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28
“오후에 한 과목이 있었는데 세미나 가신다고 휴강입니다.”
“알았다. 내가 네 비서 노릇을 해야지.”
장인걸은 자신이 직접 연락하기에는 멋쩍고 그렇다고 해서 민수길 본부장이나 다른 매니저를 시키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어 학교와 이야기를 하려면 유진영 교수를 찾아왔다.
유진영 교수는 장인걸이 자신을 중간에 내세우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기에 알아서 움직여 주었다. 크게 득은 없어도 손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인걸은 학과장부터 시작하여 학장, 총장까지 방문을 했다. 총장은 새로 바뀐 상황이었기에 초면이었지만 좋은 일로 만나서 그런지 최대한 편의를 봐주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물론 유진영 교수나 같이 온 학장이 장인걸의 경우 지금까지 어떤 편의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사장님이 보자고 하신다. 저 뒤쪽의 이사장실로 가야겠다.”
명석대학교는 사립대학이기에 재단이 있고 이사장이 있었다. 총장을 방문하자 이사장에게 보고가 되었는지 유진영 교수가 그렇게 귀띔을 했다.
결국 장인걸은 이사장을 방문했다. 굳이 학교 수뇌부와 교류할 이유가 없어 만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알았어요. 만나야 한다면 만나야죠. 그동안 굳이 만날 이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만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니까요.”
외부의 시선도 문제였다. 괜히 학교 측과 대립한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그것도 문제였다. 각종 행사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는 상황에서 학교 사람들과 데면데면한 상황이 벌어지면 그것도 모양이 좋지 않았다. 적당히 얼굴 정도는 익혀 놓아야 했다.
“하여간 눈치는 빨라서 적당히 처신하는 것은 잘해. 이제는 제법 대등하게 만나서 이야기할 수준이 되었다는 말이네.”
“그런가요?”
“전에는 가수를 하여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별로 내세울 수준은 아니었지. 돈을 벌었다고 해도 재단 사람들에게 내세울 정도는 아니고. 하지만 이제 프리웨이도 있고 마라톤도 우승했으니 누구도 쉽게 무시할 수준은 아니지. 설사 총장님이나 이사장님이라고 해도.”
장인걸은 유진영 교수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전에 찾아갈 때는 잘 봐달라는 의미라면 지금은 자신이 이러한 존재이니 인정해 달라는 의미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장인걸은 그동안 기자들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지냈다. 개별 인터뷰보다 비공식적인 기자회견 방식인 단체 간담회를 통해 적당히 상대를 해왔다.
하지만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면서 밀착취재를 원하는 기자들이 많아지면서 그렇게 하는 것도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었다.
“제가 개별 인터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그동안 피했는데 김준현 부장님이 부탁을 하여 나섰지만 혹시라도 모르기에 일단 녹음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인걸이 단독인터뷰를 피하는 이유는 귀찮고 번거롭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론에서 농간을 부릴 여지가 많기 때문이었다. 발언을 교묘하게 뒤틀어서 바보를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 공개된 인터뷰의 경우에는 다른 기자의 눈이 있기에 왜곡을 못하지만 단독인터뷰는 그럴 여지가 많았다.
“그렇게 하십시오.”
인터뷰를 하러온 민수아 기자는 장인걸이 녹음을 하겠다고 하자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녹음을 하는 경우에 내용을 왜곡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가 있기에 부담이 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서울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가수인데 힘든 마라톤을 하게 된 점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해서 마라톤을 하게 되었습니까?”
장인걸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답변 내용을 생각한 후에 가급적이면 간략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을 했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만 잡아먹지 내용은 없는 경우도 많았다.
“고작 세 번 완주를 했는데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국내 1위의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마라톤이 아닌 5천m나 1만m를 달리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육상 장거리 종목에 출전할 생각은 없습니까?”
장인걸은 그런 내용이 나오자 오히려 반색을 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라 인터뷰에 응한 면도 있었다. 욕심인지 아니면 해코지를 하려는 마음인지 모르지만 남의 진로를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참견을 하고 있었다.
