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
장인걸은 습관적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어릴 적부터 한 덕분에 유연하게 가부좌를 할 수가 있었다. 나이 서른이 되면 보통 몸이 굳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의 유연성은 남아있었다.
‘지울 수만 있다면 고등학교 졸업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풀어진 분위기 속에 서울로 진학이 결정된 원경희를 만났다. 졸업식 3일 전에 원경희와 처음으로 이야기를 했고 졸업을 하고 서울에 올라가기 전 10여 일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났다.
서로 불타오른 두 사람은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남녀가 겪어야 하는 모든 과정을 다 거쳤고 서울에 올라와서도 집만 달랐지 부부나 다름이 없이 보내었다. 장인걸이 입대를 한 후에도 문제가 없이 보낼 수가 있었고 원경희가 먼저 졸업하고 취직을 한 이후에도 계속 만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일이 벌어진 이후에 생각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더욱 더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그런 것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럴 경우에 막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이 쉽게 떨칠 수가 있기에 화두를 그냥 두었다.
처음에 불같이 일어난 감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가라앉기 마련이었고 그러면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단지 그런 과정이 상당히 괴롭기 짝이 없었다.
명상에 빠진 장인걸은 모르지만 대략 15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장인걸의 몸 주변에 아지랑이처럼 빛 무리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차츰 형광물질이 발라진 반사판처럼 파르스름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명상호흡을 하면서 장인걸은 자신도 모르게 단순한 명상호흡의 단계를 지나 기운을 모으는 단계에 들어갔고 이제는 그 기운을 유형화시키는 단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뭔가 이상하군. 오늘은 전과 달리 왜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지 모르겠군. 주변의 기운마저 다른 때와 다른 것도 같고. 기의 밀도가 갑자기 증가한 것도 같으니. 설마 초신성의 폭발과 태양의 흑점 변화로 인해 지구에도 뭔가 변화가 있는 건가? 일반인은 느끼지 못하지만.’어느 때보다 기가 왕성해지면서 격렬한 증오가 일어나고 수치심도 그만큼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진정이 되지 않고 있었다.
‘경희나 승찬이란 놈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명환이나 석진이까지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황명환이나 안석진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알았고 20년 이상이나 친구로 지낸 사이인데 그들마저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녀석이 만나 술집에 앉아서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낄낄거리고 있을 것이다. 잘 되었다고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석진이 녀석은 은근히 나를 아니꼬워 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그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말다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면 서로 밑바닥을 보이면서 싸우기도 했다. 만나는 여자가 있으면 동행을 하기도 그렇고 여자와 따로 놀기도 애매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싫은 소리를 했다.
그런 것까지 떠오르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평상시와는 다른 현상이었다. 그간 잘 억누르고 있었는데 타지에 와 있다는 상황이라 감정이 분출되는 것 같았다.
장인걸은 칼을 들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알몸으로 흐트러진 모습의 원경희가 앉아 있었다. 그런 모습이 익숙했다. 근 10년의 시간 동안 자주 보았던 모습이니 당연했다.
장인걸이 칼을 들고 달려들자 원경희가 놀라 소스라치는 모습을 보였다. 장인걸은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휘둘렀다. 원경희가 몸을 돌려 피하자 어깨가 베이면서 피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장인걸은 다시 한 번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원경희가 쓰러지자 검의 궤적을 바꿔서 등판을 베었고 다가서면서 마침내 왼쪽 등판에 검을 꽂아 넣었다.
검이 꽂힌 원경희는 바르르 떨다가 숨을 거두었다. 그가 검을 뽑아 들자 피가 솟구쳤고 그 순간 다부진 몸을 가진 사내가 벌거벗은 상태로 화장실로 보이는 곳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동기인 이승찬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어려 있었다. 그러다가 피를 흘리고 쓰러진 원경희와 칼을 들고 있는 장인걸을 보자 놀라는 표정이 아니라 조롱을 하면서 비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마치 학교 다닐 때에 불량스러운 녀석들과 터미널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장인걸은 그런 이승찬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검을 곧추세워들고 달려들었다.
