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170
ABC방송의 자회사이자 캘리포니아 지역방송인 CA ABC는 샌프란시스코마라톤대회를 캘리포니아지역에 중계하고 있었다. 마라톤 마니아들을 위해서 매년 중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두 선수는 기록이 비슷하고 장인걸 선수는 세 달 전에 개최된 보스턴마라톤대회의 위너이죠. 둘의 자존심 대결이겠죠?”
캐스터인 데이빗 로가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하고자 다소 선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장인걸과 카라탄의 경주를 평가했다.
“그렇습니다. 두 선수의 자존심 싸움에서 일단 카라탄 선수가 이긴 것 같지만 그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온 장인게얼, 편의상 그냥 장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장 선수는 보스턴에서 초반에 선두로 나선 이후 레이스가 끝날 때까지 선두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기록을 보면 5km 지난 이후에는 10m 이내로 접근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해설자로 나선 일본계 전직 마라토너 요시다가 그런 설명을 했다.
“이번에 일본의 선수들도 여러 명 참석을 했죠?”
“그렇습니다. 2시간 6분 45초의 나까무라 슈지, 참가자 중에 3위의 기록입니다. 5위인 2시간 7분 05초의 곤도 히야시 선수 등도 우승을 다툴 것으로 보입니다. 두 선수와 대략 250m 정도 후방에서 20여 명의 선수가 달리는데 거기에 20위 안의 기록을 가진 선수들이 대부분 포진하여 뛰고 있습니다.”
“두 선수의 5km까지의 속도를 보면 역대급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기록인대요 어떻게 보십니까?”
“한 마디로 미친 기록이라고 하겠지만 과연 이런 기록을 세운 것이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기록은 1만m 경기에서 5000m 랩타임에서 나올 기록이지 마라톤에서는 무리수라고 밖에 판단이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37km를 더 달려야 하는데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완주를 한다면 좋은 기록일지 심히 의구심이 듭니다. 저는 두 선수가 뒤에 쫓아오는 선두그룹에 잡힐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저들 대부분도 두 선수만큼 달릴 수는 있지만 달리지 않은 것은 그렇게 달린 후에 정상적인 레이스를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수들 간의 경쟁도 좋지만 너무 무리한 행동입니다.”
“요시다 씨는 두 선수가 우승을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마라톤은 43km 정도 달릴 기름만 넣고 달리는 자동차 경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자동차에서 일정 속도 이상을 달리면 기름의 소비는 급속도로 증가합니다. 연비가 나빠집니다. 초반에 속도를 높이다 보니 결국 기름인 체력의 과소비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속도를 낮추어서 달려야 완주할 기름만 남게 됩니다. 만일에 속도를 기존처럼 높여서 달리면 중간에 기름이 떨어져 방전이 되고 맙니다.”
“결국 저렇게 무리하게 달리면 후반까지 달릴 체력이 없을 것이란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완주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순위권에 들 정도로 달릴 체력은 없지 않을까 전망됩니다.”
요시다는 아주 잘 되었다는 기색으로 장인걸과 카라탄의 초반 질주에 대해 혹평을 하고 뒤에 달리는 선수들의 우승을 점치기 시작했다.
“정말 두 선수의 질주는 놀랍군요. 29분 01초, 29분 02초로 10km 지점을 통과했습니다. 다른 선수와 거리를 좁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벌린 느낌입니다. 300m를 훌쩍 더 넘는 거리를 벌린 것 같습니다.”
데이빗 로 캐스터가 흥분한 어조로 10km 통과 기록을 말하면서 흥분한 어조로 말을 했다.
“좋은 기록이 맞지만 진짜로 좋은 기록은 아닙니다. 아침 일찍 07시 30분에 대회가 시작하여 출발할 때의 기온이 16℃였습니다. 하지만 30분이 지난 현재 기온은 20℃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라톤을 하는데 가장 좋은 온도는 12~14℃ 정도로 조금 쌀쌀한 날씨가 좋은데 지금은 상당히 높은 온도입니다. 이런 날씨에 저렇게 빨리 달리는 것은 한 마디로 미친, 비이성적인 레이스 운영입니다.”