“제가 가수입니다. 그렇기에 시합에 참여하는 시간을 내기도 힘들고 매일 훈련시간을 내기도 힘이 듭니다. 중간에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훈련을 하는 실정입니다. 더구나 그런 트랙 종목의 경우에 팀 훈련도 많아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데 병행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학교 수업까지 출석해야 하는 상황이니 시간을 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마라톤의 경우에는 짬짬이 시간을 내서 훈련하는 것이 가능해 좋다고 봅니다. 더구나 국가대표 훈련의 경우 마라톤은 소속팀이나 개인훈련이 가능하지만 장거리 트랙은 그런 것이 불가능하기에 절대로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하게 된 이면에는 홍보가 필요한 면도 있지만 육상계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거리 트랙으로 전향시키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일선 지도자들 사이에 돌고 언론마저 동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메달의 숫자도 하나 더 많고 관심종목인 마라톤에서 장인걸 대신 다른 선수를 출전시킬 수도 있고 다른 육상 종목으로 국민의 관심을 옮길 수도 있기에 육상연맹의 차원에서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저에게는 마라톤도 중요하지만 음악도 중요합니다. 둘 다 할 수가 없다면 음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중요도에서 음악이 더 먼저라는 말씀이시군요?”
“일단 학생이기에 학교 수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은 음악, 그리고 마라톤입니다. 학교 수업이나 음악을 하는데 문제가 된다면 마라톤을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습니다.”
장인걸은 그렇게 말을 하여 언제든 마라톤은 그만둘 수도 있음을 공표했다. 육상이나 체육관련 인사들이 허튼 짓을 하면 떠나면 그만이라는 것을 말해 자신을 상대로 갑질을 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곧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출전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너무 짧은 휴식 후에 출전하는 것이라 우려가 큽니다. 달리 이유라도 있습니까?”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나갔습니다. 다른 환경에서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보스턴마라톤대회는 마라토너라면 한 번 정도 출전하고 싶은 워너비 대회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준비 기간이 짧지만 회복이 빠른 편이라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장인걸은 다양한 질문에 신중하게 답을 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작정하고 거론한 면이 컸다.
장인걸이 서울마라톤에서 좋은 기록으로 우승을 하자 그 소식이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경제위기로 인해 가라앉은 한국의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라 정부와 언론은 그런 뉴스로나마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다.
“정말 대단해요.”
문창명 PD는 태양의 계절 대본 리딩을 마치고 곧 이어서 마련된 출연자 회식에서 장인걸을 치하했다. 장인걸이 마라톤에서 우승한 것은 드라마의 홍보에도 도움이 되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좋은 연기를 펼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좋지 않은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확인한 바로는 연기력도 충분했다. 그렇기에 장인걸의 출연은 좋은 결과를 낼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이제 아시안게임에 대표로 나가는 거야?”
장유현이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대본 리딩을 통해 연기력이 좋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여전히 장인걸의 합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탤런트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연기자는 연기자이고 가수는 가수라는 영역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대본 리딩에서 능력을 보였어도 그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자신들의 영역을 가수인 장인걸이 침범한 사실 자체로 비난하고 있었다.
“일단 국내 마라토너 중에서 가장 좋은 기록을 냈으니 다른 사람이 더 좋은 기록을 낼 때까지는 국가대표로 선발될 가능성이 높죠. 물론 더 실력이 좋은 마라토너가 있어 기록이 4위로 떨어지면 나가지 못할 것이지만요.”
“기한이 있을 것 아냐?”
“얼마 전에 마라톤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보면 최근 2년 사이에 세운 기록이 아시안게임 기준기록을 넘는 자들 중에 가장 좋은 3명을 내보내는 것으로 정해졌죠. 물론 기록이 좋아도 부상을 당해 출전을 못하면 다음 순위가 나가지만요. 아시안 게임은 6월 30일까지 세운 기록을 기준으로 해요.”
