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26
25. 기업 인수
마라톤 중계를 보는 사람들은 모처럼 한국 선수, 그것도 유명한 가수가 출전을 하여 마침내 선두로 달리자 하나둘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었다.
춘천마라톤대회에서 제법 좋은 기록을 냈지만 세계 수준과는 다소 차이가 있기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두로 나선 상황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보였다.
“장인걸 선수 반환점을 돌고 난 이후에 선두로 나서기 시작했고 10km 정도를 달리면서 계속 선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선수들이 줄기차게 추월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도망을 가는데 저렇게 혼자 달리면 쉽게 지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김중희 캐스터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달리는 장면만 계속 나오는 상황이니 뭔가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오늘 레이스는 다른 레이스와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바람이 불지 않거나 역풍이 불면 혼자 바람을 맞으면서, 헤치면서 달려야 하는데 오늘은 뒷바람이 불어주고 있습니다. 이 경우 뒤에서 약간 밀어주는 효과가 발생하여 오히려 달리는 것이 용이해집니다.
초반 반환점까지는 약한 맞바람이 있었는데 반환점을 돌면서 바람의 방향이 반대가 되었습니다.”
해설을 맡은 전직 마라토너 양선홍이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그도 마침 했던 말을 반복하는데 지친 상황에서 새로운 주제가 나오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
“그러면 혼자 달리나 같이 모여서 달리나 큰 차이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장인걸 선수의 달리는 자세는 어떻습니까? 자세만 봐도 선수들의 컨디션을 알 수 있다는데요.”
그러자 양선홍이 출발한 후에 달리는 장면과 현재 장인걸이 달리는 장면을 같이 보여 달라는 주문을 했다. 조금 지나자 좌우로 나뉜 화면이 나왔다.
“보시면 알겠지만 화면 왼쪽이 처음 출발한 후에 선두그룹에 속해 달리는 장면입니다. 반면 오른쪽이 현재 달리는 장면입니다. 얼굴에 약간 땀이 난 것 외에 자세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 장인걸 선수의 컨디션이 출발할 때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선수의 특징이 달리면서 뒤를 보지 않는 점입니다. 아마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보다 청력이 예민한 것 같습니다. 뒤에서 나는 발자국 소리로 다른 선수와의 거리를 아는 것 같습니다.”
양선홍은 꽤나 활기찬 목소리로 설명을 해나갔다.
“이제 35km 지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 지점을 보통 데드포인트라고 하는데 장인걸 선수가 어떻게 극복할지 걱정이 됩니다. 갑자기 속도가 느려지는 경우도 발생하지 않습니까?”
“보통 30km 지점에서 러너스하이, 달리다 보면 몸에 활기를 주는 엔돌핀과 도파민이 분비되어 힘이 넘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3~5km 정도를 달리면 러너스하이 효과가 사라지면서 아주 힘든 상태, 데드포인트에 진입을 합니다. 전에는 모든 선수가 이런 상황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지금은 러너스하이에서 끝나고 데드포인트를 겪지 않고 완주를 하는 선수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시간 7분을 돌파하는 아프리카 선수들이 바로 그런 케이스가 많습니다.”
보통은 모든 마라토너들이 데드포인트를 겪는다고 들었는데 양선홍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데드포인트에서 지체할 경우 2시간 6분의 벽을 넘기 어렵습니다. 그 이상의 기록을 내려면 데드포인트를 겪지 않고, 동일한 속도로 달려야 가능합니다. 그런 기록이 난 선수들은 모두 그 레이스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7분대의 기록을 낸 선수도 절반 정도는 그 레이스에서 그런 경험이 없거나 약간 그런 기미만 보였다는 말을 합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이군요. 양선홍 선수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있다면 말씀을 해주시죠?”
“제 최고 기록이 2시간 8분 45초입니다. 그 기록을 낼 때 데드포인트가 왔지만 고작 30초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나중에 그런 경험을 하려고 했지만 절대로 그런 경우는 오지 않더군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장인걸은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조금 전에 35km를 통과한 것 같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38km를 지나고 있었다.
