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21
장인걸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회귀 전 각종 프로그램에 능통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것들이 기억나지 않고 있었다. 중요 사이트에서 시스템 에러가 날 경우에 초빙이 되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일정한 회사에 소속되는 것을 싫어하여 프리랜서로 활동을 했다.
‘IMF 사태가 나기 전에 은행 전산팀에서 근무했는데 구조조정과정에서 명예퇴직을 당해 결국은 홈페이지 제작을 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무슨 은행인지 그게 기억이 나지 않아. 이름도 그렇고.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2천년 무렵이니 지금은 능력이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군.’ 장인걸은 그런 능력자가 아직은 나타나지 못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없으면 육성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암담했다.
‘정말 갈 길이 멀어. 능력은 없는데 욕심만 많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 이러다가 감당하지 못해 무너질 수도 있겠어. 욕속부달이라고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어.’ 장인걸은 자신의 욕심이 과한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감당할 수준, 회사에서 감당할 수준으로 일을 벌여야 하는데 너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한 것을 깨달았다.
‘큰일 날 상황이었군. 한국 경제가 무너진 것이 바로 혼자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욕심에서 무리하게 문어발 확장을 하다가, 과잉중복투자를 하다가 일어난 문제인데. 내가 바로 그런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감당하지 못할 사태를 초래할 뻔했다.’ 장인걸은 자신이 너무 서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적당한 수준으로 욕망을 제어해야 탈이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욕심을 내지 말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번에 정산이 된 돈으로 백제화학만 인수하고 더 이상 확장을 하지 말자.’ 장인걸은 전에 구입했던 외환을 정리하기로 했다. 1달러에 2000원을 넘어간 시점이 환전할 적기였다.
“유학포기라고 기록하면 되죠?”
“그렇게 해주세요. 가수 데뷔를 하면서 유학가기가 애매해 졌는데 앞으로도 한가하게 유학을 가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그냥 정리할까 합니다.”
장인걸이 환전하러 가자 기존에 담당하던 사람은 자리에 없었다. 그렇기에 은행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처리를 할 수 있었다. 1억 원이 넘는 금액을 손에 쥐게 되었지만 크게 감흥이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이 많아지니 그 정도는 작아 보였다.
장인걸은 어느새 그런 금액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정도로 자신이 변한 것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적당한 시기를 봐서 유림이 형에게 돈을 돌려주어야겠군. 물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장인걸은 조만간 최유림을 만나기로 했다. 이제 금전관계는 깨끗이 정리를 하는 것이 나았다.
장인걸은 장유현과 같이 문창명 감독을 만나기로 했다. KTV 드라마 PD이지만 감독이라고 더 많이 불렀다. 나이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문창명 감독은 관록 있는 연출가로 CP가 되기 직전이었다. 구조조정의 칼바람 속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대본은 봤죠?”
“네, 3회까지지만요.”
현재 캐스팅을 하기 전에 볼 수 있는 대본은 3회가 전부였다. 총 16회로 구성이 된 미니시리즈였다. 물론 회귀 전 장인걸의 기억에는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16부로 이야기를 완결 지을 수가 없어 4회를 연장하여 20회까지 방영했었다.
‘여기서 중고 신인 박동섭이 박대필로 나왔는데 노래 대역, 액션 대역 논란으로 이미지를 구겼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인다고 하다가 얼굴만 찡그리면 카리스마가 생기냐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사실 키가 크고 몸이 되는 것 외에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지. 그럼에도 시청률이 높게 나왔다.’ ‘태양의 계절’에서 흑역사가 바로 박대필이었다. 하지만 그런 악평 속에서도 박대필을 연기한 박동섭은 일약 연말시상식에서 우수상을 받아 다시 한 번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박대필은 ‘태양의 계절’에서 중요한 역할이고 인기의 중심에 있었다.
“대본을 보면 출연분량은 그리 많지가 않아요. 중반 이후에 조금 비중이 높아지지만 1~2회 정도만 극을 주도하고 그 후에도 초반과 달라지지 않아요. 하지만 등장할 때마다 매번 인상적인 연기를 해야 극이 살아요. 사실 어렵죠. 거기에 노래에 액션까지 있고 캐릭터가 두 가지이니 그것도 쉽지 않고요.”
