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42
“저도 이 코스를 세 번 완주했는데 정말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사가 크고 긴 오르막과 내리막이 서너 번 반복되는데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상황에 직면합니다. 더구나 데드포인트까지 겹치면 레이스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그 때의 그 막막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그런가요? 저는 경험해 보지 않아 느낌이 잘 오지 않는데 더 실감이 나도록 비유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지금 장 선수가 달리는 저 오르막길에 접어드는 순간 길이 벌떡 서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절벽을 타고 오르는 느낌이랄까요. 몸은 제 몸 같지가 않은 상태인데 길마저 너무나 가파르니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해설자의 설명에 그럴까 하는 표정이 되었지만 달리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요즘 나오는 이야기가 데드포인트가 없는 마라토너도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레이스 중에 데드포인트가 없도록 체력을 키워야 세계적인 선수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데드포인트가 오지만 정신력과 체력으로 뒤로 미룬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30km에서 오는 사람도 있고 35km, 40km에서 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완주 이후로 미룬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레이스 중에 데드포인트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 결국은 사람은 누구나 오래 달리면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데 그 현상을 뒤로 미루어 레이스 중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데드포인트가 오면 2시간 6분의 벽을 뚫기 어렵고 그 벽을 뚫으려면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그 벽을 뚫었다고 해도 기록을 좋게 하려고 속도를 높이면 역시 데드포인트가 올 것이니 빠르게 달리면서도 데드포인트가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입니다.”
해설자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마라톤에서 종종 2시간의 벽을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레이스 내내 100m를 17초에 달려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렇게 달리고도 데드포인트가 오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언젠가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특별한 훈련을 하면 특별한 한 두 명은 인간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 봅니다. 그러면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훈련하여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갈 것이고요. 하지만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을 보면 과학적인 훈련법보다 타고난 재능이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는 조금만 훈련을 해도 성과를 내는 것이 마라톤입니다.”
캐스터와 해설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장인걸과 세렝부가티는 길고 험한 언덕길을 묵묵히 달려서 올라가고 있었다. 길고 긴 오르막길을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마침 헬리콥터에서 촬영한 화면이 보였다. 장인걸과 세렝 부가티가 조금의 거리를 두고 달린다면 그 열 배에 가까운 거리가 떨어진 곳에 10여 명의 선수가 옹기종기 모여서 달리는 장면이 보였다.
“장 선수와 세렝 부가티 선수의 차이는 대략 8~9초 정도 차이가 난다면 그 뒤의 선수와는 대략 1분 30초 정도 차이가 납니다. 저런 정도의 차이라면 역전이 쉽지 않습니다. 100m당 1초 이상 빨리 달려야 겨우 결승선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에게 그 차이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거리입니다.”
새뮤얼 라돈의 말은 장인걸과 세렝 부가티가 1~2위를 차지할 것이란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지 세렝 부가티가 역전할 수 있을지 그것이 의문이었다.
장인걸은 세렝 부가티 선수를 살피면서 속도를 올렸다. 언덕을 오를 때는 20초대로 달리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19초대를 유지했다. 그렇게 하자 세렝 부가티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묵묵히 그렇게 달려가기를 한참 하니 마침내 언덕의 끝이 보였다. 세렝 부가티와 거리가 더 벌어졌는지 감지되지 않았다.
언덕에 오르자 다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지만 참고 달려갔다. 이렇게 힘이 들게 언덕에 올라 내리막길을 달리다보면 다리에 힘이 풀려 고꾸라지기 쉽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장인걸은 다리의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서 발뒤꿈치에 힘을 주어서 달렸다. 앞으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질주를 하게 마련이고 그러다가는 균형을 잃고 사고가 날 것 같았다. 장인걸은 50m 정도를 그렇게 달리다가 속도를 조금씩 높였다.
하지만 세렝 부가티는 달랐다. 언덕을 넘자마자 장인걸을 따라잡기 위해서인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고 50m 이상 벌어져 제대로 감지가 되지 않던 상황이었는데 순식간에 40m 이내로 좁혀졌다.
장인걸도 다시 속도를 높여서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렝 부가티는 이미 가속을 한 상태라 그 거리는 더욱 좁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욕은 결국 비극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고 뒤에서 쿵, 철푸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워낙 요란하게 넘어진 상황이라 장인걸에게도 크게 들렸다.
장인걸은 결국 세렝 부가티가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고꾸라진 것을 알았다. 장인걸은 속도를 조금 더 줄이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앞으로 달려갔다.
대회 운영을 돕는 안전요원이 바닥을 굴러 쓰러져 있는 세렝 부가티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안전요원이 응급조치를 하든지 구급차를 부르든지 알아서 할 것 같았다. 그러니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장인걸은 혼자가 되었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경쟁자인 세렝 부가티가 제풀에 지쳐 쓰러진 것은 안타깝지만 그것은 서로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선수의 숙명이었다.
장인걸은 세렝 부가티가 쓰러지자 심적인 부담이 사라져서인지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시계를 보고 달린 거리를 점검하면서 속도를 가늠했다.
‘지금 38km를 막 지났는데 1시간 53분이 지나고 있다.’ 대충 시간을 가늠하니 이대로 죽 달리면 13분 후에 결승선을 통과할 것 같았다. 그러면 2시간 6분 10초 정도에 들어올 것 같았다. 전보다 대략 1분 40초 정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보였다. 그 정도라면 만족스러운 기록으로 보였다.
