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34
26. 노다지를 위해
장인걸은 드라마 촬영을 주로 야간과 수업이 없는 시간으로 잡았다. 물론 휴일도 쉬지 못하고 촬영을 하기도 했다. 학교에 다니는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장인걸이 나오는 장면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저 일상을 보내다가 주인공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휩쓸리거나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에 지시를 내리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박대필이라는 역할이 밤무대 가수라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상당히 많았다.
“양동호가 우리 구역을 넘본다고 합니다.”
박대필에게 은밀하게 찾아온 조직의 두목 윤태산이 난감한 어조로 보고를 했다.
“양동호라? 윤사장이랑 친하게 지내던 놈으로 아는데?”
“헤헤, 그거야 제가 철없던 시절 이야기지, 지금은 절대 어울리지 않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것저것 같이 하자고 이야기를 했지만 다 거절하니 직접 손을 대려는 것 같습니다.”
“뽕, 그거 유통하는 놈들이지?”
순간 박대필의 표정이 돌변하면서 물었다. 지금까지 편하게 이야기하던 것과는 아주 분위기가 달라졌다. 윤태산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것 같아서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박대필은 암흑가의 일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지만 마약이나 사채에 의한 인신매매, 장기매매 같은 중대범죄에 대해서 엄격했다. 심지어 적대 세력에 대한 폭행이나 제거까지 용인하지만 그런 일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알았으니 모른 척해. 윤사장은 이 문제에서 손을 떼.”
박대필의 표정에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어리기도 하다가 뭔가 즐거운 것을 기대하는 표정이 어리기도 했다. 직접 손을 쓰려고 결심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컷.”
장인걸은 컷 소리가 나자 중견 탤런트인 이민욱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했다. 연기지만 나이가 마흔이 넘은 이민욱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영 불편했다.
곧 이어서 옆 세트로 이동하여 촬영이 진행되었다. 장인걸은 빠르게 분장을 하고 밤무대 가수가 되어 공연을 했다. 촬영 순서는 전 장면보다 뒤이지만 시간 상 빠른 시점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장인걸은 일종의 배경이 되어야 했고 그가 노래하는 사이에 주인공인 김태양이 친구인 문지형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 전개되었다. 김태양은 장유현이 맡고 있었다.
여기서 장인걸은 노래를 하면서 객석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대화를 몰래 훔쳐듣는 연기를 해야 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일명 귀 움직이기 신공을 발휘해야 했다. 몰래 훔쳐 듣는 것을 형상화하는 장치였다. 아울러 특별한 능력을 가졌음을 의미했다.
다행히 장인걸은 귀를 잘 움직이는 사람이었기에 무난하게 바스트 샷을 쉽게 땄다. 그렇지 않았다면 CG 처리를 해야 했는데 가능하니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기타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하다가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자 귀를 쫑긋거리는 장면이었다. 무대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모두 듣는다는 설정이었다.
“뭐가 이렇게 바쁜 거야? 폼 하면 문지형인데 죽는소리 하면서 만나는 것을 피해?”
“나 지금 사건 수사 때문에 정말 바빠. 그렇지 않아도 신경 써주어야 하는데 뽕쟁이 하나가 죽는 통에 비상이 걸렸어. 여기 찾아가봐.”
“네가 같이 가서 소개해 주어야지. 내가 가면 어서 오라고 하겠어? 너 믿고 왔는데.”
“미안하다. 잠복근무 중이라 시간 내기 정말 힘들어. 전화해서 다 말해 놓았으니 찾아가 봐.”
“컷.”
몇 번의 NG와 재촬영을 거쳐 업소의 장면이 마무리가 되었다. 이 장면은 박대필과 김태양이 처음 인연을 갖게 되는 장면이자 사건이 뒷골목의 이야기로 전개될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힘들지?”
“재미있는데요.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고요.”
장유현은 촬영 중간에 장인걸에게 필요한 조언을 해주고 캐릭터를 분석하는 요령 등을 일러주기도 했다.