“아주 중요한 역할이라 제가 할 수 있을지 사실 걱정입니다. 더구나 학생이라 주말이나 주중에 하루 정도 시간을 낼 수 있는 실정이고 중간에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느라 2주 정도 빠질 수도 있고 가수로 활동하는 것도 있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인걸은 그런 사정을 봐 줄 수 있을지 물었다. 촬영장면을 보면 연주 장면이 절반이고 깡패로 나오는 자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주이기에 몰아서 찍을 수 있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면은 다른 출연자들과 찍어야 하기에 시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사실 모든 캐스팅이 끝났지만 박대필 역 때문에 고민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젊은 애를 캐스팅 하면 되지만 연기나 노래, 액션까지 고려하면 마땅한 인물이 없어요. 물론 물망에 오른 연기자가 외양은 갖추었지만 노래나 액션은 기대할 수가 없어 걱정이에요. 더구나 홍민자 작가가 어설프게 대역을 쓸 바에는 아예 캐릭터를 삭제할 것이라고 하고요.”
박대필이라는 존재가 사라지면 주인공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개연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박대필이 장난하듯이 행한 일들과 주인공의 행위가 맞아떨어져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연기에는 별로 자신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그러면 일단 리딩을 한 번 해보죠. 장유현씨나 한정수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던데요?”
장유현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렇게 말했다. 장인걸이 장유현을 보자 씽긋 웃기만 했다. 결국 장인걸은 문창명 감독이 상대역을 읽어주는 가운데 대본 리딩을 했다. 총 네 장면, 가수로 나오는 한량의 모습 두 장면과 암흑가의 보스를 조종하는 최종보스의 모습 두 장면을 읽어야 했다.
“발음도 아주 좋고 분위기에 따라 톤도 조정할 수 있어 아주 좋습니다. 시선 처리나 표정도 아주 좋고요. 이 정도면 아주 좋아요. 노래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액션이 문제인데 조금만 합을 맞추면 됩니다. 난이도 높은 것은 대역을 쓰면 되고요.”
본격적인 액션 장면은 얼굴을 감추고 나서는 것이라 대역을 써도 문제가 없었다. 장인걸이 직접 나서야 하는, 얼굴을 드러내고 싸우는 장면은 그저 드잡이 수준이라 액션이 아닌 갈등을 드러내는 연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출연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출연료는 일종의 등급제를 적용해야 하지만 장인걸이 인기절정의 가수이기에 예외를 적용하여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그래도 한 번 행사를 하는 정도에 불과해 성에 차지 않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연이 출연료로 땡깡을 부리면 할머니가 사라지고 아버지가 미국 출장을 하기도 하는데 대본상 어머니 하나 밖에 없어 그럴 여지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용히 지켜보던 장유현이 우스갯소리를 하는 듯이 옆에서 거들었다. 장인걸의 경우에 스텝 숫자가 최소 5명은 되었다. 그렇기에 최소한 그에 걸맞은 출연료를 책정해 주어야 했다.
장인걸은 최유림을 픽업하여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여 주차를 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만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었다.
“회장님이 이번 일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해 주었는데 그 중에 한 가지가 내가 관리하던 자금을 갖도록 해주었어.”
현금으로 주는 것이나 그냥 비자금을 갖게 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으니 그것으로 대체한 것 같았다.
“그래요? 그것만 받지는 않았죠? 뭔가 대가로 더 많은 것을 받아야 할 텐데.”
“진급을 했지. 이찬혁 부장이나 김기정 실장은 이번에 이사급으로 승진을 했고 나도 부장급으로 올랐어. 내 나이에 비해 상당히 빠른 승진이지.
그 덕분에 차도 한 대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작은 아파트도 하나 입주할 수 있게 되었어.”
“잘 되었네요. 그럼 어떻게 반환을 해줄까요? 대충 정리하니 1억 정도 되는데.”
