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3
장인걸은 가정용품의 구입과 집 정리가 끝나자 공부할 여유가 생겼다. 물론 영어 공부 외에 당장 할 것이 없기에 마침내 여유 있을 때 읽기 위해 미루어둔 책을 읽기로 했다.
반다지를 열고 왕전 할아버지 댁에서 가져온 책을 살폈다. 관상을 보는 법부터 시작하여 사주를 보는 법, 궁합을 보는 법에 관련된 책부터 불경인지 도경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책에, 민간에서 사용하는 요법이나 물리기라 하는 액막이 요법까지 적힌 책들이 있었다.
이런 책에 실린 내용이 맞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것도 아니기에 굳이 볼 필요가 없지만 그저 소일거리로 읽어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책은 필사한 것도 있고 판본도 있고 일제강점기에 출판한 것들도 있으니 해독이 만만치 않아.’장인걸은 다른 책을 해독하는 것이 급한 것은 아니기에 금강바라밀경이라는 이름의 불경을 펼쳐서 호흡법이 적혀있는 부분을 가장 먼저 펼쳤다. 그 부분이 궁극적이 목표였다.
‘금강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진리에 대한 내용이니 깨달음에 대한 내용인가?’장인걸도 불교에 대하여 겉을 핥는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불교에서 금강경이라 통칭되는 것들은 진리에 대한 설파였고 천수경은 자비에 대한 설파였다. 반면 법화경이나 법구경은 주로 계율이나 올바른 수행에 대한 내용을 설파하는 면이 있었다.
‘또한 중국 불가 무예의 상당수는 금강이나 나한이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면이 있는데 일종의 불가무공도 일부 담긴 것 같다. 또한 티베트의 밀교 계통과도 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일단 호흡법이 나온 부분을 찾아서 전후를 살폈다. 그러자 금강나한공이라는 장이 있었고 호흡법은 5페이지에 실려 있었고 그 장은 30여 페이지 정도였다.
본문은 대략 3페이지 정도에 불과했고 주해가 무려 20여 페이지에 주석이 대략 10여 페이지 정도였다. 그 내용을 다 이해해야 호흡법의 본체인 금강나한공을 익힐 수가 있어 보였다.
‘불경을 이해해야 금강나한공을 이해할 수가 있어 보이는군. 불가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 할아버지가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장인걸은 불경을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라 포기해야 하는지 망설임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에게 회귀라는 기적을 불러온 것이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익힌다면 뭔가 기연을 줄 것 같았다.
‘금강이란 진리를 논하고 공空의 본질을 논한다. 우주와 공간과 시간에 대한 깨우침을 담고 있는 말이다. 그렇기에 금강경이 불가의 가장 중요한 경전 중에 하나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장인걸은 자신이 30대에서 10년 이상을 거슬러서 돌아온 것이 그런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신성 폭발과 금강나한공의 공부가 결합하여 그런 결과를 낸 것이라 추측을 했다.
당장 해독을 할 능력은 없기에 옥편을 찾으면서 독경하는 것을 모색했다. 한자로 적혀 있지만 범어, 산스크리트어를 음차한 것과 뜻을 담은 말이 뒤섞여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부터 골라내야 제대로 풀이가 가능했다.
‘불가의 범어까지 알아야 한다. 또한 인도의 사상까지 이해해야 대략의 뜻을 파악할 수 있다. 불교와 더불어 힌두교의 전신인 브라만교, 바리문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실 불교는 당시의 브라만교의 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그렇게 따지니 책을 이해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무당 할아버지가 불경을 배우는 것을 포기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두고 공부를 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최근에 영어와 수학을 공부하면서 전보다 머리가 훨씬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회귀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전에는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도 쉽게 이해가 되고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도 같았다.
‘불경도 읽다보면 저절로 뜻이 통할 때도 있을 것이다. 진짜 제대로 불경을 공부한 사람이 드물다고 하지만 그런 경지에 들 수도 있을 것이다.’기독교의 성경이 방대한 내용이라고 하지만 불경의 방대함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보면 불경을 공부하는 것은 평생을 바쳐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경을 하나의 언어로 보고 접근한다면 그것도 마스터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스님들이 다 천재는 아니지만 불경을 배우고 해독하는 것을 보면 장인걸도 가능해 보였다.
장인걸은 저녁 식사시간을 이용하여 만날 사람을 만났다. 보통 오후 세 시까지는 운동이나 공부를 했고 그 이후에 외출을 준비하여 약속장소에 나갔다.