장인걸은 적당히 설명을 해주었다. 다들 술을 마시면서도 귀를 세우고 장인걸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보다 보스턴마라톤대회도 출전한다고?”
“이미 연초에 신청을 해두었어요. 신청을 하고도 참가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참가하려고요.”
장인걸은 조금 자기 자랑을 하는 것 같지만 몇몇 탤런트들이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상황을 알기에 더 자세히 이야기를 했다. 그런 장인걸의 모습이 보기 싫은지 장인걸을 노려보기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인걸은 그들을 무시했다.
“오늘 조연인 유선학이나 안태환이 왜 저렇게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지 알아?”
장유현이 회식을 마치고 같이 술을 깨기 위해 커피나 하자고 하여 인근 커피숍에 가자 그 이유를 물었다.
“박동섭이랑 같은 회사야. 저들은 원스타 기획에 속해있지. 저들은 박동섭을 박대필 역에 밀었는데 너를 픽업했으니 화가 날 수밖에. 하지만 저런 자들은 실력으로 누르면 되지. 내가 나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더 상황이 나빠질 수 있어 가만히 있는 거야. 내가 가만히 있다고 해서 네가 가만히 있을 필요는 없어. 실력으로 뭉개버리는 거야.”
“그런데 원스타 액션스쿨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장인걸은 액션을 담당하는 스턴트맨을 공급하는 원스타 액션스쿨이 눈에 익어 관련성을 물었다. 이름이 같다는 것은 계열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두 회사는 양성필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야. 양성필 사장은 나보다 한 열 살 정도 많은데 한 때 액션배우를 하다가 5년 전에 기획사를 차렸고 그 후에 액션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스턴트 전문 회사를 만들었지. 하지만 액션스쿨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단역과 엑스트라를 공급하는 용역전문회사라고 할 수 있어.”
순간 양성필이라는 이름에서 왜 그런 이름이 눈에 익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조직들 사이에서 양치리라고 불리는 자였다. 전에 안광현 회장이 혼을 내주었다는 인물이었다.
“조상운 배우님과 친하세요?”
갑자기 장인걸이 조상운에 대해 묻자 장유현이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뭔가 이해한 표정이 되었다.
“상운이 형과는 아주 친한 것은 아니지만 몇 번 같이 연기를 했어. 아, 한성기획을 양성필 사장이 인수해서 합치려고 하다가 결국 실패했지. 그 일로 욕을 좀 먹었지.”
장인걸은 자신과 양성필과 척을 진 것 같아 기분이 찝찝해졌다. 분명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귀찮게 알 것 같았다.
“조폭이라고 하던데 그런 이야기 들어 봤어요?”
조폭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정확한 사실이기에 장유현에게 그런 사실이 알려졌는지 물었다.
“그런 이야기야 워낙 많이 돌아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기획사에서 조직의 비호를 받지 않으면 소속 연예인의 안전을 장담할 수도 없다. 작은 경호업체라도 끼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업체들은 조직과 연관이 없을 수가 없지. 최소한 서로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식의 협조라도 구한 상황이고.”
“그렇기야 하지만 양성필 사장은 진짜로 조폭들을 거느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마 영등포 큰 조직인 망둥이파의 비호를 받고 있을 것입니다.”
영등포의 조직인 망둥이파는 두목인 원성환의 별명을 따서 부르는 명칭이었다. 하필 망둥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미꾸라지가 날 뛰니 망둥이도 날뛴다는 속담처럼 귀가 얇아 남이 좋다고 하면, 남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만 돌면 무조건 따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경기가 좋을 때야 문제가 없지만 경기가 나빠지면서 경제의 모든 분야가 불황에 빠지자 총체적인 부실상황이 초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로 인해 다른 조직들마저 긴장하고 있었다.
“영등포의 망둥이파가 이번에 망하기 일보직전이라고 하는데 양치리도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부도 날 상황이라고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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