요시다는 ‘미친 짓’이라고 막말을 하려다가 방송이라는 것을 깨닫고 얼른 단어를 바꿔 비이성적이라는 말로 대체했다.
이원희는 그동안 영어공부를 충실히 했기에 꽤나 영어실력이 좋아졌다. 그렇기에 제법 미국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가 있게 되었다. 옆에서 황지현이 도와주기도 하기에 제법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비슷한 행사에는 취재하러 가는 기자들도 대동소이했다.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취재하러 왔던 기자 상당수가 샌프란시스코에도 왔고 그런 기자들은 이원희가 장인걸의 개인코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원희가 결승선에 마련된 대회본부의 대기실에 당도하자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차로 이동을 했기에 그들이 당도한 시점에 장인걸은 막 10km 정도를 달려 카라탄 선수를 추월한 시점이었다.
그들은 이동하면서 지역라디오를 켜서 중계방송을 들었기에 장인걸이 어떻게 달렸는지 알고 있었다. 작전과 달리 처음에 선두로 나서지 못하고 카라탄 선수를 쫓아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라탄이 선두를 내주지 않으려고 폭주했고 거기에 휘말려 장인걸도 폭주한 상황이었다.
“충분히 저런 속도는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더위 속에서 무리한 주행을 하여 녹다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의 여름 날씨는 이곳보다도 더 덥습니다. 거기서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한국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했지만 여름의 날씨는 오히려 덥지 않았다. 방콕에 적응하기 위해서 여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굳이 샌프란시스코 대회에 온 것은 다른 업무도 처리하면서 샌프란시스코대회가 골드라벨 대회였기 때문이었다.
“장인걸 선수는 얼마 전에 생일이 지나 20세를 갓 넘은 선수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더 실력이 좋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리한 질주를 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기록의 경신보다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항상 여력을 두고 완주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원희의 대답은 장인걸이 기록을 단축할 수 있지만 부상의 위험 때문에 여력을 남기고 달린다는 의미였다. 그 말은 레이스를 같이 펼치는 상대를 이기는데 주력한다는 의미였다.
“카라탄 선수와의 레이스를 하는 상황이기에 속도를 높였고 그 때문에 카라탄 선수가 녹다운을 당한 것이라 봅니다. 장인걸 선수는 같은 속도로 달려도 5km는 더 달릴 수 있습니다. 평소 그렇게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원희는 사전에 장인걸과 협의한 내용을 풀어 놓았다. 적절하게 자기 홍보가 필요했다. 그래야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 줄 것이고 인지도가 상승했다.
“올해는 더 이상 다른 대회는 출전하지 않고 아시안게임만 출전할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훈련을 하면서 본업인 학생으로서 공부를 하고 가수활동을 해나갈 것입니다.”
장인걸은 대회 직후에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레이스를 마치고 짧은 인터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레이스 직후의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기자들도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 레이스를 진행하는 동안 개인 코치인 이원희의 인터뷰는 장인걸에 대한 정보를 얻는 좋은 기회였다.
“기록보다 레이스 운영이나 컨디션 조절을 더 중시할 것입니다. 더위 속에서 레이스를 펼치면서 적응하는데 중점을 둘 것입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에서 달릴 것이고 그렇기에 기록은 컨디션에 의해 결정이 될 것입니다.”
이원희는 적당히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중계화면을 보았다. 중계시간 대부분 장인걸이 달리는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캐스터나 해설자가 뭔가 설명을 하지만 그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장인걸은 바짝 카라탄 선수를 쫓아갔다. 선두를 절대로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상대를 적당히 자극하여 페이스메이커로 활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드디어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는군.’ 8km를 지나 약간의 언덕길을 달리자 카라탄의 숨이 거칠어지고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깨의 들썩임이 출발할 때보다 훨씬 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숨이 가빠지자 공기를 많이 들이마시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속도를 늦춰 주는 것은 다 잡은 고기를 놓아 주는 것이지. 나야 이 정도 속도는 감당이 가능하지만 카라탄 선수는 불가능하지. 속도를 생각하지 않고 추월을 당하지 않는 것만 생각하면서 달리고 있다. 사자에 쫓기는 영양의 처지에서 속도를 늦추는 것은 잡아먹히는 것이지.’ 장인걸은 빠른 피치를 사용하여 질주하는 카라탄을 보자 꼭 초원에서 도망치는 영양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사자가 속도를 높이면 죽어라 도망가고 조금 속도를 늦추면 약간의 숨을 돌리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사자의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장인걸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80km를 몸에 달고 달려도 끄떡없는데 아무 것도 달지 않고 달리니 날아갈 것 같았다. 어느새 내공을 운용하지 않고 순수한 체력으로 그 정도를 달려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 되었다.