큰집을 방문하여 식사를 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하여 무조건 집에 오라고 하니 가야 했다. 학기 중이라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개강 준비를 하는 상황이니 가야 했다.
최향림의 오빠인 최유림도 만났다. 연락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함 때문에 미루다가 연락을 하고 말았다.
“오늘 맛있는 것을 먹게 해주마.”
그렇게 말하고 장한평 인근에서 만나자 음식점으로 안내를 했다. 좋은 소고기집이 있다면서 안내했다. 그들이 간 곳은 일종의 정육식당으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했다.
식사와 더불어 소주도 시켜서 같이 마셨다. 장인걸도 술에 어느 정도 익숙하기에 같이 보조를 맞추었다.
“하시는 일은 뭐예요?”
장인걸은 최유림이 조폭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하여 물었다. 조폭도 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주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음식점에 주류와 식자재를 주로 납품해. 종종 거래처에 긴급 자금을 대여해 주기도 하고. 우리 회사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먹고 살만은 하지.”
장인걸이 그런 부분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절반 정도는 사실대로 말을 했다. 거래처에 돈을 빌려준다는 말은 사채를 한다는 말이지만 사회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 이면을 제대로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면 시장 근처에 있어요?”
“서울에서 시장이 아니라도 곳곳이 상가이니 장소가 의미가 없지. 창고만 있으면 차로 배달하니.”
마치 장인걸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로 아는지 그런 식으로 설명을 했다.
“여기도 형네 회사 거래처에요?”
“거래처이지만 진짜 중요한 거래처는 여기 사장님이 같이 운영하는 마장동의 도매정육점이지. 우리가 식자재 중에 고기도 취급을 하니.”
최유림도 실체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운지 신중하게 설명을 했다. 사실을 말하면서도 결정적인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명함에 과장이라고 적혀 있던데 진급이 빠른 것 같아요.”
“마이가리지. 중소기업은 그냥 대기업의 직책보다 하나 정도 더 높게 붙이는 것이 보통이야. 내 나이라면 대기업에서는 잘해야 대리 정도이지. 그냥 영업 뛰는데 불편하지 않으라고 달아준 것이야.”
최유림은 그런 식으로 설명을 했다.
“사장님 비서예요?”
“가방모찌 하고 있는 거지. 사장님 따라다니는 것이야.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실무 영업으로 나가게 될 거야.”
최유림의 말에 장인걸은 최유림의 사정을 대략 추정했다. 조직의 두목을 따라다니는 일을 하고 있으니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결국은 조직 내부의 반대파에게 공격을 받아 죽게 된 것 같았다.
‘덩치가 크거나 근육이 발달한 것은 아니니 주먹은 아닌 것 같고 결국 일종의 참모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서류를 정리하고 자금을 관리하는 것인가?’대략 3년 후쯤에 죽는 것을 알기에 걱정이 되었다. 막고 싶기도 했다. 최유림과 만나 안면을 튼 것은 그런 비극을 막으라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다른 일을 하라는 것인지도 몰랐다.
“보통 비서출신이 빨리 승진하지 않아요?”
“그런 면도 있지만 그것도 잘해야 그런 거지 못하면 오히려 찍혀서 더 좋지 않을 수도 있어.”
최유림은 그렇게 말하면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후배 앞에서 자기자랑을 하려니 쑥스러운 것 같았다. 장인걸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반응했다.
“이 근처에 있으니 고기 먹거나 술 먹고 싶으면 연락해. 동네 후배 밥 사줄 정도는 되니. 그 정도는 회사에서 경비처리가 되니 내 돈 쓰는 것도 아니고.”
“그럴까요? 공부하다가 술 마시고 싶으면 연락을 할 게요.”
장인걸은 경계하는 기색을 감추고 그렇게 말을 했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고향 선배로 알고 지내는 것도 그리 문제는 아닐 것 같았다.
‘그럴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주먹이 필요할 수도 있지. 세상을 살다보면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많으니.’장인걸은 착한 사람만 가까이 할 이유는 없다고 자신을 합리화 했다. 최유림도 고향 후배를 만나 기분이 좋은지 연신 술을 마셨고 장인걸도 분위기를 맞추다보니 꽤나 많이 마셔 결국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장인걸은 최향림을 만나기로 했다. 전날 올라와서 기숙사에 입주를 했고 방 정리가 끝났으니 얼굴이나 보자는 말이었다. 그래서 재원대학 인근 지하철 역 주변에서 만나기로 했다.
