이 유찰이 되어 원금 회수도 어려운 실정이야.”
당장 은행에서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에 문제가 생기는 실정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싸게 땅이 나와도 함부로 사면 안 될 수가 있어. 전에 200만 원짜리가 150만 원에 나오니 싸다고 하겠지만 100만 원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어. 나중에야 오를지 모르지만 한동안 그것으로 인해 큰 고생을 할 거야.”
장태현도 동생인 장재현이 땅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경고를 했다. 이농현상이 벌어지면서 시골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들이 내놓은 매물을 장재현이 상당히 많이 챙긴 것을 알고 있었다.
“절대 대출받아서 땅을 사지 말게. 전에 대출을 받았다면 이번에 아예 갚아버리는 것도 수야. 이자도 점점 올라갈 것이니.”
장태현이 재차 장재현에게 경고를 했다. 장재현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싼값에 땅을 살 기회인데 그것을 말리니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아 보였다.
아버지가 다음날 내려가자 장인걸은 전화를 들고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최향림에게 전화번호를 받았기에 전화를 했다.
“혼자 밥해먹으려면 힘들겠다.”
“먹고 살려면 해야지. 빨리 밥순이부터 구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야, 이 나쁜 놈아, 여자 친구가 식모냐? 저러니 여자 친구가 없지. 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절대 여자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지금은 여성상위시대야.”
최향림은 밥순이라는 말에 분개하여 게거품을 물었다. 나중에야 이런 언행을 하다가는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지만 그 당시에는 농담반 진담반 표출하는 분위기였다.
“농담이야. 잘못했다. 진정해.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다.”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여자들 앞에서 절대 그런 말 하지 마. 내 앞에서는 특히.”
“알았다. 알았어.”
“참, 우리 오빠 회사나 사는 곳이나 명석대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데 한 번 연락을 해봐.”
최향림은 자기 오빠가 일반적인 회사에 다니는 것으로 아는 것 같았다. 실체를 안다면 절대 만나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인데 만나라고 하는 것은 모른다는 의미였다.
“알았다. 나중에 시간 나면 연락은 해볼게.”
바로 거절을 할 수는 없기에 나중으로 미뤄 완곡한 거절을 표시했다.
“만나면 맛있는 것 사달라고 해.”
순진한 면이 있는지 맛있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시골 출신이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몰랐다.
“나는 3일 후에 기숙사에 들어갈 거야. 신입생은 모레부터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올라가면 연락할게.”
“알았다. 입학 준비를 해야 해서 시간이 날지 모르겠다.”
최향림과 통화를 마치고 선뜻 최유림에게 전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전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만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더구나 3년 정도 지난 후에 죽을 사람이었다. 자칫 가까운 사람으로 분류가 되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깡패들이 어떤 논리보다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도 많았고 알고 지낸다는 사실만으로 위해를 가할 수도 있었다.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그냥 두는 것은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거기에 휘말릴 이유는 없지.’장인걸은 어두운 곳에 한 번 발을 담그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가까이 하고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위험을 그냥 방치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하루 정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생활용품을 구하고 일제 공학용 전자계산기마저 구입하자 막상 할 일이 없었다. 교재는 개강을 하고 교수가 공지하면 그 때 사는 것이 원칙이었다. 근처 한강 둔치의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영어까지 공부하고 나자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알게 된 장유현의 매니저인 장시현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마침 시간이 난다면서 주소를 불러주고 저녁 여섯 시에 보자고 하여 그곳으로 갔다. 집을 방문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밖에서 약속을 잡았다.
“여기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음식점이다.”
약속장소는 일식 퓨전 음식점이었다. 일명 노바다야끼라고 하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장유현과 장시현이 같이 있었다. 전에 같이 있던 로드매니저는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 올라 왔다고? 혼자 자취를 하는 거야?”
“네, 3일 전에 입주를 했습니다.”
“월세야 전세야? 집은 몇 평이야?”
“일단 월세이고 방 하나에 부엌 겸 거실이 있고 화장실이 있습니다. 크기는 대략 일곱 평 정도나 되려나. 그 정도이죠.”
일단 호구조사부터 시작을 했다. 그러면서 간단히 식사와 정종을 하나 시켜서 마셨다. 장인걸도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상황이니 음주를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너 혹시 연기할 생각 있어?”
장유현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에게 연락을 한 이유가 연예계에 관심이 있어 그런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연예인이 되지는 않더라도 연예계 자체는 관심이 있었다.
“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왜요? 배우로 데뷔라도 시켜주시려고요?”
“일단 연기에 재능이 있는지 살펴봐야지. 그런 다음에 재능이 있다면 도와주는 것이고 재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고. 외모야 지금 정도면 가능할 것 같고.”
“배우나 가수가 화려해 보이지만 힘든 일이잖아요. 거기다 성공할 가능성도 그리 없고요. 그냥 공부나 하렵니다.”
“허황된 꿈을 좇아 허송세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일반 회사원보다 훨씬 낫지. 저기 시현이도 연기를 할까 했지만 외모도 별로이고 결정적으로 연기에 재능이 없어 포기했지. 너야 외모도 좋고 목소리도 좋은 편이니 연기만 되면 충분히 뜰 수가 있지.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장유환의 말에 장인걸도 솔깃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장인걸은 연기보다 오히려 노래에 더 관심이 많았다.
“노래를 하는 것은요?”
장인걸은 대학에 다닐 때에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었다. ‘기타하나 둘러메고’라는 이름을 가진 음악동호회였는데 그 동아리에는 가수라고 할 수 있는 카페 가수들도 몇 명 속해 있었다.
“노래를 잘해?”
“노래에 소질이 있다고 해서요. 친구들이 가수하라는 말을 자주 했죠.”
“악기는 다룰 줄 알아?”
“기타를 조금 칠 줄 알고 드럼이나 키보드도 약간 다룰 수 있어요. 색소폰이나 트럼펫도 조금 불 줄 알고요.”
기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두 곡정도 연습하여 땜빵으로 세션으로 참가할 실력이었다. 이는 그 동아리의 분위기가 서로의 악기를 가르쳐 주는 상황이었고 여러 악기를 다루는 것이 일종의 자랑이기에 가능했다.
“노래는 전문적으로 배운 거야?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언제 그런 것을 배웠는데?”
“그냥 음악 좋아하는 아저씨에게 흉내 내는 수준으로 배웠어요. 앞으로 전문적으로 배워보려고요. 악기도 더 배우고요. 지금 당장은 학교 공부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고요.”
말을 하다 보니 전문오디션 프로그램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있다고 하면 전국노래자랑이 유일했다. 물론 거기서 인기를 얻어 가수가 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트로트 가수였다.
“노래를 하다가 인기를 얻어 연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연기를 하다가 앨범을 취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성공할 확률이 높지.”
장유현은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면서 연기라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지만 가수는 기획사를 소개해 주는 정도밖에 못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나이가 어리니 틈틈이 노래를 배우고 악기를 배울 생각입니다. 재능이 있다면 나서고 능력이 없으면 그만두어야죠.”
당시에는 아이돌 그룹이 보편화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가수들 대부분 가요제 입상을 통해 20대에 데뷔하는 것이 보편적이라 그리 늦은 것은 아니었다.
장인걸은 재능도 없는데 매달려 시간만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취미로 할 때는 잘한다고 할 실력이지만 직업으로 할 때는 어설픈 수준이라면 취미로 그쳐야 했다.
“연예계에 관심 있으면 나중에 말 해.”
식사를 마치고 연예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각종 연예계의 뒷이야기를 하니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인걸은 그곳에 몸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