“그러면 대충 7천만 원 정도만 돌려줘. 그 정도면 원금에 1천5백만 원 정도를 더 주는 정도이니. 하지만 지금은 그러니 나중에 돌려줘. 급한 것은 아니니. 필요하면 투자를 해도 되고. 나한테 문제가 생기면 전에 말한 대로 해주고.”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장인걸은 그 정도라면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더 주는 것도 그리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듣기에 동거를 시작했다면서요. 결혼할 거예요?”
민지훈에게 슬쩍 들었는데 반년 전부터 대졸 출신의 여자와 사귀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냥 사귀는 것이 아니라 얼마 전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그런 내용을 듣자 뭔가 비정상적인 만남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동거는 좀 그렇지. 모르겠다. 나 좋다고 하는데 조금 그래. 이 바닥이 워낙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상황이라. 나중에 좀 더 확실해 지면 집에 알릴 생각이니 향림이나 집에는 말하지 말아라.”
“그렇게 할게요. 그보다 돈 때문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보자고 한 거예요?”
“회장님이 만나서 사례도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눈이 많아 만나지 않은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해서 말이야. 저번의 일로 우리를 지켜보는 눈이 워낙 많아서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
“굳이 만날 이유는 없죠. 그 외에 특별한 문제는 없죠?”
“모르겠다. 내부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외부 상황이 그리 좋지가 않아 보여서. 지금처럼 7대 세력으로 구도가 형성된 지 벌써 4년이 지났는데 지금의 경제위기로 인해 변화가 올 것 같아서 말이야. 영등포 조직이나 마포 조직의 상황도 좋지 않고 우리 때문에 미아리, 상계 쪽의 애들도 타격을 입은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면서 차태근과 연합한 자들 중에 하나가 그 쪽의 중간 보스인데 습격 사건에서 30여 명의 행동대원이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그 정도라면 시간이 흐르면 회복할 수 있지만 당장 그 문제로 분쟁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조직들 사이에 현재 구도가 개편되면 필연적으로 유혈충돌이 벌어지는 것 아닙니까? 더구나 이번 충돌로 인해 전력이 3할은 줄었는데요.”
“그러니 걱정이지. 일단 이번에 경호회사를 몇 개 접촉하여 천광경호 자회사로 끌어들일 생각이야.”
그러면서 업소의 경비를 새롭게 끌어들인 자회사에 용역을 주고 기존의 조직원 증에 핵심은 별동대 조직으로 만든다는 말이었다. 결국 경비회사는 경비하고 방어하는 것이 임무이니 조직원을 대신해도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조직원이 아닌 자들을 조직원 대신 내세우고 진짜 조직원은 예비조로 돌린다는 말이군요. 그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좋은 방법이겠네요.”
전이라면 일반적인 경비회사는 조직과 거리를 두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한 상황이라 철거용역이나 불법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크게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업소경비는 보통 하는 상황이고 지금은 경비시스템을 도입하여 일이 생길 때만 출동을 하면 되는 상황이라 어려움은 없어. 더구나 감시카메라를 두면 업소에 와서 깽판을 치는 자들을 언제라도 고발하여 처리할 수도 있고.”
최유림은 감시카메라가 대중화 되면서 전처럼 업소에 가서 영업을 방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증거자료가 남으면 배후에서 농간을 부리려고 해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너도 들었는지 모르지만 마검과 살객이 너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하니 주의해. 언젠가 소문이 나겠지만 당분간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법이란 것이 쌍방폭행으로 엮으면 귀찮아지니까.”
조직 간의 충돌은 그 자체로 처벌대상이었다. 그러니 사건이 묻힐 때까지는 한동안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연예인인데 조심해야죠. 하지만 연예인의 경우에 워낙 여러 가지 소문이 횡행하는 상황이니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는 부인할 생각입니다.”
“다들 네 얼굴을 본 사람은 없으니 문제가 아니지. 문제는 심증만 가지고도 행동으로 들어가는 이 바닥의 생리가 문제이지.”
그러면서 최유림은 ‘일단 맞고 시작하자’는 말을 했다. 의심이 들면 응징부터 하고 그 이후에 시비를 가린다고 했다.
끝ⓒ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