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48
장인걸은 두 시간에 걸쳐 유희주와 관련된 장면을 촬영한다. 신세한탄을 하다가 유희주는 술잔을 챙겨서 술을 한 잔 더 하자고 한다. 결국 둘은 양주를 한 병 같이 마시게 되고 술이 꽤나 취한 유희주가 박대필을 유혹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수고했습니다, 선배님.”
장인걸은 강수영을 보면서 인사를 했다. 나이가 서른한 살이지만 아직도 동안인 강수영은 20대 중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역부터 시작한 상황이라 연기자로 데뷔한지 20년도 더 지난 베테랑 연기자였다.
“너도 수고했어. 언제 시간이 되면 보리차 말고 진짜 양주를 한 잔 하자.”
비싼 양주를 먹는 연기였지만 실제 양주병 안에 든 것은 보리차였다. 그렇기에 술 먹는 연기를 하다가 웃음을 참지 못해 NG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너 정말 능숙하더라. 아까 그 손길 짜릿했어.”
강수영이 가까이 다가와서 낮은 목소리로 연기로 한 애무에 대하여 평가했다. 장인걸은 그런 말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평소에 여자들에게 하던 손놀림을 했던 것이 떠올라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연기의 한 장면이지만 성숙한 여인이 술에 취해 무방비한 모습으로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흥분을 했고 연기인지 실제 애무인지 모를 정도로 어깨와 가슴 부위를 쓰다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흥분하여 실수한 것 같습니다.”
장인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자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 순간 강수영을 여자로 보지 않았다면 거짓이기 때문이었다.
“아냐, 사실 나도 흥분했거든. 너무나 능숙하게 네가 리드한 탓에 나도 모르게 매달리고 말았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
장인걸은 강수영도 흥분했다는 말에 자신이 연기하면서 가졌던 의구심이 단지 느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붙잡고 서로 쓰다듬으면서 몸부림을 치는 장면에서 느낀 거친 숨소리가 실제로 흥분해서 냈던 소리라는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드라마 하면서 스캔들을 낼 수도 있었다. 남녀가 서로 좋아서 만나는 것이야 문제가 아니지만 그런 사실이 알려져 드라마의 성적에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문제였다.
황명환이 고등학교 동기모임을 한다고 연락하여 약속 장소에 나갔다. 중간고사가 끝난 후 토요일 저녁으로 잡은 탓에 일찌감치 행사 하나를 하고 아홉시 경에 나갔다. 이미 1차 모임은 파장 분위기였다. 장인걸이 들어가자 다들 환호를 하면서 환영을 해주었다.
“일이 있어 처리하느라 늦게 와서 미안하다.”
장인걸은 늦은 것에 대해 사과하고 동기들과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했다. 잘난 체를 하지 않도록 하여 서운한 감정이 들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러면서 질시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조금 부러운 감정을 가진 사람은 보였지만 악의를 가진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이다.”
장인걸은 원경희와 악수를 하다가 그렇게 말을 건넸다. 회귀 전에 사귀었던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요즘 아주 승승장구하던데. 아주, 아주 잘 나가는 것 같아. 인걸이, 정말로 멋지던데.”
장인걸은 원경희와 이야기를 하다가 ‘아주’를 자주 사용하는 버릇이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멋지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보면 회귀 전에 있었던 것이 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고맙다. 학교는 잘 다니고?”
“응, 며칠 후에 니네 학교 축제라면서. 너는 공연까지 한다고 하던데 나도 갈까 생각 중이야. 아까 정숙이가 놀러 오라던데?”
“오면 영광이지. 그날 축제 끝나면 특별히 할 일은 없으니 학교 친구들이랑 밥이나 같이 먹자. 공연 끝날 때쯤에 매니저에게 연락해.”
장인걸은 이승찬의 행위나 본성을 알게 되자 원경희는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오히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 자신을 더 반성했다.
지켜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마지못해 이별을 택한 것을 알았다면 배신감에 괴로워하지 않고 아픔을 이해하면서 다시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할게.”
