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41
더구나 같이 움직이는 선수들의 경우 선두에서 무리를 지어서 달리다보니 전문적으로 반칙을 일삼는 무리라고 소문이 난 경우도 많았다. 물론 레이스 중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이야 어떤 선수도 마찬가지지만 무리를 지어서 있으니 다른 선수가 끼어들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온갖 욕을 먹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잘 하는 선수가 등장하면 악착같이 견제를 하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게 방해를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반칙을 모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암묵적으로 협력하여 레이스를 펼친 정도였다. 그랬다면 누군가 그런 사실을 폭로하여 난리가 났을 것이다.
부가티 군단이라 소문이 났지만 사실 그들은 동료이면서도 한편으로 적이었다. 언제라도 약점을 보이면 등에 칼을 꽂을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문제가 될 일을 같이 논의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저 레이스 도중에 암묵적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적은 있지만 그저 우발적인 협력 수준이지 사전에 그렇게 하자고 모의한 행동은 아니었다.
한편 장인걸은 너무나 질주를 하다가 탈진하는 사태가 올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혼자 훈련할 때 그 정도 속도로 달리기도 했지만 막상 실전에서 세계 기록을 세울 페이스로 달리는 것은 그 느낌이 달랐다. 훈련에 비해 실전이 훨씬 힘이 들었다.
장인걸은 시계를 보면서 달렸다. 보스턴마라톤대회를 참석하면서 세운 목표는 두 가지였다. 2시간 7분의 벽을 깨는 것과 대회의 우승이었다. 그 정도만 되어도 한국에서 커다란 이슈가 될 것이고 세계적인 스포츠 회사에서도 최소 한국 시장을 목표로 한 모델로 선정할 것이라 생각했다.
장인걸은 스포츠 스타이면서도 연예인이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가진 것은 커다란 강점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 비해 광고료 자체가 두 배 가량 높게 산정이 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정속주행을 해도 될 것 같아. 굳이 무리하게 앞서 나갈 필요는 없지.’ 장인걸은 시간을 충분히 벌어놓은 상황이기에 시계차를 보면서 자신의 속도를 가늠했다. 선두에 달리니 바로 시계차가 앞에 있어 별도로 시계를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 좋았다.
장인걸은 혹시라도 문제가 될까 걱정한 급수대에서의 급수도 선두로 달리니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10km, 15km를 지나 20km를 바로 앞에 두게 되었다. 뒤에 따라오던 세렝 부가티는 악착같이 장인걸을 쫓아왔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이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교차하는 구간에 접어들겠군. 그곳에서 승부를 걸어올 것 같은데 기대가 되는군. 지금까지는 그리 긴장감이 없었는데.’ 장인걸은 코스를 달리는 것 자체를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체력만 사용하여 악착같이 달리고 나면 체력이 고갈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운기조식을 하면 금강나한공의 발전이 있었다.
‘어떻게 될까?’ 장인걸은 20km를 59분 30초에 통과하자 세계기록의 구간별 기록보다 10여 초 정도 더 빨리 달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나중이야 어떻든 좋은 기록임에 분명했다.
중간 지점을 통과하자 곧바로 지형이 변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나타났고 장인걸은 오르막길에는 힘을 주어서 달리고 내리막길에서는 연습한대로 빠르게 질주를 했다.
‘재미있는 상황이군. 여기서 승부를 보기 위해 그동안 적당히 추격해온 것 같군.’ 세렝 부가티는 오르막길에서는 다른 선수와 차이가 없지만 내리막길에서는 빠르게 질주했다. 장인걸은 그런 사실을 알기에 전체적인 속도를 다소 올려서 달리기 시작했다.
‘미치겠지? 자신이 잘 하는 내리막질주를 두 번이나 했는데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으니. 하지만 나도 그것에 대비하여 전체적인 속도를 조금 올렸으니 쉽지 않을 것이다.’ 장인걸은 기감을 끌어올려 40m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대충 10m 정도 거리가 단축되었지만 그 이상은 좁혀주지 않았다. 사실 기감이 미치는 범위가 50m 정도인데 끝자락에 걸려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하는 것이 신경이 쓰이기에 아예 감지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만든 면이 컸다.
장인걸은 서울마라톤대회에서 달리는 것처럼 거리가 벌어지면 속도를 줄이고 거리가 좁혀지면 속도를 올렸다. 한 번 경험을 했고 그동안 다양한 경우를 상정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검토한 상황이라 훨씬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
더구나 서울마라톤대회보다 거리가 더 벌어진 상황이라 여유가 있었다. 거리에 여유가 없으면 추월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면 급가속을 해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세렝 부가티는 긴 오르막과 긴 내리막에서 승부를 보려는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장인걸은 언덕위에 올라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기감으로 파악이 불가능한 것도 있기에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언덕위에 올랐을 경우 바로 속도를 올리지 않고 균형을 잡으면서 천천히 속도를 올리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리가 풀려 넘어질 수가 있었다.
언덕의 중반을 지나서 올라오는 세렝 부가티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장인걸은 그런 모습을 보자 진지한 자세로 승부에 임하기로 했다. 장인걸은 내리막길에서 전보다 조금 더 속력을 높였다. 내려가는 것도 균형을 유지해야 하기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하지만 장인걸은 훈련을 통해 터득한 방식대로 몸의 통제력을 상당부분 줄이면서 다리를 빨리 놀리는데 주력했다. 세렝 부가티가 주로 사용하는 부가티 질주의 원리가 바로 속도를 통제하지 않고 오직 균형만 유지하는 것이었다.
장인걸이 내리막길에서 질주를 하자 중계진은 흥분하여 탄성을 발하기 시작했다. 세렝 부가티에 비해 10cm 정도는 크고 15kg 이상의 몸무게를 가진 장인걸이 전개하는 부가티 질주는 부가티에 비해 오히려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았다.