‘이런 속도로 달리는 것은 미친 짓인데. 내가 회귀할 때도 세계최고기록이 2시간 3분대인데 그 정도 수준에 근접한 것 같은데. 이대로 가?’ 장인걸은 일찌감치 추월을 하고 앞서서 달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쫓아가는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앞으로 가로막으려고 기를 쓰는데 추월을 하려고 하면 충돌까지 불사할 것 같군. 아직은 힘이 남아 있어 위험할 것 같아.’ 장인걸은 안전하게 레이스를 운영하기로 했고 적당히 추월하려는 제스처만 몇 번 취하면서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렇게 하자 움찔거리면서 좌우로 흔들거리는 것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치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장인걸은 기감을 펼쳐 뒤를 따라 달려오는 자들을 살폈다. 300m 이상 떨어져서 10여 명이 쫓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장인걸에 비해 대략 1분 정도 뒤처진 상황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2시간 6분 전후의 기록을 낼 수 있어 보였다.
‘점점 기온이 올라가는데 이렇게 올라가면 25℃를 넘어 30℃ 가까이 올라갈 것도 같군. 이러면 대량으로 졸도할 수도 있어 보이는데.’ 샌프란시스코 마라톤대회는 대량졸도 사태로 악명이 높았다. 보통 대회가 열리면 30명가량이 졸도를 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온도가 올라가면 100명 넘게 졸도할 때도 있었다. 이러면 대회 일정을 조절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7월 말의 일정을 고수하고 있었다. 물론 졸도를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마스터스 부문이었지만 선수부도 종종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장인걸은 17초대 중반으로 달려갔다. 전에는 17초대, 18초대 정도로 조절이 가능했지만 레이스를 여러 번 하다 보니 17초대, 초반, 중반, 후반이라는 4단계 정도의 차이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이런 미세한 속도 차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레이스를 하면서 미세한 속도조절을 통하여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기에 뒤에서 쫓아오는 장인걸로 인해 카라탄은 미세한 속도조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면서 2km 정도를 달려갔고 그러자 카라탄은 마침내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장인걸은 더 이상 뒤를 따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10km를 지나자 단숨에 14초대로 속도를 올려서 순식간에 추월을 하여 앞으로 나섰다.
사실 장인걸은 매 번 가장 선두에 서서 달릴 필요도 있었다. 스포츠 용품 회사와 계약을 할 때 TV의 시청률과 노출 시간에 따라 인센티브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장인걸은 앞을 가로막던 카라탄을 추월하자 속이 후련했다. 장인걸은 대략 5m 정도로 거리가 벌어지자 속도를 늦추었지만 17초대를 유지했다.
그렇기에 카라탄은 재차 추월을 하려고 했지만 장인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 직면했다.
장인걸은 대략 1km 정도 달려서 20여 m 정도로 거리를 벌리고 18초대로 속도를 다시 더 낮췄다. 그렇게 달리자 거리가 벌어지지도 좁혀지지도 않았다. 장인걸은 보스턴 대회처럼 경기를 운영할 계획이었고 카라탄은 마치 고삐를 잡힌 송아지처럼 장인걸에게 휘둘리기 시작했다.
장인걸이 당기면 끌려가고 놓아주면 뒤로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마치 인형극의 마리오네트처럼 장인걸이 조종하는 대로 달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20km 지점을 통과하면서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끝ⓒ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