장인걸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고 몇몇 친구들에게 이승찬과 같은 무리들과 있었던 일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학교에 여동생이 다니고 있어서 데리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 양진이나 내려다보려고 뒤뜰로 갔는데 거기서 봤어.”
그러면서 자신이 봤던 장면에 대하여 설명하고 그들이 흉기를 꺼내 달려든 이야기를 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런 폭력을 자행하려 한 사실에 다들 놀랐다. 그런 일을 말하자 몇 명은 자신들도 학교 다닐 때 당했다면서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석진이는 안 보이는데···.”
황명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자 안석진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평소라면 그런 자리에 빠지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몰랐어? 걔 군대 갔어. 휴학하고 3월 초에 강원도로 입대를 했어. 제 마음대로 안 되니까 군대로 간 것 같아.”
그러면서 원경희를 슬쩍 봤다.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를 했다. 원경희에게 계속 대시를 했는데 퇴짜를 맞았고 그러니 군대에 자원하여 입대했다는 말이었다. 아마도 원경희를 포기하기 위한 그 나름의 선택으로 보였다.
“알았다. 문제가 뭐야?”
“몰라. 그냥 맘에 들지 않는 거지. 이유를 대자면 수도 없을 것이고 반론을 하자면 끝도 없는 이야기지. 그냥 맞지 않는다고 보면 될 거야. 결정적으로 걔는 쟤보다 키가 작아.”
박상희가 부인이고 원경희와 꽤나 친한 편이니 양쪽의 말을 다 들은 황명환이니 사정을 알고 있었다. 장인걸도 원경희를 알기에 그 이유를 알았다.
“일찌감치 군대에 다녀오면 좋을 수도 있지. 가뜩이나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인데. 요즘은 군대에 가려는 사람이 많아 그것도 쉽지 않은데 용케 입대를 했네?”
“2학기 개강을 하고 바로 신청을 했고 그 때는 그렇게 신청자가 많지 않아 바로 결정이 되었어. 지금은 등록금이 없어 휴학하는 사람이 많아서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
“애는 잘 커?”
“그저 그렇지. 특별한 것도 없고. 나도 휴학할까 했는데 애가 크면 더 어려워질 것 같아 일단 학교부터 마치기로 했다.”
경제사정이 나빠지자 대학도 상황이 좋지가 않았다. 본부에서 듣기에 휴학생 수가 예상보다 많아 그것도 문제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도 몇 명은 경제문제로 휴학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까 경희랑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무슨 말을 한 거야?”
“그냥 그런 이야기, 요번에 학교에서 공연하기로 했는데 그 때 정숙이랑 같이 온다고 해서. 그래서 학교에 온 애들 모여서 식사나 같이 하자고 했지.”
“걔가 아직도 널 좋아하는 것 같던데, 알고 있어?”
“알면 뭐 해? 내가 연애할 상황도 아니고 당장은 여자를 만날 생각은 없어. 학교 다니면서 일하고 마라톤 훈련 하고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는 상황인데, 여자 만날 생각도 없고 데이트할 시간도 없어.”
장인걸은 자신이 했던 말 전부가 그대로 원경희에게 전달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딱 잘라서 사귈 생각이 없음을 표명했다. 이승찬의 본색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잘못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다시 원경희와 만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미워하고 꺼림칙한 느낌이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뀌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전에 가졌던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은 다시 생기지 않았다. 그저 전과 달리 편하게 대할 수 있어 보였다.
장인걸은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기념식장에 참석을 한 후에 어린이들과 같이 청와대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마라톤 영웅으로 급부상했고 인기가수인 장인걸이 등장하자 어린이들도 꽤나 좋아했다.
장인걸은 애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성대모사를 하기도 하면서 같이 어울렸다. 물론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 주는 등의 팬서비스를 했다.