“귀를 쫑긋거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거야? 너처럼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아무리 해도 안 되던데?”
장인걸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귀를 많이 움직여 멀리서 봐도 귀가 움직이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것은 금강나한공을 운용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의 누구도 장인걸처럼 귀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귀가 조금 예민한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과 달리 귀를 움직일 수가 있더라고요. TV로 방영되면 사람들은 일종의 영상조작, CG로 알겠죠?”
“그럴 것 같아. 한동안 화제가 되겠지. 예능에 나가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진짜다, 가짜다 논란이 되겠지.”
장인걸은 너무 무리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 것으로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박시운 대표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서렸다. 장인걸이 백제화학을 인수한 이유를 밝힌 것이고 회사를 회생시킬 비책을 가지고 있음을 공표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몰리브덴 광산, 그것도 노두가 드러난 광맥이 존재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미 비공식적으로 확인을 했습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위치를 알리지 않고 샘플의 분석을 의뢰했고 거기서 확실하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단지 개발을 하려면 전문적인 분야라서 일단 비밀로 했습니다. 지금 즉시 전문가를 투입하여 광물을 분석하고 광산 개발에 착수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주변의 토지를 모두 매입한 상황이니 개발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 땅을 개발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박시운 대표는 장인걸이 왜 백제화학을 인수했는지 깨달았다. 국내에 몰리브덴 광산을 개발할 능력을 갖춘 몇 안 되는 업체 중에 하나가 백제화학이었다. 광산개발은 절차도 복잡하고 광물을 채굴할 기술도 필요했다. 그동안 백제화학은 국내와 해외에서 그런 일을 몇 번 수행한 실적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좋은 광산이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준위가 최소 3% 이상은 됩니까?”
“제 예상에는 5% 이상의 고준위 광맥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탐사를 해보면 제법 괜찮은 수준일 것입니다.”
장인걸의 말이 사실이라면 백제화학은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가 있었다. 오히려 비상을 할 수 있었다.
“일단 광산개발과 관련하여 약정이 필요합니다.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이지만 히어로기획을 제가 100% 소유하고 있고 백제화학의 지분 100%를 히어로기획이 소유한 상황이니 적절한 수준의 계약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두 회사가 상장을 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장인걸은 사전에 준비한 약정서나 토지주인으로서 필요한 권리양도에 대한 부분까지 서류를 작성했다. 장인걸이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 곧 떠나야 하기에 사전에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은 백제화학의 채권단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크게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몰리브덴 광산의 개발은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자분야에서 희토류와 관련된 각종 연구에서 성과를 내는 것입니다. 앞으로 백제화학은 연구전문기업을 목표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백제화학이라는 사명도 변경해야 할 것입니다.”
장인걸은 백제그룹의 색채를 없앨 계획이었고 사명을 변경하는 것이 그 시작으로 보았다. 다음날 광물탐사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탐사팀이 양진산으로 출발을 했고 지적도에 위치까지 표시한 상황이라 도착한지 한 시간만에 광맥을 찾아냈다. 아울러 이틀 후에 대략적인 매장량마저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박시운 대표가 현장에 내려가서 모든 것을 지휘하면서 광산개발을 위한 각종 절차를 밟아 나갔다. IMF 외환위기라는 상황은 골치 아픈 인허가 절차마저 상당부분 단축시켜 주었다.
몰리브덴 광산의 발견은 이슈가 되기도 했고 장인걸이 왜 그 산을 그렇게 사려고 했는지 집안 식구들이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그로 인해 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저 예전에 알고 있던 사실이라는 말로 넘어갔다.
“희토류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희토류는 전자산업에서 아주 중요한 재료입니다. 그렇기에 수입선을 확보하고 재고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또한 희토류를 사용하는 업체에 납품할 수 있도록 영업을 강화하기 바랍니다.”
몰리브덴 광산은 일종의 캐시카우이지 장기적인 경영목표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돈줄이 끊기기 전에 다른 수익 원천을 만들어야 했다.
