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6
장시현은 장유현이 영화를 마치고 새로운 작품을 고르는 작업에 들어가자 차기작 선정을 위해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를 살피고 있었다.
“다음 작품은 강운성 작가와 박철성 감독의 성성콤비에서 제작하는 ‘극중남녀’와 나문희 작가와 이동연 감독의 ‘인세의 영웅’ 중에서 고를까 하는데 어떨 것 같아?”
2주 가까이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를 검토하더니 최종적으로 두 개의 작품을 골랐다.
“하지만 두 작품은 고작 시놉만 나오고 시나리오 작업은 1화도 아닌 도입부만 맛보기로 나온 상황이잖아요. 더구나 영화도 아니고 모두 TV 드라마잖아요?”
장유현은 3년 가까이 영화만 작업했다. 드라마의 경우에는 너무나 촉박하게 작업을 하기에 완성된 시나리오로 작업하는 영화를 선호했다. 더구나 긴박한 영화작업에 비해 드라마는 템포가 느려 긴장감이 떨어져 재미가 없었다.
“인지도 문제도 있고 그간 너무 영화만 해서 어투에 쪼가 생기는 것 같아. 배우는 그러면 망쪼가 들기 쉬워.”
‘쪼’란 일종의 버릇인데 부자연스러운 버릇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연극배우 특유의 과장이나 뮤지컬 배우 특유의 건들거림이 여기에 해당 되었다. 영화배우도 캐릭터의 개성창출에 중점을 두다보면 연기에 과장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드라마를 하면서 몸에 들어간 힘을 빼야 할 것 같아.”
“그래요? 하지만 너무나 쪽 대본이 난무한다고 드라마는 싫다고 했잖아요?”
“항상 쌀밥만 먹나? 이것저것 다 먹어야지. 더구나 꽤나 잘 쓰는 작가들이 나섰고 소재도 특이한 것이 망하지 않을 것 같아. 여기에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려면 드라마가 영화보다 나아. 한동안 영화만 했더니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몰라봐.”
“알았어요.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할게요. 하지만 적당한 역이 없다면 굳이 출연을 고집하지 않았으면 해요.”
“둘 다 적당한 역이 있어 보이던데. 주연은 아니라도 주조연급이라면 마다할 필요는 없어.”
장유현은 그렇게 말하고 시놉시스를 살폈다. 대략적인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작품도 중요하지만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지도 중요했다.
“그리고 우리 종씨가 연락을 했는데 어떻게 해? 안부 전화를 했다는데 우리 쪽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장시현이 언급하는 것은 장인걸이었다.
“뭐라는데? 너무 귀찮게 해?”
“아니, 그건 아닌데 어제 저녁에 전화를 했더라고. 그냥 안부를 묻는다면서. 개강을 했다면서. 그리고 말았지만. 시간 되면 식사나 하자고 하고 끊었어.”
“특별한 것도 없네. 일가친척이고 내가 유명인이니 그저 친하게 지내자는 것 같은데. 일종의 인맥을 만들려는 것 같아. 굳이 멀리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그러면 내가 적당히 상대를 할게요. 알아 두어서 나쁠 것은 없겠죠. 더구나 단역이 급할 때 부를 수도 있어 보이니 말이에요. 사람일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요.”
“애가 겉으로는 순진한 것 같지만 빈틈이 없는 애야. 사람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에 능숙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관계를 유지해.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보다 처신이 능숙해. 마치 너랑 나이가 비슷한 녀석 같아.”
장유현은 장인걸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미묘한 위화감을 주었지만 딱히 문제 삼고 싶지는 않았다.
“애가 경우가 바른 것은 알지만 뭔가 좋지 않은 목적이 있어 보이기도 해서요. 너무 계산을 하는 것도 같고. 어린 애면 애답게 연예인을 만나고 싶어 할 것인데 그런 것은 일절 내비치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요. 조금 이상해요.”