“장인걸 선수의 달리는 속도가 조금 느려진 것 같습니다. 40m 이상 차이가 났는데 30m 정도까지 거리가 단축이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출신의 세렝 부가티와 나지마 바탕가 선수가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데드포인트가 온 것인지 모릅니다. 지금 장인걸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력입니다. 체력이 다 소진된 상황에서 정신력으로 달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거리가 좁혀지는 동안 장인걸은 꿋꿋하게 달려 나갔다. 대략 2km 정도를 더 달리자 10m 이내의 거리로 좁혀졌다.
장인걸은 멀리 보이는 결승선을 향해 달려갔다. 드디어 세계 최고의 선수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세렝 부가티를 이겼다. 물론 압도적으로 이긴 것은 아니지만 극적으로나마 이긴 것은 다행이다.’ 38km 지점부터 진행된 데드포인트와 그것을 기회로 세렝부가티와 나지마 바탕가가 맹렬하게 추격을 해왔다.
‘사실 데드포인트는 없었다. 단지 데드포인트가 온 것처럼 가장을 했을 뿐이다. 아직은 압도적인 실력을 보일 때가 아니다. 압도적인 실력을 드러내기에는 아직 내 나이가 너무 어리다.’ 장인걸은 데드포인트를 겪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지만 아직 그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현재 달리는 속도로 달리면 2시간 7분 안쪽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할 것 같았다. 그런 기록을 세우는 것은 주목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다소 부담이 되었다. 국민들의 기대가 한껏 커질 수가 있고 그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7분대 기록으로 들어오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뒤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일정한 속도로 쫓아오는 아프리카의 두 선수를 그대로 두면 그들마저 2시간 6분대 기록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
‘방법은 있다. 저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지. 한 번 흔들어서 저들의 기운을 빼놓는다. 저들은 기록보다 순위가 더 중요할 것이니 걸려들 것이다.’ 장인걸은 데드포인트가 온 것처럼 대략 19초대로 속도를 늦추었다. 1초 차이는 100m를 갈 때 대략 6m 정도의 거리를 좁히게 만들었고 200m를 지나자 30m, 400m를 지나자 20m 이내로 좁혀졌다.
장인걸은 그 정도로 거리가 좁혀지자 다시 속도를 높였지만 18초대에 미치지 못했다. 장인걸이 속도를 높였는데 거리가 좁혀지는 상황이 벌어지니 세렝 부가티와 나지마 바탕가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하지만 장인걸은 만만치 않았고 곧 따라잡힐 것 같으면서도 10m 안쪽으로 들어오는 상황이 오면 기를 쓰고 도망갔다.
거꾸로 세렝 부가티와 나지마 바탕가는 20m 이상 벌어질 상황이 오면 악착같이 속도를 올려 따라붙었고 거리가 줄어들면 장인걸이 악착같이 도망가는 상황이니 급가속과 감속을 몇 번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정도 달린 상황에서 체력은 이미 대부분 고갈이 되었고 정신력으로 달리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속도의 변화를 주는 것은 급속도로 지치기 마련이었다.
겉으로 보면 긴박하게 달려 빠른 것 같지만 18초대가 아닌 19초대로 평균 속도는 떨어졌고 40km를 넘어가면서 그 속도는 점점 낮춰지고 있었다.
장인걸은 허용거리를 10m에서 5m까지 좁혔다가 빠르게 도망가고 조금 벌어지면 속도를 낮춰서 힘을 비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 두 사람이 기를 쓰고 쫓아왔고 그렇게 서너 번, 대여섯 번, 열서너 번에 이르자 20초대까지 속도가 낮춰지고 말았다.