어린 애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는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더구나 행사를 나가면 어른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자주 접했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다루는 것이 익숙했다 물론 그 자리에는 초대된 어린이들도 많았지만 비슷한 숫자만큼의 취재진이 와 있었다. 그런 자리에 장인걸이 나타나자 꽤나 그럴 듯한 모습이었고 나중에 뉴스 화면에 등장했다.
“고맙군. 정치적인 행사에는 참여를 하지 않고 거리를 둔다고 하여 오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와주었군.”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자 대통령과 같이 잠깐의 티타임을 가졌다. 보스턴마라톤대회 우승을 주제로 말문을 열었고 차츰 심각한 분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세상의 모든 일은 정치적인 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제가 꺼려하는 것은 개인이나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 저를 이용하는 행사이지 국익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행사까지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흠, 선거에 이용하는 것을 피한다는 말이군. 그건 잘 하는 일이야. 나도 정치를 했지만 정치인이 될 생각이 없다면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것이 좋아. 아예 상종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선거에 동원되는 것만은 피하는 것이 좋아.”
장인걸도 공감을 하는 내용이었다. 장인걸의 위치에서 정치인들과 교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치행사에 동원되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는 행위를 하고 싶지 않았다. 호감이 가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저 한 표를 행사할 때 투표를 하면 되었다.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전에도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지금은 더 대단한 것 같군. 광산을 개발하고 마라톤에서 연이어 우승을 하다니. 서울마라톤대회야 안방이니 폄하할 수도 있지만 보스턴에서 우승하니 세계가 인정하는 것 같아. 앞으로도 많은 활약을 하여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으면 하네.
국민들이 미국에서 야구하는 친구와 자네를 보는 재미로 산다는 말을 하더군.”
“국민들이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는 것으로 보답하고자 합니다.”
“프리웨이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중일세. 관용 이메일도 있지만 훨씬 편리하고 사용하는데 편리한 것 같아. 거기다 다양한 뉴스와 정보를 주어 국정을 운영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 더구나 과학기술비서관의 평가에 의하면 외국의 비슷한 포털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니 앞으로도 인터넷 산업을 선도하기를 바라네. 그보다 저작권이나 지적재산권 보호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데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지 않을까 걱정일세. IMF의 요구도 있지만 무분별한 금융개방처럼 로열티 폭탄을 맞지 않을까 걱정이 커.”
장인걸은 재계의 논리를 알고 있었다. 후발 산업국가인 한국은 외국의 기술을 무단으로 복제하여 사용하는 실정인데 외국의 지적재산권을 모두 인정해주고 보호해주면 어려운 경제 환경이 더 어려워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법제화를 최대한 미뤄야 하고 법제화를 한다고 해도 시행을 늦추고 그것도 불가능하면 실제로 법 집행을 하는 관련부서, 단속을 하는 경찰이나 검찰을 통해 느슨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는 실정이었다.
이는 지금처럼 남의 기술을 도용하고 약탈하여 사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이 없고 그것을 정부가 용인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로 인해 요즘 인터넷 공간에서는 지적재산권 관련하여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는 오히려 IMF의 요구가 기득권의 저항을 무력화시킬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들을 핑계 삼아 재계를 비롯한 기득권자의 저항을 물리치고 법제화를 서둘러야 합니다. 저작권이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기업에서 아무리 창의성을 발휘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중소기업이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에서 도용을 하여 싼값에 제품을 내놓으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값을 주고 원자재나 부품을 사는 것처럼, 기술이나 노하우를 사서 쓰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중소기업이 살 수 있습니다. 대기업에 제값을 받고 기술을 팔 수 있어야 합니다. 기술개발은 하지 않고 중소기업의 특허와 기술을 훔치거나 빼앗아 제 것처럼 사용하는 행태를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외국의 기술, 중소기업의 기술을 훔치거나 무단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앞으로 남의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여 만든 제품은 수출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장인걸은 지적재산권의 보호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렇게 해야 중소기업이 살 수 있고 성장 동력으로 삼은 IT 산업이 발전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대통령은 장인걸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와 정치권의 인식을 문제로 들면서 곤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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