“일단 모른 척해. 나중에 두고 보면 알겠지. 연기보다 음악에 더 관심이 있다니 가수가 되고 싶다면 괜찮은 기획사나 소개해주면 되겠지.”
장유현이 그 정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 이후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이었다.
장인걸은 진성민에게 연락을 받은 여우골 삼겹살이라는 곳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구석에 있는 골방에 10여 명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어서 와.”
진성민이 일어나서 아는 체를 했다. 동기생 네 명은 먼저 도착해 있고 선배도 여섯 명이나 당도해 있었다. 그날이 양진고등학교 출신 명석대 동문회 신입생 환영회였다.
적당히 서로를 소개하고 자리에 앉았다. 기억에는 선명하지 않지만 전에 한 번 정도 안면을 튼 사람들이었고 기억을 더듬다 대략적인 내용들이 떠올랐다.
“향림이랑 연락은 해? 나 향림이랑 같이 자취도 했는데.”
이정숙의 말에 같이 자취를 했던 친구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렇게 연결이 되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전에도 원경희와 사귀는 사실을 최향림이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들 대부분이 1학기가 지나기 전에 알았던 것이다.
“종종, 같은 마을이니. 너는?”
“대학이 결정되고 난 후에는 애가 조금 그래. 내가 연락해야 연락이 되는 것 같아.”
어릴 때부터 서열중심의 사회에 익숙해져 있어 그런 것 같았다.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학교의 이름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게 되어야 그런 생각이 조금은 사라졌다.
동창회 신입생 환영회는 여타 모임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음식과 술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었다. 전에는 음식점이 떠내려갈 정도로 큰 소리로 노래를 했다는데 민주화가 되면서 차츰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
적당히 시간이 흘러 모인 사람이 열다섯 명이 되자 회장인 유지훈이 일어나 환영인사를 하고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쭈뼛거리면서 소개하는 모습이 어디나 모임은 대동소이했다. 물론 선배가 조금 나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물론 소개하다가 갑자기 야유를 받거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모임의 물주를 담당하러 온 취업한 선배 두 사람의 인사로 일종의 공식 행사가 마무리 되었다. 선배의 이름은 양하식과 전철환으로 동창 모임에 관심이 많아 이후에도 종종 개강모임이나 종강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너는 주로 과 활동을 할 거야?”
진성민이 며칠간 학교생활을 하더니 나름대로 학교에 대해 파악을 했는지 질문을 던졌다.
“적당히 참여할 것이지만 전적으로 매달릴 생각은 없어. 그보다 동아리 모임에 더 관심을 둘까 생각 중이야.”
“동아리? 어디에 들었어?”
옆에서 듣던 채지원이 끼어들었다.
“‘기타 하나 둘러메고’, 그리 크지 않은 공연 동아리라 잘 모를 거야? 음대 뒤편의 공연동아리 공간에 있어.”
“게시판에서 홍보포스터를 본 것도 같아. 너, 노래와 악기를 잘 다뤄?”
“조금, 잘 못하는데 가서 배우려고.”
시골 출신들의 경우에 고등학교 다닐 때 음악을 배울 기회가 적어 그런 연주 동아리에 잘 가입하지 않았다. 가입을 해도 국악 계통의 사물놀이나 판소리 계열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나도 ‘공간의 신비’라는 우리 대학 내의 미술 동아리에 들었는데. 과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채지원이 자신이 가입한 동아리를 소개했다.
“난 뭐를 들까? 너 따라서 거기에 가입할까?”
진성민은 어떤 동아리를 가입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과 활동도 어느 정도 참여할지 정하지 못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장인걸은 진성민이 가입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기에 권유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적을 고등학교 동기들이 아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채지원이 장인걸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었다.
‘일단 오늘은 양하식 선배나 친해 놓을까?’양하식 선배는 대정증권에 다니고 있었다. IMF 외환위기에 처했지만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빗겨나갈 수가 있었고 10여 년 후에는 지점장에 오르기도 했다.