마치 장인걸은 도망가고 싶어도 힘이 부족해 도망가지 못하는 것 같았고 세렝 부가티와 나지마 바탕가는 마지막 뒷심이 부족하여 추월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어느 한쪽이 추격전을 포기하고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선두를 달리는 장인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그러니 추격하는 세렝 부가티나 나지마 바탕가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또한 장인걸도 그들에게 선두를 내줄 수는 없는 일이니 결사적으로 선두를 사수하려고 했고 각축전이 계속 이루어졌다.
장인걸은 시계를 보았다. 42km 지점을 지나는 순간 2시간 7분 20초를 지나고 있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2시간 7분대 후반의 기록이 날 것 같았다. 41km 지나면서 두 사람과 거리 차이는 점점 벌어졌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다시 35m 가까이 벌어지고 말았다.
장인걸은 속도를 조금씩 높였고 마침내 2시간 7분 54초의 기록을 결승점을 통과할 수가 있었다.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되었다.
“한국 신기록입니다. 세계기록과는 3분 정도 차이가 나지만 어쨌든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는 기록입니다.”
수건과 물을 들고 다가온 이원희가 그렇게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나자 약간 차이로 뒤따라 세렝 부가티나 나지마 바탕가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었다.
장인걸은 아무리 속도를 늦추었어도 2시간 8분이 넘지 않은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있기에 더 속도를 늦추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달렸는데 그런 기록이 나온 것이다.
‘사실 마지막에 제대로 달렸다면 2시간 6분대로 완주할 수가 있었다. 이제 세계 수준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는데 대회 관계자가 도핑테스트를 위한 샘플 채취에 관하여 이야기를 했다. 운동을 한다면 도핑테스트는 매번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성적이 좋으면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우승상금에 신기록 달성 격려금까지 받아야 하기에 당연했다. 도핑 테스트에 걸리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었다.
일요일에 민수길은 장인걸의 저택을 방문했다. 물론 이원희도 같이 동행했다.
“아직 온몸이 결리고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지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집으로 오시라고 했습니다.”
장인걸의 말에 두 사람 다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마라톤은 그나마 끝난 후에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어 다행입니다. 쉬지 못하게 귀찮게 하는 것은 선수생명 단축하려고 하는 행위라는 말도 있더군요.”
“그거야 당연하죠. 마라톤 선수가 완주를 하면 몸이 상당부분 망가진 상태가 됩니다. 온몸의 관절이 뒤틀리고 인대도 다 늘어난 상태인데 귀찮게 하는 것은 더 망가뜨리는 행위이죠. 그래서 마라톤 경기가 끝나면 간단히 인터뷰를 하고 난 이후에는 추가적인 인터뷰는 1주일 이후에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원희마저 동조를 했다. 하루나 이틀 정도는 집안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만큼 힘든 운동이었다.
“광고 의뢰는 꽤나 들어왔죠?”
“물론입니다. 이번 우승으로 전에 들어온 의뢰보다 두 배는 가격이 뛰었습니다. 일단 단가가 적당한 것들을 선정하고 이미지에 타격을 주지 않는 것들을 골라 면담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일부는 오늘이라도 만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일단 1주일 후부터 움직일 것입니다. 계약은 그 전에 하더라도 그 이후에 촬영을 잡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민수길은 너무나 잘 아는 일이기에 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몸을 추스르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의 반응은 어떤가요?”
“저번 취임식 공연 이후에 다소 부정적인 말들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가 싹 사라졌습니다. 저번까지만 해도 원래하던 가수나 할 것이지 마라톤을 한다고 비아냥대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도 다 사라졌습니다.”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면 연예인데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단지 취임식 식전 공연에 나섰지만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당의 지지자로 보일 수가 있고 그 때문에 비난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행이군요. 그리고 협회는 어떤가요? 국가대표로 선발이 될 것인데 부정적인 여론은 없나요?”
“기록이 좋아 누구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3위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면 경험을 내세워서 3위였던 이철형 선수를 내세울 것이지만 4분 이상 기록에서 차이가 나는 상황이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인걸은 너무 기록이 좋아 걱정이었지만 국가대표 선발에 잡음이 없다니 그것은 다행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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