처음에는 최향림에게 집 근처로 오라고 말했다가 남자가 되어서 매너가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물론 남자라고 그래야 하는 법이 있는지 말씨름을 하기도 했다.
“오빠랑 만났다면서?”
“응, 고깃집에 가서 푸짐하게 먹었어. 오랜만에 소고기를 먹으니 너무나 맛있더라.”
“너, 술도 잘 마신다고 하더라. 같이 마셨는데 끄떡도 안 했다면서. 오빠도 술 많이 마시는데.”
최향림은 시골에서와 달리 상당히 활달한 기색으로 말을 했다. 집을 떠나니 자유로운 분위기가 된 것 같았다. 그새 성숙한 면도 보이고 있었다.
“아직 맛도 모르면서 마시라고 하니 무조건 마신 거지. 더구나 네 오빠가 우리보다 열 살이나 많잖아. 그러니 많이 긴장할 수밖에 없고.”
“어쨌든 조심해. 우리 엄마가 아빠한테 자주 하는 말인데 술 잘 먹는다고 장담하는 것만큼 바보가 없다네.”
“그거야 그렇지. 그래서 너 만나서는 이렇게 분식집에서 보는 거야. 굳이 우리끼리 만나면서 팀 킬을 할 이유는 없으니.”
“하긴 우리도 오리엔테이션을 갔는데 마지막 날 얼마나 마시는지. 여자라고 뺐는데 입학하면 그것도 안 통한다고 하더라.”
“남자야 술 취해도 길바닥에서 얼어 죽지만 않으면 크게 문제없지만 여자는 워낙 이상한 일이 많으니 조심해.”
“그렇지 않아도 선배 언니들이 술 먹고 절대 취하지 말라고 하더라. 이상한 놈 만나서 애 배고 싶지 않으면.”
최향림이 너무나 직설적으로 말을 하니 민망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선배 중에 입이 거친 사람이 있어 직설적으로 말을 해준 것 같았다. 그래도 남자인 자신 앞에서 애 밴다는 소리를 거리낌 없이 하니 장단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술 취하면 다들 자제력이 사라져 이상한 짓을 하기 쉽지. 그러니 가급적이면 1차만 가고 기숙사에 가야한다고 말하고 도망치는 것이 좋아. 우리 욕이지만 동창들만 해도 술 먹고 이상한 짓 하는 애들 많았잖아.”
“하긴 그런 경우도 많지. 미친 애들이 별 짓을 다했지. 겁도 없이 남자와 여자가 볼 장 다 보기도 했고.”
노골적인 최향림의 말에 장인걸은 뭐라 대꾸를 하기가 민망해서 멀거니 출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려 외면했다. 그런 이야기를 여자와 말하는 것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너도 조심해. 술 먹고 여자가 꼬리친다고 사고 치면 골치 아파지니. 사고치려고 유혹하면 남자가 더 쉽게 넘어간다고 하더라. 남자들 대부분 술만 들어가면 개가 되고 치마만 두르면 눈이 돌아가고. 그래서 제비족보다 꽃뱀이 더 쉽게 성공한대.”
최향림은 마치 자신이 누나라도 되는 것처럼 잔소리까지 했다. 어릴 때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남들까지 조심하라고 채근하고 있었다.
“참, 자취집은 어때? 좋아?”
아직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아 사진을 찍어두지 못해 보여줄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나중에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보여줄 수가 있었다.
“그냥. 깨끗하지. 이런 구조야.”
가방에서 필기도구를 꺼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구조를 간단히 그려서 보여주었다.
“친척 언니 신혼집과 상당히 비슷하다.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집이라고?”
“응,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으면 보일러 기름도 사다가 채워야 해서 그 부분을 제일 먼저 살폈어.”
“밥은? 혼자 해먹을 수 있어?”
“그런대로 할 수 있지. 내가 잘 못하면 네가 와서 반찬 만들어 주려고?”
“이게 또 나를 밥순이 취급을 하려고? 내가 미쳤어?”
최향림은 펄쩍 뛰면서 절대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통 여자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상이었다. 장인걸은 동네 친구로 대하는 것 이상은 절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전에는 여자가 어떤 생각으로 만나는지 느끼지 못했는데, 아니 살필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다 보이니 오히려 귀찮군. 이래서 아는 게 병일지도.’상대의 생각을 알기에 편하게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따져보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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