‘총동창회에서도 제법 활동을 했지. 단지 주는 것 없이 미운 느낌이 들어 가까이 하지는 않았지만.’고등학교 총동창회 모임이 있으면 빠지지 않았고 선배들과 잘 어울렸다. 단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어린 장인걸에게 거부감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취직한 두 선배와도 잠깐이나마 소개를 하고 명함을 받기도 했다. 당장 투자할 돈은 없었지만 곧 필요할 때가 올 것도 같았다. 어떻게든 그런 기회를 만들 생각이었다.
최유림은 김기정 실장에게 사건이 터진 내역을 보고 했다. 감추려고 했지만 소문이 나는 상황이니 수습이 필요했다.
“그러니 이 바닥에 있는 녀석들은 절대 동원하지 말라고 했잖아. 우리 얼굴에 침 뱉는 격이지만 둘러 봐도 양아치 아닌 녀석이 없어. 나나 자네도 마찬가지잖아.”
김기정 실장의 말에 최유림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학교 다닐 때에 학생들 돈을 갈취한 것은 기본이고 그 후에 온갖 나쁜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윤리의식이나 신용을 기대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적당히 순진한 사람을 골라. 바른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 사람에게 적당히 이득을 제공하면서 편의를 구해봐. 1인당 1억 정도 맡겨도 문제없는 사람도 많아.”
최유림은 자신의 주변에 그럴만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정상적인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동창들도 모여서 몰래 술 마시고 담배나 태우던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길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생각으로 내 사람을 만들어 나가야 해. 조직에 있는 사람은 주먹 빼고 일반인보다 나은 것이 사실 없잖아. 도움을 받아도 훨씬 많이 받을 거야.”
김기정 실장의 말에 최유림은 자신이 이용만 할 생각을 했던 것을 뉘우쳤다. 서로 도움이 되어야 대등한 관계가 되고 관계가 길게 이어질 수 있었다.
“아마 그런 사람이 몇은 있을 거야. 진실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거야.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야. 강압에 의해 한 쪽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으면 결국 앙심을 품게 되고 보복을 당하게 될 거야.”
생각을 전환하자 몇몇 대상이 떠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하지 못할 사람이어야 비밀이 유지될 수 있기에 절반 정도는 대상에서 제외해야 했다.
“조직의 양아치들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할 거야. 비밀을 아는 순간 돈을 노리는 자들이 생길 수가 있어. 우리 일이란 것이 경찰에 신고해서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
최유림은 조급하게 처리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신중하게 협조를 구해야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큰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었다.
“이것저것 알아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법도 알아야 하고 돈의 흐름도 알아야 하고.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좋은 대학에 갔을 것 같습니다.”
“좋은 공부 했다고 생각해. 이런 경험이 밑에 사람을 부리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니. 그리고 가급적이면 메모로 남기지 마. 메모로 남기는 순간 비밀은 언제라도 새어나갈 수가 있으니. 중요한 내용이나 숫자는 머리에 담아. 수첩에 전화번호 적지 말라고 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야.”
최유림은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우고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어. 돈만 보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야.”
김기정 실장이 한참 지난 후에 말문을 열었다.
“돈을 굴려서 불려야해. 가장 쉬운 방법이 사채를 놓는 거야. 이치성이 그런 방법으로 성공을 했어. 하지만 쉽지 않아.”
이치성은 조직의 중간보스이지만 다른 중간 보스와 달리 개인 소유의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다른 중간 보스는 조직의 자금으로 꾸려진 업체를 관리했다.
“사장님은 돈만 제 때 내놓으면 어떤 방식으로 돈을 관리하건 터치를 하지 않아. 그 돈을 굴려 적당히 이득을 취하는 것은 관리자의 능력이야.”
최유림은 사채를 굴리라는 말에 솔깃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말이 쉽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 능력도 없었고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선뜻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술이나 마시자. 복잡한 건 내일 날이 밝으면 생각해.”
김기정 실장은 그 자리에서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기에 술이나 마시자고 했고 벨을 눌러 사람을 불렀다. 복잡한 일을 잊기 위해서는 유흥이 최고였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