“며칠 후에 보스턴에 가야합니다. 내가 미국에 열흘간 갔다 오는 사이에 최대한 일을 진척하여 바로 채굴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만일 자금이 더 필요하다면 본사의 자금담당인 임식현 과장에게 추가자금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인걸은 20억 원의 대출을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 자금을 받게 되자 운영자금으로 잡아둔 20억 원이 그대로 있었다.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하신다고 했죠? 알겠습니다. 바로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밀린 임금도 정리를 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운영자금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임식현 과장에게 청구하면 됩니다. 물론 히어로기획이 지주회사이니 추가적으로 투입하는 자금은 대주주 가수금 처리가 될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백제철강과 회계처리를 많이 했기에 익숙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사를 인수하고 대출금이 들어왔지만 밀린 임금을 바로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에 있던 경리직원이 백제철강으로 복귀를 한 상황이라 대략 밀린 임금의 절반 정도만 지급하고 경리직원을 충원한 후에 정확한 금액을 산정했다. 나머지 미지급 금액은 산정이 마무리된 이후에 지급하기로 했다.
장인걸은 모처럼 양진에 내려왔다. 설날 내려온 후에 일이 많아 시간을 내지 못했다.
장인걸은 며칠 전에 내려와서 준비 중인 백제화학의 박시운 대표를 현장에서 만났다. 모두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었고 광산으로 통하는 진입도로 개설문제로 갑론을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인걸이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선을 하나 긋는 것으로 논쟁은 끝을 맺었다. 사실 조금 경로가 길어지고 산림의 훼손이 많지만 경사가 적어 안전했다.
“광산에 투자를 하고 싶다는 말입니까?”
채권단 대표로 광산개발 현장을 방문한 이연식 이사와 만나자 그런 요구를 해왔다. 최종 계약서에 서명할 때 잠깐 인사를 했지만 따로 이야기하는 자리는 피했다. 유덕환 상무가 굳이 실무 책임자와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기 때문이었다.
“채권단과 별개로 우리 행장님이 PF(Project Financing) 계약을 추진하면 어떨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채권단의 대표가 아닌 은행의 간부로서 제안을 하려는 것 같았다. 대출을 해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만 은행도 적당한 투자처가 없어 곤혹스러운 입장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자원의 개발은 위험성이 별로 없는 좋은 투자처였다.
“광산개발을 하려면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긴 합니다. 그것을 은행에서 도와주신다면 좋지만 지금 같은 경제위기에 은행에 여력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경제상황이 어렵고 우리 은행도 어렵지만 이런 일은 쌈짓돈이라도 털어서 마련해야지요. 정책자금도 있고요.”
돈이 될 것 같은 것은 아주 잘 파악하는 것 같았다. 당장은 돈이 투자되어야 하지만 광산이 개발된 후에 이루어지는 부대업무 중에 발생할 각종 수수료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을 위해 채권단을 매개체로 하여 한 발 걸치려는 것 같았다.
“그러면 최상의 지원방안을 한 번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곧 보스턴에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다녀오시는 동안 방안을 마련하여 돌아오시면 찾아뵙도록 하죠.”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좋습니다. 그 때 다시 한 번 논의를 해보도록 합시다.”
장인걸은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기에 일단 나중으로 미루었다. 계획을 들어보고 좋으면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었다. 기회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대출을 받을 필요도 있었다.
또한 혼자 독식을 하는 것보다 적당히 이권을 배분할 필요가 있었다. 몇 군데 투자자를 유치하여 방패막이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혼자 다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다가 욕심 사나운 자들에게 아예 빼앗길 소지도 있었다.
당장은 급하지 않지만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여기저기 숟가락을 얹으려고 달려드는 자들이 많을 것이고 그런 자들을 막을 투자자를 받는 것이 유리했다. 금융권과 대기업 몇 곳을 투자자로 받아들일 계획이었다.
끝ⓒ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