장인걸은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없기에 18초대의 속도로 달려갔다. 혼자 달리자 다소 긴장이 풀렸지만 시계를 보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으려고 했다. 힘이 들어 적당히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앗, 세렝 부가티 선수 몸의 균형을 잃고 구르고 말았습니다.”
캐스터가 다급한 어조로 비명에 가깝게 상황을 설명했다. 순간 화면에 몸 전체에 피가 흐르는 세렝 부가티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곧 장인걸로 화면이 바뀌었다. 장인걸은 속도를 조금 늦추더니 몸까지 돌려서 뒤를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안전요원이 연도에서 나오자 바로 돌아서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세렝 부가티 선수 너무나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다가 몸의 균형을 잃고 말았습니다. 장 선수가 언덕을 오른 후에 속도를 유지하면서 다리의 피로가 해소되기를 기다린 반면 뒤를 따르던 세렝 부가티 선수는 거리가 벌어진 것을 만회하고자 급하게 속도를 올렸고 언덕을 오르면서 힘이 빠진 상황이라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부가티 선수의 경우 부가티 질주라고 하여 언덕을 내려가는 속도가 그 누구보다도 빠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안타깝네요. 이렇게 경기 중에 쓰러진 것이나 부상을 당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부가티 선수의 내리막길 주행도 뛰어나지만 오늘 앞서 달리는 장 선수의 내리막길 주행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부가티 선수는 장인걸 선수를 따라잡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37km 지점을 지날 때까지 역전을 하지 못하니 조급한 마음이 생겼고 그 결과 내리막길이 나오자 무리하게 질주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장 선수처럼 최소 30m 정도를 천천히 달리면서 다리에 걸린 부하가 사라지길 기다려야 했습니다. 장인걸 선수는 언덕에 훨씬 빨리 올랐지만 오히려 더 늦게 가속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내리막길 주행이 가지는 위험성을 알기에 사전에 대비를 한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두 선수의 각축에서 패배할 것 같아 무리하게 주행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다행히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병원으로 후송하여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넘어질 때 무릎을 먼저 찧은 것이 걱정이 됩니다. 십자인대에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넘어질 때 무릎부상을 많이 입는데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렝 부가티 선수가 큰 부상이 없기를 바라는 멘트를 했지만 결국 무릎에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십자인대파손이었다.
장인걸에게 이기려고 무리를 하다가 결국은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렇게 된 것은 장인걸의 탓은 아니지만 장인걸에게 패배하면서 발생한 첫 번째 희생자였다.
“장 선수 빠르게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속도의 변화가 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40km 지점을 1시간 59분 30초에 통과를 했습니다. 이제 2km 195m만 달리면 결승선을 통과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달리면 대략 2시간 6분 정도면 결승선을 통과할 것 같습니다. 초반 레이스에 속도에 비해서는 조금 기록이 부진한데 그것은 아마도 세렝 부가티 선수의 부상으로 인해 장 선수가 조금 소극적으로 레이스를 운영한 것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세렝 부가티 선수가 부상을 당한 이후에 속도가 조금 떨어진 것으로 나옵니다. 아마도 경쟁을 하지 않기에 편하게 레이스를 하는 것도 이유일 것 같습니다.”
“뒤 따라 오는 선수들이 오히려 속력을 높이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세렝 부가티 선수의 부상을 본 후에 속도를 높인 것 같습니다. 500m 이상 떨어졌는데 그 사이에 200m 가량을 좁혀 이제는 화면에서도 달려오는 것이 잡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리를 좁히기에는 남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장 선수 뒤를 흘낏 돌아보고 속도를 조금 높이는 것 같습니다. 따라잡힐 염려는 없지만 차이가 좁혀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장 선수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2시간 6분 01초의 기록으로 마침내 우승했습니다. 초반에 월드레코드 페이스였는데 후반에 세렝 부가티 선수가 쓰러진 것으로 인해 다소 속도가 하락한 면이 있습니다. 아울러 막판 스퍼트에서 조금 여유롭게 달린 것도 10초가량은 기록이 나빠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장인걸이 골인을 하고 1분 20초가 지난 후에야 2위가 들어오고 그 후부터 5~10초 간격으로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쁩니다. 유서 깊은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우승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장인걸은 통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답을 했다. 한국어로 말하는 것보다 영어로 직접 말하는 것이 미국인과 세계에 보다 어필할 것 같았다. 말이 통해야 공감하기 때문이고, 그래야 세계 광고시장에서의 상품성이 높아질 것 같았다.
“이번 대회가 생애 네 번째 완주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골드라벨 대회에서 두 번째 우승을 했습니다. 이런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요?”
“열심히 훈련하고 즐겁게 달린 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체력 훈련을 충실히 하여 끝까지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달리 대답할 것이 없기에 모범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지만 평이한 질문이었고 역시 평이하게 대답을 했다.
장인걸은 개별적인 인터뷰는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중계방송을 맡은 NBC와 한 것이 유일했고 바로 도핑테스트를 위한 샘플채취를 하러 갔다.
장인걸은 다른 선수와 달리 달리면서 물을 충분히 섭취한 덕분에 빠르게 소변이 나왔다.
장인걸은 간단히 샤워를 한 후에 옷을 갈아입고 미디어 섹터에서 기자간담회 형식으로 인터뷰를 대신했다. 스텝 세 사람은 장인걸의 주변에서 서 있었고 장인걸은 직접 영어로 인터뷰를 했다. 통역을 두고 인터뷰를 하는 것보다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미국 내 인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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