장인걸이 검을 휘두르자 이승찬은 놀라는 표정이 되면서 피했지만 장인걸은 그냥 놔둘 생각이 없었다.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짓던 이승찬이 검을 다 피하지 못하고 가슴팍에 상처를 입자 험상궂게 표정이 변했다.
이승찬은 두려운 기색보다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장인걸이 휘두르는 검을 무시하면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장인걸의 검은 어설픈 것이 아니었다.
장인걸은 이승찬을 피하지 않고 자세를 바로하고 달려드는 이승찬의 가슴팍을 향해 그대로 찔러갔다. 그러면서 몸을 약간 틀어 옆으로 피하였다.
검은 이승찬의 가슴에 그대로 박혔고 장인걸은 가진 힘을 다하여 팔을 앞으로 뻗었다. 뭔가 강한 반동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더 힘을 가했다.
소름이 끼치면서도 뭔가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있던 분노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순간 이승찬의 입에서 피가 솟구쳤고 장인걸은 검을 뽑으려고 했지만 잘 뽑히지 않아 비틀어서 뒤로 당기자 빠지기 시작했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이승찬이 앞으로 쓰러졌다.
뒤로 물러나면서 빠르게 검을 뽑아내자 이승찬이 쓰러져 있던 원경희 옆으로 나뒹굴었다.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두 나신을 보자 사람을 죽인 죄책감보다 미뤄둔 일을 마친 것 같이 후련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화장실과 붙어 있던 방문 옆에서 벌거벗은 세 명의 남자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원경희와 관계가 있다던 김광일, 이진석, 서정민이었다.
그들도 방금 전까지 원경희와 뒹굴었던 것 같았다. 이승찬이랑 고등학교 때에 어울려 다니던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 셋 다 모두 죽일 놈들이었다.
이승찬을 처리하면서 후련해졌던 마음이 들끓어 올랐다. 그들을 보자 다시 분노가 일어났다. 장인걸은 그들에게 돌진하여 한칼에 그냥 베어냈고 셋 다 허수아비처럼 죽어나갔다.
장인걸이 세 사람을 다 베어내고 돌아서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울분으로 씩씩대고 있는데 마치 재미있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현관문을 조금 열고 누군가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랑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던 황명환과 안석진이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심각해 보였지만 겉으로 그렇지 그들의 두 눈은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본 것처럼 기대감이 서려있고 그를 볼 때에는 은근히 조롱하는 기색마저 보였다.
‘너희들은 지금 이런 상황이 재미있어?’장인걸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훔쳐보는 것을 들키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현관문을 닫았다. 그 후에 안석진은 평소 전자기기 얼리 어답터답게 외국산 휴대폰을 꺼내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고 했다.
‘신고하려고?’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싫었다. 평소에도 뒤에서 뒷담화를 한다는 말이 있던 안석진인데 신고하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둘이 특별하게 죽을죄를 진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범죄행각을 본 이상 그냥 두고 싶지는 않았다. 둘을 처리하고 자신의 죄를 감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장인걸이 다가가자 설마 죽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고 있는지 여유로웠지만 장인걸을 기습적으로 검을 들어 올려 안석진을 베어갔다. 설마 그렇게 공격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기색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검의 사정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안석진이 쓰러지자 뒤에 조금 뒤쪽으로 처져있던 황명환이 문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닫힌 문을 열려고 했지만 그렇기에는 장인걸의 동작이 더 빨랐다.
무려 일곱이나 되는 사람은 한 순간에 살해한 장인걸은 현실을 깨닫고 후회하는 감정이 들었지만 그것은 그저 마음 한구석에 드는 생각이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원한을 해결한 것으로 인해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장인걸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것이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의 일이라는 자각이 있었다. 그저 생각뿐이지 현실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순간 장인걸은 들고 있던 검의 감촉이 사라지면서 주변의 살벌한 풍경마저 무너지는 것처럼 사라졌다. 그러면서 정신이 아득해지면 의식을 잃어갔다.