더구나 내리막길이기에 순식간에 그 차이는 훨씬 더 벌어졌다. 부가티 질주를 시작하면 그 차이는 다시 줄어든 것이지만 순식간에 20m 정도의 차이를 더 벌려 60m 정도까지 거리를 벌리고 말았다.
장인걸은 세렝 부가티가 언덕 위에 올라왔을 때에는 거의 100m 정도 앞에 달려가고 있었다. 세렝 부가티도 어느 때보다 속도를 높여 언덕 아래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언덕의 경사가 줄어든 지점에 당도하여 속도를 줄인 장인걸은 뒤를 돌아보다가 너무나 위험한 질주를 하는 모습에 기겁을 했다.
만일에 그렇게 질주하다 조금만 균형을 잃으면 중상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장인걸은 자신을 따라잡기 위해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질주하는 것을 보자 더욱 투지가 생겼다. 상대가 그만큼 결사적으로 나서는데 적당히 상대할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상대해 주는 것이 예의였다.
장인걸은 다시 속도를 높여서 달리기 시작했다. 부가티 질주를 하여 쫓아온 세렝 부가티는 오히려 거리가 조금 더 벌어진 것을 확인하자 속도를 줄이지 않고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마라토너는 그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고려하여 레이스를 펼친다. 몸에 무리가 가면 설사 더 빨리 달릴 수 있어도 조절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 세렝 부가티는 그런 리미트를 해제하고 승부를 걸고 있다.’ 장인걸은 그런 세렝 부가티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선택이 잘못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은 그런 선택을 한 당사자의 책임이었다. 그저 장인걸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일이었다.
NBC에서는 시청률이 급속도로 올라가자 중계방송을 하는 팀들 모두가 희희낙락한 분위기가 되었고 중계의 방향을 장인걸과 세렝 부가티의 각축으로 맞추었다. 어쩌다가 뒤를 따라오는 그룹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이고 대부분 장인걸과 세렝 부가티의 각축에 초점을 맞추었다.
마라톤 중계는 보통 지루하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이번 중계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연출을 잘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장인걸과 세렝 부가티가 각축전을 벌이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장인걸의 미국 내 인지도가 급속도로 상승할 수가 있었다. 세렝 부가티야 꽤나 이름이 알려져 있었지만 2등이고 아프리카 출신 특유의 앙상한 외모 때문에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장인걸은 동양인이지만 수려한 외모 덕분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장 선수가 세렝 부가티 선수의 추격을 뿌리칠지 아니면 추월을 허용할지 모두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몇몇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는데 팽팽하게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계방송 중에 전화인터뷰를 통해 들은 전문가의 의견을 해설자가 소개해 주었다. 어떤 전문가는 세렝 부가티가 유리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장인걸이 유리하다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20km 지점부터 세렝 부가티 선수가 속도를 높이면서 각축을 벌였는데 순위가 뒤바뀌지 않고 벌써 30km를 지났습니다. 심지어 다른 그룹과 무려 500m 이상 거리가 벌어진 상황으로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두 사람 중에 우승자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 큽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장 선수의 우세를 지적한 내용을 보면 장 선수가 적당히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것은 장 선수가 아직까지 여력을 남겨놓고 레이스를 전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장인걸이 거리조절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깝게 접근하도록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세렝 부가티 선수의 추격을 뿌리칠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건 아닙니다. 저도 마라톤을 했는데 훈련을 하면서 제 기록이 얼마나 좋은지 일정한 레이스 구간을 정하고 달린 경험이 있습니다. 제 최고 기록이 2시간 8분대인데 아무리 빨리 달리고 기를 써도 2시간 15분대를 깨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본다면 마라톤은 절대 혼자 달리는 종목이 아닙니다. 장인걸 선수는 세렝 부가티 선수가 뒤처지지 않도록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인걸은 뒤따라오는 세렝 부가티 선수를 일종의 레이싱 파트너로 이용하기 위해 적당히 페이스를 조절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렝 부가티 선수도 지금보다 거리가 더 벌어지면 추격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까지 장인걸 선수는 고려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가수이기에 어떤 것이 더 유리한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렇다면 지켜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다 흥미진진한 레이스를 위해서 그렇다는 말인가요? 설마 이제 네 번째 완주에 도전하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모릅니다. 선수들 중에 누가 세 번째 완주 도전에서 2시간 7분대의 기록으로 우승할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선수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새뮤엘 라돈이라는 해설자는 30km 지점을 지난 이후부터 장인걸이 우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면서 계속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마라톤 선수였던 해설자의 그런 전망에 다들 개인적인 견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분석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장인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저 선수는 정말 대단합니다. 적당히 거리를 조절합니다. 얼마나 감이 좋은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뒤에서 따라오는 선수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달리는 상황에서 저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기척을 알 수 있습니까?”
“저 정도 거리는 몰라도 10여m 정도까지는 감지가 됩니다. 단 둘이 달린다면 귀로 감지가 됩니다. 하지만 저 정도 떨어진 상황에서 감지가 될지 의문입니다. 음악을 했기에 절대적인 청각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몇몇 뮤지션에게 가능할지 물었는데 반반 정도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뮤지션은 청각이 예민한 사람일 경우 훈련을 하면 가능하다고 했고 어떤 뮤지션은 주변에서 소음이 있을 수밖에 없어 감지가 어려울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장 선수의 레이스 운영능력은 대단합니다. 어느 새 35km 지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 마의 구간에 접어드는데 어떻게 풀어갈지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체력적으로는 데드포인트에 접어들 것이고 코스는 고도차가 큰 구간으로 접어들고요.”
“보스턴 마라톤의 백미가 바로 이 구간이라는 말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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