하늘에서 미미한 오로라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구에 도달한 초신성에서 발출된 기운과 태양풍의 바람이 지구의 자기장과 만나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빛이 나지 않기에 전자파의 요동으로 느껴지지 일반 사람들이 감지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극심한 변화를 맞이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경포그린호텔에서 명상에 잠긴 장인걸은 평소에 하던 명상호흡법으로 인해 풍부해진 기운을 한껏 받아들여 변화를 일으켰고 그것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의 벽을 무너뜨리는 현상을 불러오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초신성의 폭발로 인해 막대한 에너지가 발출되면서 공간의 팽창으로 인해 시공의 축이 뒤틀린 상황에서 한 상황에서 기의 밀도가 희박한 곳에 막대한 기운이 몰리게 되자 차원의 벽을 뒤흔들게 되었다.
더구나 장인걸이 익힌 무명의 명상호흡법은 혼돈의 기와 상극인 금강의 기운을 생성하는 기운이었다. 혼돈의 기운과 상극이지만 한편으로 서로 보완을 하는 기운이기도 했다.
거기에 장인걸은 간절하게 원경희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기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밤이 깊어가는 시간 두 남자가 십여 명이 들어갈 정도로 넓은 룸살롱의 홀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심각했다.
한 남자는 그나마 여유로웠지만 한 남자는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최유림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기색이 어렸다. 조직에서 출세를 하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고 마침내 조직의 두목이자 큰형님인 안광현의 수행비서의 자리까지 오를 수가 있었다.
안광현이 보스가 되면서 통칭 광현이파라 불리는 조직은 그 중심에 천광상사라는 부동산임대 및 관리 회사가 존재했다. 천광상사는 일종의 지주회사로 휘하에 천광주류유통, 천광아울렛, 천광식품유통 등을 거느리고 있었다.
보스인 천광상사 사장 수행비서의 공식적인 직급은 고작 과장급이나 대리급이지만 조직의 10위권 이내에 있는 이사급 중간보스들에 비해 처지지 않는 자리였다.
물론 조직 내부에 기반이 없기에 보스인 안광현이 해고하면 끝이지만 그것은 밑에 10여 명의 심복을 거느린 중간 보스도 마찬가지였다.
“상납금의 일부를 별도로 적립하라는 말입니까?”
조직도 현재는 회사 형식으로 바뀌었고 기존처럼 무식하게 돈을 갈취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다가는 반발도 크고 상납하는 업체들도 문제가 발생했다.
상납금을 장부에 기록하지 못하거나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세금에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조직도 차츰 사회의 관례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조직 내부도 일반 회사처럼 운영하게 되었다. 아주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회사처럼 일을 하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경리를 맡고 있는 이찬혁 부장이 협조를 해줄 거야. 방법도 알려 줄 것이고. 하지만 최종적인 운용결과에 대하여는 내게 직접 보고를 해. 이부장이 알게 할 이유는 없으니.”
보스의 직할에는 수행비서가 둘이나 있고 경호원이 셋에 운전수가 둘이나 있었다. 그 정도 인원을 부릴 이유가 없는데도 항시 그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수행비서의 장은 김실장이라 부르는 김기정이었고 최유림은 진짜 수행비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 번 일만 잘 하면 네가 서류가방이나 들고 다니는 역할에서 벗어나 업체를 관리하는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 거야.”
최유림은 김기정이 맡는 비자금의 관리를 자신도 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비자금 관리를 밑에서 하게 된 것은 몇 년 전에 시행된 금융실명제 때문이었다.
비자금으로 조성된 현금을 무작정 드러냈다가는 결국 경찰이나 세무당국에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 다양한 방식을 이용하여 은닉하는 작업이 필요했고 그렇게 하려면 분산을 시켜야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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